엄마가 아이를 믿어주면
아이는 자신을 신뢰하게 된다
나를 절대적으로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데 무척 큰 힘이 된다. 아이에게 있어 이런 역할은 대개 부모가 하는 경우가 많다.
위대한 인물들 뒤에는 반드시 그를 믿어준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었다. 그들은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 그 결과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것도 이러한 믿음이라는 힘이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느낌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금방 바뀌기 시작한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 없어 하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믿어주는 상담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나 역시 나를 믿고 자신의 아픔과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내담자들을 통해 믿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곤 한다.
욕심을 버리면 아이를 믿을 수 있게 된다
집단 상담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대인 관계의 신기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둘러 앉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탐색 과정을 거친다. 과연 상대방들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탐색이다.
탐색이 끝나 믿음이 생기면 자신에 대한 껍데기들을 하나씩 벗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내가 남을 믿어주는 기쁨과 남이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신뢰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안전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살면서 받은 상처들을 집단 상담 시간에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서로의 생각 차이 때문에 의견도 분분하고,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아픔을 다독여주고 안아주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나 상처가 있다는 사실과 여린 가슴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들을 발견하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함께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믿음도 이런 것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더 맹목적이고 순수할 것이다. 그런데 세월과 함께 지나친 기대나 이기심이 섞이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많이 흐려지는 것 같다.
처음 큰아이 준영이가 내게 왔을 때는 다른 어떤 기대도 없었다. 그저 건강하기만 바랐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욕심과 기대도 커져갔다. 그런 만큼 아이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고 말았다.
지켜만 봐주고 보조자의 역할만 해주어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도, 늘 못 미더워하고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고 일일이 확인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말로는 믿어주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실천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통해 ‘과연 아이를 믿어준다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 것일까?’하는 반문을 해보기도 했다.
믿기 때문에 지켜보는 것과 방임과는 다르다. 힘들고 귀찮을 때 아이를 믿는다는 핑계로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방임이다. 말 그대로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이를 믿어서가 아니다.
믿기 때문에 지켜보는 것은, 아이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힘들어할 때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이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정하고, 부모는 아이가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믿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와 아이 사이의 믿음이고, 이 믿음으로 인해 아이는 큰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된다.
믿는다는 것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큰아이가 처음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너무나 불안했다. 소중하기만 한 아이가 어떻게 되지나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보니 한순간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쫓아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언제까지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며 봐줄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강해지자 그리고 믿자. 이 아이가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자. 믿고 지켜보자. 내가 계속 불안해한다면, 그 불안함이 아이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불안해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보다는 자신감 있는 아이로 키우자’
그 뒤부터 나는 아이가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또 놀다가 다쳤을 때도 “그래, 아프겠구나, 약 바르자”하면서 아이가 보이는 반응 이상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놀다가 다쳐도 유난스럽게 굴지 않았다. 그리고 5살 이후에는 스스로 약을 바를 수 있도록 연고와 반창고를 손 닿는 곳에 두었다. 그러자 스스로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기도 했다. 너무 크게 다쳤을 때만 도움의 손길을 원했다.
다친 부위에 스스로 약을 바를 줄 알게 되자 위험한 일에 대해서는 미리 피할 줄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봐서는 일찍 인라인을 배우려 했을 텐데 충분한 자신감이 생기면 배우겠다고 해서 7살이 넘어 인라인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자 아이의 말대로 비교적 쉽고 빨리 배웠다.
이런 경험을 통해 뭐든지 필요 이상으로 일찍 가르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아이 스스로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가르쳐주자 더 열심히 배우고 더 빨리 배웠기 때문이다.
엄마가 서둘러 아이를 몰아가거나 쓸데없는 걱정을 미리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먼저 아이의 능력이나 생각을 믿어주자.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리부터 어른이 선택해 주고 결정해주면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의 선택을 믿어줄 때 선택 능력이 자란다
나는 언제나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편이고, 아이의 생각대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딱 한 번 이런 원칙을 어기고 내 생각대로 끌고 가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것은 영어 공부를 가르칠 때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어만큼은 일찍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아이에게 되도록 빨리 영어라는 세계를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서 준영이를 ‘꼬드겨’ 영어 학원에 보냈다. 그런데 도통 영어에 관심이 없었다. 학원에만 가면 놀고 싶어 했다.
아이들 영어 수업이라는 것이 대개는 놀이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재미있어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준영이는 달랐다. 놀이도 어느 정도 영어를 알아야 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영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았으니 놀이인들 재미있을 리 없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준영이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 보았다. 아이는 당연히 다니기 싫다고 했다. 어떤 틀 속에 갇혀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나는 과감하게 영어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하고 싶으면 언젠가는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로 했다.
준영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하기 싫은 것이 무엇인지 비교적 정확하게 아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때문에 아이를 믿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억지로 시키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필요에 의해 선택할 수 있도록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내 선택이 옳은지 또는 그른지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쩌면 평가할 필요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이의 행복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놓고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하여 삶이란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다소 어려운 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그 말의 의미를 되씹어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컬럼을 제공해주시는 송선희선생님 약력
- 홍익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졸업(교육학 박사) 교육상담 전공
- 한국상담심리학회 정회원, 좋은 인간관계학회(현실요법) 정회원
- 사랑의 전화 상담교수 역임
- 상명대학교, 명지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등 강의 중
- 부모역할훈련(APT) 강사 자격증, 아바타(AVATAR) 마스터 자격, 중등교원자격증
- 저서 : 좋은 엄마연습(책으로 여는 세상 출판)
출처 : 서울시아동복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