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내 날>
주 5일 근무제라 토 일요일이 휴일이나 일요일은 주일날이라 하나님의 날이고
토요일은 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은 맘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에게 선포했습니다. 토요일은 내 날이라고요.
그러나 말만 그렇게 했지 기다렸다는 듯이 주문이 쏟아집니다.
“여보 내일은 세탁기 빨래하고 널고, 일주일간 밀린 방 청소 하시고
차의 먼지도 닦아 내시고요. 그리고 또.......>
“그만 그만 토요일은 내 날인데. 내일 아침에 하면 안 될까?”
“그걸 말이라고요?”
출근하는 아내의 부탁들을 들어주기에 간단한 것들이지만 좀 억울합니다.
부탁이 없다 해도 8시 반까지 애 학교에 태워다 주고
오후 5시에 데려오고 중간에 10시에 구역회 모임이 끼어 있어서
밭뜨럭에 심어놓은 엄나무를 돌보러 가려고 해도 시간이 어정쩡합니다.
<에라 그냥 집안일에 충성이나 하자.>
가까이 있는 텃밭이 궁금하여 밭을 둘러보러 갔습니다.
건조한 날씨에 어찌들 지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고추와 토마토, 가지 심은 것들이 많이 자랐습니다.
대추토마토 모종이 많이 자랐는데 다른 품종보다 왜소해 보여서
<저게 언제 제 구실할까> 하는 마음으로 심었는데 곁순이 많이 나올 정도로 자랐습니다.
역시 모종관리를 제대로 하여 판매한 모양입니다.
거름을 한 주먹씩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지지대를 박아 주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묶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일이 끝나고 밭둑을 둘러보았습니다. 두더지가 파고다녀 놈들과 싸울 일을 걱정했는데
놈들의 주통로에 약을 놓아 일망타진된 건지 다른 곳으로 이사갔는지
녀석들의 활동이 중지되어 있었습니다.
“빨리 준비해서 출근해요.”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이 조급합니다.
밭에 다녀오는 동안 제 시간에 일어난 것 같은데 아내의 출근이 제 시간에
될 것 같지 않아보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버스시간을 훌쩍 넘겼네요.
필자 같으면 로션과 크림을 바르고 옷입고 나서는 시간이 10여분이면 끝나는 것을
아내는 여우 멋내기하는 시간이 족히 30분은 걸리지 싶습니다.
“안되겠다. 얘야 얼른 준비해라. 엄마랑 함께 차타고 가자.”
고3 아이를 함께 준비시켰습니다.
세 식구가 차를 타고 집을 나섰습니다. 차창으로 초여름 풍경이 지나갑니다.
무수히 많더 꽃들은 이미 지고 신록의 옷을 갈아입은 가로수들이 작렬하는 태양을
맞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아내를 단구동에 출근시키고 아이를 반곡동에 내려놓고 돌아오는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일타쌍피, 한 번에 두 사람을 데려다 주었으니 잠깐의 해방을 느낍니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강변으로 향합니다.
조깅 잠깐인데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햇살이 퍼져서 힘들 거라는 생각에 처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영양제로 보약을 먹지만 나는 가벼운 운동이 보약이다>
이렇게 자신을 설득합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달리고 나서 샤워하면 상쾌한 기분은 어디 비할 데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대우자동차 근무하시다 퇴직한 후 이 곳에 정착한지 10여년이 되셨다는
67세 연세의 어르신입니다.
전에는 운동할 때 자주 뵙고 인사드렸던 분인데 한동안 뜸하다가 오래만에 뵈니
반갑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죠? 한동안 뵙기 어려웠네요.”
“내가 할 말이지요. 젊은이가 이사간 줄 알고 집 앞에 까지 찾아가봤던 걸요.”
“그렇게 제가 궁금했었다구요?”
그냥 일면식만 있고 어쩌다 운동할 때 만나면
그간의 있었던 일들을 나누었던 일 밖에 없었지요.
그 선생님이 필자를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이 뜻밖입니다.
필자는 교회를, 그 선생님은 성당에 나가셔서 공통점이 없어서 끌릴 이유가 없었지요.
단지 그 분이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드렸던 적이 있었지요.
필자의 이야기도 서로 나누었고 그래서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우(心友)라는 것이 이런 걸까요?
필자에게는 복이 많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소극적인 타입입니다만
상대방이 필자에게 다가와서 친구가 되어 줍니다.
나이가 적건 많건, 여자든 남자든 좋은 분들과의 만남을 함께 하며
잘 살아가도록 복을 허락해 주신 분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