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년체란 ??
역사 기술의 한 형식.
기전체(紀傳體)·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와 함께 역사의 3체라고 한다. 사마천(司馬遷)이 기전체를 창출하기 전까지 역사책에 사용되었는데, 연도를 따라 사건을 기록하는 이른바 연대기 형식이다. 그때문에 〈수서 隋書〉 경적지(經籍志) 편에는 편년체의 역사책을 사부(史部) 고사류(古史類)로 분류하고 있는데 고사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편년체 역사서로는 〈춘추 春秋〉·〈자치통감 資治通鑑〉이 있다. 중국에는 서력과 이슬람력처럼 통일된 연대표기법이 없었기 때문에, 두 왕조 이상 병존하는 시대를 기록하려면 어느 왕조든 하나를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기전체란??
역사 기술·편찬의 한 체재.
편년체(編年體:〈춘추〉·〈자치통감〉 등)·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통감기사본말 通鑑紀事本末〉·〈역사 繹史〉 등)와 함께 동양에서 사서편찬법의 정통을 이루는 형식으로, 전한(前漢) 때에 사마천(司馬遷)이 편찬한 〈사기〉에서 시작하여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편찬한 〈한서 漢書〉에서 그 정형이 완성되었다. 이후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로 편찬된 25사가 모두 기전체로 편찬되었다. 체재는 본기(本紀)·열전(列傳)·표(表)·지(志)로 이루어져 있으며, 표·지가 빠진 것도 있다. 본기는 천자(天子)의 전기(傳記)·국가의 대사를 천자 재위의 연월에 따라 기록하고, 열전은 신하의 세가표(世家表), 전기(傳記), 외국의 것을 나란히 기록했다.
본기·열전이 통상 실리므로 이를 따서 기전체라고 했다. 표는 연표(年表)·세계표(世系表)·인명표(人名表)가 있다. 지는 본기·열전에 들어가지 않는 사회의 중요사항을 서술하고, 그 과목(科目)은 때에 따라 늘거나 줄기도 하지만, 예(禮)·악(樂)·천문(天文)·오행(五行)·식화(食貨)·형법(刑法)·지리(地理)·관직(官職) 등의 통치제도와 문물·경제·자연현상을 내용별로 분류하여 기록했다. 기전체는 하나의 사건에 관한 자료가 본기·열전·지 등에, 그리고 지에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지에 분산·기록되어 있어 사건의 전모를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군주와 신하의 권선징악을 평하는 감계주의적(監戒主義的) 역사의식을 기술하는 데 적합한 체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가 현전하는 기전체 사서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 고려가 멸망한 뒤, 관찬사서인 〈고려사〉가 기전체로 편찬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학자 개인에 의해서도 고려 이전의 역사가 기전체로 편찬되었는데, 16세기 오운(吳澐)의 〈동사찬요 東史纂要〉, 17세기 후반 허목(許穆)의 〈동사 東史〉, 18세기 후반 이종휘(李鐘徽)의 〈동사〉 등이 있다.
★ 기사말본체 [紀事本末體]
이 체재는 남송(南宋) 때의 원추(袁樞)가 편년체(編年體)인 〈자치통감 資治通鑑〉의 기사를 〈통감기사본말 通鑑紀事本末〉로 편찬하면서 하나의 역사 편찬·기술체재로 시작되었다. 이후 〈송사기사본말 宋史紀事本未〉·〈원사기사본말 元史紀事本未〉·〈명사기사본말 明史紀事本未〉·〈좌전기사본말 左傳紀事本未〉·〈서하기사본말 西夏紀事本未〉·〈요사기사본말 遼史紀事本未〉·〈삼번기사본말 三藩紀事本未〉·〈금사기사본말 金史紀事本未〉의 9조(九朝) 기사본말 등 명·청대에 이 체재를 따른 많은 사서가 편찬되었다. 이 체재의 특징은 사건의 명칭을 제목으로 내걸고 그에 관련된 기사를 모두 모아 서술하여 사건의 전말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정치적인 사건을 기술하는 데에는 가장 효과적인 체재이다. 이는 기전체(紀傳體) 및 편년체와 더불어 동양의 3대 역사편찬 체재 가운데 하나로, 그 가운데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이다. 즉 먼저 나온 역사편찬 체재인 기전체와 편년체가 가진 단점, 즉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창안된 것이며, 역사에서 사건의 전말을 알고자 하는 새로운 역사인식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원추는 단순히 열람의 편의를 위해 이 형식을 썼지만, 청대 장학성(章學誠) 등은 상서(尙書)의 뜻을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이 형식을 중시했다. 우리나라에서 기사본말체로 편찬된 사서로는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 燃黎室記述〉, 서문중(徐文重)의 〈조야기문 朝野記聞〉, 편찬자 미상의 〈조야집요 朝野輯要〉, 이원순(李源順)의 〈화해휘편 華海彙編〉 등이 있다.
★ 강목체 [綱目體]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개하기보다는 저자의 사관에 따라 역사상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을 선정하여 큰 글씨로 쓰고, 그 아래에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때 큰 글씨로 쓴 부분을 강(綱)이라고 하고, 아래에 요점을 설명하는 부분을 목(目)이라고 한다. 강목의 세부사항은 주(注)로 설명하며, 강목의 선정원칙과 표기법은 범례(凡例)로 처리한다. 범례는 사서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강'의 내용과 표현에도 사건과 인물에 대한 포폄을 반영한다. 예를 들면 국가와 왕조도 정통과 비정통을 구분하여 표기법에 차이를 두며, 인물을 호칭할 때도 인물을 평가하여 어떤 사람은 호(號)로, 혹은 자(字), 이름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강목형식의 역사서술은 특정사건을 선정하여 목과 주에서 설명하며, 표현방식에서 저자의 포폄을 반영하므로 군신간의 선악포폄(善惡褒貶)을 내용으로 하는 춘추대의론(春秋大義論), 소속왕조의 의리·명분을 강조하는 정통론(正統論)에 입각한 역사인식, 즉 주자성리학적인 도덕사관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서술방식이 된다. 강목형식의 역사서술은 공자가 쓴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에 기원을 둔다. 남송 때 주희(朱熹)는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을 성리학적 가치관에 의하여 〈자치통감강목〉으로 편찬하여 강목형식의 역사서술을 체계화시켰다.
강목형식의 역사서술에서는 의리와 명분이 강조되고 인물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가 중점적으로 서술되고 있으므로 사론(史論)이 적은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강목형식의 역사서술로는 고려시대 김관의(金寬毅)가 편찬한 〈본조편년강목 本朝編年綱目〉 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존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강목체 사서로는 조선 초기의〈동국통감〉이 있으며, 성리학 이론이 크게 심화된 17세기에 강목체 형식의 사서가 대거 나타났다. 특히 근기학파(近畿學派)는 정통론에 철저한 사관을 한국사에 적용시켜 한국사의 독자적인 계통을 세움과 동시에 종래의 한국사 체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홍여하의 〈동국통감제강 東國通鑑提綱〉, 유계(兪啓)의 〈여사제강 麗史提綱〉, 임상덕(林象德)의 〈동사회강 東史會綱〉,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 민경호(閔京鎬)의 〈대동사강 大東史綱〉 등이 강목형식으로 씌어졌다. 이들의 범례는 〈자치통감강목〉의 범례를 많이 원용하고 있다.
<출처 : Daum 검색 '우리문화'http://cafe.daum.net/munkorea 경복궁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