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 서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 유치환의 「행복」을 조용히 읊조리며
남파랑길 26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거제 파출소에서 청마기념관까지 14.2km.
오늘 길은 시인의 마음을 따라 걷는 길이다.
2026년 3월 22일,
거제도의 바다는 완연한 봄을 지나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은 평온한 남녘의 시간을 품고 있다.
이제 한 코스만 더 걸으면
거제도를 떠나 다시 통영으로 향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오늘 길은 조금 더 천천히 걷게 된다.
거제에 들어와 열다섯 번의 남파랑길을 걸으며
이 섬의 바다와 바람을 익혀왔고,
이제는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인천에서 시작된 먼 길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깊게 남아 있다.
우리는 거제식물원으로 향한다.
남해안의 온화한 기후와 어우러진 식물원의 풍경은
여행의 시작을 한층 부드럽게 만든다.
정글돔 관람을 마치고 외간초등학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용고문님께서 강화도 교동으로 가기 전, 옛 선착장이었던 창우항까지 직접 이동해 투어단 전원을 위해 싱싱한 숭어회를 준비해 주신 것이다.
따뜻한 봄 햇살 아래, 푸른 거제 바다와 한산섬을 바라보며
우리는 잠시 길을 멈추고 함께 웃었다.
그렇게 펼쳐진 작은 한마당은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런 배려와 서로에 대한 마음들이 모여
우리는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이어져 만들어진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한 구절이 떠오른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나를 어쩌란 말이냐”
그 간절함처럼
우리 또한 어쩌지 못해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달에 두 번,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남해로 내려오는 이유가
어쩌면 그 마음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든든히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다시 길을 오른다.
완만한 임도길이 이어지고
바닷바람인지 산바람인지 모를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길은 숲으로 스며들고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신두루비재로 이어진다.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새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서
대봉산과 산방산 자락의 깊은 숲이
조용히 길을 감싼다.
간간이 열리는 전망 사이로
거제의 산과 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시간이다.
방하마을 어귀에서 공주샘을 지나
마침내 청마기념관에 닿는다.
이곳에 서니
한 사람의 시간이 이 길 위에 조용히 이어져 있는 것만 같다.
청마기념관을 떠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과 지치지 않는 열정이
바람에 소리 없이 나부끼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이 길 위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이 길 위에서 무엇을 흔들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리움일까,
열정일까,
아니면 끝까지 걸어가고 싶은 마음일까.
남파랑길은
결국 바다를 따라 걷는 길이 아니라
이렇게 각자의 마음을 따라 걷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 푸른산 -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
항상
뒷자리 회원님들의 먹거리를 챙겨 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어우대장님 !
함께 걸어서 즐거웠습니다.
푸른산 님 멋진 후기 잘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ㅡㅡㅡ.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7코스도
활기차게
함께 걷겠습니다.
오메 !
반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