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을 걸으며(3-2, 일자산길)
(고덕역∼수서역, 2017년4월27일)
瓦也 정유순
고덕역 4번 출구로 나와 명일산책길로 걸음을 옮기는데 붉은 단풍잎 사이로 비치는 하늘은 미세먼지가 없는 모처럼 보기 힘든 봄 하늘이다. 아니 계절이 가을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명일산책길 입구에 있는 분수대는 하늘로 솟아오르기 위해 겨우내 찌든 때를 벗겨낸다.
<붉은 단풍>
명일동(明逸洞)이란 이름은 고려 성종 11년(994년) 때 이곳에 명일원(明逸院)이라는 숙소를 두고 출장하는 관리나 여행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제공해 주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명일원 · 원텃골이라고도 하였다. 경기도 광주군이었다가 1963년 1월 행정구역 개편 때 서울특별시로 편입된 지역이다.
<명일산책길 입구>
명일산책길은 명일산자락에 위치한 명일근린공원 능선을 따라 나있는 산책길이다. 2주 전 고덕산 길을 걸을 때만 해도 벚꽃과 진달래 등 이른 봄꽃들이 절정을 이루더니, 지금은 형형색색의 철쭉꽃들이 자리매김을 한다. 여린 잎 사이로 바깥세상도 보이더니 잎들이 무성하여 녹색담장을 만들어 준다.
<녹음에 싸인 이정표>
강동 경희대병원 뒷길에는 5월이면 꽃 핀다던 팥배나무가 조금 일찍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꽃 모양이 배꽃과 비슷하게 생긴 하얀 꽃도 예쁠 뿐만 아니라 양질의 꿀을 듬뿍 안고 있어 벌과 나비도 많이 몰려든다. 익은 열매는 붉은 팥알만 하고 모양은 찔레열매와 비슷하다. 겨울에는 산새들의 훌륭한 먹이가 되고, 사람들도 달여 먹으면 위장병에 좋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물앵두나무, 벌배나무, 산매자나무, 운향나무, 물방치나무라고도 한다.
<팥배나무>
<팥배나무 꽃>
신록에 겨워 숨 가쁜지 모르게 가볍게 명일산책길을 넘으니 한영중·고와 강동고 사이 길을 건너 상일동 숲길을 지난다. 곳곳에 시민들이 찾아와서 휴식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으나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이용하는 사람은 그리 눈에 띠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좋아 보인다.
<강동고등학교>
<상일숲길 입구>
상일 숲길을 벗어나면 천호대로가 나오고 길 건너 일자산 입구에는 봄꽃들이 활짝 핀 화원(花園)들이 꽃들의 주인을 기다린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지나가는 과객(過客)에게는 봄 향기 짙은 꽃들이 한없이 고맙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본다.
<화원의 꽃>
<화원의 꽃>
일자산으로 막 올라가면 5월에 핀다는 겹황매화가 조금 일찍 피어 반갑게 반긴다. 죽도화 또는 죽단화라고도 불리는 겹황매화는 마을 부근의 습한 곳이나 산골짜기에서 잘 자란다. 줄기가 곧게 서고 가지가 많다. 일본 원산으로 열매는 맺지 않으며 꺾꽂이와 포기나누기로 번식한다고 한다.
<황매화>
<황매화>
일자산(134m)은 경기도 하남시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사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서울의 동쪽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하남시 감북동 배다리에서 초이동까지 남북으로 약5㎞ 정도 길게 뻗어 있다. 1971년 일자산 일대에는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휴양시설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약수터가 많아 시민들의 발길이 잦고, 고려 말의 문인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훈교비(訓敎碑)가 있다.
<일자산 입구>
이집(李集, 1327년∼1387년)은 고려 후기의 학자이며 문인으로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호는 둔촌(遁村)이다. 고려 충목왕 때 과거에 급제하고, 공민왕17년(1368년) 실권자 신돈(辛旽)의 미움을 받자 영천(永川)으로 도피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신돈이 죽자 다시 관직에 임명되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영현(川寧縣)에서 은둔하였고, 조선 개국 후에도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강동구 둔촌동(遁村洞)은 이집(李集)이 한 때 이곳에 은둔했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또한 둔촌(遁村) 이집(李集)이 후손에게 이르기를
讀書可以悅親心(독서가이열친심) 독서는 어버이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
勉爾孜孜惜寸陰(면이자자석촌음) 시간을 아껴서 부지런히 공부하라
老矣無能徒自悔(노의무능도자회) 늙어서 무능하면 공연히 후회만 하게 되고
頭邊歲月苦駸駸(두변세월고침침) 머리맡의 세월은 괴롭도록 빠르기만 하느니
遺子滿籝金(유자만영금) 자손에게 금을 광주리로 준다 해도
不如敎一經(불여교일경)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니라
此言雖淡薄(차언수담박) 이 말은 비록 쉬운 말이나
爲爾告丁寧(위이고정령) 너희들을 위해서 간곡히 일러둔다.
<둔촌의 훈교비>
일자산 남쪽 양지 바른 곳 하남시 감북동에는 공원묘지가 있다. 옛날에는 후손이 조상을 모시는 것이 효(孝)의 근본으로 여겨 의무(義務)사항이었으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변화되고 핵가족화가 되면서 장례(葬禮)문화가 화장(火葬)이나 수목장(樹木葬)으로 많이 변하면서 조상을 모시는 방법이 변한 것 같다. 그래서 명당(明堂)의 조건을 옛날에는 풍수지리(風水地理)적으로 분별하였으나, 요즈음은 “후손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 명당”이라고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자산 공원묘지>
서하남IC입구사거리 쪽으로 내려오면 강동그린웨이 시작점이다. 강동그린웨이는 명일근린공원과 일자산공원을 잇는 산책길과 가족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거리를 건너면 감이천(甘二川)이 올림픽아파트 사이로 조화를 이루며 흐른다. 88서울올림픽 이전에는 눈여겨보지도 않던 곳이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어 존재의 가치를 더 높인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니 방이동생태경관보전지역이 나온다.
<강동그린웨이-서하남IC입구사거리>
<감이천>
방이동생태경관보전지역은 면적 58,909㎡의 연못형태의 인공습지이다. 이 지역은 담수생태계와 육상생태계가 공존하며 물총새, 오색딱다구리, 흰눈썹황금새, 꾀꼬리, 박새, 제비 등 서울특별시가 관리하는 야생조류 6종이 모두 출현한다고 한다. 식물이 갈대와 부들 등 114종, 조류는 백로와 왜가리 등 45종, 어류는 참붕어와 버들붕어 등 6종이 서식한다.
<방이생태학습관>
특히 습지식물의 대표적인 버드나무는 가지가 부드럽다는 뜻의 ‘부들나무’가 변한 이름이라고 한다. 버드나무는 봄만 되면 꽃가루가 날려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아주 나쁜 영향을 주지만, 물과 공기 중에 섞인 오염물질을 없애는 능력은 탁월하다고 한다. 뿌리는 물속의 오염물질을 빨아들이고, 잎은 대기 중의 오염물질을 빨아들인다. 특히 버드나무에는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이 들어 있어 아스피린 원료로 시용하고 있다.
<방이동생태학습지역 습지와 버드나무>
<방이동생태학습지역 습지>
생태보전지역을 빠져 나오면 바로 성내천이 나온다. 성내천(城內川)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497m)에서 발원하여 마천동을 거쳐 올림피공원 내의 몽촌토성을 돌아 한강으로 유입되는 한강의 지류이다. 한때 건천(乾川)이 되어 하천의 기능을 잃었었으나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실시한 결과 하천기능을 회복하여 수생식물이 우거지고 물고기와 새와 곤충들이 어우러지는 친환경생태하천으로 변하였다.
<성내천>
성내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고가(高架)도로로 지나가는 거여동이 나온다. 이 지역은 경기도 광주군에 소속되었으나 1963년에 서울시로 편입된 지역으로 송파구의 가장 남쪽이며 남한산성 북쪽 기슭에 위치한다. 고속도로 방음벽과 나란히 난 길을 따라 메타세콰이어가 열을 지어 숲을 이루고, 자산홍은 햇빛을 받아 붉디붉은 색을 더한다. 미국 산딸나무 꽃 향을 맡으며 송파파인타운아파트 단지를 지나 탄천과 합류하는 장지천과 만난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고가다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방음벽>
<자산홍>
탄천(炭川)은 ‘숯내’라는 이름을 한자화하여 ‘탄천(炭川)’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성남시의 옛 이름은 탄리(炭里)이다. 이는 남이(南怡)장군의 6대 손인 남영(南永)의 호가 탄수(炭叟)인데, 지금의 성남시 수진동, 태평동, 신흥동 일대에서 살았다 하여 그의 호 탄수에서 탄골 또는 숯골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고, 탄골을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에서 탄천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지천과 탄천 합류지점>
<장지천>
또 옥황상제가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산 동방삭(東方朔)을 잡기 위해 사자를 시켜 숯을 물로 씻고 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동방삭이 하도 이상하여 “왜 숯을 물로 씻느냐?”고 물었더니, 사자가 답하기를 “검은 숯을 희게 하려고 물에 씻고 있다”고 하자 동방삭은 크게 웃으며 “내가 지금까지 삼천갑자를 사는 동안 당신 같이 숯을 씻어 희게 만드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였다. 이에 사자는 이자가 동방삭임을 알고 옥황상제께 데리고 갔다하여 이때부터 이 하천을 탄천 또는 숯내라 불렀다고 한다.
<탄천>
유로연장 35.6㎞인 탄천은 용인시 법화산에서 발원하여 성남시를 지나 서울 강남구에서 양재천을 끌어안고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옆으로 하여 한강으로 들어간다. 서울 내곡동과 송파IC를 연결하는 숯내교가 하얀 무지개를 그리며 서있고, 수서∼분당 간 고속고가도로는 차량으로 붐빈다. 하천을 따라 산책길과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탄천의 물도 맑게 흐른다.
<숯내교>
<수서-분당간 고속화도로>
서울둘레길 3코스인 고덕·일자산코스는 광나루역에서 출발하여 한강, 고덕산, 일자산, 성내천, 탄천을 경유해 수서역에 도착하는 코스로, 강길 숲길 하천길이 포함되어 자연환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코스이다. 다른 코스에 비해 코스가 긴 편으로 소요시간이 다소 걸리나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걷기에 무리가 적다. 또 역사·문화적으로 볼거리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아주 재미있는 트레킹이 될 것 같다.
<탄천 스템프-수서>
<수서역사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