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글속에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시는
우리님들 우리는 좋은친구 맞죠?
한민족의 족보와 인류의 시원역사
신라의 대표적 고승 열 분을 기리는 신라 십성(十聖) 가운데 한 분인 진평왕 때의 도통한 승려 안함로(安含老,579~640)의 삼성기 상(上)과 세조가 팔도 관찰사에게 수거하도록 유시한 도서 목록(세조실록)에 고려 때의 인물, 원동중(元董仲)의 삼성기 하(下)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이었던 행촌杏忖 이암(李喦,1297~1364)선생의 단군세기와
고려 말, 정몽주의 제자로 고려의 충신 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 중의 한 분이었던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의 북부여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사헌부 장령을 지냈던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1455∼1528)선생의 태백일사, 이 다섯 권의 책은 신라 고승 안암로에서 조선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 년 세월에 걸쳐 다섯 사람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묶여진 것이 환단고기다.
세조 3년(1457,丁丑) 5월 26일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노,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 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세조때 이미 단군조선 이전의 역사를 담은 일부 사서와 기타 서적에 대해 '수거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에 이미 상고사를 다룬 서적들을 왕실에서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민간에도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1864~1920)가,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안함로의 삼성기 상(上)은 그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이고, 원동중의 삼성기 하(下)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다. 단군세기 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형식의 소장본 단군세기와 백관묵이 소장한 단군세기는 그 내용이 동일하였다고 한다)이었다.
태백일사는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인 조선 말 실학자 해학海鶴 이기(李沂,1848~1909)의 집안에서 전해 오던 것이었다.
계연수는 1897년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그 다음 두 해 동안(1898~1899) 이암의 태백진훈과 단군세기, 참전계경, 태백일사, 천부경요해 등을 간행하였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장군과 오동진 장군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 30부를 간행(스승 이기가 일본에 나라가 병탄된 것에 비분강개하여 1909년 절식(絶食) 자진한 후 계연수는 만주로 건너갔다) 만주 관전현은 독립운동가와 열사들이 수시로 모여 강론과 훈련을 하던 곳이었다.
운초 계연수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57세 때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목과 팔,다리가 다섯 토막으로 잘려 무참히 살해되었다.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지켜본 14세 소년이 훗날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 시킨 이유립(1907~1986)선생이다.
이암(李喦,1297~1364)과 이맥(李陌,1455∼1528)의 후손인 그는 평안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이던 이관집(李觀楫)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유립은 계연수와 친했던 부친(이유립의 부친과 계연수선생이 친했던 것은 두 사람이 함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함께 광개토대왕 비문도 조사, 탁본하였다)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13세 때(1919) 단학회가 주관하는 교육기관인 배달의숙(倍達義塾)에 들어가 계연수, 이덕수 두 스승의 강의를 들으며 환단고기를 공부하였다. 그 후 독립군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신간회의 삭주 지부를 결성하는(21세)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단학회 기관지 ‘태극‘을 발행, 그 주간(主幹)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에 계연수 사후 그에게 전수된 환단고기를 가지고 월남하였다. 이후 단학회(檀學會)를 단단학회(檀檀學會)로 개칭하였고, 1963년 대전에 정착한 이후에는 후학을 기르며 역사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였다(현재 단단학회 회장인 양종현은 1967년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유립을 약 20년간 모시면서 역사를 배웠다.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창작이란 비난에 대해서 그는 환단고기 초간본을 좁은 방에서 스승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글자 하나하나 짚어가며 배운 기억을 생생하게 전하며 결코 위작이 아님을 증언하고 있다)
한문과 역사에 해박한 이유립에게 여러 사람이 배움을 청하였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오형기(吳炯基)였다. 오형기는 한국 고대사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 구도자적인 의지를 가지고 환단고기 공부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1949년 이유립에게 환단고기를 빌려가 필사한 후 발문(跋文)을 써 붙였다. 그러나 책을 지은 사람이 쓰는 것이 상례인 발문을 오형기가 임의로 쓴 것에 대해 이유립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고 한다.
이 필사본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이유립의 문하생 조병윤이 1979년에 서울의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이 필사본을 영인하여 100부를 출판한 것이다. 이른바 ’광오이해사본‘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허락도 없이 시중에 배포되었다(조병윤은 스승의 허락도 없이 자신을 발행인으로 하여 책을 출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판권에서 자신을 단단학회 대표로 소개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단단학회에서 파문을 당하고 이유립과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
오형기는 발문 파동 후에도 계속해서 단단학회 행사에 참여하였고, 이유립이 죽자 장의 위원장을 맡았다) 이에 사태 수습 차원에서 이유립의 단단학회는 문제의 발문을 삭제하고 오자를 바로잡은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었다. 원고는 1979년 그해에 완료되었으나, 출판비가 없어 1983년에야 배달의숙을 발행인으로 하여 100부 발간하였다(이유립은 배달의숙본 환단고기를 가까운 지인에게 기증도 하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판매도 하였다.
한때 초간본으로 잘못 알려졌던 숙명여대 소장본은 언론인 송지영이 이유립에게 받은 10여권 중의 일부가 대학에 기증된 것이다(양종현 증언)
그 무렵 환단고기가 일본어로 번역, 출판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오이해사본을 입수하여 검토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가 환단고기를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가지마는 환단고기는 아시아의 지보(至寶)라 극찬하고 자국의 정계와 재계의 후원을 끌어내어 1982년 ‘실크로드 흥망사’ 라는 부제를 붙인 일본어판 환단고기를 출간하였다(환단고기를 번역 중이던 가지마 노보루는 박창암 장군(월간 ‘자유‘발행)의 소개로 이유립을 찾아와 당시 이유립이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석을 붙여놓은 환단고기 원고 원본을 ’일구일획도 바꾸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빌려갔지만, 출판된 일본어판 환단고기에는 번역의 오류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왜곡된 내용이 많았다. 그후 이유립이 우여곡절 끝에 박창암을 통해 돌려받은 원고는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었다(양종현 증언)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환국-배달-고조선-고구려-대진국(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배달-야/마/토일본-나라일본-헤이안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역사로 둔갑시켜 놓았다. 동방 한민족의 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에서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하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유립과 임승국이 우리 고대사를 월간지 ‘자유‘에 수년 동안 연재해 오던 터라, 한민족의 상고 역사와 신교 문화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인이 쓴 환단고기가 한국에 역수입되어 소개되자, 한국 역사학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1985년 당시 고등학교 교사이던 김은수가 첫 번역서를 낸 이후 오늘날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환단고기 번역본이 출판되고 있다.
잃어버린 한민족의 시원 역사와 문화를 복구하려다가 일제의 역사 도륙의 칼날에 무참히 죽어간 계연수와 그의 스승 이기,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역사 연구에 헌신하며 환단고기를 널리 알린 이유립! 이들은 한민족 사학의 아버지라 불러 마땅하다 하겠다.
환단고기 진위 논쟁
한국 사학계는 대체로 환단고기를 정식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환단고기를 시대의 필요에 의해 조작된 위서로 매도하고 있다. 환단고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환단고기의 출간 과정이 미심쩍다고 한다. 그들은 1911년 계연수가 간행한 원본이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큰 혐의를 둔다. 이유립이 분실하였다는 원본이 보존되고 있다면 환단고기 위서 논쟁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창작이라고 주장한다. 이유립이 1979년(광오이해사본 출간 연도) 이전부터 월간지 “자유“에 기고해 오던 글을 모아 환단고기를 간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광오이해사본은 오형기의 필사본을 영인한 것이고, 오형기 필사본은 이유립의 소장본을 필사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본이 만들어졌고(1949), 그 후 영인본이 나올(1979) 수 있었다.
따라서 위서론자들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1979년 이후 대중에게 알려진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가지고 있던 계연수본이 재간행된 것임이 틀림없다.
위서론자들은 심지어 ‘계연수가 수안 계씨 족보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계연수 선생을 가공의 인물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수안 계씨 종친회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북한 출신 종친들 중 족보에서 누락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느라 후손이 끊긴데다가 증언자도 없어 족보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계연수를 유령 인물로 매도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인 사실 하나를 내세워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계연수가 실존 인물이었음은 그 제자인 이유립의 증언과 여러 문헌에서 입증되고 있다(계연수가 실존 인물임을 증명하는 문헌으로는, 그가 천부경을 입수하여 세상에 널리 알린 경위가 기록되어있는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1920)과 해동인물지(海東人物志,1969)등이 있다.
위서론자들은 또 자유, 평등, 인류, 세계, 원시국가, 문화,문명, 개화, 부권(父權), 헌법과 같은 근대어가 쓰인 것을 빌미로, 환단고기를 일제강점기 때 독립 운동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꾸며낸 책이라 한다. 그런데 이 어휘들은 고문헌에서도 발견되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 자유는 ‘자기가 주인이 되다’라는 뜻으로, 평등은 산스크리트어의 번역어로서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자유와 평등도 그러한 뜻으로 쓰인 것이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나온 시선집인 옥대신영(玉臺新詠)에 수록된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분함을 품고 있었는데, 네가 어찌 멋대로 할 수 있는가(吾意久懷忿 汝豈得自由)라고 하여 ‘자유’라는 어휘가 나온다.
인도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344~413)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된 금강경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편에 이 법은 차별이 없어 높고 낮음이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 )라고 하여 ‘평등’이란 어휘가 사용되었다.
장자 지북유(知北遊)편에서 “생물은 이를 서러워하고, 사람은 이를 슬퍼한다(生物哀之 人類悲之)라 하여 ‘인류(人類)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당나라 때 한문으로 번역 된 능엄경의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합니까(何名爲衆生世界)라는 구절에 ’세계‘라는 어휘가 사용 되었다.
주역 계사하(繫辭下)의 ‘군자는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립해 있을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집안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라는 구절에서 고대로부터 사용된 ’국가‘를 확인 할 수 있다.
‘문’과 ‘화’가 결합된 문화라는 말은 고대에 이미 사용 되었으며, 문으로써 가르쳐 변화시키다(以文敎化)를 뜻한다.
전국시대의 역사서인 국어(國語), 진어(晉語)편을 보면,“선행을 상주고 간악한 행위를 벌주는 것은 나라의 법이다(賞善罰姦 國之憲法也)하고 하여 ‘법’, ‘법전’을 뜻하는 ‘헌법’이 나온다.
백번 양보하여 정말 근대어가 가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환단고기 자체가 완전 조작된 위서임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인류사의 여러 경전들을 돌이켜 보라.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이 되지 않았는가.
주역(周易)은 태호 복희씨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도덕경은 왕필이 덕경과 도경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재구성한 것이다.
동양의학의 성서인 황제내경은 황제 헌원을 가탁하여 전국시대를 거쳐 한 대에 성립되었고, 불교의 화엄경도 분리되어 있던 경전들이 수차례의 결집을 거쳐 후대에 합쳐진 것이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권의 사서가 천 년에 걸쳐 쓰인 사실과 그 중 가장 나중에 쓰인 태백일사가 나온 지 400년이 지나 환단고기가 묶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원래 다섯 저자들이 쓴 원본이 무수한 전란과 외세의 사서 강탈을 무사히 피하여 전해졌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계연수가 모은 다섯 권은 필사 과정에서 인물, 연대, 장소가 오착되기도 하고 부족한 내용에 가필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환단고기의 일부 술어와 연대 표시가 사실과 다르거나 다른 사서들과 다소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민족의 국통 맥, 태곳적 한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밝혀 주는 환단고기의 독보적인 가치가 전적으로 매도 될 수 는 없다.
그리고 계연수가 처음 펴낸 후 70년이 지나 이유립이 스승의 뜻을 받들어 환단고기를 다시 펴낼 때 가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도적인 조작과 첨삭이 아니라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꼭 이뤄져야 할 보정 작업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보정조차도 원전을 훼손하지 않는 아주 미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위서론자들은 또한 환단고기에 삼신, 삼신일체, 영혼 등 기독교 교리 용어와 유사한 말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환단고기는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에 날조된 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삼신과 삼신일체(三神一體)는 한민족이 그 중심에 있었던 상고시대 신교 문화의 중요한 고유 술어이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 언어 삼신일체(三神一體)를 외래 종교의 술어 삼위일체(三位一體)와
혼동하는 것은 우리 상고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교 삼신문화의 역사관으로 한민족과 인류의 태고 역사를 기록하였음에도 이 땅의 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환단고기의 비운은 뿌리 문화가 말살된 한민족의 참담한 역사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위서 논쟁이 한창 들끓고 있을 때, 환단고기의 진실성을 확인해 주는 연구가 천문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1993년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고조선 13세 흘달단군 때 일어난 다섯 행성 결집(五星聚婁) 현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해 낸 것이다. 이렇게 현대 과학이 환단고기의 내용을 증명해 보였지만 위서론자들은 여전히 환단고기를 위서라 주장한다. 그러나 1900년대 초를 살았던 계연수가 어떻게 평균 250년에 한 번 나타나는 매우 드문 천문 현상을 인위적으로 계산해서 출현 시기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겠는가.
박창범 교수의 발표 이후 국내 사학자들 사이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진지한 서지학적 검토의 필요성이 적극 제기되었다.
우리의 정통 사서인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위서라 하는 것은, 기존 사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한국사의 진실을 묻어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제는 진위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환단고기 기록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한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고 인류의 시원 역사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환단고기 진위 논쟁의 주요 내용들
첫째, 자유지에 발표한 이유립의 글들에 대해: 자유지에 발표한 이유립의 글들에 대해: 자유지에 발표 내용과 환단고기 내용이 대동소이 하다는 것은 이유립은 자신이 갖고 있던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자유지에 글을 썼기 때문에 내용이 같은 것은 당연하다.
둘째, 단군세기 16세 위나단군조에 나오는 지명, 영고탑에 대해: 청조 이전부터 영고대 혹은 영고탑으로 불렀다, 많은 중국 문헌에서 ‘명대 초기에 여진족이 이곳에 정착하여 이곳을 동해와집영고탑로(東海窩集寧古塔)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명대 초기 사서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암이 설던 고려말에 영고탑이란 명칭이 통용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셋째,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나오는 지명, 상춘(常春)에 대해: 상춘은 장춘(長春)과 같은 의미로 ‘늘봄’을 뜻한다. 장춘은 원나라 순제 3년(1343)에 편찬되기 시작한 요사(遼史)와 금사(金史)에 여러 번 나오는 지명이다.
넷째, 장수왕의 연호 ‘건흥’에 대해: 1915년의 불상 출토를 계기로 비로소 장수왕 연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누구도 모르던 그 연호를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환단고기 내용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준다.
다섯째, 연개소문 조부의 이름 ‘자유(子遊)’에 대해: 이또한 다른 사서에서 볼 수 없는 환단고기만의 독보적인 역사 기록에 대한 신뢰성을 확인시켜준다. 환단고기는 연개소문의 증조부 이름이 광(廣)이라는 것까지 밝혀주고 있다.
여섯째, 소도경전본훈에 실린 천부경에 대해: 계연수는 천부경을 태백일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고 확신하고 그 실체를 찾다가 1916년 묘향산에서 발견한 것이다.
일곱째,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서 환웅이 책력을 지어 365일 5시간48분46초를 1년으로 삼았다는 얘기에 대해: 이집트, 중국등에서는 고대로부터 1년의 길이가 365일에 1/4일을 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초 기록은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여덟째, 고조선의 건립시기에 대해: 청동기 사용이 고대국가 형성에 필요조건은 아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상한선을 이유로 환단고기가 말하는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부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최근 고고학 발굴에 의해 동북아 청동기 시대는 BCE 3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홉째, 대진국 3대 문왕의 연호 대흥(大興)에 대해: 신당서에 실려 있는 것은 사실이나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문왕의 연호는 1980년 발견된 정혜공주 묘의 묘비명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연호를 기록한 환단고기는 진서임에 틀림없다.
열번째, 은나라 왕 무정의 귀방(鬼方) 공격에 대해: 역사서도 아닌 주역에 나오는 “고종벌귀방高宗伐鬼方(고종이 귀방을 정벌하다)”이란 구절을 찾아내 환단고기에 인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정의 귀방 공격 사실은 은나라의 유물인 갑골문에서도 확인된 내용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갑골문의 본격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결론적으로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정통사서 5권을 하나로 묶어 한민족사의 진실을 전하는 진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환단고기의 특징과 가치
환단고기는 강단 사학계에서 한국의 대표적 사서로 꼽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신교문화의 정통 사서이다.
환단고기의 독보적인 특징과 사료적 가치를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환단고기는 인류의 창세문명과 한민족의 뿌리 역사의 진실을 밝혀주는 유일한 사서이다. 삼성기의 첫 문장은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되었다)’로 시작된다.
이것은 동서양 4대 문명권의 발원처가 되는 인류 창세문명의 주체를 밝힌 만고 명언이다. 그 주체한 바로 ‘오환건국’이라는 말에 나오는 환桓으로, 한민족의 시원조상인 환족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인류 문명은 환족이 세운 환국에서 비롯되었다.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삼성조(三聖祖) 시대로 묶어 전한다.
삼성조 시대는 환국(BCE7197~BCE3897)에서 배달(BCE3897~BCE2333)로, 배달에서
고조선(BCE2333~BCE238)으로 전개되었다. 이 7천 년 삼성조시대를 다스린 역대 임금의 이름, 재위 연수, 그 치적 등을 기록하여 한민족 시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주는 책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둘째,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국통國統 맥을 최초로 명확하고 바르게 잡아 준다.
한 나라의 계보와 그 정통 맥을 국통이라 한다. 지금 강단사학에서 말하는 국통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한민족사의 정통이 계승되어 온 맥을 재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 덕분에 한민족은 이제 역사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나라의 족보를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환단고기에 들어있는 5대 사서 가운데 북부여기는 특히 삼성조로부터 고려,조선에 이르는 우리 국통 맥을 바로 세우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국통 맥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잃어버린 고리인 부여사(북부여,동부여를 비롯한 여러 부여의 역사)의 전모를 밝혀, 고조선 이후의 단절된 역사를 이어 주기 때문이다.
셋째, 환단고기는 천지와 인간의 광명정신인 환桓, 단檀, 한韓의 원뜻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환 단 한 사상이 실현된 역사의 전체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환’은 하늘의 광명, 즉 천광명(天光明)을 뜻한다.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하늘의 광명이 환이다. ‘단’은 박달나무 단 자이고, 박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단은 땅의 광명, 지광명(地光明)을 뜻한다.그래서 ‘환단’은 천지의 광명이다. 그리고 ‘한’은 인간의 광명, 인광명(人光明)이다. 그런데 이 한韓 속에는 환단, 즉 천지의 광명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천지가 낳은 자식인 인간 속에 천지부모의 광명이 그대로 다 들어있는 것이다.
환桓, 단檀, 한韓의 광명 정신은 동방 한민족의 9천 년 역사에 그대로 실현되어 왔다. 그래서 환국에서 근세조선에 이르기까지 나라 이름과 창업자의 호칭이 모두 광명사상을 담고 있다.
넷째, 환단고기에는 한민족의 고유 신앙이요 인류의 시원 종교이며 원형 문화인 신교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신교神敎의 문자적 뜻은 ‘신으로써 가르침을 베푼다’,즉 ‘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단군세기의 “이신시교(以神施敎)”, 규원사화의 “이신설교(以神設敎)”가 뜻하는 바가 곧 신교다.
신교에서 말하는 신神이란 인간과 천지 만물을 모두 다스리는 통치자 하나님인 삼신상제님이시다. 그러므로 신교는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려 그 은혜와 덕을 칭송하고 상제님의 가르침 속에서 살아왔다.
‘환인이 천신, 즉 삼신상제님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였다’(主祭天神)’라고 한 태백일사 환국본기의 기록으로 볼 때, 동방 한민족의 천제 문화는 9천 년 전 환국 때에 시작되었다. 약6천 년 전에 배달을 개척한 환웅도 나라를 세운 후 천제를 행하였고, 단군왕검도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아사달에 도읍하였다. 강화도 마리산에는 지금도 초대 단군이 개국 50주년(BCE2283)을 맞아 쌓은 제천단이 남아 있다.
다섯째, 환단고기는 하늘, 땅, 인간 즉 천지인 삼재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 사람이 이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지 철학적으로 밝혀 준다. 이 우주에는 조물주 삼신의 말할 수 없이 신령한 손길이 살아 있다. 그 손길로부터 천지인 삼재가 나왔다. 이것이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신과 천지인의 관계이다. 삼신이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천지인을 환단고기는 天一, 地一, 太一이라 부른다. 인간은 천지의 손발이 되어 천지의 뜻과 소망을 이루기 때문에 하늘땅보다 더 큰 존재, 태일이 된다. 인간을 태일이라 한 것은 인간에 대한 극치의 정의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신神은 정말 존재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에 대한 답을 환단고기는 신교의 신관, 인간관, 우주관, 역사관에 근거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해 준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신神과 기氣, 神과 천지인(天地人), 천지天地와 인간 사이의 탄생 원리 같은 심오한 진리 주제를 망라하여 싣고 있는 철학 경전이요 문화 경전이라 하겠다.
여섯째, 환단고기는 동방 한민족이 천자(天子)문화의 주인공이요 책력(冊曆)문화의 시조로서 수數를 최초로 발명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천자天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준말이다. 천제(天帝)는 상제의 다른 말이므로, 천자는 곧 상제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천자는 상제님을 대신하여 땅 위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요,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제사장이다. 한마디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환국, 배달, 고조선 이래로 이 땅은 원래 천제의 아들이 다스리는 천자국(天子國) 이었다(한민족이 천자문화의 종주(宗主)임을 중국 사람이 스스로 고백한 기록이 있다. 후한 때 채옹이 쓴 독단(獨斷)을 보면, “천자는 동이족이 사용하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에 천자라 부른다”라고 하였다)
단군세기에서 행촌 이암이 단군을 줄곧 ‘帝’라 부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천자의 가장 근본적인 소명은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어 백성들이 춘하추동 제때에 맞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책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배달 시대에 지어진 한민족 최초의 책력인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태백일사 신시본기) 또는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는 인류 최고最古의 달력이다. 그런데 역법에는 숫자가 사용된다.
1에서 10까지의 자연수는 9천 년 전 환국 시절의 우주론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5,500여 년 전의 성황聖皇인 태호 복희씨는 동서남북 사방과 춘하추동 사시의 시공간 법칙 속에서 수의 원리를 찾아내어 하도河圖를 그렸다. 인류의 책력과 수는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발명된 것이다.
일곱째, 환단고기는 삼성조 시대의 국가 경영 제도를 전하는 사서로서 만고불변의 나라 다스림의 지침을 담고 있다. 배달의 환웅천황은 신교의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을 통치원리로 삼아 삼백三伯(풍백, 우사, 운사) 제도와 오사五事(주곡,주명,주형,주병,주선악) 제도를 만들어 국가를 경영하였다. 삼백은 조선 시대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근현대의 삼권분립(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제도와 완전히 정합한다.
풍백,우사, 운사는 흔히 말하듯 바람신, 비신, 구름신이라는 신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원형인 것이다. 배달의 오사는 고조선과 북부여, 고구려, 백제 등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신교의 삼신문화가 국가 경영 원리로 정착된 가장 결정적인 제도는 바로 고조선의 삼한관경제(三韓菅境制)이다. 대단군이 중앙의 진한辰韓을 다스리면서, 두 명의 부단군을 두어 번한番韓과 마한馬韓을 다스리게 한 이 제도는 고조선이 국정을 운영하는 근간이 되는 제도였다. 고조선은 삼한관경제의 성쇠와 운명을 같이하였다. 요컨대 신교의 삼신오제 사상은 한민족의역사와 문화를 움직여온 사상적 기반이었다. 신교가 밝히는 우주관의 핵심인 삼신오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면 한민족의 국통 맥은 전혀 바로 잡을 수 없다.
상고시대 한민족의 국가 통치제도이 구성 원리를 처음 구체적으로 기록한 환단고기는 오늘날 국가 경영을 연구하는 데에도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여덟째, 환단고기는 배달과 고조선이 창제한 문자를 기록하여 한국이 문자 문명의 발원처임을 밝혀 준다. 문자는 문명 발상의 필수 요소로서, 한민족은 배달 시대부터 이미 문자생활을 영위하였다. 초대 환웅천황(BCE3897~BCE3804)이 신지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을 창제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문자로 알려진 BCE3000년 경의 쐐기문자(수메르)와 상형문자(이집트)보다 더 오래된, 세계 최초의 문자이다.
고조선 3세 가륵단군은 이 문자를 수정 보완하여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만들었다.
아홉째, 환단고기에는 상고시대 한민족의 대외 교섭사와 함께 중국과 일본및 몽고, 흉노 등의 왕조 개척사가 밝혀져 있다. 단군세기에는 고조선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게 나온다. 고조선은 무려 1500년(BCE 2205 하나라 건국~BCE 770) 주의 동천(東遷) 동안 중국의 고대 왕조인 하, 상, 주의 출현과 성립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 한 예가 중국 5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은, 국가를 존망의 위기에 빠트린 9년 홍수 때, 단군왕검은 우(禹)에게 치수治水법을 가르쳐 주어 그로 하여금 홍수를 무사히 해결하고 그 공덕으로 나중에 하나라를 열게 한 일이다. 그리고 태백일사에는 아직도 미스터리에 싸여 있는, 일본의 개국 과정을 밝힐 수 있는 단서들이 실려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환단고기는 왜곡된 한, 중, 일의 고대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이다.
이상에서 알아 본 환단고기의 특징과 사료적 가치는 왜 환단고기를 읽어야 하는가? 환단고기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한민족의 옛 역사와 문화를 밝히고 인류의 뿌리 역사를 드러내는 환단고기는 대한의 아들딸은 물론 70억 전 인류가 읽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 교과서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발견으로
인생은 '도'가 채워지게 자연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 그 무엇인에 계속 실수하며 흘려져서
채워지려는 지움으로 없앰으로 지각하고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곳 마음이라는 의식입니다.
안주하는 마음 에고의 시간을 쓰게 살면
그것으로 인생은 다 거짓이며 종교입니다.
우주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몸과 마음
그 파동과 진동 전자의 힘으로 광자대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큰 감옥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감옥은 사회의 규범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입니다.
옮고 그름, 도덕과 비도덕,좋은 것과 니쁜 것,
건전과 불건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혼돈이 없는 영역이란 것을 만듭니다.
그렇게 인식한 믿음의 영역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그 안에서 말하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평범하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놔듭니다.
하지만 일단 그 영역에서 한 발짝 나오면
그 땐 당신은 특이한 사람이 되기 시작합니다.
철인이 한일은
전 인류를 교도소 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누구라도 평범한 영역을 벗어나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밝아 버립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그 혼란이 없는 영역에서 조금 벗어나려고 활 때
당신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이렇게하면 사람들이 워라할까?
안돼..!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어떻게 생각하실까?
혹은 친척이나 직장에 있는 사람이 뭐라고 말 할까?
그 철인들이 만들어 한 일은
서로에게 규범을 부과하는
절대적인 군인들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절망스러운 환경의 세상을
창조와 사랑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고요상태 제로 지점에서
각각 나선형 물체계에 중앙에 노여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저 모든 사람이
토로스 에너지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고요함을 중심에두고
우리모두가 서로 살아있는 우주
무한한 의식속으로 영결되어야 합니다.
세상이란!
그 경험들로
진리를 맛보도록 내몸에 신성으로 와 있습니다.
몸은 죽임 뒤에도
영 "핵 원자"는 한결같이 살아 있습니다
태양에 의한 에너지로 만물이 빛의 수호자입니다.
지극히 한정된 생을 반복으로 격도록
그렇게 인성은 인격으로 지성체 입니다.
따라서 몸속 자기 부정적 경험을 통해
몸에 신성이 미리 나타나 있는 진화의 과정 입니다.
태양이 움직이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지구생명도 힘든 움직임을
좋와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자의 파동에 숨쉬고 격는 성장이며
퇴화됨으로 유지하는 발견은
미리있는 과정에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움직임을 여임으로서
경조억겹의 통로에 자연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실재와 실체가 성장하여 어버이를 만듭니다.
인간이 천체 그 지성이 유지됨에 따라
인성에 채워지는 과정에 파동하는 몸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은 채우기 위해 베푸는 스승입니다.
신의 현원으로 몸이 격는
움직임에 긴장하도록 숨도 있는 것입니다.
실체 생명은 나선형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실체 핵원자는 영 존재로 순간이동 합니다.
태양이 반복하는 시간에
일백만년을 이천오백번 지나면서
움직임을 먹음는 빛의 찰나에 반복 했습니다.
자연이 펼처지는 일상에 움직이도록 도구로
실체는 지성체에 이르도록 영이 있습니다.
복사로 돌고있게 진동이
빈 공간 전자파동은 있습니다.
죽음 뒤에도 계속 윤회가 나타나는 핵원자
현미경으로도 잘 나타낼 수없는
00000000000000000000.1 핵에너지,
실재는 실체로 찰나에 반복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없습니다
백만년이 2500번을 지나며
항성과 행성이 없어지고 나타나는 이유의 관계
빛 까지도 다스리는 암흑 물질이 있고
번복하는 평창 에너지라는 것,
불랙홀이 또다른 우주를 복사히는 것 처럼이다.
나도 태양도 지구도 홀로그램 입니다.
그렇게 평창하기위해 복사되는 실체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지만
또 다른 우주 어느 곳에나 또 다르게
미리 있는 순간이동에 실재라는 것입니다.
없어야 있는 능력 보도록 실재라는 것입니다.
진동과 파장에 맞춰진 그 광자대 우리에게는
힘든 날은 없습니다...고로 죽음도 없습니다.
다 그런 날이 있도록 반복하는
일이 있을 뿐 입니다.
"노동이 없는 돈이 정신을 궁핍하게한다"
끄러당김의 힘으로 부드러워지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엄청난 기회는 그렇습니다.
다 마련으로 차려진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1
수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생각은
각기 다른 주장으로 여러 문재를 겪 습니다.
거듭하는 빈 공간의 개념.
사라짐을 반복하며 나타나는 힘
우리 몸 속에도 있고
지구에도 태양에도 우리 일상에도 있습니다.
빛이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
따라서
신을 위해 선량해 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성체인 나 자신을 위해 선량해지면
신들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나는 저절로 선량해 집니다.
한번 배우고 지워야 또 다시
재 지각을 반복 격도록 되는 지식입니다.
숨쉬는 것으로 살아왔고
계속 그렇게만 살도록 반복하는 생명입니다.
몸은 배풀기가 있어 채워지는 영의 도구입니다.
- 홀로그램 인생-
몸이 컴퓨터 본체라면
영은 기억장치 해드디스크 입니다.
덕은 인위적인 덕이 아닙니다.
최상의 덕은
덕을 의심하지 않음으로 덕이 있는 것이고
정도가 낮은 덕은 덕에 매여있기에 덕이 없는 것이다.
최상의 덕은 무위여서 자연스럽고
정도가 낮은 덕은 유위로서 부자연 스럽다.
인은 유위로 자연스럽고
의는 무위며 부자연 스럽습니다.
사회의 예는 유위이고 그 예는 반응이 없으면
팔을 걷어 붙이라고도 예을 든다.
무위자연의 도가 사라지면 무위자연의 덕이 나타나고
무위자연의 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는데...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예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의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참다운 마음이 엷어진 것이며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미리 내어보려는
예와 지, 그 지식은
도의 알맹 없는 겉치레와 같은 것,
나 존재를 어지럽고 못나게 만들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사람은
예와 지를 버리고 도을 택하는 것입니다.
"도'의 길
도의 길은 하루하루를 게으르지않게 일하며
움직임으로 오는 복 그 돈을
나를 없애는 데 씁니다.
나눔의 경험이 채워질 때 "도"가옵니다.
없애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수치심도 이기고
또 이기면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 입니다.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결핍 덩어리였던 나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어머니, 아버지, 가족 친지, 여러공동체,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여자,여자,여자,
결핍자아 바보의 성장 나에게
수치심을 견디고 참을 수 있도록 있었던 것은
모두다 공부가 되라는 과정이였습니다.
그토록 그렇게 고맙게
나를 아프도록 했던 것이 있었기에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이런 말도 전하게 됩니다.
이제 그동안의 인연 모든 분에게
진정한 인격의 가치를 세워 가겠습니다.
노동이 없는 돈 때문에
정신은 파멸되어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