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편에서는 진시황릉 병마용박물관 2호갱에 진열중인 출토병기중의 청동검(青铜剑)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청동검(青铜剑)
병마용갱에서 지금까지 24자루의 청동검이 출토되었습니다. 표면에 크룸산화처리를 거친 진검(秦剑)은 축축한 갱에 2천여년동안 묻혀져있었지만 출토당시 새것처럼 여전히 날카로웠습니다. 열처리한 중탄소강과 비슷한 경도에 얇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칼날 등 특징을 구비한 진검을 과학감정한 결과 합금배합 비율이 매우 과학적이었습니다. 76,39%의 구리, 21.38%의 주석합금으로 주조된 진검에서 13가지의 미량원소도 발견되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동검과 비교시 진나라 청동검은 검심(剑身)이 더 좁아졌고 두께도 많이 얇아졌으며 길이는81~94.4cm 사이로 더욱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진검에는 한가지 눈에 잘 띄지 않은 특징도 있는데 칼날끝에서 약 6cm정도 아래에 약간 수축되어 좁아진 전문용어로는 속요(束腰)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속요는 현대 칼의 혈조와 같은 작용을 합니다.
병마용에서 발견된 청동검은 주조 성형된후 연마과정과 광택공정을 거쳐서 내부구조가 엄밀하고 표면에 사안(沙眼)이 없습니다. 칼날부분의 촘촘한 무늬결은 평행되어있고 교차현상이 없는걸로 보아 수공이 아닌 간단한 기구를 이용하여 가공되었고 2000여년전의 진나라시대에는 이미 청동병기의 제조과정에서 기계가공기술을 사용하였다는것을 알수있습니다.
검은 용도로 페검(佩剑)과 병검(兵剑)으로 나눕니다. 페검은 예의와 신분의 상징입니다. 전국(战国)시기 귀족계층들은 페검에 대해 매우 중요시하였습니다. 진나라는 기원전 409년에 관리들의 검 착용을 허용하였고 다음해에는 통치계급내부인원에게도 착용을 허가하여 페검은 자신방위용외에 고귀한 신분의 상징으로도 되었습니다.
병검은 전쟁 및 방위에 사용됩니다. 서북지역의 유목민족이 최초로 검을 전쟁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춘추(春秋)시기의 오(吴)나라와 월(越)나라가 검을 가장 잘 만들었고 유명한 오왕광검(吴王光剑), 오왕부차검(吴王夫差剑), 월왕구천검(越王勾践剑)이 그 중의 대표입니다. 전국시대말기에서 진나라시대까지 청동검의 주조공예는 비교적 빠른 발전을 가졌왔고 병마용갱에서 출토한 청동검이 바로 그 예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