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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비결
출 17: 8-16
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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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전쟁이다. 지금도 세계곳곳에는, 싸움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
영토를 빼앗는 전쟁, 정치적 전쟁, 경제적 전쟁, 입시 전쟁, 교통 전쟁, 이태리와 축구 경기를 보니, 운동이 아니라 코뼈가 주저 앉는 전쟁이다.
우리는 끝없는 싸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큰 전쟁이 있는데, 바로 영적 전쟁이다.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싸움에는 승패가 있다.
승리자에게는 영광과 상급이 보상으로 주어지지만, 패배자에게는 수치와 고통이 따른다.
우리가 월드컵 축구에서 승리했을 때, 온 국민이 얼마나 기뻐하는가?
이처럼 전쟁도 이겨야 기쁘고 평안하다. 삶의 경쟁에서도 이겨야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다.
신앙 생활도 원수 마귀를 이겨야, 영혼이 승리의 삶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을 전투에 비교하시면서, 이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은 이스라엘과 아말렉과 전쟁하는 내용인데,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역사에 남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서 승리의 비결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승리의 비결은 무엇인가?
1. 맡은 일에 각자 충성해야 한다(9-10).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여호수아는 나가서 싸우는 일을 맡았다.
모세는 손을 드는 일을 맡았고, 아론과 홀은 모세의 손을 붙잡아 주는 사명을 맡았다.
이들이 서로 맡은 일은 달랐지만,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축구할 때, 공격수만 잘한다고 승리할 수 없다. 수비수도 잘해야 한다. 골키퍼도 잘해야 승리한다.
우리는 모두다 공격수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여호수아가 나가서 싸우는 일이나,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손을 드는 일이나, 아론과 홀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일이나, 모두 똑같이 중요한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으니, 대충하면 구멍이 생겨서 무너지게 된다.
내 지역이 뚤리면, 위기가 온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조그만 일에도 충성을 다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부는 주부로서 해야할 일이 있고, 가장은 가장으로서 해야할 역할이 있다.
각자 자기 일에 책임을 질 때,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진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이런 분은 찬양으로 봉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이런 분은 교사로 봉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에, 전도할 때 교회는 부흥한다.
이처럼 승리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고전12장을 보면,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가 여럿이듯이, 사람마다 다른 은사를 주셨다.
손이 하는 일이 있고, 발이 하는 일이 있다. 입이 하는 일이 있고, 눈이 하는 일이 있다.
왜 이렇게 다른 은사를 주셨나요?
다른 은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돕기 위해서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은사를 다르게 주셨다.
만약에 한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마비된다면, 전체가 균형을 잃고 불구가 된다.
눈이 보는 기능을 잃으면, 길을 못 찾고, 발이 기능을 잃으면 움직일 수 없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축복하신 이유 중에 하나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목동으로 있을 때, 양치는 목자로서 책임을 다했고, 군인으로 있을 때에는, 군인으로서 자기 사명을 다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책임감과 충성을 보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축복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어느 은사를 받았든지, 받은 은사대로 충성을 다해야 한다.
여호수아의 사명이 달랐고, 모세의 사명이 달랐고, 아론과 훌의 사명이 달랐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사명과 비교하며 불평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대로 최선을 다했다.
여호수아는 '나는 전쟁터에 나가야 하고, 당신은 산 위에 좋은 공기 마십니까?'이렇게 불평하지 않았다. 지도자의 말에 순종했을 때, 그들은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충성하려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라.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밀레의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 어떤 그림이 좋은가? 사람마다 다르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독특한 작품으로 만드셨기에, 다른 사람과 내 인생을 비교해서, 좌절하지 말라.
세계 인구가 60억이라고 하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은 있지만,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 좌절할 이유도 교만할 이유도 없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주신 선물을 은사라고 말한다. 작품의 독특성이 있다.
나를 잘 살펴보면 좋은 성품이 있다. 남다른 건강이 있든지, 아니면 다른 어떤 재능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을 하면 승리하게 된다.
2. 하나님께 손을 들어야 한다(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손을 든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높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도와 찬양으로 나타난다.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이 이겼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손을 들어야 한다.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한다. 찬양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한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의 승패는, 군사의 숫자가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았다.
전술의 좋고 나쁨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님께 손을 드느냐 손을 내리느냐에 따라, 승리와 패배의 판가름이 났다.
16강에서 안정환이 헤딩으로 골을 넣었을 때, 안선수 선수의 아내는 금식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안정환의 머리에 공을 얹어주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운재 선수의 간증은, 알수 없는 힘이 공을 쳐냈다고 한다. 이렇게 기도의 능력은 강하다.
우리의 아말렉은 무엇인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문제들, 가정의 문제, 진로의 문제, 인간관계, 건강문제 등 이런 문제들이 바로 우리의 아말렉이다.
이런 일은, 우리의 힘과 방법만 가지고는 해결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손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숨쉬는 게 제일 쉽다.
그러나 천식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임종 직전의 사람들에게는, 호흡하는 게 제일 힘들다.
건강한 사람, 건강한 교회는 건강하기에, 생명력 있는 기도의 호흡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영적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한 영혼은, 기도가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어떻게 힘을 주시나?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무한한 능력을 주신다.
기도가 없다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기 원해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장 힘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의 손을 드는 사람이다.
우리는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한다. 기도의 손이 올라갈 때, 이스라엘이 이겼다.
홍해 앞에서 기도하던 밤, 하나님께서 동풍을 일으켜서, 바다를 갈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이 들어 눈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15년이나 생명을 연장해 주셨다.
기도만이 만사를 변화시킨다.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고, 많은 기적들이 뒤따른다.
하나님을 높이며 감사하고 찬양할 때 승리할 수 있다.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고 기도하던 밤에,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리고 옥터가 움직였다.
모세의 손이 올라갈 때 이스라엘이 승리했듯이, 우리의 기도 손이 하나님 앞에 올라 갈 때, 찬양의 손이 올라갈 때, 우리 자신이 승리하고, 가정과 교회가 승리하며, 더 나아가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승리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
3. 협력하는 데 있다(12).
모세의 팔이 피곤하자,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 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모세와 아론과 훌, 그리고 여호수아 이들이 맡은 각기 사명은 달랐다.
그러나 함께 한 협력자들이었다. 서로 마음과 뜻을 모아서,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보다 훨씬 실력이 좋은 포르트갈, 이탈리아, 스페인 선수가 공을 잡으면,
우리 선수들이 2-3명이 달려들자, 그들은 당황하거나 공을 빼앗겨,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다.
교회의 부흥도, 얼마나 협력자가 많으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교회에 어느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고 해서, 부흥되지 않는다. 성도들의 열심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목회자도 성도도 지칠 때가 있다. 지도자와 성도가 서로 붙들어 주면서, 뜻을 모아 협력해 갈 때, 놀라운 부흥과 은혜와 축복이 나타난다.
행12장을 보면, 복음을 전하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다. 그날 밤 성도들은 합심해서,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다. 온 성도가 기도하는 시간에, 주의 사자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옥에서 끄집어냈다.
베드로가 따라가 보니, 온 성도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이처럼 서로 붙들어 주는 협력자가 있어야 승리한다.
바울이 훌륭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도 훌륭했지만, 배후에 희생적인 협력자가 많았다.
먼저 몸으로 바울을 수족처럼 협력해 주었던, 디도와 디모데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눈 나쁜 바울을 위해, 할 수만 있으면 눈이라도 빼주고 싶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았다.
자주 장사 루디아는 물질로 협력하고 같이 선교하였다.
바울이 마지막 임종에 가까울 때,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축복을 빌었다.
주님을 위해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향해,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이름도 함께 증거되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도가 주의 종으로부터 간증 거리가 되고,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축복이다.
서로 힘을 모으라. 협력해 주는 아론과 훌이 되라. 그러면 큰 일을 이루게 된다.
혼자의 힘은 약하지만, 서로의 힘을 모아놓으면, 시너지 효과로 강력한 힘이 된다.
축구 경기를 통하여, 단결되어 응원하는 모습이 얼마나 좋은가?
비록 운동장에서 뛰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응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젖먹던 힘까지 내서 승리했다.
성도는 서로 붙들어 주는 아론과 훌이 필요하다.
함께 힘을 모으고 협력하면, 승리할 수 있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온 식구가 아론과 훌이 되어서, 신앙을 서로 붙들어 주며, 협력해야 한다.
남편의 신앙이 내려올 때, 아내가 붙들어 주고, 아내가 내려올 때, 남편이 붙들어 주고, 자식의 신앙이 미끄러질 때, 부모가 붙들어 주고, 부모의 신앙이 내려올 때 자식이 붙들어야 한다.
교회도 서로 아론과 훌이 되어서, 붙잡아 주며 협력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큰 역사를 이루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런 모습으로 모두 승리하여, 기쁨으로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되자.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기적을 창조하는 사람들
출 17: 8-16
여러분은 기적이 있다고 믿습니까? ‘기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신기한 일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며 삽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으로 똑똑히 본 것만 믿으려 합니다. 로또의 기적은 은근히 바라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적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다 믿을 겁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모두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믿습니다. 만약에 없는 것들이라면 ‘사랑’이라는 말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말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기적’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은 믿는 자에게만 나타납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 .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처음부터 기적으로 시작되고 내용도 대부분이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며 성경의 마지막 부분도 예수님의 재림과 믿는 자의 천국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에서 만일 기적을 제외한다면 성경은 표지 두장만 남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모두 기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적은 지나간 과거에만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는 하나님의 기적이 따르는 신비함이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연하게 기적을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기적을 바라는 것은 믿음의 역사를 낳고야 말 것입니다.
믿음은 상식을 초월합니다. 상식적인 태도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만물과 인간들을 창조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기적 가운데 제일 큰 기적입니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아브라함이 상식적으로 신앙생활 했나요?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18-20)
여러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만 해서는 절대로 기적을 맛볼 수 없습니다. 때로는 위험스럽고, 모험스럽긴 해도, 믿음으로 돌진할 때, 우리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고,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실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홍해를 가른 것은 상식적인 것입니까? 너무나 비상식적 행동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바다 위를 뻗었습니다. 그랬더니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일어난 결과이지 모세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열두 제사장이 출렁이며 흐르는 강물에 발을 먼저 밟으니까 갈라졌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무조건 하루에 1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날에 7바퀴 돌고 함성을 지르니까 그 철벽과 같은 여리고성이 폭삭 내려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예수님이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심도 기적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런 기적은 어떻게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셨고, 소경을 보게 하셨으며, 중풍병자를 걷게도 하셨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신 것 외에도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바람 부는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도 하셨으며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2,000년 기독교의 역사도 기적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그런 기적들은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기적을 믿고 사모하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살아 계심을 증거 하시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사업장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IMF때 우리나라는 참으로 힘든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조건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가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조사해서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는데
첫째, 종래의 방법이 제일 좋다고 고집 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대는 변화하고 새로운 기술은 자꾸 개발되는데, 종래의 방법이 좋다고 고집을 피우고 새로운 방법을 찾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완고성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완고함을 버리십시오.
둘째,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는 현실 만족형의 사람들이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괜찮다, 이만큼이면 됐다’고 생각하며 현실에 지나치게 만족하는 사람들도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셋째, 나는 잘하는데 상대가 나쁘다고 하는 형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교만한 사람은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기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쉽게 부정하는 형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No!’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안 됩니다. ‘예스 형’ ‘아멘’의 사람이 될 때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시야가 좁은 형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분야만 고집하거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폭넓게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편협성은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면 더 넓고 광대한 세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시야를 좁게 가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 시대에 걸 맞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역사와 능력을 힘입어 기적을 창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를 지나갈 때 모두 기적으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홍해를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너고, 3일을 걸어서 수르 광야에 가서는 물이 없어서 고생을 하다가 쓴 물을 달게 해주어서 마음껏 먹었으며(출15:2). 매일 만나를 주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만나가 지겨우니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로 한달이나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먹게 했습니다(민11:18).
그런데 르비딤(출17:)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말렉 군대들이 이스라엘의 행렬을 가로막고 방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순조롭게 행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모세가 산 위에 올라가서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고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동안은 여호수아가 앞장서고 이스라엘이 사기충천하여 아말렉을 이기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손이 내려오면 반대로 아말렉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단을 쌓고 모세를 그 위에 앉게 한 후 양편에서 팔을 붙들어 주었더니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승리했다는 기록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우리의 가는 행렬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들입니다. 그러면 이 아말렉 족속은 누구입니까? 창36:15-16절에서 보면 에서의 후손이 아말렉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말렉 족은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꾼 에서의 후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출세 때문에 믿음을 떠난 불신자들이 모두 아말렉입니다.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뺏기고 나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계속 미워하였습니다. 조상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좋지 않은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끝까지 부추겨 왔습니다. 그 아말렉 사람들은 야곱의 후손이 잘 되는 것을 눈뜨고 봐주지 못합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봐줍니다. 그래서 트집을 잡아 훼방하려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막고 훼방하고 도전했던 것입니다. 출17:16에 보면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말렉은 곧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 사단입니다. 이 사단은 우리를 끝까지 넘어뜨리려는 영적인 원수인 것입니다. 이 아말렉은 그때도 있었고 오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에는 무수한 아말렉 사람들이 우리의 행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긴 것은 모세 혼자로서 만은 불가능했습니다. 아론과 훌이 잘 협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여러 젊은이들이 힘을 합해서 싸웠을 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있는 지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기도의 팔이 들려져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방해와 도전을 이기면서 새 예루살렘까지 잘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손을 든다는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의 손을 들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짓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시28:2)
손을 높이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하게 복종하는 표식입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내 욕심, 내 힘 가지고 살아온 모든 삶을 포기하고 이제부터는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표식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즉각 응답하십니다. 여러분 기도의 손을 드십시오.
또 그것은 충성의 서약을 의미합니다. “내 모든 삶을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기도의 손을 드는 것은 축복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축복의 손이었습니다. 예배마치는 시간, 목사가 손을 드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주의 종의 기도의 손은 축복의 손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호락호락한 싸움이 아닙니다. 매우 치열합니다. 이런 싸움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직접 나아가 싸우기 전에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손이 높이 올라가면 기세당당한 아말렉 군대들이 추풍낙엽처럼 넘어졌습니다. 희한한 사건입니다. 문제는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손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하는 손을 통해서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모세의 손이 계속 들려 있었기 때문이라면 주의 종의 손이 내려오지 않고 계속 들려 있어야 합니다.
만일 모세 혼자 그 손을 하루종일 들고 있어야 했다면 그는 결코 감당키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협력으로 인하여 모세는 이 어려운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론과 훌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옆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을 붙잡고 협동했던 것입니다. 그 손들은 협동하는 손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모세의 여동생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형과 매부가 잘 협동하여 잘 붙들어 주었습니다. 서로 협동해야 사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론이나 훌의 손은 모세의 손처럼 능력 있는 손은 아니고 신비의 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협력할 때 역사가 일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협동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막2;에 한 중풍병자를 네 친구가 침상에 매고 왔을 때 기뻐하시고 그들의 믿음으로 칭찬하시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갈 때 좌우에서 붙들어 주는 손입니다. 기도와 축복의 손이 내려가지 않아야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고 내려가면 전쟁에서 지기 때문입니다. 공동 운명체(함께 살고 함께 죽는) 였습니다. 교회의 승리는 함께 할 때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임목사 부교역자,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속장, 교사 그리고 전 성도가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말렉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로 협력하고 마음으로 협력하고 물질로도 협력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에바브로 디도라는 교인이 있었는데 사도 바울을 위해서 모든 필요를 다 제공해 준 훌륭한 교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섬겼습니다.
바울이 대 사도로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에바브로 디도와 같은 숨은 봉사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대 뒤에서 협력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보는데서는 협력하는 것 같으면서도 뒤에서는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결코 쓰시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론과 훌 같은 사람들이 되시고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일선에서 싸우는 여호수아와 열정적인 백성들이 있어야 합니다.
기적은 헌신을 요청합니다. 헌신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의 요구에 응답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헌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나 물질로 표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지을 때 마음이 감동 된 자와 자원하는 자가 성막을 짓기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그리고 성막에서 쓸 기물들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자원하는 예물, 자원하는 헌신이었습니다. 나중에 백성들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일하던 일군들이 감당치 못하게 되어 모세가 그만 가져오라고 광고했을 정도였습니다.(출36:3-6)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원하는 헌신이지 억지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원하는 헌신이 왜 점점 없어질까요?
죄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성도들이 남모르는 죄를 범하면 믿음이 병이 들게 되고 병이 들면 교회가 등한히 되어지고 말씀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 주님과 멀어지면 헌신이 식어집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만 주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관계가 멀어지면 주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부터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함부로 합니다. 안하무인이 됩니다.
헌신의 사람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사르밧 과부 집에서 기적은 먼저 엘리야를 위하여 떡을 구워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주님 앞에 우리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때에도 빌립과 안드레의 헌신을 통하여 일어났던 것을 압니다. 우리의 달란트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모세가 기도의 손을 높이 들고 있을 때 전쟁터에서는 칼을 들고 목숨을 걸고 아말렉과 싸우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싸우는 여호수아가 있어야합니다. 한마디로 뒤에서 기도로, 영적으로 후원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하지만 여호수아와 같이 실제적으로 총대를 메고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왜, 나만 이렇게 위험한데서 해야 하느냐고 했더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천하는 성도들의 손, 싸우는 손, 순종하는 손, 봉사하는 손을 원하십니다. 이 손들은 복 받는 손입니다. 이 손은 명령에 따라 순종하며 말하지 않고 행하는 손입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대비를 하고 육적인 것은 육적으로 대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실천하는 것이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고, 열심히 일하지만 기도, 영적인 것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그것 또한 모래성을 쌓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교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땀 흘리고 봉사할 때 교회는 부흥하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아말렉을 쳐부수고 이기기 위해서는 교역자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기도하며 봉사하며 땀 흘리기를 즐겁게 자원하여 감당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적을 믿고 사모하며 기도하며 봉사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기적의 해가 될 줄 믿습니다.
모세의 도우미
출 17: 8-16
찬 송 : 455장(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458장(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일상사를 돌보셨을 뿐만 아니라(출 16:1~17:7)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적들과의 전쟁에서도 적극 도와주셨습니다. 본문은 독립된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최초 전쟁사입니다. 위대한 지도자에게는 좋은 조력자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모세에게도 참으로 좋은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본문에서 피곤한 모세의 기도의 팔을 좌우에서 붙들어 준 아론과 훌이었습니다. 본문을 통한 훌륭한 도우미의 삶은 어떠해야하는가 그 자세와 태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1. 아론은 이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습니다(8~12정 상).
아론은 애굽의 바로 왕이 히브리인의 어린 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칙령을 내리기 직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피붙이로는 누이 미리암과 남동생인 모세가 있었습니다. 이 아론은 말에 능치 못한 모세의 대언자로서 백성들과 애굽의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애굽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훌과 함께 모세의 손을 붙들어 줌으로써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12절). 그는 모세가 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여겨 그를 섬기며 순종했던 겸손과 재능과 신앙을 겸비한 사람으로서 나중에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출 17:12).
2. 훌은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습니다(10~12절).
훌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투 때에 아론과 함께 도우미가 되어 모세의 팔이 피곤해 내려갈 때 양쪽에서 손을 붙들어 올려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므로 여호수아가 칼날로 쳐서 아말렉을 이기게 한 인물이었습니다(10~12절). 후에 그와 아론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최고 재판관으로 봉사했습니다(출 24:14). 그런데 출애굽기 32장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그렇게 충실했던 훌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백성들의 엄청난 죄악과 대항하다가 군중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러한 충직한 훌과 같은 훌륭한 도우미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러분! 모두 선하고 충성스러운 도우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출 24:14).
3.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싸웠습니다(13~16절).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헬라어 '예수'라는 이름과 동일한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열두 정탐꾼 중의 하나였고(민 13:16), 그는 모세의 군사 부관(시종)이었으며, 제자요, 시내산을 모세와 함께 올라갔던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회막의 관리자로 모세를 도왔습니다. 아말렉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후에 모세의 후계자로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령하고, 그 땅을 분배했습니다(수13:~21:). 그는 110세에 죽어 딤낫 세라에 장사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져서 무찌르니라"(출 17:13).
정리하는 말
위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에게는 참으로 훌륭한 도우미들이 그를 도와주었고, 그의 출애굽 여정(旅程)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의 말없는 순종과 충성은 현대 교회를 봉사하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큰 지표와 귀감이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며 간구하는 자들의 무릎을 굳게 세워주시고 그들이 기필코 승리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것이 기도하며 지도자들을 돕고 섬기는 자들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도우미들이 되셔서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출처: 소망의 동산 원문보기 글쓴이: 끄싱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