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건설사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담당한 C씨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은행으로부터 PF 300억원을 만기 연장해줄 것을 요구하자 이처럼 황당한 말을 들었다.
C씨는 "300억원 빌리면서 200억원을 은행 계좌에 넣으라는 건 아예 빌려주지 않겠다는 얘기"라며 "어떤 은행들은 PF를 만기 연장해주는 대신 금리를 비상식적으로 크게 올려 결국 대출을 안해주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 "비올 때 우산을 뺏긴 꼴이 됐다"고 씁쓸해했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내 건설업계의 경우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건설업계의 돈줄이던 PF가 급속히 위축된 가운데 이를 대체할 수단도 마땅치 않아 건설사들의 줄도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일시적 자금경색을 겪거나 상대적으로 견실한 사업장을 갖고 있던 건설사들마저 금융권의 자금 옥죄기에 무너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조기 졸업하며 우등생이란 평가를 받은 경남기업(6,270원 140 2.3%)이 최근 또다시 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린 것도 은행권의 과도한 자금줄 관리 때문이다.
채권은행들이 채권 회수에 중점을 둔 나머지 워크아웃을 밟던 풍림산업과 우림건설이 최근 법정관리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은행들이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일종의 학습효과를 얻어 부실징후가 발생하면 무차별적인 자금회수나 대출 중단에 나선다는 불만이 많다. 실물경제와 호흡을 같이하는 자본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명대 단국대 교수는 "금융자본이 갈수록 단기화되면서 실물경제와 미스매칭(엇박자)이 발생하고 단타로 들락날락하는 자금들은 결국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만들었다"며 "은행이 투자의 적정성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자금이 적재적소에 공급돼 실물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자본의 건전한 활동 자체가 실종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의 극단적인 무위험 성향은 IMF외환위기의 결과물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부동산금융 관계자는 "정상적인 PF라면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수익과 위험을 모두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들이 위험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아 건설사의 지급보증을 낀 담보대출 형태로만 진행하는 게 문제의 발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IMF 이후 기업여신을 주로 하던 은행들이 모두 문을 닫고 개인담보대출에 치중한 소매금융 금융회사들이 장악하게 된 게 극단적인 위험 회피 현상을 보이게 된 원인"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