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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안시(白眼視)
눈알의 흰자가 드러나게 흘겨본다는 뜻으로,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白 : 흰 백(白/0)
眼 : 눈 안(目/6)
視 : 볼 시(礻/8)
(유의어)
반목질시(反目嫉視)
(상대어)
청안시(靑眼視)
출전 : 진서(晉書)
흰 눈으로 본다는 뜻에서 흘겨 보는 것, 남을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보는 것 또는 무시해버리는 것을 뜻한다.
눈을 나타내는 한자에 목(目)자로 안(眼)자가 있다. 안(眼)은 목(目)과 간(艮)을 합친 글자다. 간(艮)은 본래 사람의 머리에 눈만 그린 형태로 ‘보다’는 뜻을 지녔다. 고대에는 볼 견(見)과 같이 썼다. 눈은 얼굴을 대표한다.
백안(白眼)이란 눈의 흰 부분을 말하며 ‘사람을 싫어하여 흘겨보는 것’ 또는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백안시(白眼視)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위진시대(魏晉時代)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노장(老莊)의 철학(哲學)에 심취(心醉)하여 대나무 숲속에 은거(隱居)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에 완적(阮籍)이 있었다. 완적(阮籍)은 여러 가지 책들을 널리 읽고, 술을 좋아했고, 거문고를 교묘(巧妙)하게 탈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예의범절(禮儀凡節)에 얽매인 지식인(知識人)을 보면 속물(俗物)이라 하여 백안시(白眼視)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葬禮式) 때 조문객(弔問客)들이 와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침상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물끄러미 손님들을 응시(凝視)하고, 조문객(弔問客)에 대한 예절(禮節)인 곡(哭)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기쁨과 성냄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지만, 검은 눈동자와 흰자위로 외면(外面)하였다. 통속적(通俗的)인 예절(禮節)을 지키는 선비를 만나면 흰 눈으로 흘겨보았다.
어느 날 역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惠岡)의 형(兄) 혜희(惠姬)가 완적(阮籍)이 좋아하는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완적(阮籍)이 흰 눈으로 흘겨보며 업신여기고(백안시:白眼視) 상대해 주지 않자 혜희(惠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도망가듯 돌아갔다.
이 소식(消息)을 들은 혜강(惠岡)이 술과 거문고를 들고 찾아가자, 완적(阮籍)은 크게 기뻐하며 검은 눈동자를 보이면서(청안시,靑眼視:검은 눈동자를 프르다고 묘사했음) 환영했다.
이처럼 상대가 친구의 형(兄)일지라도 완적(阮籍)은 그가 속세(俗世)의 지식인(知識人)인 이상 청안시(靑眼視)하지 않고 백안시(白眼視)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조야(朝野)의 지식인들은 완적(阮籍)을 마치 원수(怨讐)를 대하듯 몹시 미워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백안(白眼)은 눈을 흘겨 보거나 무시하는 것을 뜻하고 청안(靑眼)은 따뜻하고 호감(好感)을 가진 모습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사람을 대할 때, 친밀하고 따뜻한 눈으로 청안시(靑眼視)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냉대(冷待)하거나 흘겨보면서 백안시(白眼視)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차이(差異)는‘어떤 사람을 싫어하는가 좋아하는가’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을 싫어하게 된 이유, 혹은 좋아하게 된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자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좋고 싫음이 갈리게 된 구체적(具體的)인 경위(經緯)를 떠나 때때로는 모든 사람을 청안시(靑眼視)할 수 없는 현실 자체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는 밝게 웃고 있다가도 자신이 백안시(白眼視)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굳이 눈알을 희게 만들지 않더라도) 표정(表情)이 굳어지고 말이 없어진다. 아무리 스스로 즐거운 인생을 산다고 자부(自負)해도 일상 속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은 사실 인생을 불편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시시때때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솔직히 재미있기도 하지만, 대놓고 재미있어 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사람을 청안시(靑眼視)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슬픔과 그런 슬픔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불편한 심기(心氣)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에서 다른 이의 의견(意見)이나 존재(存在)를 무시(無視)하거나 업신여김으로 냉대(冷待)할때‘도외시(度外視)하다’와‘백안시(白眼視)하다’라는 말을 쓴다.
도외시(度外視)는‘현실을 도외시하다’‘그의 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처럼 대개는‘문제를 삼는다’나‘무시하다’는 의미(意味)로 사용하지만 다음의 예문(例文)처럼‘업신여기다’의 뜻으로도 쓰이는 말이다.
(1)
그는 소림을 결코 도외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외시하기는커녕 자신의 처지로선 과람하다는 생각이었다. - 박경리의 토지에서 -
누군가를 홀대(忽待)하거나 무시하는 심리가 태도나 말투,행동 등으로 표출되는 것을‘업신여김’이라고 할 때‘백안시하다’는‘업신여기다’는 뜻을‘도외시하다’보다 좀 더 강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2)
ㄱ. 남들의 이런 백안시나 숙덕공론 때문에 괴로워하고 기를 못 펴는 건 누구보다도 종상이 내외였다. - 박완서의 미망에서 -
ㄴ. 고향에 돌아와 사람들로부터 받은 백안시, 그리고 수모가 그녀의 가슴에 적개심으로 남아 있었다. - 최일남의 거룩한 응달에서 -
ㄷ.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지금껏 그 남자를 백안시하던 눈에 웃음을 띠게 되었다. - 최명익의 장삼이사에서 -
앞의 예문(例文)에서 보는 것처럼 약간의 의미(意味) 차이(差異)를 띤 채 우리말에서 쓰이고 있는 도외시(度外視)나 백안시(白眼視)는 모두 중국(中國) 고전(古傳)에 유래(由來)를 둔 말이다.
도외시(度外視)는 후한서(後漢書)의 광무기(光武記)에 나오는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유수가 왕망(王莽)의 신(新)나라를 멸한 후 부하들의 추대로 제위(帝位)에 올라, 한(漢)나라를 재흥(再興)하게 되었을 때 중원(中原)의 대부분은 그의 세력권이 되었다. 그러나 진(秦)에 웅거하는 외효(隗囂)와 촉(蜀)에 거점을 둔 공손술(公孫述)만은 항복해 오지 않았다. 중신(重臣)들이 이 두 지역을 토벌할 것을 진언하자 유수는 뜻밖에도 '중원이 이미 평정(平定)되었으니 이제 법도의 밖으로 보라[度外視].'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들을 무시해도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므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무시하다’나 ‘문제 삼지 않다’와 같은 현재의 의미는 황제의 법률이 적용되는 지역 밖으로 보겠다는 원래의 의미에서 조금 다르게 쓰이는 말이라 하겠다.
남을 업신여기거나 냉대할 때 사용하는 백안시(白眼視)는 진서(晉書)의 완적전(阮籍傳)에 나오는 완적(阮籍)의 태도에서 유래(由來)한 말이다. 완적은 중국 진(晉)나라 초기에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무위 사상(無爲思想)을 좋아해서 죽림에서 청담(淸談)을 즐겼던 일곱 명의 선비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에게 당시의 지식인인 혜희(嵇喜)가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완적은 혜희가 평소 즐겨 담론(談論)하던 친구인 혜강(嵇康)의 형이었음에도 그를 백안시하며 상대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다른 계통의 지식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백안시(白眼視)는 상대방을 똑바로 보거나, 눈동자를 치켜뜬 채 상대방을 보는 형상(形象)이다. 따스한 시선으로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백안시(白眼視)하게 되면 자연히 눈의 흰자위가 드러나게 된다. 반의어(反義語)가 청안시(靑眼視)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백안시(白眼視)는 홀대와 업신여김이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라 하겠다.
따스한 시선으로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홀대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우리말로‘데면데면하다’라는 단어와‘소 닭 보듯 하다’라는 속담(俗談)이 있다.‘그 사람 왜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굴어’나‘날 소 닭 보듯 하잖아’는 상대방의 친밀(親密)하지 않은 태도로 인해 홀대(忽待)를 받는다고 느꼈을 때 토로(吐露)하는 말들이다.
백안시(白眼視)
눈은 보배다. ‘몸이 열이면 눈이 구할’ 이라는 말이 전하듯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잠시만 불편해도 그 중요성을 절감한다. 오감 중에서도 시각(視覺)을 앞세우는 것은 보는 것으로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 했다. 온화한 눈빛의 사람에겐 절로 호감이 가고, 미인을 나타내는 성어 중에 눈이 아름다운 명모호치(明眸皓齒), 미목반혜(美目盼兮) 등의 말이 따로 있다.
하지만 해를 끼치는 상대에게는 눈이 찌푸려져 쌍심지를 켠다. 상대하기 싫은 위인에게는 흰 눈자위로 흘겨보거나(白眼視), 반대로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는 푸른 눈자위를 나타내는 등 자유자재의 사람이 있었다.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이후 위진(魏晉)의 혼란기에 노장(老莊)의 철학에 심취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완적(阮籍)이 그 주인공이다.
그도 처음에는 관료로 진출했는데 정변으로 권세를 차지하는 자가 무상하게 바뀌자 환멸을 느껴 산야에 묻혀 살았다. 어머니 장례 때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칠현 중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의 형에게도 무례했다.
당(唐)의 방현령(房玄齡) 등이 엮은 진서(晉書)의 내용을 보자. ‘완적은 예교에 얽매이지 않고 능히 눈동자를 굴려 흰자위를 드러나게 하거나 호의의 푸른빛을 나타낼 수 있었다. 세속의 예의범절에 얽매인 선비를 보면 흰자위를 드러내 흘겨보며 대했다.’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혜강의 형 혜희(嵇喜)가 찾아왔는데도 완적이 흰자위를 드러내자 그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 소식을 듣고 혜강이 술과 거문고를 갖고 찾아왔을 때는 반색을 하며 푸른 눈자위를 보였다.
여기에서 싫은 사람에게는 무시해서 흘겨보거나 냉랭하게 대할 때 흰자위로 본다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흘긴 눈으로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리가 없다. 호오(好惡)가 분명한 것이 장점일수도 있지만 매사에 이렇게 대하다가는 적을 양산한다.
또 이렇게 피아를 갈라놓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 사회가 조용할 때가 없다. ‘시선은 칼’이란 서양의 격언보다 더 무서웠던 전직 대통령의 레이저 광선은 한 번 맞은 장관까지도 주눅 들었다. 청안(靑眼)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 白(흰 백)은 ❶상형문자로 햇빛이 위를 향하여 비추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희다, 밝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白자는 '희다'나 '깨끗하다', '진솔하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白자는 촛불을 그린 것으로 해석한다. 갑골문에 나온 白자를 보면 타원형 중심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는데, 이것은 촛불의 심지와 밝게 빛나는 불빛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白자는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白자는 그동안 다양하게 해석되곤 했다. 손톱이나 쌀알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갑골문에서 白자가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으로 쓰인 것을 보면 본래는 촛불을 그렸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白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주로 모양자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白(백)은 (1)백색(白色) (2)백지 (3)백군(白軍) (4)성(姓)의 하나 (5)백국(白國). 곧 벨기에 등의 뜻으로 ①희다 ②깨끗하다 ③분명하다, 명백하다 ④진솔하다 ⑤밝다, 밝아지다 ⑥빛나다 ⑦비다, 가진 것이 없다 ⑧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탄핵하다 ⑨흘겨보다, 경멸하다 ⑩흰빛 ⑪백발(白髮) ⑫대사(臺詞) ⑬술잔 ⑭비단(緋緞), 견직물(絹織物) ⑮볶은 쌀 ⑯소대(小隊: 군대 편성 단위의 하나) ⑰거저, 대가(代價) 없이 ⑱부질없이, 쓸데없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흴 고(暠), 흴 호(皓), 밝힐 천(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검을 흑(黑)이다. 용례로는 흰 눈을 백설(白雪), 희고 깨끗한 이를 백치(白齒), 빛깔이 흰 종이를 백지(白紙), 흰 빛을 백색(白色), 대낮을 백주(白晝), 흰 빛깔의 기를 백기(白旗), 죽은 사람의 살이 다 썩고 남은 뼈를 백골(白骨), 늙은이를 백수(白叟), 하얗게 센 머리털을 백발(白髮),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함을 고백(告白), 의심할 것 없이 아주 뚜렷하고 환함을 명백(明白), 깨끗하고 흼 또는 죄가 없음이나 공명정대함을 결백(潔白), 혼자서 중얼거림을 독백(獨白),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음을 공백(空白), 스스로의 죄를 고백함을 자백(自白), 검은빛과 흰빛으로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흑백(黑白), 종이 따위의 글자나 그림이 있는 이외의 빈 부분을 여백(餘白), 죽어도 잊지 못할 큰 은혜를 입음이란 뜻으로 남에게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을 백골난망(白骨難忘), 대낮에 꾸는 꿈이라는 뜻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르는 말을 백일몽(白日夢),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을 일컫는 말을 백안시(白眼視),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또는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을 이르는 말을 백운고비(白雲孤飛),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면서생(白面書生), 아무 것도 없거나 모르는 상태를 일컫는 말을 백지상태(白紙狀態), 예로부터 흰 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 한민족을 이르는 말을 백의민족(白衣民族), 벼슬이 없는 사람으로 군대를 따라 싸움터에 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의종군(白衣從軍),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모래와 푸른 소나무라는 뜻으로 흰 모래톱의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을 백사청송(白沙靑松), 아무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수건달(白手乾達), 서로 백발이 되기까지 사귀어도 마음을 알지 못하면 새로 사귄 것이나 같다는 뜻으로 친구가 서로 마음을 몰랐던 것을 사과하는 말을 백두여신(白頭如新),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말로 억지 논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백마비마(白馬非馬), 믿을 만한 출처나 자료를 가지고 하는 선전을 일컫는 말을 백색선전(白色宣傳), 흰 옥이 흠이 없다는 뜻으로 결점이 전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옥무하(白玉無瑕) 등에 쓰인다.
▶️ 眼(눈 안, 눈 불거질 은)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눈목(目=罒; 눈,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艮(간, 안)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眼자는 ‘눈’이나 ‘눈동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眼자는 目(눈 목)자와 艮(그칠 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艮자는 허리를 구부린 채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보다’라는 뜻만을 전달하고 있다. 眼자는 눈을 강조해 그린 艮자에 目자를 결합한 것으로 ‘눈’이나 ‘눈동자’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目자도 눈을 그린 것이긴 하지만 주로 ‘보다’라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眼자는 신체기관의 일부인 ‘눈’을 뜻하기 위해 별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참고로 眼자와 유사한 글자로는 眠(잠잘 면)자가 있으니 혼동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眼(안, 은)은 ①눈, 눈동자 ②구멍 ③안광(眼光), 시력(視力) ④요점(要點) ⑤어린 싹 ⑥거품 ⑦기수사(基數詞; 수량을 셀 때 쓰는 수사), 양수사(量數詞; 기수사) ⑧보다, 만나다 그리고 ⓐ눈 불거지다(은) ⓑ눈 불거진 모양(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눈 목(目)이다. 용례로는 사물을 분별하는 견식을 안목(眼目),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범위를 안계(眼界), 눈을 보호하거나 시력을 돕기 위해 쓰는 기구를 안경(眼鏡),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시력을 높이어 일컫는 말을 안력(眼力), 눈알로 척추동물의 시각 기관인 눈구멍 안에 박혀 있는 공 모양의 기관을 안구(眼球), 늙어서 시력이 나빠진 눈을 노안(老眼), 어떤 일을 눈여겨 보아 그 일을 성취할 기틀을 잡음을 착안(着眼), 먼눈이나 눈먼 사람을 맹안(盲眼), 핏발이 선 눈이나 어떤 일을 이루려고 애가 달아 기를 쓰고 있는 상태를 혈안(血眼),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사람됨이 교만하여 남을 업신여김을 이르는 말을 안하무인(眼下無人), 눈 속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정든 사람이나 늘 생각하며 만나 보기를 원하는 사람을 안중지인(眼中之人), 눈은 높으나 손은 낮음이란 뜻으로 눈은 높으나 실력은 따라서 미치지 못한다는 안고수비(眼高手卑), 눈빛이 종이의 뒤까지 꿰뚫어 본다는 뜻으로 독서의 이해력이 날카롭고 깊음을 안광지배(眼光紙背) 등에 쓰인다.
▶️ 視(볼 시)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볼 견(見;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示(시)는 신이 사람에게 보이다, 見(견)은 눈에 보이는 일이라는 뜻으로 視(시)는 똑똑히 보이다, 가만히 계속하여 보다, 자세히 조사함으 말한다. 見(견)은 저쪽에서 보여오는 일, 視(시)는 이쪽에서 가만히 보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視자는 '보다'나 '보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視자는 示(보일 시)자와 見(볼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示자와 目(눈 목)자가 합한 형태였다. 여기서 示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그린 것으로 '보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보이다'라는 뜻을 가진 示자에 目자가 결합한 視자는 '신이 보이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보다'나 '~로 여기다', '간주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視(볼 시)는 ①보다 ②엿보다 ③보이다 ④간주하다 ⑤맡아보다 ⑥본받다 ⑦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필 찰(察), 살필 심(審), 조사할 사(査), 검사할 검(檢), 볼 감(監), 벼슬 감(監), 바라볼 조(眺), 보일 시(示), 볼 견(見), 볼 람(覽), 볼 관(觀), 볼 열(閱), 나타날 현(顯)이다. 용례로는 빛의 자극을 받아 눈으로 느끼는 것을 시각(視覺), 눈이 가는 방향을 시선(視線), 눈으로 봄과 귀로 들음을 시청(視聽), 눈의 보는 힘이 미치는 범위를 시야(視野), 눈이 보는 힘이 미치는 범위를 시계(視界), 돌아다니며 실지 사정을 살펴 봄을 시찰(視察), 물체의 존재나 형상을 인식하는 눈의 능력을 시력(視力),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를 시정(視程), 사무를 봄을 시무(視務), 존재나 있는 값어치를 알아주지 아니함을 무시(無視), 경계하기 위하여 미리 감독하고 살피어 봄을 감시(監視), 주의해서 봄이나 자세히 눈여겨 봄을 주시(注視), 가볍게 봄이나 가볍게 여김을 경시(輕視), 착각으로 잘못 봄을 착시(錯視),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아도 먼 데 것은 잘못 보는 눈을 근시(近視), 먼 데 것은 잘 보이고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시력을 원시(遠視),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내쏘아 봄을 직시(直視), 간섭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음을 좌시(坐視), 눈길을 주어 한동안 바라보는 것을 응시(凝視), 돌아다니며 보살핌을 순시(巡視),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을 이르는 말을 백안시(白眼視), 안중에 두지 아니하고 무시한다는 말을 도외시(度外視), 따뜻하고 친밀한 마음으로 본다는 말을 청안시(靑眼視), 백성을 제 자식처럼 여긴다는 말을 시민여자(視民如子), 죽음을 삶같이 여기고 두려워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시사여생(視死如生), 죽는 것을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시사여귀(視死如歸), 보고도 보지 못한 체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시약불견(視若不見), 보기는 하되 보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시이불시(視而不視), 우물 속에서 별을 본다는 뜻으로 우물 안에서는 겨우 몇 개의 별밖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사사로운 마음에 가리우면 견해가 한 편에 치우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정중시성(井中視星),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있다는 뜻으로 세상 사람을 속일 수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십목소시(十目所視), 범이 먹이를 노린다는 뜻으로 기회를 노리며 형세를 살핌을 비유하는 말을 호시탐탐(虎視眈眈), 눈으로 먹고 귀로 본다는 뜻으로 맛있는 것보다 보기에 아름다운 음식을 좋아하고 몸에 맞는 것보다 귀로 들은 유행하는 의복을 입음을 이르는 말을 목식이시(目食耳視)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