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 이름조차 지독하게 긴 영화입니다. 자고로 옛 영화들을 보면 저런 식으로 긴 제목이거나 혹은 제목이 길지 않아도 긴 부제들이 달려 있곤 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낮선 인물이라고 생각되나 제시 제임스는 미국에서 전설로 남아 있는 유명한 갱 이름입니다. 그에 관하여는 이미 <제시 제임스>(1939)와 <롱 라이더스>(1980)를 통해 영화화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실존인물의 명성(?)에 비해 이 두 편의 영화는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비겁한 로버트.....>에 나타난 제시 제임스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브레드 피트가 열연하면서 새롭게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2007년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 제시 제임스
관객들은 당연히 제시 제임스가 왜, 어떻게 죽었나를 다루었을 거라 생각했던 터라 주인공이 제시 제임스였을 거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실상 이 영화의 주인공은 로버트 포드입니다. 영화의 시작조차 로버트 포드(밥 포드)가 제시 제임스를 찾아가게 되는 그 순간부터였고, 그 결말은 로버트 포드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이 영화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제작된 이듬해인 2008년 전주영화제를 통해서였습니다. 국내에 워낙 팬을 많은 보유하고 있는 브레드 피트였기에 당시 전주영화제 라인업이 알려지면서부터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서부시대의 갱에 관한 영화라서 긴장감 팽팽한 총격전과 복수, 빠른 화면전개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내레이션을 통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고요하게 전개됩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듯한 피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 로버트 포드
고요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위에서 언급한 제시 제임스의 일생을, 그의 종말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영화 내내 지속됩니다. 하여튼 아주 독특한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납니다.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에서 명감독인 리들리 스콧과 제작자로도 참여했는데, 악랄하면서도 고민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때론 마음이 여린 제시 제임스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배우는 제임스를 암살하는 주인공인 로버트 포드를 연기한 케이시 애플렉입니다. 그는 명배우이자 명감독이기도 한 벤 애플릭의 동생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어눌하면서도 냉정한 로버트 역할을 맡아 작품 완성도를 한층 높였습니다. 그는 2017년도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한 연기파 배우입니다.
* 포드 형제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의 또 하나의 큰 미덕은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앤드류 도미닉 감독의 연출력입니다. 그는 2시간 4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노련한 감독 못지않은 구성력을 보여주었고 카메라 기법과 음악 배치도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중심부는 또렷하면서도 주변부는 흐릿하게 처리한 화면의 빈번함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등장인물의 심리, 극적 긴장감, 그리고 영화 성격에 대한 모호함을 한꺼번에 거뒀습니다. 대사 처리 또한 영화를 쉽게 이해하게 만들면서도 함축적인 내용을 곁들이면서 내레이터 중심으로 흐름에 따른 지루함을 보완했습니다.
또한 닉 케이브와 워렌 엘리스가 구성한 음악은 더욱 훌륭합니다. 몽환적이면서도 스릴있고, 긴박하면서도 느릿한 선율이 조화를 이루는 기막힌 OST를 낳았습니다.
[ 제시 제임스 형제 이야기 ]
제시 제임스는 미주리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남북전쟁 때는 형 프랭크와 함께 남군에 자원하여, 당시 잔인하기로 이름났던 캔트릴이 지휘하는 게릴라부대에 들어가 미주리주와 캔자스주에서 활약하였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제시와 프랭크는 게릴라 부대의 다른 동료 8명과 합세해 1866년 2월 13일 미주리 주 리버티의 한 은행을 털어 무법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갱단으로 이름을 지은 이들은 아이오와에서 앨라배마와 텍사스에 걸쳐 여러 은행을 털었습니다. 1873년부터는 열차 강도질을 시작했으며, 이밖에 역마차와 상점을 습격하고 사람들을 강탈하기도 했습니다.
* 제시 제임스
당시 철도회사인 핑커튼 회사의 창립자인 알란 핑커튼은 제시의 집에 폭탄을 던졌고 제시 가족이 참혹하게 폭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핑커튼은 제시 일당에게 계속 열차 강도질을 당하자 약이 바짝 올라 이런 짓을 했습니다.
이 일로 오히려 제시 제임스 일당은 남부인들의 동정심을 얻었고, 그들의 강도 행각도 어느 정도 합리화 되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당시 은행과 철도는 거의 북부의 자본이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남부인들은 제시일당의 악행에 오히려 갈채를 보내며, '서부의 로빈후드'라고까지 하면서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갱으로 활약하던 동안, 그리고 그 후에도 그들의 행각은 잔혹한 서부의 대담무쌍한 이야기를 원하는 미국 동부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작가들에 의해 이들의 이야기는 과장되기도 하고 낭만적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 영화에서 제시의 형 프랭크
특히 형제의 고향인 미주리의 오자크 사람들에게 제시 제임스는 남군에 동조했던 과거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려는 당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죄 세계로 들어선 낭만적 인물로 회자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시와 프랭크는 항상 당국의 박해를 이유로 들어 그들의 강도행위를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저지른 일이 아닌데도 그의 소행으로 지목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시를 소재로 한 민요나 다임 노벨(dime novel:10센트짜리 소설)과 서부극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1876년 9월 7일 제임스 일당은 미네소타 주의 노스필드에 있던 제일국립은행을 약탈하려다 거의 전멸 당했습니다. 8명의 강도일당 중 제임스 형제만이 도망쳐 죽음과 체포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제시 제임스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강도를 벌였던 찰리 포드와 그의 동생인 로버트 포드를 데리고 칩거합니다.
1881년 미주리 주지사 토머스 크리튼던은 제임스 형제를 죽이거나 사로잡는 사람에게 현상금 1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시했습니다. 토머스 하워드라는 가명으로 세인트조지프에 숨어 살고 있던 제시는 영화에서처럼 집에서 벽에 그림을 고쳐 달던 중, 현상금을 노린 포드 형제가 쏜 총에 뒤통수를 맞고 즉사했습니다. 포드형제가 미주리 주지사와 모종의 거래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몇 달 후 프랭크 제임스는 자수했습니다.
* 제시의 시체
형 프랭크는 미주리에서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판결을 받았고, 앨라배마에서 강도죄로 재판을 받았으나 역시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마지막으로 미주리에서 무장 강도죄로 재판을 받았으나 다시 석방되었습니다.
아마도 가족이 폭사 당했고, 동생 제시도 제거되었으며 스스로 자수했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나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거기다가 남부주의 판결은 남부인에게 유리했을 겁니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가족 농장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다가 1915년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죽었습니다.
[ 간략한 줄거리 ]
제시 제임스(브래드 피트扮)는 유명한 갱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형 프랭크(샘 셰퍼드扮)과 사촌, 친한 이웃의 아들, 동네 뜨내기들을 한데 모아 갱스터 조직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열차, 은행 등을 털며 미국 내에서 악질적인 갱으로서 이름을 떨칩니다.
그는 남부인들에게는 의적 로빈 훗과 같은 인물로 떠받들여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19세기 말에 유럽인이 아는 미국인이라곤 마크 트웨인과 제시 제임스뿐이었다.’라는 말이 떠돈다고들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 농담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당시 미국 사회에서 2번째로 유명했던 인물이었고, 그의 전기(傳記)를 읽고 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세의 밥(로버트) 포드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제시 제임스의 전기를 읽고 큰 것으로도 모자라 신문기사나 그에 관련 한 물품들을 모으는, 지금으로 따지면 제시 제임스의 열렬한 광팬이었던 것입니다.
* 영화에서 제임스 갱단 일행
밥은 형인 찰리가 제임스 갱단에 있는 것을 통해 그의 갱단에 들어오기로 마음먹었으며, 제임스 형제를 제외한 초기 제임스 갱단의 멤버들이 모두 감옥에 갇히는 불상사로 풋내기 신참들을 받아들이던 그 시기에 직접 제시 제임스에게 접촉을 하여 제임스 갱단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갱단에 들어온 이후 블루커트에서 기차를 습격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밥이 상상했던 의적의 행동들은 없었습니다. 제시의 형인 프랭크는 제시의 성격에 넌더리를 내며 제시를 쫓아 버렸으며, 밥은 제시와 가까이 지내게 되고 그의 갱단들과 섞이게 되며 제시 제임스에 대한 단점들도 알게 됩니다.
의적이었던 제시의 모습은 언론이나 구전되어지는 말로는 멋있는 인물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시는 신경질적이고 지나치게 예민하며 사람들의 기대에 억눌려 있는데다가 부하들이 언제 배신할지 몰라 늘 불안해하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시기 제시 제임스는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자신의 일행 중 자신을 밀고하려다가 적발한 이가 있었고 블루컷에서의 강도 일행 중 4명이 체포가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염과 폐충혈 등으로 점점 몸도 차츰 망가져갔습니다.
* 영화에서 제시의 가족
미신적 점괘에 완전히 의존하며 제시의 정신까지 무너져버리던 그 때, 밥은 누나(마사)의 집에서 우연히 갱단 동료이자 제시의 사촌 동생이었던 우드 하이트를 죽여 버리면서 자신과 찰리 형제가 제시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그 누구도 믿지 못하던 제시가 마사의 집에 들이 닥치며 제시는 밥이 언젠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것 혹은 이미 배반했다는 것을 눈치 챕니다. 이 과정에서 밥은 완전히 제시에게서 돌아서게 됩니다.
자신이 단지 살고 싶었기에, 게다가 제시에 대한 실망으로 제시에게 벗어나고 싶었기에 밥은 당국에게 모든 것을 고발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마사의 집에 하숙을 하던 갱단의 멤버 딕 리딜이 체포되고 밥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당국에게 덜미가 잡혀 주지사에게 제시를 잡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 열차 강도 행각
기간은 일주일. 그 사이에 더욱 심약해지고 예민해진 제시가 포드 형제를 찾아옵니다. 포드 형제는 제시와 함께 머물게 되고 제시는 포드 형제가 자신들의 눈 밖에서 나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불안해하는 것은 포드 형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찰리는 울면서 잠에 들지도 못하고, 만우절에 갑자기 자신에게 총을 선물하는 제시 때문에 밥은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1882년 4월 3일, 제시는 딕 리딜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는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그제야 제시는 자신더 이상 비빌 언덕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늘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총을 포드 형제의 앞에서 풀어놓습니다.
액자에 먼지가 끼었다며 일부러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자신들의 부하가 총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액자 유리에 비친 것을 확인하면서도 그대로 밥의 총을 맞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 제시를 향하여 총을 겨누는 밥(로버트)
밥은 제시를 죽이자마자 경찰에 자신이 제시 제임스를 죽였다는 내용의 전보를 치고 그 후 1년 동안 찰리와 함께 제시 제임스 살해 연극을 오픈합니다. 그 연극을 하며 점점 형 찰리는 심한 가책을 느끼면서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찰리는 제시 유족들에게 보내지 못한 장문의 사과편지를 쓴 채 결국 자살을 합니다.
이 후 밥의 인기는 많았으나 그만큼 조롱도 많았습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듯 제시의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갈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냉정한 것을 슬퍼했습니다. 차라리 제시 제임스를 죽였던 사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제시를 그리워할 줄도, 그리고 후회할 줄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그리고 제시가 죽은 지 10년 후, 그는 자신과 비슷했던 한 남자의 총격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시의 죽음과는 다르게 밥 포드의 죽음은 크게 유명세를 타지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의적을 죽인 로버트 포드의 죽음은 그렇게 쓸쓸하고 의미 없게 사라졌습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한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