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 <거위의 꿈>
https://youtu.be/Mx_5SAaRPc0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히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린대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인순이 씨의 출생과 어린시절
유명한 사실이지만,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하지만 아버지는 인순이가 태어나자 나 몰라라 식으로 대처하고 떠났기 때문에 인순이는 아버지를 본 적도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몇번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지만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혼혈에 대한 편견 및 인식과 대우가 좋지는 않은데 196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혼혈, 그것도 흑인 혼혈이고 아버지가 없는 홀어머니 혼자 키우는 딸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매우 좋지 않았다. 어렸을 적 뿐만이 아니라 가수로 성공한 이후에도 이러한 차별은 은연중 따라다녔다. 결국 이는 인순이의 인생에 커다란 성처로 남게 되었다. 자녀로는 외동딸이 있으며 원정출산했다. 만약에 딸이 자신을 닮은 외모로 태어난다면 미국에 가서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한국에서 인생을 보내기로 결심했으며 한국 가수로 쭉 살아야하는데 만약 딸과 헤어질 수 없다면 외국 시민권이라도 있어서 외국인학교에 다니게 하면 차별과 놀림을 조금이라도 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출산 후에 라디오 출연해서 자신이 원정출산을 하고 왔다고 마음껏 욕해달라고 솔직하게 고백했지만 심지어 9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흑인 혼혈에 대한 사회의 차별의식은 어마어마했기에 (2010년대에도 사라졌다고 말할 순 없지만) 대중들에게 그다지 비난받지는 않았다.
당시 홀어머니 혼자 키우는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인순이의 가정 역시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했으며 인순이는 장녀로서 힘겹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생계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그때 김완선의 이모이자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故 한백희의 눈에 들어 가수 생활을 시작한다.
(참고 : 나무위키 인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