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 TV가 있지만 거의 보지 않는다.
마누라는 영화프로를 좋아해 밤 늦게까지 혼자서 보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도 잘 보지 않는다. 가끔 친구들이 보내주는 유튜브는 본다.
그는 오늘 대학친구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아리아Top9 이라고 보내줘서
지금 듣고 있다. 오랫만에 들으니 카디프 데이비드 음악홀에서 듣던 감동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영국 카디프에 있을 때 매주 가족티켙으로 음악회에 많이 갔었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의 공연도 보고
극장에선 타이타닉 영화도 보았다.
영국 사람들은 놀기 위해서 평소에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았다.
여름휴가와 겨울휴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서 저축해서 휴가때는 온 가족이
휴가지 주로 지중해나 북구쪽으로 여행을 가는 것 같았다. 시내 번화가인 퀸즈 스트리트에는 여행사와 스포츠 상점이 제일 많았다.
우리 가곡으론 그리운 금강산, 가고파, 비목 등을 듣기 좋아한다.
배를 타고 호주 시드니에 갔을 때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공연을 한 번 들어 보고자 하였으나
미리 표를 구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비싼 암표를 사서 볼 수는 없었다.
공연은 보지; 못하고 조개껍질 형상의 하얀 지붕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장 찍고 말았다.
그곳에서 저 멀리 건너편으로 보이는 시드니 다리가 멋 있었다. 그래서 세계3대 미항에 드나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부산 연지동에서 고종형한테 빌붙어서 1년간 자취를 하면서 살았다.
고종형이 금성사에 다녔는데 방 하나를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셋방 주인은 나이80이나 되는 할머니 혼자 사시는 분이었는데 자식들은 상당한 재력가들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좋아하셨는데 옛날 해방전 혼자서 금강산에 가셔서 찍었던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보여 주셨다.
그 사진을 보면서 우리 생전에 금강산에 한번 가 보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에 있을 때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교수연수회 겸 금강산 관광을 하게 되었다.
가족까지 동반하고 속초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현대 설봉호를 타고 동해안 금강산 입구까지 가서
현대 버스에 올라 금강산 등산로 입구까지 갔었다. 날씨가 추워서 발에는 아이젠까지 차고 갔었다.
말로만 듣던 1만 2천봉 봉우리릴 바라보니 고개가 아플 지경이었다. 우뚝 솟은 바위들이 곳곳에서 튀어 나왔다.
만물상은 그야말로 바위로 만물을 빚어 놓은듯 하였다. 나는 가이드의 설명에는 듣는둥 마는 둥 하면서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당시만 해도 디카가 보편화 디어 있지 않아 필름을 사용했다. 필름이 아까와서 많이 찍지도 못했다.
죽 이어져 왔던 금강산 관광도 북한 군인의 총질로 우리 관광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중단되고 말았다.
관광코스를 벗어났다고 민간인에게 위협사격도 아니고 바로 정조준해서 총을 쏘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래 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이제는 핵무기까지 갖췄으니 얼마나 갑질을 할지 모른다.
문정부는 못 갖다 바쳐서 안달이다. 미국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쌀과 기름을 퍼주고 싶겠지만 주위의 눈이 있어 그러질 못하고 있다. 우리정부가 아무리 개별관광을 추진한다고 해도 북한에서는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문을 열었다가는 언제 체제가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생전에 다시 금강산을 구경 할 수가 있을까? 세상 일이란 알 수가 없긴 하지만.
그리운 금강산 노래라도 찾아 들어야겠다. 내가 찍었던 사진도 프린트해서 앨범 속에 넣어두었는데 나중에라도 찾으면 스캔해서 올려 놓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