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4. 토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내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뜻은?" 요한 1서
내가 요즘 살고 있는 미국 애틀랜타에는 한국 마트가 있다. 그중 하나가 H마트인데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요즘 내가 하는 사역은 가정 사역이다.
즉슨 아기를 얼마 전 출산한 딸의 식사를 준비해 주고 필요한 쇼핑을 해 주는 일이다.
어제도 필요한 장을 보러 한국 마트에 갔다. 쇼핑을 다 마치고 나오는데 마트 입구에서 두 분의 어르신이 열심히 전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이곳 날씨는 무척 덥다.
한국으로 말하면 3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 날씨다.
그런데도 두 분은 평범한 여름옷 위에 야광색 조끼까지 입고 마트에서 나오시는 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도지를 나눠 주고 계셨다.
그냥 전도지만 나눠 주는 것이 아니었다. 장을 보고 나오시는 분들의 짐을 도와드리고, 비어 있는 카트도 정리해 주시면서 아주 점잖고 친절하게 전도하고 계셨다.
나이는 적어도 70세는 넘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참으로 감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미 장을 다 봤지만 얼른 다시 마트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음료수 네 병을 샀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음료수인데 이곳에서는 가격이 서너 배는 더 비싼 것 같았다.
그 음료수를 두 분께 드리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저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딸 집으로 향했다.
전도란 무엇일까?
우리는 때때로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전도하지 못하기도 한다.
언젠가 설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천국에 올라가면 내가 몇 명을 전도했는가, 내가 전도한 사람 몇 명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가도 중요하겠지만,
전도하면서 거절당했던 숫자만큼 하나님께 더 큰 상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이다.
그 말씀을 듣고 많은 분이 은혜를 받으셨다고 했다.
어떤 분들은 카톡으로 연락을 주시며, 거절감 때문에 어려웠던 전도가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 오시기도 했다.
우리가 평생 살아가면서 전도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빚진 자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는 프리즌 리바이벌 사역을 하면서 가석방되어 나오는 분들의 기쁨을 자주 보게 된다.
원래 받아야 할 형기보다 더 빨리 자유를 얻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기뻐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가석방이 아니라 아예 죄가 없다고 판결받아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죄가 없었다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정말 많은 죄를 지었는데도 그 죄가 모두 사해지고 없던 일이 되었다면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바로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지옥이라는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았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그 은혜가 진짜라고 믿는다면 우리 마음속에는 그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노방전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 다녀야 하고 학교에 가야 하며 가정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기도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직장의 상사와 동료들, 부하 직원들이 예수님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그들의 마음을 열어 달라고, 불신의 영이 떠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또한 열심히 전도하시는 분들에게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을 사 드릴 수도 있다.
오지에서 사역하며 생활비조차 직접 마련하기 어려운 선교사님들을 후원할 수도 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자비량으로 사역하는 간사님들을 섬길 수도 있다.
여름 단기선교를 떠나는 청년들의 비행기표와 사역비를 후원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는 아름다운 동역이 아닐까?
나는 가끔 설교할 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왜 돈을 버는지 아셔야 합니다.
돈을 버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전도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입니다!"
전도에는 물질도 필요하다.
나 역시 아프리카에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 3년 동안 매주 2만 명의 주민들에게 옥수숫가루를 나누어 주었다. 엄청난 재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돈은 내가 번 돈이 아니었다.
나를 후원해 주신 분들의 선교헌금이 있었기에 나는 매주 2만 명의 사람들에게 옥수숫가루 두 포씩을 나누어 줄 수 있었다.
결국 그 모든 사역은 나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함께 물질로 동역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다.
각자 있는 자리와 형편은 다르지만 기도로, 물질로, 섬김으로, 격려로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함께 감당하는 아름다운 동역자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말성경 요한일서 1장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파합니다. 이는 여러분과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단어는 '사귐'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 이것처럼 큰 특권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그대로 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물론 말씀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단지 명령하시고 우리는 순종만 하는 관계가 되기 위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귀기를 원하신다.
사귐이 있다는 것은 서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녀온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 같다.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이미 대충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묻는다.
"오늘 학교는 어땠니?"
그리고 아이가 오늘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기뻐한다.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오늘 하루는 어땠니?"
우리가 잘한 일만 이야기하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기쁜 일도 이야기하고, 속상했던 일도 이야기하고, 억울했던 일도 이야기하고, 때로는 자랑하고 싶은 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가끔 사람들 앞에서 잘한 일을 이야기하면 자랑한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이가 학교에서 100점을 맞고 집에 와서 "엄마, 오늘 나 100점 맞았어!"라고 기쁘게 이야기할 때, 어떤 부모가 "교만하구나. 그렇게 자신을 자랑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겠는가!
부모는 함께 기뻐해 준다.
또 아이가 속상한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해 준다.
그것이 부모의 자리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런 분이 아니실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와 사귀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무서운 제왕이 되셔서 명령만 하시고, 우리는 무조건 충성만 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셨다.
그리고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신다.
그 대화 속에는 우리의 우울함도 있을 수 있고, 기쁨도 있을 수 있고, 자랑도 있을 수 있고, 아픔도 있을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 그것이 바로 사귐의 시작이고 사귐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저와 하나님 사이에 이러한 사귐이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내가 무엇이든 주님께 말씀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이처럼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을까요!!
감히 하나님과 사귈 수도 없고 교제할 수도 없는 저희를 선택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 있게 하시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주님과 대화하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요 가장 큰 특권임을 날마다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7. 4.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하나님과 함께
어제보다 더 깊은
더 절친 된 그러한
사귐이 그대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생각
많이 하시고
이야기 많이 하시고
많이 들으시고
그래서 그대와
하나님의 사귐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어지는 그대의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