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여행기
고창을 간다.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동반한다.
여행은 시작되었다. 흐린 날씨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고창의 역사는 구석기, 신석기시대를 지나
초기국가엔 마한의 모로비루국이었다고
나는 차창 밖을 본다. 정읍에서 전주를 지나 고창에 가까울수록 논이 많다.
고창은 한눈에 봐도 목가적이다.
이렇게 넉넉한 천혜의 자연으로 백제시대부터 문화의 꽃을 피울만했나 보다.
그런데 조선 말기에 三政 紊亂 등으로 농민들 반란에 이어 동학란까지 일으켰을까.
동학란은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 가슴에 나 라는
주체사상을 심어준 혁신적인 운동인 것이다.
나는 당시 동학란의 주동자 중 한 사람인 전봉준이 생각난다.
누가 이 사람의 사진을 찍어 지금까지 전해졌을까. 몸은 묶여 끌려가지만
그 형형한 눈빛은 살아있어 모습은 당당하고 의연하다.
당시 백성들은 ‘새야. 새야 녹두꽃에 앉지 말라’는 애틋한 노래를 불렀고
안도현 시를 읽으면 그 시대적 아픔이 전해진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시 처음 일부임.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천도교는 지극히 평범한 민중이 만든 우리 민족의 종교다.
유불 도 합일 사상인 인내천으로 신의 원천이 내 마음 안에 있다는 교리다.
사람들은 다 하늘을 품고 있으니 귀하고 천한 사람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또 혼란한 시대에 지주인 주인과 종이 같이 기독교를 믿는데
종이 목사가 되니 주인이 종인 목사한테 순종했단다.
그러고 보면 고창지역은 빠른 시대 감각으로
평등사상인 민주주의 뿌리가 일찍 내린 것 같다.
고창에서 제일 먼저 홍등장학당을 들렸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학교 설립, 독립자금, 상해 임시 정부 자금 등을
여기 모인 계원들이 모아서 보냈다. 작은 집에서 거룩하고 큰마음을 본다.
고창읍성이다
읍에는 숲이 있고 언덕 같은 산도 있다.
나는 야트막한 산을 오른다.
산 정상에는
아! 대나무. 거대한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내 한 몸 들이밀 틈도 없다.
그런데 사이에 굵은 소나무가 용트림하며 가지를 뻗어 자란다.
정말 신기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대나무 우듬지의 어린잎들이 구름을 희롱하며 논다.
이 성안에 대원군의 적화비를 본다.
혼란한 시기였던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이 고장의 많은 선각자,
의인들은 나라에 처한 상태를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동아일보를 창건한 김성수가 이곳 분이다.
성 밖이다.
자연은 언제나 의연하고 아름답다.
성 둘레 길은 풀이 덮여 파랗다.
그러나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풀을 밟아
드러난 흙길은 굵은 뱀이 파란 카펫 위를 구불구불 오르는 것 같다.
동화 속에 한 장면이다.
판소리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신재효를 만난다.
흥선 대원군에 눈에 띄어 오늘의 판소리가 있기까지
이론을 연구하고 창작하고 명창들을 길러낸 분이다.
나는 판소리를 들으면서 노래하는 사람이 청자하고 대화, 농도 하고 손짓 발짓인
아니리, 발림, 너름새라는 용어가 예쁘다.
또 오래 세월 숙련된 득음의 목소리를 곰삭았다는
우리말의 표현도 아름답고
얼쑤 조오타! 라는 고수의 북소리인 추임새도 우리 모두를 흥겹게 한다.
한과 슬픔으로 얼룩진 우리 삶을 흥으로 승화시킨
이 음악이 정말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운사다. 선운산은 원래 도솔산이었으나 백제 때 검단 선사가 창건한
선운사가 유명해져 산 이름도 선운산이다.
禪雲사는 우선 절 이름이 신선하고 주위에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절의 건물 뒷산은 동백나무가 많아 겨울의 아름다움이 그려진다.
절 주위 땅에는 꽃무릇으로 전부 진빨강이다.
꽃무릇은 딱 한 달간 9~10월이다.
겨울이면 파랗게 자라 눈 덮인 선운사의 또 다른 매력을 준단다.
꽃무릇이 많은 것은 꽃 성분이 나무에 좀을 슬지 못하게 한단다.
그리고 도솔산 절벽 중간에 도솔암, 마애불이 있는데
설움과 한으로 응어리진 민중들에게 현세구원사상으로
미륵불, 미륵신앙인 민중의 종교가 되었다한다.
그리고 마애불의 배꼽에는 서기가 뻗히고 배꼽안에 든 비첩에는
한양이 망하고 새로운 후천개벽 사상인 민중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단다.
나중에 용기를 내어 배꼽을 깨고 비책을 꺼내
관원들에게 고문을 받으면서도 감췄다고 한다.
지금은 마애불 전설로 퍼져있다.
다음 날 새벽 , 나는 절 주위를 둘러본다.
하늘은 파랗고
먼 산은 우아하고
대지는 꽃무릇으로 완전히 새빨갛고
연못엔 물고기 자맥질이 힘차다.
이슬이 발을 적신다.
밤새 울던 어린 찌르레기 울음소리가 적셔진 옷자락에 달렸다.
이 여행 중의 아침에 둘러보는 풍광이 진미가 될 것 같다.
고창에서는 자염도 유명하다. 자염은 작은 금, 소금인데 가격이 엄청 비싸
검단 선사가 지었다는 선운사도 절에 바친 이 소금으로 지었단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문화든 실생활 등 명실상부한 고장이다.
마지막으로 서정주 문학관이다.
문학관에서 이 시인 생의 흔적을 훑어본다.
탁월한 언어 감각과 전통소재,
토속적이고 동양적인 사상에 접근하여 시를 지은 시인이다.
시마다 우리 조상의 한,
슬픔이 녹아든 전설 그리고 고향의 풀잎 하나라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그러기에 일제강점기 때 친일의 글,
전두환 대통령 찬양의 글을 써 현재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도
이 시인의 시 한 편이라도 읽으면 이 시인을 미워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고창을 떠나면서 아쉬움이 많다.
이곳에서 한달쯤 머물며 이 고장의 유물과 유적을 샅샅이 훑어보고 싶다.
도솔산, 도솔암의 마애불 배꼽도 만져보고.
배꼽을 깨고 비책을 꺼낸 앞선 시대 정신,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동학란의 원동력의 숨결도 맡아보고
고창 주민과 만나 녹두꽃도 불러보고 싶다.
미륵불 신앙과 옛날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이 교묘하게 결합된
우리 민족의 종교⸴ 천도교의 향기도 맡고 싶다.
내 후기는 이것으로 끝낸다.
이 글은 하남 사무국장. 지역 해설사 인터넷 참고. 2023년 9월 30일 낭만 씀
첫댓글 선배님, 감사합니다~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더운 날씨에 잘 지내고 계시지요~?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9월 정모에서 뵙고 싶습니다~
9월 정모!
추석이 껴 있는데!
하여간 알았습니다. 건강하십시요,
고창에 숨은 역사를
배웁니다 역사탐방
잘 하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달님이랑님
이 정성을
글이 긴데 읽어주신는 것만도 감사한데 댓글까지.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낭만언니 잘계신지요? 글을읽다보니
선운사에 빨간빛 고운 꽃무릇~ 이번가을에는 꼭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드네요~~감사합니다
사랑해님
더위를 어찌 보냈나 안부도 물어볼 겸
사랑해님을 다시 한번 불러봅니다.
이 긴글을 읽어 주시다니
댓글까지 주시다니 감사해요.
낭만선배님께서 이 곳으로 이사오신 줄
진작에 알고 가끔씩 들러 글 읽었습니다
오늘은 용기내어 댓글 남깁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낭만선배님의 글은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