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눈] 디지털 이웃 / 김민수 신부
발행일2023-07-02 [제3350호, 23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2000년 전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던진 질문이다. 그가 생각한 이웃이란 동족에 국한되고 이방인은 배제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 개념을 확장하신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주의 프레임에 갇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마태 5,46)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웃사랑에서 벗어나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는 것’이다. 인종, 국경, 성 등의 경계를 넘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구에게나 이웃이 되어줄 때 진정한 사랑, 완전한 사랑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여러 형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쓸모없는 소모품으로 폐기처분되어야 할 쓰레기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하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쓰고 버리는 문화’와 ‘무관심의 문화’가 연민과 환대의 문화로 전환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가상공간에서는 어떠한가?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나의 이웃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고 있는가? 지난 5월 교황청 홍보부는 소셜 미디어를 사목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주님 사랑을 증거해야 하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문헌 ‘「충만한 현존을 위하여」 소셜 미디어 참여에 관한 사목적 성찰’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헌은 디지털 문화의 사목적 성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면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만큼 교황청과 보편교회가 ‘디지털 문화에 대한 사목적 접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신앙인들이 신앙을 실천하는데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슬기로운 신앙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삶의 방식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 지도자나 사목자 중에는 아직도 미디어를 수단이나 도구로 간주하거나 신앙생활에 해를 끼치는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여 아예 사용조차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스마트폰이나 소셜 미디어가 이미 문화로,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현실적인 만남으로 이끌어줄 ‘디지털 만남’이 되려면 디지털 대 현실 대면이라는 양자택일 논리를 극복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디지털 공간 안에서도 환대와 치유와 화해의 기회를 촉진하여 신앙이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질병, 상실, 슬픔의 시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있다. 예를 들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커뮤니티, 회원들 간에 사회적,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등의 돌봄 공동체 형태로 활동함으로써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디지털 이웃’의 역할을 이미 하고 있다.(「충만한 현존을 위하여」 59항 참조)
반면에 소셜 미디어는 온라인 플랫폼과 검색 엔진의 알고리즘을 통해 ‘같은’ 사람들을 한데 모아 그룹화하고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상동, 15항 참조) 또한 물리적 공간에서의 상호작용과는 현저하게 다르게, 익명성의 가면을 쓰고 행하는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발언이 확산되어 n번방 사건 같은 디지털 성폭력이나 탈진실 상황에 따른 가짜뉴스가 횡행하여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디지털 고속도로에서 강도를 만난 피해자에게 디지털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서 ‘디지털 디톡스’로써의 ‘침묵’과 ‘경청’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단순한 연결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며, 연대를 표현하고, 누군가의 고립감과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상동, 48항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은 ‘미시적인 인플루언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
서울 상봉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