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23
"아. 피춘자 시인님."
그가 누님이라고 불러도 좋으냐고 물었을 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정 작곡가님. 지금 바쁘세요?"
"아니요. 이제 막 일어나 커피 한잔 만들어 마시고 있습니다. 무슨 일 있는 것은 아니지요?"
"무슨 일이 있어요. 어떡하실래요?"
"무슨 일입니까? 제가 달려가야지요. 무슨 일인데요?"
"어휴- 무조건 달려온다는 말은 하지 않고... 무슨 일 있는 것은 아니에요. 시집을 출간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갑자기 닥친 일이라서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이에요. 정 작곡가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인터벌이 좀 길었다. 춘자는 참고 기다렸다.
"피 선생님!"
"예. 잠깐. 웬 선생님이래 유~"
"아하하하~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겁니다. 오직 피춘자 시인님에게 만요."
"흠- 기분도 잘 맞춰주시네요. 어서 말해봐요. 심각하단 말이에요."
"저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이제는 좀 과감해져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여서 출간하길 권합니다."
"어휴- 출간할 시도 읽어보지 않고서..."
"읽어보지 않아도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사랑시 아닙니까? 피춘자 시인님이 하고 있는 그 뭐야. 영혼사랑인가 다이아몬드사랑인가 그것 아니겠어요?"
"맞아요. '다이아몬드사랑' 누구든 상대가 될 수 있지만 이 지구상에서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하여 쓴 시들이에요."
"와우~ 맛지네요."
"엥? 맛지다요?"
정지훈이 크게 웃었다.
"맛지다는 것은 실제로 입에 들어가서 씹으며 음미하는 만족스러운 음식의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를 맛지다 합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먹어봐야 안다는 의미이고 피춘자 님의 시는 먹기도 전에 맛이 있다는 의미이지요."
"햐~ 이런 엉터리."
"엉터리 아닙니다. 전에 노랫말 선정할 때 사랑시를 좀 읽었잖아요. 그때 그 맛을 다 느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읽어주어도 맛있어서 땀 흘리며 먹는 시 들. 그 이상 멋진 표현이 어디 있겠어요. 하여튼 저는 찬성입니다. 어떤 과정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무관심한 시집은 아닐 것임을 보증합니다."
“정 작곡가님. 정말 고마워요. 지금 그 말씀이 제에게 큰 힘이 되었음을 아시나요? 이제 시집 출간을 결정했어요.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갖다 드릴게요. 고마워요.”
춘자는 정 작곡자와의 대화가 실은 큰 힘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만으로 힘이 되었다. 아마도 알렉스에게 물었어도 그런 유의 긍정적인 힘이 되었을 것이다. 춘자는 머리를 흔들었다. 갑자기 왜 알렉스야. 춘자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녀는 이메일 보내기를 눌렀다. 좌르륵하는 소리가 들리듯 화면은 이메일이 전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춘자가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제 춘자는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창가로 눈을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만 하늘에 가득하였다. 눈이라도 올 건가 보다 생각하며 외출 준비를 마져하였다.
나준석 피디는 7층 작업장의 창가에 앉아 얼어붙은 강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특집에 대한 씨나리오가 펼쳤다 접혔다 하였다. 그때 띵 하는 전자음이 울렸다. 그의 휴대폰에서였다. 피춘자 시인이 보낸 원고였다. 그는 얼른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잠시 후 나 피디는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끼고 일어나 창가에 섰다. 시와 사진들은 너무 좋았다. 그러나 너무 감동적이기에 독자들에게는 어떤 반향을 일으킬까 그게 두려웠다. 제목과 표지 그리고 시들은 잘 편집되어 있었다. 그대로 인쇄해도 될 정도였다. 나 피디는 휴대폰의 키 패드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저 나준석입니다. 글로벌 문예출판사 조미애 사장님이시지요?”
맑은 중년 여성의 음성이었다.
“아. 나 피디님. 웬일이세요? 년 말에 좋은 소식이라도 주시려나요?”
"좋은 소식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조 사장님. 가장 빠른 날 안에 시집 한 권을 출간하여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갑자기 웬 시집? 내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시집이라면 빠르면 이틀 안에도 가능해요. 왜요? 나 피디 시집 내려고?"
"아. 그러면 됐습니다. 교정도 특별히 요구하지 않고요, 표지 디자인도 인물로 하면 될 것이고... 조 사장님. 혹시 여류시인 피춘자라고 들어 봤습니까?"
"왜? 조 피디하고 무슨 관계예요? 그 사람 시집을 내려고?"
"예. 아직 제목은 정하지 않았지만, 곧 원고를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연말 특집 전에 출간한다면 효과는 극대화될 것입니다."
"연말 특집에 출연하나요?"
"예. 상세하게는 다 할 수 없지만, 책만 보기 좋게 만들어진다면 사장님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도 그 시집을 독자들에게 알릴 방법을 다 찾아 실행할 것입니다."
"좋아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피디가 그렇게 하자고 하면 을은 따라야겠지요."
"아아~ 아닙니다. 이것은 갑을 관계가 아니고 공생관계입니다. 누가 알아요? 곧 조 사장님이 갑이 될지. 하여튼 승낙하신 걸로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어떤?”
“조 피디하고 피춘자 시인이 무슨 관계인지 물었잖아요? 대답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 예. 저와는 아무런 인척 관계도 아닙니다. 다만, 저와 조수연 기자는 피춘자 시인을 스리랑카 여행 중에 만났어요. 잠깐이었지만,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봉사활동도 하시고 있습니다. 사랑시를 쓰시는 유일한 여류시인이어서 특집을 만들어 방송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시집을 출간하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이 기회에 시집을 출간하여 효과를 배가하려 합니다. 그게 다 입니다.”
“예. 고마워요. 근데, 왜 저에게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죠? 하여튼 의도를 알았으니 차질 없도록 하여야 저에게도 다음 기회를 줄 수 있겠지요. 이 점 기억하세요. 나 피디님.”
“예. 알겠습니다.”
나준석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좀 집요하게 묻는 것이 좋지 않은 예감으로 남았다. 질투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진동을 휴대폰으로부터 받았다. 피춘자 시인이었다. 시집의 제목은 “가슴속에 흐르는 사랑의 강" 이었다. 나준석은 그 제목을 입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있었다. 그가 이해해야 할 사랑인 것이다. 그도 조수연과 강물 같은 사랑을 시작하였으며 사랑이 가슴속에 도도히 강같이 흐르고 있으니까. 제목이 가슴까지 와닿았다. 그는 이미 몇 번의 편집에 대한 경험을 했었다. 지방 방송국이지만 피디라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잖는가. 나준석도 구석 곳곳을 닦고 정리하는 방송에 대한 사소한 것까지 다 경험한 후였다. 우선 5000부를 찍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인터넷 판매망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알렉스 작가가 말한 것을 잊지 않았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알려지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그렇다. 제품의 질이 좋은지 용도가 무엇인지 내구성이 좋은지 감동적인 지속성은 어느 정도인지 독자가 알아야 짐작이라도 할 수 있어야 사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물론 조미애 사장도 서적 판매 경험이 충분하고 현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다각적으로 잘 검토하고 잘 만들겠지만 광고는 그가 더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춘자 시인은 시집 출간을 위한 원고와 표지 사진 그리고 제목까지 보냈지만 개운치 않은 것이 있었다. 아마도 돈이 필요할 텐데 얼마를 언제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알렉스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전화는 더구나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바보는 이렇게 춘자가 필요할 때는 연락할 수가 없단 말이야. 뭐 이런 바보가 다 있을까' 원망하다 곧 생각해 내었다. '그래. 이메일! 그가 빨리 보고 회신해 주길 바라자. 내가 3번 간절히 바라면 그가 답할 것이다. 그는 꼭 필요할 때 3번 기원하라고 했지. 그 생각을 하자 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두었다. 간단히 물었다. “알렉스. 급해요. 전화해 줘요. 도와줘요. 춘자, 어려움에 처해 있어요. 도와줘요. 나준석 피디가 저의 시집을 출간하기로 하였어요. 제목은 ‘가슴속에 흐르는 강’이에요. 돈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데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요. 빨리 도와줘요!!!”
**************
알렉스는 보스턴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바위 낚시를 하고 있었다. 년 말이어서 추웠지만 딸을 만나러 와서 며칠 머물 때면 하던 버릇이었다. 딸 선희가 출근하고 나면 낚시도구가 든 가방을 메고 일단 집을 나선다. 대부분 바닷가 바위에 방점을 찍지만, 때로는 바다가 보이는 커피점에서 오전을 보낼 때도 있다. 영혼만 자유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는 목적지도 자유스러웠다.
보스톤에 오기 며칠 전 그는 콜롬보에서 조수연 기자를 만났다. 갑자기 찾아온 조 기자와 이틀을 인터뷰하면서 보냈다. 주로 피춘자 시인에 대한 평과 느낌들을 물었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중 95%는 커트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편집이라는 것은 그렇다. 단 하나를 위하여 99를 버릴 때도 있으니까. 조 기자는 그동안 피춘자 시인의 시집 출간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다. 연말 특집 중 여류시인 피춘자의 사랑시 편을 만든다 하여 피춘자 시인의 사랑시와 그녀에 대하여 묻는 대로 대답해 주었을 뿐이다. 조 기자가 떠나고 그도 콜롬보를 떠나 보스톤으로 오면서 생각을 했다. 너무 빨리 높이 뜨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허긴 지금은 밀어주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면 특별하게 튀는 것이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도 하였다. 그가 작은 도움이라도 될 일이 있기를 바랐다.
“아빠. 갯바위는 미끄러우니 특히 조심하셔야 돼요.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나쁘다 생각되면 바로 돌아오셔요. 아셨죠?”
그날은 기대는 하지 않지만 제대로 낚시채비를 다 챙겼다. 선희의 걱정스러운 주의사항을 가슴에 담고 신발부터 바닥이 미끄럼 방지가 된 부츠와 장갑과 스키점퍼를 입고 후드를 썼다. 낚시터는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서 1킬로 정도 거리였다. 겨울에는 얏트들이 데크에 들어가고 드문드문 보이는 바다에 떠있는 얏트들은 겨울 스릴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좌측 옆으로 길게 바다로 들어간 바위 방파제가 그의 낚시터였다. 그가 도착했을 때 이미 서너 명의 낚시광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바다 내음은 고향에서나 이곳에서나 같이 비릿하다는 것을 느낀 알렉스는 심호흡을 하며 그 비릿한 바다 내음을 피부 깊이 들이마셨다. 그가 자리를 잡고 막 낚시 채가 든 가방을 내려놓는데 휴대폰에서 전자음이 들렸다. 이것은 전화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휴대폰을 속주머니에서 꺼냈다. 이메일이었다. 한국의 피춘자 시인으로부터였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그리워 일상을 다 흐트러져 버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이 낚시도 그런 그리움을 바닷속에 던져버리고 싶어서 나선 것이다.
그런 그의 생각과는 달리 메일은 간단하였다. '알렉스. 급해요. 전화해 줘요. 도와줘요.' 다였다. 그는 그다음 줄을 읽지도 않았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사랑한다거나 아니 그것보다 약한 보고 싶다거나 그립다거나 그런 말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벌써 가슴이 설레었다. 전화를 해야 한다는 그 결정 하나로 그의 마음은 바뻣다.
"헤이! 알렉스. 왜 돌아가는 거야? 무슨 일 있어?"
마음 좋은 매튜였다. 벌써 낚시대를 잡고 바다를 노려보다 말고 낚시채비를 다시 걷어 가방에 넣고 있는 알렉스를 보고 실망한 듯 외쳤다.
Female poet (Female poet) Pi Chun-ja (疲春雌) - 23
첫댓글 여류시인 피춘자
좋은 소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함께 해주시는 서길순 님, 감사합니다.
오늘 토요일 밤도 건강하시고 평안한 밤 잠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