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골에 있는 고향을 다녀왔다.
오촌 당숙모께서 별세하셨다는 부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연세가 아흔 아홉이신데 없는 집에 시집오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이야길 전해 들었다.
아흔아홉을 보통 백수라고 한다. 말하자면 소위 마에가리다.
나는 해군에 있을 때 APD를 탔다.
APD는 구축함의 일종으로 유사시 해병대를 태워 적진으로 상륙시키는 상륙함이다.
출동나갈 때 해병대부대를 태웠는데 소대장이 중위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알고보니 실제 계급은 소위였는데 해군 함정에 가면 소위는 장교중에서는 제일 낮은 계급이므로
쪽팔린다고 가불해서 달고 왔던 것이다.
해군 구축함 함정에서는 장교가 근 이십여 명 되고 소위가 몇명이나 되어 걸리는 게 소위였다.
그 만큼 소위가 여럿되어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해병대 소대장은 그 부대내에서는 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번이 세숫대야에 세숫물까지 받아서
갖다 바쳤다. 함정에서는 청수를 아껴서 사용하므로 물공급시간을 제한하여 물이 귀한데 어떤 수를 썼던지 물을 구해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병대 대원들이 함정을 떠날 때는 배에 있는 물건들을 훔쳐갔다. 소화용 노즐은 말할 것도 없고
놋쇠로 된 탱크 사운딩홀 마개까지 빼어가서 팔아먹는 판이었다.
당숙모께서도 너덧달만 더 살아계신다면 백세를 채우실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백세를 채우시지 못하셨다.
우리가 건배사를 할 때 흔히 '9988 234'라고 한다.
아흔아홉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은 후 죽자는 의미라고 한다.
"을 때는 고통없이 담방에 죽는 게 낫지 뭣 때문에 이틀이나 사흘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는 말인고?"더니
그러면 자식들이 좀 서운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99와 100은 숫자상으로는 근소한 차이지만
알고보면 차원이 다르다.
일단 두 자리 숫자와 세 자리 숫자로 단위가 달라진다.
그리고 물은 대기압하에서 100도C가 되어야 끓지 99도에선 끓지 않는다.
1도C라는 미세한 차이지만 물은 그 작은 차이에 따라 태가 바뀐다. 0도C도 마찬가지다.
같은 0도C라도 물과 얼음이 있고 같은 100도C라도 물과 수증기가 있다. 같은 온도에서도 변태가 되려면 보이지 않는 잠열이 더 필요한 것이다. 융해열과 기화열이 그것이다.
예전 민초들의 집은 초가 삼칸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떵떵거리던 사대부99칸이나 됐다. 돈이 없어 100칸을 채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금성도 999칸이라고 들었다. 그러고 보면 100은 목표이고 완성을 의미하며 99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라 볼 수있다.
이 세상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듯이 그것은 단지 목표이지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백세시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99세가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화룡점정'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마지막 '신의 한 수'에 의해 종이 위에 그려 놓은 룡이 살아서 승천했다는 말이다.
어떤 일의 중요한 뒤끝 마무리를 잘 함르호써 일을 완성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물이 증기가 되기 위해서나 '신의 한 수'가 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에너지(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