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전설 재키로빈슨의 감동실화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한 재키 로빈슨이 팀 감독 브랜치 리키의 지도아래 자신만의 야구 역사를 쓴다. 메이저리그에서 인종차별을 딛고 자신의 등 번호 42번을 영구 결번으로 남긴 야구전설 재키 로빈슨의 인생을 담은 이야기
재키 로빈슨.. 메이저리그 전 구단의 유일한 영구결번 42번의 주인공..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 당시에는 영화를 잠깐 봤도 엄청 심했을 것이라는 걸 느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인들만의 야구경기에 처음으로 흑인선수를 영입한 단장 브랜치 리키..
나중에야 자신이 그렇게까지 재키 로빈슨을 위해 힘썼던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 전까지는 그의 무모한 도전이 좀 의아했다.
재키 로빈슨이라는 선수를 통해 기존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자 했던 브랜치 리키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이끈 용감하고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장면들이 꽤 많이 있었다.
눈 앞에서 예약한 비행기를 취소하고 다른 백인들이 로빈슨 부부의 자리에 탑승하는 장면,
브루클린 다저스 같은 팀원들이 로빈슨과 함께 뛰기 싫다면서 진정서를 제출하는 장면,
경기장에서의 필라델피아 감독의 무차별 폭언 이후 혼자 지하에서 폭발하는 장면..
이런 상황들을 이겨내고 본인의 실력과 참아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 덕분에 팀원들의 인정과 함께 나중에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메이저리그 유일한 전구단 영구결번, 영화 42(재키 로빈슨)|작성자 여니여리v
천상계 야구실력으로 인종차별을 극복해버린 MLB 유일한 전구단 영구결번 선수 l 42번 재키로빈슨 이야기
https://youtu.be/a_F0KLgu1gI
1947년 4월 15일은 유색인종을 찾기 어려웠던 메이저리그에 흑인 재키 로빈슨이 최초로 등장한 날이다. 메이저리그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4월 15일에는 재키로빈슨의 영구결번인 42번을 모든 선수, 코칭스텝프 그리고 심판까지 달고 경기를 한다. 경기에 출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같은 등번호를 달게 된 유래는 알고 보면 조금 어이가 없는 일화에서 시작되었다. 온갖 인종차별로 심한 욕설과 협박에 시달리던 재키 로빈슨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야! 42번. 너 내일 경기에 또 나오면 총으로 쏴 죽여 버리겠다.'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걱정을 당시 팀 동료에게 했더니 이를 들은 팀 동료가 '그래? 그럼 내일 경기에는 못 알아보게 우리 모두 42번을 입으면 되겠네.'라며 농담으로 재키 로빈슨을 격려한 것에서 착안하여 이런 행사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4월15일 경기에서는 모든 선수, 모든 코칭스태프, 모든 심판이 42번을 달고 뛴다.
재키 로빈슨은 1919년에 태어나서 1972년까지 살았던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이다.
그는 야구선수가 되기 전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참전한 군인이었다. 당시의 미국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인종 차별이 심했던 시기로 국가를 위해 참전한 군인에게도 인종 차별은 예외이지 않았다. 제키 로빈슨은 이런 인종 차별에 맞서 저항했고 그런 이유로 군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야구 선수로 직업을 바꾸게 되었다. 인종 차별이 없었다면 우리는 야구 선수 재키 로빈슨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려서 부터 탁월한 운동 능력을 보여준 소위 운동 천재 재키 로빈슨이지만 야구 선수가 되어 바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45년에는 흑인들끼리만 야구를 하는 리그인 니그로리그에서 뛰었고 1946년에는 지금의 마이너리그 격인 인터내셔널리그에서 뛰었다.
메이저리그로 데뷔는 재키 로빈슨이 너무 뛰어난 능력을 보여서 스카우터들이 모셔간 것만은 아니었다. LA 다저스가 자신의 연고지역에 아시아계가 많은 점에서 착안하여 아시아권 야구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스카웃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 흑인선수를 데뷔시키고 싶어했고 그 대상으로 뽑힌 것이 재키 로빈슨이었다.
1947년 그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을 때는 관중도, 동료선수도, 상대편 선수도, 심지어 심판까지도 그를 혐오했다. 요즘처럼 동양인 비하를 뜻하는 '손으로 눈 찢기' 정도는 애교로 보일 정도 였을 것이다. 상대편 투수는 그가 타석에서면 빠른 공으로 그를 맞추기에 바빴고, 루상에 나가서는 상대편 선수에게 두들겨 맞기에 시달렸다. 심지어 수비하는 척하며 발목을 밟기도 수차례였다고 하니 당시에 상황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이런 탄압에 가까운 인종 차별에도 불구하고 그의 메이저리그 성적은 엄청나다. 당뇨가 발병하면서 기량이 급격히 떨어진 은퇴 전 2년을 제외하고 그의 가장 낮은 타율은 2할9푼6리였다. 나머지는 3할4푼대에서 3할 2푼대이니 정말 엄청난 타격 머신이었다. 호타준족이라는 것을 입증하듯이 홈런과 도루는 거의 매해 두자리수 였다. 그의 엄청난 메이저리그 기록에 비해 그가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뛴 시간은 9년으로 매우 짧다. 참전 후 뒤늦게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가 메이저리그 데뷔 했을 때는 이미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거기에 35살에는 당뇨가 찾아와 기량이 급격히 떨어지며 은퇴할 수 밖에는 없었으니 신이 그의 천재성을 시기한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짧은 메이저리그 경력이지만 그는 20년 가까이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2루수 크렉 비지오나 로베르트 알로마보다도 뛰어난 통산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42번은 재키로빈슨의 등번호다.
그의 등번호 42번이 영구 결번이 된 것은 그가 데뷔했던 1947년 4월 15일로부터 정확히 50년이 지난 1997년 4월 15일 LA 다저스와 뉴욕 메츠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영구 결번 지정 당시인 1997년 이전에 42번을 등번호로 사용하고 있는 현역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는 예외로 계속 42번을 등번호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가 바로 42번이었다. 양키스의 위대한 전설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가 2013년 은퇴 후에야 비로소 전구단 영구 결번이 완성되었다.
재키 로빈슨은 야구 외적인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야구를 엄청 잘했다.
미국은 이런 인물에 대한 예우와 기념을 참 잘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할 때 너무 엄숙하지 않아서 좋다. 물론 예우와 기념 이면에는 번뜩이는 상업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미국이 멋있게 보인다.
우리나라의 프로야구에서도 재키 로빈슨에 필적하는 위대한 선수들이 많이 나오기를, 그리고 그들을 기념할 수 있는 멋진 행사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해 본다.
<출처 : 남선생의 야구리뷰 블로그>
[크리스천이 꼭 봐야 할 영화] 메이저리그 유일한 전 구단 영구 결번 42 그 위대한 의미
https://youtu.be/SL-uondrS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