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좋은 아침] 지복(至福)
나는 가끔 부끄러워 구석진 바위에 머리를 박고 싶을 때가 있다 대개는 애매함에서 오는 것이다 흐리고 느린 마음은 두꺼비집 같아서 스스로 무너진다 그리하여 사람이 많은 가운데서도 구석을 좋아한다 먼지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다가 달을 본다거나 바람을 만진다거나 하는 것이다 달이나 바람이나 꽃은 스스로 골똘하나 그들은 낙낙하게 앉아 고개를 조금 끄덕이며 듣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비 오는 날에도 꽃에 물을 주고 싶고 풀을 뽑고 싶고 매일 내 잡초를 뽑기 위해 일기를 쓴다 그러다가 이 풀도 어여쁘다 이것이 꽃일지도 모르지 나를 향해 귀 기울이는 빛과 함께 가만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나는 내 정원에 오랜 장마에도 무너지지 않을 부끄러운 바위를 세우고 풀 비스무레한 것을 심기로 한다
―지연(1971∼ )
어렵고 불편한 일인데 그 일 앞에서 자신을 기꺼이 지불하며 “다 제 지복입니다” 하고 말하는 이를 본 적이 있다.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일 앞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는 사람. 그건 어떤 경지일까?
화자는 시작부터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부끄러움은 “애매함”에서 온다며 “흐리고 느린 마음”을 이끌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일이란 “비 오는 날에도 꽃에 물을 주고 싶고 풀을 뽑고 싶고 매일 내 잡초를 뽑기 위해 일기를” 쓰는 일이다. 행여 꽃일지도 모른다며 “풀 비스무레한 것을 심기로” 결심하는 일이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지복이라 명명한다. 지복(至福), 더할 수 없는 행복이란 뜻이다.
이 시는 어쩐지 윤동주의 서시와 겹쳐 보인다. 먼 옛날 윤동주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며 참회했다면, 지금 이곳에서 지연 시인은 “부끄러운 바위”를 세우고 혼자만의 정원에서 풀을 심는다. 꽃은 아니지만 어쩌면 꽃이 될지도 모를, 한 포기 풀을 심는 일! 끝내 더럽혀지지 않을 참회의 언덕에서 울리는 시인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콩대를 태운 밤
부석작에서 콩대가 콩닥거리며 이 방을 데웠을 거라 생각하면 재와 연기가 새벽이 올 때까지 방을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콩 속에 맺힌 영혼이 텅 빈 몸을 기웃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데워진다 빈 깍지같이 살다 간 영혼들이 빈 깍지 같은 나를 오래 데우다가 긴 굴뚝으로 천천히 새어 나가고 또 나처럼 서툰 이가 있어 바닥을 떠돌며 마지막 온기로 나를 받든다고 생각하면 반복한 말을 잃어버린 누군가 구들장 아래 있다고 생각하면 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몇백년 전 먼 혈육이 식은 심장을 타닥거리며 나에게 무슨 말인가 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예연구》 2026 봄호 · 지연(1971∼)
지연 시인의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을 읽으며 작가가 어떤 시간과 공간을 가졌는지 그 안에 품긴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시는 작가 내부에서 태어난다는 믿음이 상식이겠지만, 시는 공간에서 태어나고 시간에서 태어난다. 사람에게서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공간과 시간이 비추는 거울이거나 관통하는 여과지다. 시는 거울에 비추어진 것들과 여과지에 남은 것들이 만들어낸 조합들에서 떼어낸 일부이다.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각 시인의 시가 다른 것은 비추는 각도가 다르고 여과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두 개의 공간을 본질적으로 지닌다. 문화적 유전자를 형성하고 정신적 근골의 기초를 다지는 ‘고향’이 첫 번째 공간이고 고향을 떠나 본격적으로 사회적 생활을 이어가는 공간이 두 번째 공간이다. 인간의 삶은 이주의 국면과 자주 맞닥뜨리기 때문에, 두 번째 공간은 첫 번째 공간과 같을 수도 있고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분화할 수도 있다.
당연히 시는 한 공간에만 머물며 이야기를 토해낼 수도 있고 두 공간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토해낼 수도 있다. 지연 시인의 시들을 두 공간을 자주 오가며 지은 이야기들로 읽어도 될 것 같다.
개념적 문화가 아니라 체험적 문화의 세계에서는 언어의 상부구조가 가지 끝이 아니라 뿌리를 형성한다. 뿌리는 ‘몸의 말’이고, 공간에서 태어난다. 물론 시간도 개입되어 있다. 첫 번째 공간에서 만들어진 ‘몸의 말’에 두 번째 공간들을 전전하며 생겨난 ‘생각의 말’이 버무려진다. 시간이 그 일을 만든다.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의 시가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천세진 시인·비평가)
✵지연(1971∼) 시인은 전북 임실 출생. 2013년 《시산맥》, 2016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건너와 빈칸으로』『내일은 어떻게 생겼을까』『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25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집발간지원사업 수혜. 시산맥신인문학상, 구지가문학상, 시흥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동아일보 2026년 05월 30일(토),〈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시인)〉》,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