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를 걷다>를 읽어 본 지인들이 하는 말이
'색즉시공'은 알지만 '수즉시공'은 모르는 이 시대에..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몇 개의 한자어를 이 책에서는 과하다 싶을 만큼 사용하니 책 읽는 리듬이 깨지고..
그러다 보니 혼란과 함께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6근6경과 2법6쌍인 12처가 대표적인데..
둘을 같은 의미로 여기는 불교 학자나 승려들은
6근은 눈, 귀, 코, 혀, 몸, 의식(마음)과 같은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며,
6경은 각각의 육근이 인식하는 대상인 색(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생각)이라 하고..
특히 6근인 6처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 하여 고등교육을 받았으면 그래도 덜 부담을 느끼는 현대적 언어로 설명한다.
그러나 <손바닥 위를 걷다>에서는 6근과 6처를 분명히 구별하기 바라기에
6근을 감각기관이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6처는 감각기관이라 할 수 없다 보니..
6처 가운데 하나인 안처를 마음에 생긴 보는 능력이요, 색처는 마음에 생긴 보이는 능력이라 하다보면..
말이 일단 너무 길어져 무엇을 말하려는 지.. 오히려 더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가 초등학교 다니면서 처음 낱말을 배울 때 외웠듯이..
2법6쌍이란 단어와 안과 색등 12처를 입에 익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의도로
12처, 6근6경, 5온, 18계, 12연기, 4성제 등 낱말을 그냥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독자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12처 등 언어는 불교 안에서만 사용하는 언어로 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
역으로 우리가 저 단어 뜻을 알고 일상에서 사용한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밝고 맑은 사회가 되리라.. 틀림없이.
그러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그걸 거부하는 것처럼.. 위의 불교 언어들은 잊어버린 죽어버린 언어가 되었다.
더군다나 불교의 핵심이 '지금여기나'라 하여 생생한 지금 여기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제는 거의 죽은 것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부활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나서서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는 단어로 바꾸어야만 한다.
단어나 문장을 보면서 지금 여기라는 긴장감이나 현실감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야만 한다.
'안과 색이 만나면 안식[기억]이 일어나, 그 셋이 접촉하여 새로운 식이 생긴다.'
이 문장을 현대적 언어로 설명하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만나면 과거 경험인 안식이 일어나, 그 셋이 접촉하여 세로운 안식이 생긴다'
정도가 되는데.. 그 후 문제는 보는 자와 보이는 것과 보아서 생긴 식인 안식이란 긴 설명의 말을 반복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여 여기서는 일단 한자어인 안, 색, 안식을 그냥 사용했다.
독자의 노력을 기대하면서..
책이란 저자와 독자가 만나 이해하는 것이지.. 저자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하는 정보가 아니라는 눈으로.^^.
참고로 한자는 100년 전 까지 우리 선배님들인 일상에서 사용하던 언어요, 단어가 아닌가..
그들과 내가 선후배로 엮이려면 공통된 언어가 최고 수단이 아닌지..
하여 과유..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하지만 이 책을 이해하는 핵심어인 몇 개의 낱말은 한자어를 과감히 그냥 사용했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없는 미래는 없다.
과거 현재 미래는 셋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인 마음으로 연결된다.
"안과 색과 안식, 이 세 가지 접촉으로 느낌, 생각, 의도가 일어나고 새로운 안식이 생긴다.
이때 안과 색과 안식은 모두 마음을 연해 생긴 것이다.
이비설신의도 그와 같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