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한 칸의 석실. 그곳은 하나의 도박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각종 도박기구와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만지화(萬智花)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역시 미인이었다. 일신에는 흑의(黑衣)를 입고 있었는데 눈매가 약간 올라가고 머리에는 금차(金叉)를 꽂고 있었다. 매력이 있는 여인이었다. "호호호...! 천공자, 이곳까지 오실 줄 알았어요. 소녀는 만지화예요."천우는 빙긋 웃었다. "이제야 반가운 아가씨를 만났군. 낭자는 대체 몇 가지 도박종류를 알고 있소?"그는 단도직업적으로 물었다. 만지화의 입가에 흘리는 듯한 미소가 어렸다. "모두 천 팔백 육십 오 종이예요. 공자께서는요?" "꼭 세 가지가 빠졌군. 아가씨는 물론 도왕(賭王)의 진전을 이어 받았겠구료?"만지화의 얼굴에 미세한 파문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도왕을... 알고 있나요?" "후후... 도왕 만세복(萬世福)은 팔십년 전 무림에서 사라졌소. 헌데 그가 은퇴한 이유를 안다면 아마 낭자는 믿지 않을 거요.""......?" 천우는 장난기가 잔뜩 섞인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평생 일만 번의 도박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던 그가 한 사람에게 물러났다면 믿겠소?""그럴 리가......!" 만지화는 반신반의했다. 천우는 히죽 웃었다. "낭자는 도왕 못지 않게 도박에 미쳐 있던 과거의 괴인(怪人)을 알고 있소?"만지화는 눈을 사르르 굴렸다. 이어 배시시 웃더니 물었다. "광도(狂賭) 주사광(朱査廣)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천우는 손뼉을 딱 쳤다. "훌륭하군. 낭자는 견문에도 능통하구료?" 만지화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주사광을 모른다면 도도(賭道)를 안다고 할 수 없죠. 원래 왕족이었던 그가 왕가에서 제명되었던 이유도 너무나 도박에 미쳐 국고를 축냈기 때문이었고 그는 심지어 도박으로 아내와 딸마저도 날렸지요."만지화는 생각 할수록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 입술을 놀렸다. "그는 매사에 밥 먹기보다 도박을 좋아했어요.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도박을 하자고 졸랐고 심지어는 세 살 먹은 어린애와도 도박을 했으며 나중에는 짐승들과도 도박내기를 했죠."그녀의 얼굴에는 홍조가 떠올랐다. "그는 도박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죠. 허나 그는 운이 나빴을 뿐만 아니라 지독하게도 머리가 나빴어요. 그는 평생 십만 번의 도박을 했는데도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으니까요."천우는 히죽 웃었다. "정확히 맞추었소. 허나 낭자가 모르는 것이 있소." "......?" 만지화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그는 운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또 머리가 나쁜 사람도 아니었소. 그가 도박에 진 것도 사실이나 그것은 그가 일부러 져 주었기 때문이오.""그... 그럴 리가......!" 만지화의 얼굴에는 경악의 표정이 떠올랐다. "사실이오. 실상 평생에 걸쳐 그가 정말 패한 도박은 단 세 번 뿐이었소.""......?" 만지화는 이번에는 천우의 얘기에 끌려들어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 세 번의 도박은 모두 도왕에게 당한 것이었소." "아......!" 만지화는 처음 듣는 말에 탄성을 발했다. 그녀의 치아가 유난히 희고 가지런한 것을 천우는 보았다. "그는 왕족 시절 도박을 좋아하여 늘상 도박판에 끼어 들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땄었소."천우의 얘기에는 일종의 최면술과 같은 마력이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 그는 광도라는 별호가 붙지 않았으므로 그 도박은 그의 전력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었소.""......!" "헌데 결정으로 그의 인생에 파멸을 초래한 것은 바로 도왕 만세복과의 만남이었소. 그는 운 나쁘게도 도왕과 마주쳤고 그의 정체를 모른 채로 그와 도박을 했소. 그 결과로......."만지화의 얼굴에 문득 깨달음이 떠올랐다. "전 재산을 날렸군요?" "바로 맞추었소. 그는 통렬한 패배를 당해 왕족의 위신을 실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왕가에서 제명되기까지 했소.""그랬었... 군요." "후후... 허나 그의 불행은 거기에서 끝난 것은 아니오. 그는 그때부터 복수심에 불타 도박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 버렸소. 그는 어떻게든 도왕에게 이겨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고 했소.""......." "그 결과는 더욱 비참한 것이었소. 그는 다시 도왕에게 도전을 했고 두 번째 도박으로 이번에는 아내를 잃은 것이오.""아......!" 만지화의 얼굴이 변했다. "도박의 법은 냉혹했소. 도왕은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를 짓밟았고 그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소.""그런 일이......!" 만지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도박의 세계는 냉혹비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사광은 피눈물을 흘렸고 그때부터 도박에 미쳐 버렸소. 그는 도박이란 도박은 모두 섭렵하였소. 그리고 일 년 후... 다시 도왕에게 도전했소. 그때 걸은 것이 무엇인지 알겠소?"순간 만지화는 안색이 변했다. "딸을 걸었군요?" "그렇소. 딸밖에 그는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오. 결과는 똑같았소. 그는 패했고 또 다시 그의 딸은 그가 보는 앞에서 도왕에게 능욕당한 것이오.""......!" 만지화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천우는 그녀의 성품이 교활한 가운데에도 아직 순정한 일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이후 주사광은 광도가 되었고 평생 동안 도박에 미쳐 버렸소. 허나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도왕을 꺾어 복수하는 것이었소. 그래서 그는 도왕보다 열 배나 많은 삼만 번의 도박을 했소. 그때마다 그는 패했는데 그것은 그가 일부러 져 준 것이오. 그 이유는 진정한 도박의 수를 찾기 위한 것이었소. 그는 일부러 패했으며 그때마다 자신의 패한 원인을 분석했던 것이오."만지화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자신을 감지하고 있었다. 낯선 남자에게 이렇게 쉽게 매료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 천우는 그런 만지화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예의 그 유들유들한 웃음을 흘리며 계속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후후... 결국 그는 도신(賭神)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소. 그리고 마침내 도왕과 최후의 도박을 벌이게 되었소. 그 결과 그는 통쾌하게 이겼소. 마침내 그는 복수한 것이오."만지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숨겨진 비사로군요." "훗훗... 주사광은 이긴 후 도왕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 아시오?""......?" "그는 너그러운 인물이었소. 그는 단지 한 가지 약속을 받아내었소. 그 약속은 도왕으로 하여금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였소."순간 만지화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무... 무서운 벌이군요?" "후후... 그렇소. 도박사에게 도박을 끊는다는 것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는 일이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도왕은 비관하여 자살하고 말았소."그녀는 천우를 바라 보았다. 대화를 하는 동안 그녀는 줄곧 눈앞의 청년의 매력에 끌려 들고 말았다. 천우는 몹시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뜻 보면 비록 미남아였으나 그다지 확연하게 눈길을 끄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와 몇 마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새 상대방은 그의 보이지 않는 마법(魔法)의 그물에 갇혀 버리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만지화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내심 자신에게 경고했다. '도박의 최대 비결은 냉정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그러나 천우는 그녀의 마음을 환히 읽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낭자는 매우 아름답소. 아마 사내라면 낭자를 얻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할 것이오.""만일 낭자를 얻기 위한 도박이라면 세상 남자들은 모두 도박꾼이 될 것이오. 후훗... 광도 주사광이 그 전에 낭자를 만났다면 그는 결코 도신(賭神)이 될 수 없었을 것이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졌을 테니까 말이오.......""사실 삶은 그 자체가 도박이랄 수 있소.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는 것 자체가 이미 도박이 아니겠소? 그 중에서도 인간은 삶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곧 사랑에 대한 것이오.""주사광은 아내와 딸을 사랑했지만 그 비중은 도박 그 자체보다는 크지 못했소. 반면 도왕 만세복은 그와는 정반대였소. 그는 도박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았소. 그로 인해 결국 그는 말년에 주사광에게 패한 것이오. 그의 마음은 한 여인에게 빠져 있었소. 그 여인은 바로 주사광의 딸이었소."만지화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천우가 풀어 놓는 도광의 숨겨진 비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 속에 어느새 천우라는 한 남자가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주사광의 딸을 그는 아내로 맞이 했는데 실상 그녀는 충격으로 인해 돌아버린 상태였으나 그는 평생 동안 그녀 주위에서 떠나지 않았소. 주사광에게 패한 후 그는 일시적으로 도박에서 해방되었소. 그러나 그 후 그의 아내가 죽었으므로 그의 마음은 도박으로 다시 돌아왔고 도박을 하지 못하게 된 그는 마음의 공허와 인생의 의미를 상실한 고통을 참지 못해 자살을 하게 된 것이오."천우의 말은 끝이 없었다. 그의 말은 일종의 마술이었고 만지화는 그의 말을 듣는 동안 최면에 걸리고 말았다. 천우는 그로부터 반시진 후 만상관을 걸어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으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만지화, 이제부터 아마 그대의 도박의 승률은 반반이 될 것이오. 왜냐면 그대의 머리 속에 도박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거든......."천우는 어떻게 만지화를 꺾은 것일까? 만지화는 그에게 자신의 패배를 자인했다. 그와의 도박 승부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녀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으나 천우와 만난 후 자신감을 상실했다. 그것은 도박사에게 있어 치명적인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상대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은 먼저 자기 자신이 완전히 속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진정한 도도(賭道)에 든 사람이라면 패를 자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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