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양상훈 칼럼] 로켓은 김정은이 쏘고 욕은 우리 쪽이 먹고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입력 2023.06.08. 03:10업데이트 2023.06.08. 08:10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3/06/08/GMQFCXAMPBHD7FWGDU6P6G63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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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경보 허술했어도 원인 제공한 北 놔 두고 피해 막으려 한 우리 쪽을 맹비난
도발은 북이 하는데 손가락질은 우리끼리…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이 31일 오전 6시29분께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을 듣고 휴대전화 위급재난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행안부는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했다./연합뉴스
얼마 전 김정은이 로켓을 발사했을 때 서울에 경계 경보가 울렸다. 경보가 왜 울렸는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설명이 없어 놀란 사람들이 화를 냈다. 더구나 새벽 시간이었으니 화가 더 났을 것이다. 그런데 카카오톡 등에 당국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는 얘기를 듣고 로켓 도발을 한 것은 김정은인데 욕먹는 것은 김정은이 아니라 경보를 발령한 우리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보 내용이 허술했다고 해도 나중에 북 로켓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됐다면 원인 제공자인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먼저일 텐데 경보 발령에 대한 비난이 이를 압도했다.
김정은은 멀리 있고 우리 당국은 눈앞에 있다. 김정은 도발은 늘 하는 익숙한 것이고 우리 당국 실수는 사람을 놀라게 해서 화를 돋운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도발은 북한이 했는데 비난은 우리 쪽으로 하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0년 천안함이 북한에 폭침당하자 우리 사회 다수는 북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 정부 비난에 열을 올렸다. 지금은 상상이 안 되지만 폭침 직후인 그해 4월 여론조사에서 ‘북한 도발’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무려 60%에 달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아닌 우리 정부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건 초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런 일을 벌일 곳이 북한 말고 어디 있는가. 우리 군인이 46명이나 죽고 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다시 10명이 사망하는 비극 앞에서 드러난 우리 자화상이었다. 당시 지식인들 중에는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해도 북한 소행이란 걸 안 믿는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정말 놀라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북한 소행이라고 답하는 국민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던 사람이 그중 한 명이다. 심지어 이 사람은 천안함이 ‘자폭’했다고 했다. 천안함 장병 누군가 배에 폭탄을 심어 터뜨렸다는 것인데 이 황당한 주장에 우리 국민 상당수가 동조할 수 있다고 본다. 대장동 사건이 ‘윤석열 게이트’라는 국민이 40%에 달하는 지경이다. ‘(자폭은) 아니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사람도 많을지 모른다. 이 사람을 추천했다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도 그런 생각일 것으로 본다.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천안함 함장을 향해 “부하를 다 죽여놓고 무슨 낯짝으로…”라고 비난한 것도 다르지 않다. 천안함 장병을 죽인 것은 북한인데 우리 해군 함장이 죽였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침몰한 해군 함정은 수백 척에 달한다. 그 침몰된 배의 함장에게 ‘네가 부하를 다 죽였다’고 비난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직 한국에서만 이런 주장이 나온다. 함장이 배와 함께 침몰해 죽지 않았다는 비난도 한다. 과거 군국 일본 해군 일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영화를 많이 본 탓인지 함장이 배와 함께 죽는 게 관행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미국 해군에서 탈출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탈출하지 않은 함장은 없는 것으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