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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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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피어슨 공항에 들어서며 피춘자 시인으로부터 온 이메일을 읽었다. 그리고 그는 비행기를 탔다. 피춘자를 만날지 말지는 지금 생각지 않기로 하였다. 상황은 언제나 살아있어서 이리 또는 저리 또는 갑작스럽게 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위기와 감정까지 오버랩되면 이성과 내공적 판단만으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춘자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제주도는 따뜻할 것이라는 기대가 마음을 조금 설레게 하였다.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며 길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문뜩 그녀는 자기의 호사스러움에 생각이 미치자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이런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해서도 피난처를 찾아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제주도를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가? 자식들의 문제로 밤낮 골몰하는 엄마들 보다 자신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건강한 것도 호사함의 하나이리다. 아직은 많지는 않지만 큰 것이 아니라면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돈도 있고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다. 이제는 다 그만두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피춘자의 호를 붙인 “대전 女香 지적장애인 보육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더 좋은 분에게 보육원장 직을 넘겨주기 위하여 사직한 후, 사랑시도 썼고 시 낭송도 하였고 노래도 불렀다. 냉정히 따져서 손만 내민다면 돈을 싸 들고 달려올 남자들도 고를 정도로 있다. 저 보도를 걸어가고 있는 여인네들 보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부유한가. 춘자는 타인을 보며 이제 스스로를 보기 시작한 거다. 춘자는 굴곡이 심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현재 아이들도 문제없이 잘 자라 각자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조금 더 함께 살았어야 할 남편이 생각보다 먼저 간 것이다. 어쩠든 현재 그녀는 특별히 부러울 것 없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까짓것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 다 접어 면 될 것 같았다. 말장난 같은 시. 그리고 자기만족이고 과시인 시 낭송, 이런 것들이 다 뭐란 말인가? 다 접는다 한들 춘자에게는 이익이고 남은 장사였다. 욕심내지 말자. 이 나이에 명예가 뭐고 인기가 뭐고 환호가 다 뭔가. 원래 그런 것들 모르고 살아왔잖은가? 그냥 없는 듯 살면 좋을 것 같았다. 춘자는 머리를 저었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 말고 제주도에서 며칠 쉬기만 하자 그녀는 마음을 다 잡았다.
"나준석 피디님."
"예. 누구시지요?"
"접니다. 알렉스."
"아. 선생님. 어디세요?"
"인천공항입니다. 방금 도착했어요. 곧 조수연 기자님과 나 피디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가능한지요?"
"예. 에니 타임 가능합니다. 제가 모시러 갈까요?"
역시 시원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됩니까?"
"요즘 시간이 남아돕니다. 기다리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2시간 후 역삼동의 역삼 호텔 라비에서 두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조 기자님은 연락이 되는지요?"
"알겠습니다. 가까이 있으니 그 시간에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혹 30분 정도 늦을 수 있습니다."
알렉스는 지하철을 타고 가며 머릿속을 비우려고 애썼다. 머리를 굴려서 얄팍한 술수로는 무엇도 할 수가 없을 것임을 그의 성격상 잘 알고 엄두도 내지 않고 지하철에 탄 사람들과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무심히 보고 있었다. 그는 빽색 하나만 달랑 메고 앉아 있었다.
사워를 하고 입고 온 청바지와 다운점퍼를 입고 첼시 부츠를 신고 나서 손목의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10분 전이었다.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라비로 들어서니 두 사람이 일어나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조수연이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나준석 피디였다. 두 사람 다 좋아 보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점심때가 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그럼, 제가 마무리를 짓죠. 피춘자 시인님 시집 '가슴속에 흐르는 사랑의 강'은 가장 빨리 출간하는 것으로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소설 '운명'을 완전 검토하여 3일 내에 저 조수연에게 전달하고 나 조수연은 일주일 이내에 시나리오 '운명'을 완료하여 최근에 옮긴 ‘대전 종합 방송국’의 나준석 피디에게 전달합니다. 나준석 피디는 그간의 드라마를 만들었던 내공을 총동원하여 3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서 방영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한다. 끝입니다. 이의 있습니까?"
귀여우며 밝은 모습이 딱 부러졌다. 그녀도 방송 작가 겸 시나리오 작가가 아닌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었다. 알렉스와 나 피디는 할 말을 잃었다. 여기에 더 말을 붙여봐야 잡소리이고 사족이 된다. 그런데 나 피디가 허리를 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믿고, 점심 식사하러 갑시다-"
가장 확실하고 적당하고 큰 반응의 말이었다. 전혀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퍼펙트 한 말에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가장 적당한 때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하였네요. 역시 내 사랑 준석 씨.”
수연은 알렉스를 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미소 지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젊음은 이런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이렇게 자꾸 만나 부대끼어야 정이 들고 상대편을 이해하게 되고 조금 맘에 들지 않아도 관계의 이름으로 동조하게 된다. 그것을 잘 활용하면 인간적인 관계의 공동 만족을 느끼고 향유하게 된다. 적어도 한국에서의 사람 관계는 그렇다. 모두가 잘 하고 있었다. 그 같은 시각, 권진혁은 천삼분을 만나고 있었다.
"권 사장. 너무 일을 크게 오래 끄는 것 아닌가요? 시끄러운 일 생기는 것 원치 않거든요."
"하하하. 천 사장답지 않게 웬 걱정을 다 하십니까? 거추장스러운 싹은 일찍 잘라버려야 한다고 말한 분이 그러십니까. 그렇지만 걱정 마십시오. 내가 사업하듯 끝도 깨끗이 마무리할 것이니까. 근데, 피춘자 시인 언제 한번 만나게 해 줄 겁니까?"
밝지 못한 얼굴을 들어 권진혁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게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젊었을 때는 여자 꽤나 울렸을 것 같았다. 말을 잘했다. 키도 컸다. 아직 얼굴 모습도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피춘자 시인을 탐 낼만 하였다.
"직접 만났을 때 아무것도 못 저질러서 일을 이렇게 만든 것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 그 여자가 권 사장님을 화나게 모욕을 줬어요? 자세히 말해봐요."
"정말 듣고 싶은가요? 내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이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모욕을 조만간 갚아줘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뒤 조사를 했지만 억울하게도 피춘자 시인은 깨끗하더군요. 허나 정지훈이 다른 여성과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천삼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권진혁을노려봤다.
"왜 정지훈의 뒤를 조사했어요? 당신 원하는 것이 따로 있군요. 뭡니까? 어디까지 알아냈어요?"
천삼분 사장이 놀라며 화난 얼굴로 묻자 당황한 권진혁은 말이 잘못 나왔음을 알았다.
"아. 그렇게 놀라서 화낼 정도는 아닙니다."
그는 손바닥을 흔들며 허리를 뒤 등받이로 붙였다.
"나는 다른 정보에는 관심이 없어요. 정지훈과 피춘자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가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들은 천 사장이 주최했던 그 뭐야?"
"통기타와 시의 만남"
천삼분이 못 내키는 듯 말했다.
"그래. 맞아요. 그 공연행사 전후 밀접한 관계로 발전했을 겁니다.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여 인터넷에 띄워 그들이 더 이상 문단이나 음악계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할 겁니다. 물론 천 사장님도 이연 교수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개별적으로 빌며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혼나도록 할 겁니다."
"아니. 무엇에 대하여 어떻게 용서를 구한다는 말이에요? 나 원 참."
천삼분이 흥미 있다는 웃으며 말했다.
"피춘자 시인이 어떻게 권 사장님에게 용서를 구한단 말인가요? 침대 위에서 벌거벗고 나 잡아 잡슈 하고 누워있어야 하겠네요?"
"으하하하"
권진혁이 통쾌한 듯 웃었다.
"최소한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앉은 자리 주변에는 다행히도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없었다. 창가에 서너 젊은 사람들이 있었고 벽 쪽 탁자의 의자에는 두 사람 밖에는 없었다. 점심때라서 곧 손님들이 밀려올 것이다. 남영동은 원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드디어 분위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하였다.
"어때요. 우리 자리를 옮기는 것이. 개구리참외가 얼마나 맛있는지 맛 보여주고 싶네요."
천삼분이 권진혁을 빤히 보며 미소를 지으며 나직이 말했다. 그는 손목시계를 봤다. 낮 12시 40분이었다. 천삼분도 남자를 죽일 강력한 무기가 있을 것이다. 정지훈을 죽이듯이.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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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혼자 조용한 곳에 와서 쉬면 마음이 정리될 줄 알았는데 더 복잡한 상상만 하게 되고 괜히 우울해지고 그러다 몸과 마음이 더 피곤해짐을 느꼈다. 호텔 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제주도의 겨울 바다는 검 푸렀다. 작은 바람에도 바다 물결이 하얗게 부서지는 수면 위로 갈매기들이 때를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이 춤추는듯하였다. 정지훈이 옆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융합이 되지 않았다. 알렉스가 겨울바다 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을 생각했다. 작은 고기를 잡아 올리며 고개를 돌려 큰소리로 불렀다. 바라보고 가지 않으니 낚시도구를 챙겨 춘자에게로 오고 있었다. 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손을 제대로 정감있게 잡아보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는가 하였지만 춘자의 눈에는 역시 아니었다. 이런 게 외로움인가? 이런 것이 고독이라는 것인가? 이러다 자칫 그 외로움과 고독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거리다 생각지 못한 밧줄이라도 잡을 것 같았다. 지금 옆에서 누군가 밧줄을 던지면 덜컥 받을 것 같았다. 무섭고 두려웠다. 무너지는 환경인가? 분위기인가? 춘자는 그런 마음이 스스로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이 분위기에라도 빠진 채 헤어 나오기 싫었다. 30대 40대에서는 알지도 못했던 허물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서 억지로 벗어나려 하고 쉽지는 않았다. 이 기분도 이 감정도 스스로에게는 귀한 삶이라 생각하였다.
피춘자 시인은 저녁에 밤바다가 보이는 창가의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열고 메모지에 시를 썼다. 지금의 심정을 그대로 시로 만들었다. 원래 그녀의 시는 미사여구가 없었다. 생각나는 단어를 그대로 썼다. 사실, 그녀가 다른 시인들의 시를 거의 읽지 않았음이 오히려 이렇게 사랑시든 그리움의 시든 외로움의 시든 고독을 견디어 내는 감정의 시든 그러한 시들을 마음에서 우러나와 생각과 합쳐 아는 말로 두드려 댄 것이 그녀의 시였다. 그래서 꾸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가식이 자리할 곳이 없었다. 그렇게 쓴 시가 잘 되었는지 문학적이었는지 그녀는 모른다. 그녀는 문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책으로 출간되어서 서점에 꽂혔을 때 독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그녀는 3일만 지내려 했던 곳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의도적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부터 시간이 그렇게 금방 흘러간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놀랐다. 이렇게 객지에서 혼자 며칠을 보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혀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일을 뜻하지 않게 저 지러 게 된 것이다. 피춘자 시인이 일주일 동안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한 것도 스스로가 아니었다.
“저~ 혹 피춘자 시인님 아니십니까?”
아침 일찍 바닷바람을 만나고 상쾌한 기분으로 호텔 라비로 들어서는데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이 아는 채를 하였다. 이곳에서 그녀를 부를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오히려 놀랐다. 피춘자라고만 불러도 놀랄 텐데, 그는 시인님이라는 고유명사를 이름 뒤에 붙여서 불렀다. 그의 뒤로는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복장으로 막 라비의 회전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들 옆에 ‘금요 등산’이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으며 그 뒤쪽으로 한때의 남녀들이 모여 있었다. 날씨는 맑았으며 바람도 없었다. 제주도는 겨울의 끝에 있어서 봄기운이 물씬거렸다.
“네. 그런데요?”
첫댓글 여류시인 피춘자
좋은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목요일도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제임서 님!
올려주신 좋은 글 좀 길지만
읽어 볼 만 합니다.
감사하게 보고 추천 드리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수요일 되세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요?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고 멋진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좀 길지요. 압니다. 그래도 일찍 끝내려고 그랬습니다. 좀 더 가야 될 것 같은데요...
소설에는 반전이 있어야 할 겁니다. 원래 소설 올리는 곳이 아니라서 조심스럽습니다.
관심가지고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Have a great day, Thursday,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