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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거짓말과 몸부림과 거친 말에 귀를 기울이나?
나는 내 말과 글이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왔다.
소설가로서, 바이오코드 개발자로서, 우리말 사전 편찬자로서 말과 글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또한 서른다섯 살 무렵, 후배와 더불어 <거짓말보고서>라는 책을 처음 만들었는데, 이게 아마 내가 '거짓말'을 자세히 들여다본 첫 시도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거짓말에 관한 심리, 사회현상, 기법 따위를 찬찬히 돌아보았다.
아래 글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거짓말을 바라본 것이다. 거짓말학(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 인간은 왜 거짓말과 몸부림과 거친 말에 귀를 기울이나?
안정이나 평화에 대한 정보보다 자극이 크고, 복잡한 상황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그러면서 소란스러운 정보에 눈길이 먼저 가는 현상은 인간 뇌의 생존 기전 및 신경 전달 물질 체계와 깊게 맞닿아 있다. 뇌과학 관점에서 이는 크게 네 가지 핵심 기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1. 편도체의 생존 감지 기전과 자극 우위
두뇌 깊은 곳에 자리한 편도체(Amygdala)는 위험 요소를 감지하고 생존을 담당하는 비상 경보 장치다.
위협 감지가 바로 편도체의 기본 의무다. 인간의 뇌는 진화 과정에서 '늘 평화로운 상황'보다 '위험하거나 자극적인 상황'을 더 빠르게 감지하도록 발달해왔다. 자극적인 문구나 소란스러운 소식은 뇌가 위험 또는 중요한 변화로 인식해 편도체를 즉각 활성화한다.
편도체의 반응 속도는 논리와 분석,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피질(전두엽)보다 훨씬, 매우 빠르다. 올바르고 체계 있는 글을 읽고 이성으로 분석하기도 전에, 자극이 강한 문구가 보이면 그 즉시 시선과 주의력을 먼저 훔쳐가는 이유다. 매우 강한 시각·청각 자극은 대뇌 피질(전두엽)에 이르러 미처 계산해보기도 전에 편도체로 직결되는 '하등 경로(Low road)'를 따라 진입하므로, 대뇌는 계산할 틈조차 없다.
2. 도파민 회로와 불확실성의 보상
뇌의 보상 회로인 도파민(Dopamine) 시스템은 단순히 쾌락을 느낄 때뿐만 아니라, '새롭고 강렬한 자극'을 만났을 때 대량으로 분비된다.
뇌는 예측할 수 있는 선명한 정보보다, 기존 상식을 깨거나 충격을 주는 과장된 정보에 더 큰 도파민 반응을 보인다. 큰일난다, 다 망했다, 뒤집혔다, 배신했다, 도망갔다는 부정 단어에 더 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부정 단어들은 두뇌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므로, 달리 말해 골치가 아프므로 이 불안한 계산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말을 들으면 즉시 불이 꺼지듯 믿어버린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단순 확신하는 말을 즐겨쓴다. 육이오전쟁이 터졌다는데도 신성모 국방부장관은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황당한 말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이 터졌다는 비상, 불안정, 위험, 복잡, 두려움보다 이 간단한 거짓말을 더 좋아했다. 황당한 말이고 완전한 거짓말이지만, 듣는 사람은 이 말을 의심하면서도 믿으려는 욕구가 솟구치고, 즉 뇌를 더 시원하게 해주는 거짓말을 더 믿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다. 6·25 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와 국군의 초기 과장 방송("국군이 북진하고 있다") 및 서울 사수 방송, 이 모든 것이 불안한 상황을 털어내고 어서 벗어나려는 편도체뇌들이 벌인 생생한 사례다.
단정하는 말투나 글은 뇌의 에너지 소모를 줄여준다. 주식 지수가 3000일 때 "제가 대통령이 되면 주식 지수를 5000으로 당장 끌어올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이 말을 믿으려는 본능이 강해지고, 누군가 반대를 해도 그 반대 논리를 이해하기 위한 복잡한 계산은 피하고 싶어한다. 유명 경제학자의 지루한 해설은 보지도 않는다. 그대신 이름이 좀 있는 정치 추종자가 나와 "저는 이 말씀을 듣자마자 천만원을 투자하여 며칠만에 1억원을 벌었습니다" 하고 떠들면, 뇌는 불확실성을 탐색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지만, 저 사람 말대로라면 쉽게 해결된다는 즉시 해방감과 함께 보상 회로가 작동한다. 포퓰리즘은 이 틈을 파고든다.
3. 부정 편향과 진화의 유산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부정 편향(Negativity Bias) 역시 자극이 강한 정보가 잘 퍼지는 중요한 원인이다.
평소와 다른 것, 반대인 것은 생존과 연결되므로 곧바로 주목한다. 초기 인류들은 "이 숲은 안전하고 평화롭다"는 정보보다 "이 숲에 호랑이나 승냥이가 자주 나타난다"는 자극이 강하고 무서운 소식에 더 집중했다. 그래서 착한 이웃이 알고 보니 살인하고 도망온 사람이더라, 예쁜 아낙이 사실은 문둥병 환자라더라와 같은 말은 순식간에 편도체를 휘어잡고, 날 듯이 퍼져나간다.
이처럼 안전과 평화를 깨고, 충격이 큰 소문은 공동체의 생존에 대한 긴급 정보로 인식되기 때문에, 뇌는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강한 본능에 따라 여러 신호를 보낸다. 거짓말이나 과장이 섞여 있더라도 소란스러운 소식이 더 빠르게 소문나는 이유다.
4. 인지 절약과 전두엽의 부하 최소화
인간의 뇌는 전체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비하는 에너지 집중 기관이다. 따라서 뇌는 '인지 절약(Cognitive Miser)'을 중요하게 여긴다. 즉 뇌가 과열되지 않도록 늘 주의한다. 이처럼 인간은 복잡한 생각을 피하고 심리 숏컷인 '휴리스틱(Heuristics, 직관 판단)'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두뇌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것은 기본 본능이다. 조건과 예외가 붙은 중립 정보는 전두엽을 사용해 유불리와 진위 여부를 복잡하게 따져야 하므로 뇌에 피로를 일으킨다. 내가 믿어온 것과 다른 말을 들으면 당연히 에너지 소모가 많아진다.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자신이 기존에 믿던 것과 들어맞으면 자극이 크더라도 그 정보를 검증 없이 즉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교한 논리는 머리가 아프다며 곧장 물리친다.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 인지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한다.
그러면 짜증이 난다. 의심하고, 따지고, 묻는 행동은 늘 큰 두뇌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이라도 조금만 미끼를 주면 너무 쉽게 믿으려 든다. 광신자와 정치 팬덤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현대의 SNS(유튜브, X 등) 알고리즘은 인간 뇌의 편도체와 도파민 회로를 가장 잘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중립 관점에서 사건을 다루고 사실 확인을 철저히 해서 나오는 뉴스는 뒷구석으로 밀리고, 조회수도 나오지 않는다. 그대신 '분노'나 '공포'를 자극하는 강한 썸네일과 헤드라인이 공유 수와 조회 수가 몇 배 이상 높게 나온다. 전쟁 기사를 보면 날마다 초토화, 몰살, 박살, 대량 학살, 전원 전사, 지구에서 사라졌다, 인적조차 없다 등 더 이상 쓸 수 없는 가장 자극이 강한 헤드라인이 날마다 나온다.
편도체는 단순하고 분명하고 안전한 것을 좋아한다. 반면 과장되고 단정하는 듯한 짧고 쉬운 말이나 글은 복잡한 사고 과정 없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어, 뇌가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쪽을 선택하게 만든다. 뇌를 안 쓰는 쪽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자극이 강하고 단정하는 듯한, 확신하는 듯한 거짓말이 반복해서 귀에 들리면, 뇌는 처리하기 쉬운 정보(인지 용이성)를 곧 '진실'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뇌가 복잡한 검증 과정을 생략하고 편안함을 선택하는 기전을 진실 착각 효과(Illusion of Truth Effect / 단순 노출 효과)라고 한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거짓말도 매일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그것을 믿게 된다"는 신념을 실행에 옮겼다. 복잡한 정책 설명보다 "유대인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다"라는 짧고 자극이 큰 구호 하나가 독일 국민의 전두엽 판단을 마비시키고 편도체와 자극 회로를 직접 두드려대한 것이다.
신뢰는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이성의 판단이 필요하지만, 부수고 파괴하는 소문이나 충격적인 악소문은 단 한 번의 자극으로도 신뢰 체계를 무너뜨린다. 유명인이나 유명 연예인은 수십 년을 두고 신뢰를 쌓아가지만 무너질 때는 말 몇 마디에 단숨에 무너지는 원리다. 알고 보니 이렇더라, 저렇더라는 자극이 큰 정보는 수십 년 신뢰조차 쉽게 무너뜨리고, 의심을 받게 만든다.
결국 자극이 강하고 과장된 소문이 더 잘 들리고 더 널리 퍼지는 까닭은, 위험을 먼저 감지하려는 편도체, 새로움과 확신에 반응하는 도파민,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는 뇌의 본능이 서로 맞물려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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