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스쳐 간 기회
고 영 옥
곱다랗게 피어나는 뭉게구름을 머리에 이고 대관령 양떼목장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나이를 먹다 보니 산이 좋고 들이 좋고 자연이 무조건 좋다. 자연과 함께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생기가 솟아날 것만 같다. 푸른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잃어버린 꿈의 편린이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장남인 남편에게 아버님의 바람은 한결같았다. 당신이 일구어온 토지를 보다 과학적으로 경작하고, 넓은 야산을 목장으로 만들고 싶은 당신 꿈을 대물림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건축을 공부했고 그런 계열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회사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머슴일 뿐이란다. 어서 와서 네가 주인이 되는 네 일을 해라.”라고 하시는 아버님의 끈질긴 설득에 수긍은 하면서도 쉽게 결단하지 못하는 데에는 하는 일이 손을 놓기가 아까울 만큼 매력이 있어서이겠지만, 할머니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내 어깨에 지울 수 없어서이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농촌운동에 관심과 애착을 둔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란 내겐 농촌을 향한 막연한 꿈이 있었다는 것을…….
어느 시점에서 남편은 내게 동의를 구해왔다. 나는 선선히 아버님 뜻에 따르겠다고 하자 의외의 반응에 놀라워하고 고마워하였다. 남편의 결단에 제일 신이 나신 분은 아버님이셨다. 나는 아버님의 순한 며느리가 되어 인근의 칭찬을 받으며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젊은 농부는 먼저 배나무 묘목을 심었다. 갈다리 풀갓은 목초지를 만들자고 우리보다 더 서두시는 아버님이셨다. 그러나 농촌생활이 이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에 길들어지지 않은 우리 부부는 매일매일을 극기 훈련을 하는 자세로 살아내야 했다. 여러 명의 일군을 데리고 들에서 살다시피 하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노환이신 조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과 일군들의 수발을 하는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볼은 패어갔고 기미가 얼굴을 덮었다. 게다가 첫 아기가 유산되는 아픔을 견뎌내는 일은 실로 버거운 일이었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회의가 느껴질 무렵, 우리 마을이 공군비행장 부지로 확정되는 일이 생겼다. 우리의 첫 사업인 배나무 묘목이 채 열매를 달아보기도 전이다. 국민의 권익이 무시되는 군정에 울분을 느끼면서도 모든 상황으로 보아 여기서 그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내심 안도의 숨을 내 쉬는 건 또 무엇인가? 우리는 위기를 극복한답시고 서둘러 재취업하여 2년 반 동안의 전원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이 위기와 기회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성공한 사람에게도 위기는 있었고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가 있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때는 왜 마음에 두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바로 거기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문제를 풀어가야 했다는 생각이다.
위기라며 꼬리 내리기 전에 좀 더 인내할 수 있는 근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앞날에 대한 예측이며, 이 세상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눈이었다.
비행장 부지 에서 비켜간 선산을 기점으로 주위의 불모지라도 사서 다시 시작하는 지혜와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나약하게 도망하여 버렸다는 생각이다. 당시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던 1970년대 초반인지라 수용농가라는 점을 감안하여 정부의 보호와 관심을 받으며 젊고 튼실한 농가로 훌륭하게 설 수도 있었다는 그림이 이제서야 보인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들이요 기회의 신으로 불리는 카이로스(Kairos)의 조각상의 모양은,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는 민머리다. 어깨와 발에는 날개가 달렸고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있다.
이렇듯 우스꽝스러운 조각품을 이솝은 우화로 풀이하였다고 한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기회를 발견하면 쉽게 움켜쥐라는 의미요,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그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어깨와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왔다 빨리 사라진다는 의미이며, 왼손의 저울은 기회다 싶으면 그 무게를 가늠해서, 오른손의 칼로 칼같이 결단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어놓았다.
카이로스의 조각상이 시사하는 바와같이 기회는 지나가 버리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명석한 판단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늘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아마도 우리에게 그런 판단력이 있었다면 지금쯤은 넓고 푸른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를 거느린 행복한 목장 주인이 되어 있었을 게다. 아울러 분당 주변 금싸라기 땅을 소유한 부를 누릴 수도 있었으리라. 여하튼 우리에게 닥쳐왔던 위기는 분명 기회였다.
지금도 기회의 신은 우리 옆을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가올 것만 같다. 변화의 바람이 워낙 거세고 변화의 방향마저 종잡을 수 없는 세태이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변화에 시간을 미리 예측하고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는 사람은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되리라고 감히 예언해 본다. (2010. 8)
첫댓글 세상 모든 것이 위기와 기회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성공한 사람에게도 위기는 있었고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가 있었다...카이로스..어쩌면 우리는 기회의 신이 다녀갔음을 모르고 사는 날이 더 많은지도...짧지만 제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글에..잠시 마음을 빼앗겨봅니다..감사합니다..선생님..
예진아씨!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생을 돌아보며 앞으로 다가올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는 야무진 의지가 보입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지금도 기회의 신은 우리 옆을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소 준비해두지 않으면 기회가 왔는지도 모르고 지나쳐버리거나 기회가 왔는데도 잡지 못할 수 있겠지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작가의 의중을 한줄글로 파헤치시는 선생님의 통찰력과 직관에 감탄합니다.
열린 연못님! 소녀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의 아씨가 나의 문우라는게 가슴 벅참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 위의 조각상이 말해주듯 기회는 지나가 버리면 다시 돌이킬 수 없기에..." ( ???)
교수님 의중을 확실하게 짚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교수님께서 지적하신 그 부분을 약간 수정하여 보았습니다. 새해에도 교수님 내외분의 평안을 빕니다.
게재 예약으로 옮겨 가려다 멈췄습니다.
<교수님 의중을 확실하게 짚어내지 못하는 >의 답입니다.
카이로스 신의 <사진>을 삽입한 것은 좋으나, 수필문장에다 "위의 조각상이 말해주듯 ..." 이렇게 쓰시면 곤란하겠지요. 어디에 발표를 한다면 <사진>까지 게재를 꼭 해야 하기 때문에죠.
교수님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이렇듯 꼭집어 주셔야 알아들을려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제아들이 "어머니는 참 친절한 작가이세요. 독자들이 궁굼할 틈을 주지않고 잘 설명을 하시거든요."라고 은근히 꼬집어 내는 소리를 들으며 교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무 설명조라는.... 그래서 낯설게 하기를 시도해 보니 또 문제가 되었지요. 아직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이글도 너무친절하게 사진까지 올리다가.... 사진을 내보내고 수정해 보겠습니다. 제목도 바꿔보구요.
선생님 좋은글 잘 감상을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지금도 기회의 신은 우리 옆을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현재의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가올 것만 같다.
변화의 바람이 워낙 거세고 변화의 방향마저 종잡을 수 없는 세태이니 말이다."
나그네 선생님! 선생님께는 글공부 할 기회가 이렇게 열렸습니다. 이 기회를 꼭 잡고 놓지 않으면 아름다운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문우가 된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성공한 사람에게도 위기는 있었고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지금도 기회의 신은 우리옆을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변함없이 소녀처럼 감성을 유지하시고, 청년처럼 글공부에 열정을 식히지 않으시며. 합리적인 사고와 인자한
미소로 타인을 격려 하시는 선생님의 인품으로 인하여 젊은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로우신 선생님은
나의 표상 이십니다.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이쁜소리로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이쁜이여! 그대의 제일의 사랑의 언어는 위로하는 말이지 싶습니다.
그대같은 동역자 내곁에 있으니 나는 언제나 든든하답니다. 새해에도 가내가 두루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좋은 기회를 잘 잡지 못하는 게 인생이기도 합니다. 늘 메세지가 있는 글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먼길 다녀가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ㅎㅎ 부산도 많이 춥겠지요? 건강이 먼저인것 같습니다.
항상 댓글로 응원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귀한 글도 빠짐없이 감상하고 있습니다. 건필하십시오.
선생님 좋은 글에 한참을 머물러 봅니다.
주어진 기회를 우리는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늘 열정을 가지신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해바라기 선생님! 남을 배려하고 도움을 주기를 원하는 선생님 앞에서는 무척이나 작아보이는 제 모습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선생님의 그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낌니다. 뒷모습이 멋있는 선생님 아자 아자 아자!!!
좋은집 선생님 젊은 새색시 시절에 그런 추억이 있으셨군요. 꿈은 못 이루셨지만 순한 며느리가 되어 밭을 가꾸셨다니 제 마음도 훈훈해집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하세요 ^^*
선생님! 그 순한 며느리는 삼시 오시 밥하는데에 지처서 김한자락 매어보지 못하였답니다.
다리아님의 논에 다녀온 글을 보면서 옛날을 생각했습니다. 항상 사람을 푸근하게 감싸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세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지만, 그 기회는 지나고보면 왔다가 갔더군요. 우리네 삶이 겠지요. 그렇지만 꿈이 있으면 언젠가는 이루어 진다는 진리를 연륜이 더해갈수록 실감합니다. 선생님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네요. 저는 한바탕 앓았어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편찮으셨군요. 쌍화탕이라도 한잔 들고 문병가야 하는건데.... 지금은 괜찮으신지요?
늘 사랑과 관심으로 달려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심을 내라는 응원으로 알겠습니다. 좋은밤되세요.
고영옥 작가님 이제야 왔습니다.
늘 빈틈없고 야무진 글을 쓰시는 선생님 ,
땀 흘려 공부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여러모로 배우고 갑니다.
늘 평온 하세요.
아~ 방가방가, "오실날 아니 오시는 님! 오시는것 같게도 맘 캥기는날..." 하하하
펄펄 내리는 함박눈처럼 소담하고 오월의 햇살처럼 따뜻한 선생님의 배려를 힘입어 이렇게 지탱하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도 위기는 있었고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가 있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때는 왜 마음에 두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욕망에 따라서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면서 살지요, 다만 욕망이 점차적으로 바뀌면서 사나봅니다. 좋은집 선생님의 어진신 성품이 보입니다..잘 감상하였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옳은것 같습니다. 욕망이 점차적으로 바뀌어야만 살아갈수 있을 겁니다.
항상 편안하게 다가오시는 선생님의 발자취를 느낌니다. 선생님 새해에는 더 좋은 글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명의 일군을 데리고 들에서 살다시피 하는 남편도 남편이지만, 노환이신 조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과 일군들의 수발을 하는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네 선생님! 인내의 그릇이 그만큼 작았습니다. 그러기에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생각입니다.
선생님! 평안하시지요? 오래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