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어머니는 오사카 아버지는 만주 일본군 군속이셨다
아버지가 휴가차 고향 전라도 들러
때 마침 귀국 해있던 열아홉 처녀와 결혼 만주에서 사셨다
해방되자 바로 빠져나와 고향으로 돌아왔기 망정이지..
그렇지 못하였으면 지금 연변 동포..
일본 부역자라 소련 진주군에 잡혔으면 시베리아 동포..
남으로 내려오다 북한에 걸렸으면 이북동포..
어렸을 적 내 기억에 있을 때 부터 우리집에는 최신 진공관식 전축이 있었다
티비가 없었던 시절 우리집 골목에는 축음기 음악을 듣는 멍석이 깔리곤 했다
그 때 레코드판 음악이
~~~하늘에서 돈 바람이 씽씽불어 떨어져라~~
~~~아서라 세상사 쓸 데없다~~~
잔치 때는 자유당시절 춤바람에 남편 단속 차 따라나선 어머님 두분이 함께 댄스 추시면
어른신들 간에는 선망의 대상였던 것 같은데..
어린 내겐 친구들이 "느그 엄마 아빠는 대낮에 보듬고 땐스했다!!"놀리는 통에 난감 해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울 어머니는 방학 때는 초등학교 교실 빌려 농촌 처녀 아줌마들 양재학원도 봉사 운영하셨던 개화여성이셨고
밤에는 집안 마당에서 우리 춤 한춤도 가르치셨다..
처녀 때부터 자전거를 잘 타셔서..팔십 다 되실 때까지 울 아파트 단지에 자전거 타시는 할머니로 알려졌었다
사십 넘은 내 나이에
아버님 소천하시고 유품 정리하다 시골 광위에 매달린 먼지 묻은 북을 발견 해 내고
잊혀있던 우리 가락의 향수가..
어머니 아흔잔치 때 환갑 넘은 아들이 춤 추고 노래 해 드리겠다고 ..짬짜미 연습 해 왔는데..
내년이 드뎌 아흔 90 !!
울 어머니는 지금도 연세를 여쭈면 여든세살 !
83세부터 시작 된 치매가 기억을 하나 둘.. 앗아가고..
함께 생활 해 오다 작년 말부터는 동네 가까운 요양원에 모시고 있고
쉬는 날에는 휠체어에 모시고 아파트 교회 한바퀴 돌고있다
부부가 함께 생업에 메어있다보니 어쩔 수 없어 .
.다만 이대로 요양병원까지는 안 가셨음하는 바램 뿐..
다행이 88 미수잔치를 외가식구들 모두 포함 함께 단양에 2박3일 모셔서 .
그때까지는 식구를 알아보시고.."~발길을 돌리려고~~"노래까지 부르셨으니..
지금 가끔 제정신에 "" 애야 ! 어쩌면 이렇게 내 머릿 속이 하얗니~~?""하실 때에는..
올 해 내 나이 환갑인데
내년에 그 아흔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내내 울엄니 건강 기도해 주셔요~~
첫댓글 행복하시겠습니다!
당연~~^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구한말 역사속의 산증인이신 어머님의 모습에
가슴에 뭉클해집니다.
내내토록 건강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어머님 아흔 잔치에서 부르실 노래와 춤은 충분히 갈고 닦으셨겠죠?
어머님께서 강건하고 행복하시길 빌께요.
국악사랑 벗님들 인터뷰 하셨음해요. 수도권에 사시나요?
지금 나눈 이야기만해도 넉넉합니다 혹시 어머님께 들려드릴 소리
1분 정도 하시면 더욱 좋겠구요. 제 이메일로 연락 주세요. 글 속에 님의 어버이 생각이
흐르는 물처럼 느껴집니다.
norijun@hanmail.net 메일로 안내할게요. 방송을 통해 어머님께 부르는 소리 한구절도
나름 추억이 될 겁니다.
관심과 배려 감사합니다..ㅎ
아직 부족하고 모자란점이 믾아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너그러이.양해해주시고..
혹 강동 지나시는 길있으시면 5호선 둔촌역 전통시장에 들르시면..
제가 막걸리 대접하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