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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고향 길 함께 가다
1
사십 여 일 동안 어머니는 아들들 집에 와 계시다가
그렇게 고향에 가고 싶다던 집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안산에서 출발 하여 전남 함평에 이르니 궂은비가 계속 내렸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본분을 잊은 것처럼 비가 내렸다.
겨울 가뭄을 생각하면 참 고마운 비였다.
고향에 도착 하니 얼마나 반가 운가.
빗 사이로 흘러오니 공기가 전혀 낯설지 않고 언젠가 만났던 사람처럼
익숙하게 숨길을 따라 폐 깊숙한 곳까지
스스럼없이 들어와 편안히 돌고 나갔다.
도착해서 먼저 면사무소로 갔다가 주민증 하려면
증명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여 일단 집으로 갔다.
짐을 정리하는 동안 어머니는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라면을 끓였다.
그런데 양은 푸짐한데 라면이 매우 짜다.
난 물을 조금 부어서 짠맛을 달랬다.
2
설거지 중 물 싱크대 밑으로 흘러 살펴보니
호스 삭아서 오른쪽으로만 사용 중인데,
어머니는 몰라서 평소대로 왼쪽으로 씻었으니 물이 그냥
아래로 쏟아져
바닥 밑으로 흥건히 고였다.
함평 가서 연결 호수를 사고, 어머니 주민증 위해서 사진도 찍었다.
조그마한 증명사진 찍는데 일만 팔천 원이란다.
와! 비싸네.
다시 면사무소로 갔다. 어머니 증명사진 제출하고
임시 주민증을 받아서 사거리 농협협동조합으로 갔다.
농협으로 가서 통장갱신하고 나서
그렇게 원하던 노령국민연금 오만 원 찾고
마트에 들러 귤 오천 원어치 샀다.
한 달 넘도록 보지 못한 어머니 친구 태복모집 들러 인사하기 위해서였다.
3
집에 와서 보니 큰형 퇴근해 있었다.
일단 호수부터 연결하고 나서 거실바닥 깔판 걷어내고
물 닦아내기 공사를 시작했다.
해는 벌써 저물고 어둑어둑해졌다.
때가 되어 저녁식사로 떡국을 끓였는데 또 짜다.
아마 늙으신 어머니는 이제 적당한 맛을 분별할만한
기능을 많이 잃은 것 같다.
마음이 짠했다. 뭐라고 타박할 수도 없다.
대충 먹고 나서 바닥에 흘러든 물을 닦기 시작했다.
다시 물 닦기 공사를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물이 흘러나온다.
수질이 좋았으면 댐 공사? 했을 텐데,
수질이 별로여서 닦아내기만 하기로 작정했다.
형은 방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어머니와 나는 허리가 휘도록 물 닦아내는 공사를 했다.
이왕 할 것 즐겁게 해야지 생각하며
장난기어린 말을 일부러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오랫동안 잘 쓰지 않아서 인지 거실바닥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지독히 났다.
좀 더 효과 높이기 위해 바닥에 신문지 태웠다.
연기가 나고 재가 하늘을 날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서 머리 굴렸다.
숯덩이 가져다가 불붙이니 시리던 손이 따끈했다.
신나게 곰팡이 냄새나는 바닥과 깔판을 닦아냈다.
냄새한번 구수하다.
화로(火爐) 생각이 절로 났다.
밤이나 고구마 구웠으면 좋겠다.
겨우 다 닦고 말린 후
깔판 원위치로 놓고
한숨 돌리며 지친 등짝을 구들에 내맡기니 단잠이 온다.
4
아침은 기다리지 않아도 고요히 찾아와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죽어야 끝나는 일을 위해 김치찌개 맛있게 먹고 일 시작한다.
큰형은 방학이라 일곱 시 반에 조용히 출근했다.
어머니는 연약한 몸으로 곰팡이 난 김치, 떡, 찌개그릇,
이것저것 버리고 닦고 치우고 하느라 분주하다.
밀린 세탁도 했다.
형이 내게 세탁기 어머니께 돌리도록 부탁하고 갔다.
차 돌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눈이 쌓인 것이 아직 마당에 수북한데
거기다가 비까지 왔으니 마당이 물렁물렁했다.
때문에 차바퀴는 헛 돌고 흙탕물은 튀고 마당은 좁다.
날은 비 오는데 춥다.
어제 빗길에 오느라 차가 지저분하다.
수돗물에 호수를 연결하여 물을 뿌리고 차를 닦았다.
호수 끝부분이 허술하게 되어 물아 앞으로만 분사되지 않고
뒤로도 뻗어 나와 얼굴과 옷으로 튄다.
고역이다. 이리저리 용을 쓰며 겨우 다 닦았다.
깨끗해진 차를 보니 옷은 젖고 머리는 비에 흠뻑 했지만 기분이 좋다.
그러는 중에 온라인으로 주문한 택배가 도착했다. 김치 10kg이다.
고향에 내려가시면 드실 김치가 없을까봐 미리 안산 집에서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시골집에 도착하도록 했다.
뻐근하게 이것저것 하고 나니 오후 한 시다.
5
그새 어머니는 태복모집 다녀와 손에 검은콩 조금 가져 오셨다.
올라가면 콩을 물에 불렸다가 밥할 때
함께 넣어 먹으면 밥이 맛있다고 하셨다.
이제 연세가 많아 기억이 흐물흐물하고
치매증세가 종종 나타나지만
자녀 사랑하는 마음에는 전혀 치매증세가 없었다.
난 어머니께서 그냥 집에서 해 드셨으면 좋겠지만
어머니 마음으로 헤아려 “가지고 가겠으니 싸 주세요.” 했다.
어머니는 김치택배 온 것을 보고 열어 보시더니 참 맛있게 보인다고 하신다.
난 김치 주문 때 중국산 고추가 아닌
국산고주와 배추로 만든 김치로 주문했었다.
이글을 스마트폰에 쓰고 있는 동안 점심이 나왔다.
김치찌개다. 먹어야 사니 맛있게 먹자. 먹어보니 맛이 참 좋다.
어제는 음식이 모두 짰는데 오늘 김치찌개는 아주 맛있다.
입안에 침이 돈다.
"어머니 찌개도 밥도 참 맛있는데요.”
배달된 김치도 꺼내어 상에 올려 함께 먹어보니 맛있다.
어머니도 드시고서 “먹을 만하다.” 좋아하셨다.
식사 중 어머니는 숭늉을 끓여 오셨다.
어머니는 누룽지를 맛있게 드신다.
나도 숭늉을 마셨다. 속이 확 풀어지는 듯하다.
안산 우리 집에 있을 때는 내가 숭늉 끓여 대접했는데
고향집에 오니 어머니께서 솔선하여 하셨다.
모든 일을 익숙하게 잘도 하신다.
늙고 병들어, 이제 치매 증세까지 있으니
하나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내 마음은 좋다.
더 많이, 더 길게 어머니께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숭늉을 더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집에 갈 때 운전하면서 마시기 위해서다.
6
점심 후 바로 떠날 준비했다.
어머니는
“설에 안 올래?” 물어보신다.
"글쎄요." 하니 "그러면 서운하지" 하신다.
어머니 주신 검은 콩과 조기를 넣은 검은 비닐봉지를 차에 실었다.
그리고 밀린 세탁물 있어서 “세탁기에 호수 연결해 드릴까요?” 하니
“할 줄 알아야”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혼자 하도록 그냥 두니 잘하신다.
모든 기능이 떨어지니 가능하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도록 해보았다.
기능하나라도 기억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또 작은 일을 해냄으로 보람과 기쁨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점심 후에 세탁기 열어보니 다 되어 있다.
세탁물을 꺼내어 비가 오는 오후 처마 밑 빨랫줄에
어머니와 함께 빨래를 말렸다.
더 할일은 크게 없다.
쓰레기 종이 태워야 하는데 그게 남은 일이지만 큰일은 아니다.
7
이제 출발해야 한다.
어머니와 안방에서 엎드려 하나님께
어머니를 지키고 보호해 주시도록 기도했다.
어머니는 덩그마니 방에 홀로 계시기 너무 적적하니
바로 태복어메 집에 가신단다.
“그러면 차에 타세요.”
겨울비 부슬부슬 내리는 고향땅을 이렇게 또 떠나는 연습을 한다.
군산을 지나기까지 비는 계속 내린다.
빗길에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 조심해서 운전하여 무사히 안산 집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방에 짐정리하고 씻으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반가운 어머니 목소리다.
태복이 엄마 집에서 집으로 오셨단다.
내가 잘 도착 했는지 궁금해서 전화하려고 왔다고 하셨다.
목소리는 크고 힘이 실려 있다.
난 듣는 기분이 참 좋다.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의 사랑이 역시 더 크다.
아~! 끝없는 어머니의 사랑의 줄
2016.1. 29 금
넷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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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에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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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 혜 기억하며
그 사랑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 가겠어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