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낙이불음(樂而不淫)
연봉(連峰)은 주렁주렁 이슬 구른 청포도
붉은 땀 적신 칠월(七月) 군침이야 돌겠지만
즐기되 따지 말지어다 젖꼭지가 아프대
* 포도산(葡萄山 747m); 경북 영양. 낙동정맥 길의 포도산 삼거리(묘지)에서 북쪽 약 500m 지점에 처녀가 숨은 듯 동그란 산이다. 마루금에는 봉화산, 명동산 등 준봉(峻峰)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구머리, 또는 머루산이란 이명(異名)이 있고, 천주교 성지인 포산마을의 이름을 따 그냥 포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 아래 ‘삼의계곡’이 좋아 탐방객이 많이 찾는다.
*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 즐겁지만 음사(淫奢)하지 않으며, 슬퍼도 마음을 해치지 않는다. 중국 아악(雅樂)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정감(情感)의 과다한 표현을 경계한 문구로, 중용(中庸)의 미학(美學)을 추구한다(論語 八佾篇 제 20장).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427면.
2. 룸펜의 망상(妄想)
수태극(水太極) 홍천강변 땅거미가 질 무렵
단학(丹鶴)이 꿈을 접은 사금파리 바위에다
날탕이 금을 그리니 달맞이꽃 호들갑
* 금확산(金確山 654.6m); 강원 홍천. 태극무늬로 휘도는 홍천강 위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산인데, 최근 홍천군에서 금학산으로 개명했다. 철원의 명산 금학산(金鶴山 947m)과 혼동되기 쉽다. 정상 못 미쳐 달맞이꽃이 핀 전망바위가 멋있고, 밑으로 내려다본 강이 아늑하다. 한 푼도 없는 주제에 금송아지를 그리니?
* 달맞이꽃; 월년초(越年草)로, 월견화(月見花), 월하향(月下香), 야래향(夜來香) 등의 이름이 있고, 7월에 노랗게 핀다. 석양에 피며, 다음 날 아침 해가 뜨면 시들어 황적색으로 변함.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상징하듯, 여성에게 좋은 약초이다. 종자유(씨기름)는 혈행개선, 신진대사 촉진에 효험이 있다.
* 날탕; 아무 것도 없는 사람.
* 졸저 제6시조집 『명승보』 홍천9경 중, 제4경 금학산 참조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105면.
3. 산과 혼인 할래
산(山) 옹이 대패질해 점판(占板)을 만들려나
애잎에 걸린 해를 소쿠리에 담아오련
색시여 풍산점(風山漸) 나왔오 저 청라(靑螺)에 시집가
* 괘일산(卦日山 470.8m); 경기 양평. 정말 해가 옹이 진 능선에 걸려 넘어져버렸나? 정상 찾기가 이렇게 힘드니? 그래도 멀리서 보면 푸른 소라처럼 군침이 당기는 산이다.
* 풍산점; 주역 64괘중 제 53번째 괘로 일명 점괘(漸卦)라 한다. 풀이는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길하므로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된다’는 뜻(漸女歸吉利貞). 상(象)은 산(山)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니, 군자는 이로서 어진 덕에 거하여 풍속을 착하게 해야 됨. 손상간하(巽上艮下).
* 청라; 원래는 껍데기가 푸른 소라를 뜻하나, 멀리 보이는 산을 형용한다. 시어(詩語)로 쓰면 좋다.
* 일라청대(一螺靑黛); 소라고등으로 쪽진 머리와 푸른 눈썹,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의 비유. 만당(晩唐) 옹도(雍陶, 789~873)의 시 제군산(題君山) 제4구 一螺靑黛鏡中心에서.
* 전남 곡성에도 괘일산(440m)이 있다. 졸저 『산중문답』 산악시조 제1집 제 59, 150면 참조. ‘해도 지쳐 깜박 졸고’ 시조 참조. 2001. 6. 10 (주)도서출판 삶과꿈 발행.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산영 1-59(84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4. 파발마(擺撥馬)로 달린 능선
봉홧둑 큰 올빼미 썩은 쥐 물고 올 제
때 찌든 나의(蘿衣) 입고 좌선(坐禪)하는 물푸레나무
활활 탄 저 불꽃능선 파발마로 달리고
* 봉화산(烽火山 733m); 경북 영양 영덕, 낙동정맥. 산이 좋아 일반등산 코스로도 많이 오른다. 단풍이 타 들어가는 능선은 마치 붉은 파발마가 달리듯 경쾌하다. 정상은 고풍스런 봉화대가 있고, 오래된 이끼 옷을 입은 물푸레나무(木犀-목서)가 근사하다. 봉황은 썩은 쥐 따위엔 아예 관심 없노라!
* 썩은 쥐(腐鼠-부서); 아주 경박하고 천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장자 외편 추수 )
* 나의; 선태류(蘚苔類)에 속하는 이끼. 나무 위에서 나고, 줄기는 실같이 가늘고 길며, 잎은 뇌침형(雷針形)이다. 여라(女蘿)라고도 함.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222면.
5. 엉큼한 산쟁이와 영악한 산달(山獺)
옥니가 박인 암컷 윤기 흐른 검은 털
늘씬한 허리선에 풍염(豊艶)한 둔부 곡선
그 목에 올가미 씌워 안방 까지 끌고와
미식(美食)을 갖다 줘도 내빼는 흑담비
겉으론 위하는 척 속마음은 딴 데 있어
모피는 탐 안 나겠지 엉큼스런 땡추야
* 담바위봉(705m); 충북 제천, 강원 원주. 시계(市界)의 산이다. 담비를 닮은 암봉으로, 날카로운 이빨 때문에 직등(直登)할 수 없고, 좌우 두길 중 하나로 우회해서 오른다. 신림(神林) 8경 중 제1경 조살이봉(695m), 제5경 문바위봉, 제7경 좌수골이 모두 이 산에 있다.
* 산달; 검은 담비.
* 한국인은 말과 행동을 따로 하는 이중적 의식구조를 지녔다. 특히 겉으로는 국민을 위하는 척 하면서, 실속을 따로 챙기는 얌체 같은 위정자에게 더 심하다. 많이 배울수록, 지위와 명예가 높을수록, 이중의 언행을 밥 먹듯이 하는 엉큼한 족속 아닐까?
* 《詩山》 제50호 2006년 봄호 5수. 한국산악문학동인지.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122면.
6. 산이 키득댄 까닭
각시 여 발가벗자 입맛 다신 떠꺼머리
뻐드렁니 드러내곤 피조개를 까먹더니
몸엣것 잔뜩 마신 후 양물 세워 키득대
* 백암산(白巖山 1,003.7m); 경북 울진 영양. 낙동정맥 분기점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다. 관점 또는 코스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이 시조는 정맥 종주 길에서 바라본 소감만을 읊었다. 전체적인 산세는 약간 걸쌍스럽긴 해도, 울창한 솔숲과 뻐드렁니를 드러내 키득대는 8부 능선의 흰 암봉군(岩峰群)은 수정처럼 반짝인다. 정상은 조망이 탁 트여, 가물거리는 동해의 바위섬에 부딪쳐 하얗게 밀려가는 파도를 볼 수 있고, 온천이 유명하다. 떠꺼머리는 총각바위일까? 아니면 엉터리 산쟁이일까?
* 여; 물밑에 잠긴 바위. 암초.
* 《시산》 제50호 2006년 봄호.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197면.
7. 되바라진 산
아홉 번 놀랄 거다 흰소리 친 흙주머니
못난이 꼴값 하네 산난초(山蘭草)가 쓴 웃음
고니를 조롱하다니 되바라진 야산아
* 구진대(九唇袋 387m); 강원 춘천, 화악지맥. 산의 뜻은 잘 모르겠으나, 의암 땜에 유유히 노는 백조 같은 삼악산 뒤, 야트막한 흙산으로 산난초(각시붓꽃)와 영지가 많다. 2002.8.9 등산 당시는 삼각점이 없었는데, 2005년에 복구(춘천311)했다.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백조(고니)는 등산객일 수도 있음.
* 곡불욕이백(鵠不浴而白); 고니는 매일 목욕하지 않아도 희다. ‘자연의 본질은 바꾸기 어려움’ 또는 ‘천질(天質)이 아름다운 것은 배우지 않고도 선량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미국의 초음속 전략폭격기B-1B ‘랜서’는 고니를 닮아, 일명 ‘죽음의 백조’라 불린다.
* 《詩山》 제50호 2006년 봄호.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88면.
8. 값 비싼 송이(松栮)
씹는 맛 오묘하이 귀두(龜頭)를 닮은 토산(土山)
감도는 송이 여운 천량엔들 못 사리오
구름에 보름달 가듯 연연(涓涓) 흐른 솔 능선
* 송이재봉(670m); 경기 양평. 옛날에 송이버섯이 많이 났다고 하는 산인데, 산정은 남자의 뭐를 닮았다. 최근에는 솔숲이 꽤나 사라져 참나무 숲으로 천이(遷移)되고 있다. 마침 구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위로 쳐다본 거대한 송전탑이 금방이라도 쓰러져 덮쳐올 느낌이다. 구름에 보름달은 무엇이며, 솔 능선은 또 뭘 의미하는 걸까?
* 명기(名妓)의 배출은, 정승을 발탁하기보다 더 어렵다. 조선 때 기생 송이(松伊)가 지은 시조 한 수.
솔을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는다/ 천심절벽(千尋絶壁)에 낙락장송 내긔로다/ 길 아래 초동(樵童)의 접낫이야 걸어볼 줄 이시랴. 주)천심절벽; 천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 초동; 땔나무를 하는 아이. 접낫; 날이 동그랗게 휘어진 작은 낫. -비록 기생의 몸이지만 호락호락하게 허용치 않겠다는, 자존심의 선언적(宣言的) 의미를 소나무에 빗대어 읊은 명시조다.(옛시조 감상 347면 김종오 편저 정신세계사)
* 최상의 송이는 귀두를 닮아, 약간 뭉뚝하면서도 펴지지 않아, 마치 남근 전체를 만지작하는 묘한 쾌감이 와 닿는다. 세로결을 따라 손으로 찢어 날로 먹으면 향미(香味)가 은은하다. 한국은 일송, 이능, 삼표 라 하여, 첫째 송이버섯, 둘째 능이버섯, 셋째 표고버섯으로 치나, 중국은 일능, 이표, 삼송으로 한다.
* 《시산》 제 50호 2006년 봄호.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295면.
9. 거드름 피운 산
비짓국 먹고 오른 된비알 마루금 옆
꽉 다문 조개바위 뜨물 맞고 히죽대나
할배는 수염발 날려 용트림을 하느니
* 독경산(獨慶山 683.2m); 경북 영양, 영덕, 낙동정맥. 창수령(자라목)에서 동쪽으로 오른다. 위천, 갈천을 바라보는 남동쪽 절벽은 경치가 좋다. 정상을 가는 길이 무척 가팔라, 제대로 배를 채우지 못한 지친 등산객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산정은 100평 안팎의 헬리포트로 좀 허풍스레 보인다. 마침 바람이 불어와 수염을 쓰다듬고 크게 트림하는 할아버지 모습이다. 누구는 암릉길 조개바위에다 ‘쉬’를 하며 으스대지만, 하산하면 별 볼일 없는 백수로 돌아갈 턴데?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140면.
10. 학수레 타고 단잠
냉기 낀 석간수에 얼비친 속념(俗念) 무리
일표음(一瓢飮) 한단몽(邯鄲夢) 중 긴 석성(石城)이 와르르
눈 비벼 단정(丹頂) 봤으되 빈 수레만 스칠 뿐
* 학가산(鶴駕山 882m); 경북 예천, 안동. 정상은 학수레를 닮았다. 상봉(上峰) 밑 바위틈새에 한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겨우 뜰 수 있는 석간수 맛이 기막히다. 근처에 석성(학가산성)이 잘 보존돼 있다. 하산을 막 끝내자, 누가 신고했는지 몰라도 경찰차가 다가와 우리더러 “송이를 캐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모든 사람이 다 다니는 지정탐방로에 무슨 송이가 있겠으며, 우리는 산행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런데는 아예 관심 없다“라고 답하니, 머쓱한지 그냥 가버린다. 요즈음 시골인심이 참 고약하다. 하긴 송이채취 철에는 등산 그 자체가 오해를 살 수도..
* 이번에 신선이 탄다는 수레를 타보고도 신선이 되지 못하였으니, 언제까지 속인으로 남을 건가?
* 일표음; 한 쪽박의 물 또는 술로, 매우 적은 양의 물이나 술을 이름. 즉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비유. 출전;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자왈, “현재, 회야! 일단사, 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 불개기락, 현재, 회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현명하도다, 안회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시골에 살고 있는 것을 딴 사람들은 그 어려운 생활을 견뎌 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안빈낙도의 자세를 변치 않으니, 현명하도다, 안회여!”(논어 옹야편). ‘食’ 자를 ‘사’로 읽어야 함.
* 한단몽; 노생(盧生)이 조(趙)의 수도 한단의 장터에서, 도사(道士) 여옹(呂翁)의 베개를 베고 잠들어 있는 동안 일생의 경력을 꿈꾼 고사. 인간 일생의 영고성쇠(榮枯盛衰)는 한바탕 꿈에 자니지 않는다는 비유. 한단지몽 또는 한단침(邯鄲枕).
* 단정: 붉은 볏을 가진 학(鶴), 또는 그 학의 붉은 볏. 흔히 새 중의 제일이란 두루미를 지칭하며, 춤사위가 고고하다.
* 산음가 8-3 ‘암봉 밑 석간수’-학가산 시조 참조.(제433면)
* 《시산》 제51호 2006년 여름호 5수.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제 4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