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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이불
리 태 근
결혼한지 30년이 넘도록 세월 탓이냐 사람 탓이냐 내가 안해에게 반반한 례물 하나 제대로 해준게 없어서 항상 죄진 마음으로 살아 가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안해는 시집올 때만해도 명색이 공인집이라고 장모님이 마음을 먹고 해보낸 첫날 이불이 지금도 농짝을 꽉 메우고 있는게 세월이 류수같이 흘러도 드팀없는 사랑의 례물로 내 가슴을 꽉 채워준다.
반세기가 흘러 오며 결혼 례물도 천양지차로 변했다. 몇해전만 해도 금가락지 목걸이가 결혼 례물로 유통되더니 지금은 자가용 자동차와 층집 열쇠가 결혼함에서 왔다갔다 한단다. 그때나 이때나 딸을 둔 집들은 큰 시름이 적은데 아들 둘 셋을 갖고 있는 집들은 입이 찢어진다고 야단이다. 그래도 말이 가는데 소도 간다고 남들이 흉내를 내면 나도 흉내를 내는척 해서 은근히 물밑으로 잘 사는 뽐내를 으시대는데 그 기세가 하늘 찌른다. 정부에서 그렇게 말리는데도 귀등으로 흘려 보냈는지 궁전같은 국제호텔에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새빨간 고무풍선을단 고급승용차가 골목을 꽉 메우고 지나 가는게 영화를 찍는지 드라마를 찍는지 잔치날이자 명절날이요 금덩이가 굴러가고 복덩이가 굴러와서 온 시가지를 독차지한 그 기쁨이 사둔 내외간이 어께춤이 절로난다.
정말 사는게 편안해졌다. 여자들은 집안에 전자동 세탁기요 김치랭장고요 영화 현수막같은 텔레비죤이 번쩍이는 거실에서 울려나오는 전자음악은 개인 주택인지 구락부인지 분간할수 없다. 문을 나서면 택시차요 미국 일본 한국으로 뻗어간 아들딸들의 덕분에 쩍하면 비행기를 타고 세계유람을 한단다. 먹고 입는건 전화한통이면 해결해서 녀자들이 발 바닥에 털이 난단다. 구름우에 솟아 오른 아츨한 엘레베터 층집을 미리미리 갖춰놓고 아들딸을 시집장가 보내는 현실을 감개 무량하게 바라 보노라니 농짝속에 숨어있는 첫날 이불은 몸 둘바를 몰라서 제발 농짝문을 열지 말란다.
그 세월에 첫날 이불은 처녀총각의 사랑의 금자탑이요 행복의 리정표였다. 무슨 정치운동이 그리도 많았는지 사람이 세월을 잘 못 만났는지 세월이 사람을 잘 못 만났는지 못사는 세월을 만나서 결혼함에다 호미와 낫 그리고 모주석 어록책을 넣었고 첫날 이불을 해오는 집들은 그래도 사는게 괜찮은 집들이였다.
한 공수에 마이나스 8전이 차례져서 <우표생산대> 우표한장이 8전이라고 불리운 이름이다. 기를 쓰고 일하는 사람일수록 빚만 잔뜩 걸머져서 딸 두셋씩 가진 집들에서는 첫날 이불을 갖추지 못해 애간장을 태웠다.
농사일만 해서는 죽었다 깨여나도 딸의 시집갈 밑천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을 불보듯 빤히 알고 있는 부모들은 온 여름 뙈약볕 아래 풀과 싸움하다 가도 초가을이면 목재판에 탄원해 나선다. 가진 재간이란 뚝심밖에 없는 사원들이 그래도 덩대 돈을 바라볼 수있는게 돼지 치기를 하지않으면 목재부업밖에 없었던것이다.
어저다 귀한 친척이 놀려와도 량표를 받았다. 덩치큰 대 자랑들이 한구들 꽉메운 집들에서는 해마다 나눠주는 부표( 부표란 천사는 표를 가리킴)를 가지고 홀바지도 겨우 해입는 신세라 딸자식 여럿을 둔 집들에서는 첫날 이불을 갖춘다는게 말이쉽지 고녁을 치뤘다. 더구나 우리집은 어머니가 아들 둘을 데리고 아버지가 딸을 둘을 데리고 중년에 재결합한 집이래서 식구여섯의 입에 풀칠하는게 당장 극난이였다. 아버지는 이른봄부터 오가는 비바람을 다 맞으며 기를쓰고 선 톱틀에 올라서 톱질했건만 서발 몽둥이를 휘둘러도 거칠게 하나도 없었다.
온집에 달랑 이불 두채가 있었는데 남자들이 한채를 가지고 웃방에서 자고 녀자들이 한채를 가지고 정지 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키넘어 가는 우리 형제는 잠잘때면 한이불에 발만 밀어넣고 잤는데 담요라는 것은 뉘 량반집 옛말인가 해마다 아까운 돈을 퍼주고 티운다는 솜 뭉치는 돌덩이처럼 무거워서 자고나면 숨이막힌다. 색낡은 꽃무늬 이불등은 강목천으로 깁고 또 기워서 이불 등인지 이불 안인지 분간 못해서 아침이면 언제나 이불이 햇대보처럼 해뜩 뒤번져 졌다. 너무 추워서서로당겨서 이불등이 찢어져서 이불인지 솜뭉치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누나들이 번번히 두벌 손질해야 제대로 개일수있었다. 밤을 잘 때면 서로 이불을 당기여서 팔군육이 다 뻐근 해났다.
온 집식구 입는 옷 이란게 드나노나 한벌이요 아버지가 입던 옷을 가위로 팔 소매를 짤라서 형님들이 입고 형님들이 입다가 새나기도 전에 내가 받아서 입었다. 크고 널러서 무릅이 나가고 엉덩이가 나가는 건 나와 상관없고 오직 앞만 가리우면 그뿐이라 때가 반들반들한 인조가죽처럼 질긴 옷 가지들은 계절을 가릴새 없었다. 인공외투자락이 달린 솜옷은 갈부업 갈 때는 큰형님들이 몫이라 나는 형님들이 오기만 기다렸다. 신뒤축이 물러난 왕바신도 차례지지 않아서 나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뒤축이 달아 떨어진 운동화를 아버지가 산수부업을 해서 잡은 덜이긴 멧대지나 노루가죽으로 깁고 또 기워서 신고 다니였다. 그 신도 아끼느라고 8리나되는 학교를 갈때는 손에 들고 뛰여가다 가도 학교에 거의 도착하면 학교 대문밖에서 흙이 게발린 자욱을 팔소매로 닦고서야 정중히 신을 신고 들어갔다. 양말은 더구나 입밖에 번져보지도 못하였다. 늘쌍 아버지가 목재판에서 끼던 로동장갑을 발 가락에 끼고 발 뒤축에는 낡은 솜을 밀어 넣고 발 바닥에는 옥수수 잎이 아니면 운수가 좋으면 노루나 토끼 메대지 가죽을 깔았다. 그것도 학교로 갈 때만 차례졌는데 고약한 누린 냄새가 난다고 한책상에 앉았던 계집애가 코를 막고 돌아 앉아서 챙피를 당하던 일이 눈 앞에 선하다. 책 가방도 없어서 사시장철 두부를 앗다가 버린 배보자기로 만든 낡은 책보를 끼고 다니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온 집안에 범같은 새끼 다섯이나 기르면서 삼십대 중반이나 되였을 한창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는 정사를 어떻게 치뤘을가? 그래서 학교에 갔다오면 목재판에 갔다온 이튼날이면 대낮에 구둘에 이불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게다 원인이 있었겠는데 누나들은 그런것도 모르고 대낮에 이불은 왜 펴놓았는가고 어머니를 핀 잔줄때면 몸 둘바를 모르던 아버지 어머니가 입만 벙긋하고 서산을 쳐다보던 일이 눈앞에 선하다.
우리보다 좀 낫게 사는 친구들의 집에 가서 단수 안에(단수란 무늬 고운 슈츄리나무 행 백나무로 곱게짠 이불농짝을 말함) 꽉채운 첫날 이불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볼 때면 언젠가 나도 크면 돈을 많이 벌어서 색상이 특별한 농짝을 짜 놓고 농짝 속에 첫날 이불을 꽉 채워 놓으리라 다짐했다.
누나들이 시집 비유를 하기 시작하자 은근히 속을 썩인 것은 당연히 부모들이였다. 가난한 집에 봉황이 날아든다고 그냥 와룡산골에 두기는 아까운 누나들이 미모가 동네집 총각들이 무던한 줄 모르고 젠장 공인총각들만 불러와서 집안의 시끌벅적했다. 큰 누나가 시집을 간다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 련달아 둘째 누나가 시집 비유를 내서 온 하루 불똥이 꺼진 화로를 붇들고 한숨만 내쉬던 아버지는 말없이 선톱 기술을 믿고 대부금을 맡아다 놓고 목재판으로 떠나갔다. 어머니는 사람 먹거리도 장만하기 힘든 세월이라 돼지 치기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범의 코등의 돈도 떼다가 급한 불부터 끈다고 돼지 치기를 믿고 부표와 솜표까지 얻어다가 첫날 이불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명색이 딸들을 시집 보내는데 온갓 심혈을 다 넣어서 시집을 보내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삐보내건만 그때나 이때나 딸년들은 본가집 도적이라더니 두 딸이 그것도 이붓딸 이라고 없는 밑천에 첫날 이불을 꾸미는 것만 해도 분에 넘친 사랑을 베푸는 어머님을 몰라보고 이불 두채씩 네채를 해 내란다. 코 열고도 답답한 일이라 기막힌 일만 터졌다.
얼렁뚱땅 큰딸을 요행 시집 보냈는데 련달아 작은 누나가 시집을 간다고 설치며 어머니를 못 살게 굴때 배 다른 형제라 형님들은 끝없이 괘씸해도 바른 말 한마디도 못 하는데 이럴때면 으레히 내가 큰소리치기 마련이다. 나는 보다 못해 괘씸해서 누나를 죽일년이라고 입에서 구렁이 나가는지 뱀이 나가는지 사정없이 욕을 퍼부어서 누나는 밥을 먹다말고 뛰쳐나가서 구새목에서 장밤 눈물 흘리던 일이 지금도 가슴을 허빈다…
두배치 배다른식구 넷이나 키우는 우리 부모들이 옷 고름썩인 가슴아픈 사연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래도 어쩌다 전주리씨네 가문에 갖은 풍파를 헤가르고 내가 태여난게 천만다행이였다.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형님 누나들은 나만 갖고 아름할수 없는 기대와 희망을 걸고 무척 관심하였다. 잘 때마다 한이불 덮고 자는 내가 허리가 나간다고 아버지 어머니 형님들이 들썽이는 이불 깃을 꽁꽁 여며주어서 추운 줄을 몰랐는데 키골이 커 가면서 서로서로 양보하며 자다보니 잠을 설친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큰 누나가 시집을 간 이듬해에 련달아 시집을 가게된 둘째 누나의 첫날 이불 때문에 온 집안에 부산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는 또 다시 목재판에 가서 벌목을 한답시고 잔치준비를 하라고 선불금을 내왔는데 작년에 선대한 대부금을 짤리우고 나니 얼마되지 않아서 첫날 이불은 둘째치고 첫날 옷감도 준비하지 못해서 형님들은 동지섯달 찬바람을 헤가르며 이른새벽부터 갈부업을 나샀다.
잔치날은 빠득빠득 다가오는데 첫날 이불을 갖추지 못한 어머님은 온 집안에 두 채 밖에 없는 이불을 바라보며 한숨만 풀풀 내쉬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큰누나가 망덕만한 첫날 이불을 뻐스에 싣고 올줄이야 시집갈 날이 아득바득 다가 올수록 온갖 투정을 다부리던 작은 누나는 기뻐서 금시 입이 함박만해 졌다.
쥐굴에도 해볓이 들날이 있다고 하더니 첫날 이불 때문에 울고 불고 하던 온 집안에 화기 애애한 기분이 흐르는데 밤을 자지 않고 감개무량해서 첫날 이불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둘째 누나는 끝내 자기 바느질 솜씨를 알아보고 대판 싸움을 벌릴줄이야 알고보니 큰누나가 자기가 가지고 갔던 첫날 이불을 이고왔던 것이다.
기막힌 일이다. 온 집안에 첫날 이불을 한 복판에 놓고서 눈물투성이 되여서 생떼 질 쓰는 둘째 누나를 바라보며 모두들 함구무언이다. 뭐라고 달랠수도 욕할수도 없었다. 언니보다 잘 나지는 못 해서 높은 요구를 제기한 것도 없는데 첫날 이불만은 내 손으로 만들어서 시집 가겠다던 작은 누나에게 반반한 이불 한채 갖춰주지 못한 어머님은 부뚜막에 내려앉아 죄없는 부지깽이만 만지며 피눈물을 흘린다.
누구도 이장면을 두고 말할권리가 없었다. 씨다른 형제간이라 사발에 끼운 종지 같은 내가 누구보다 발언권이 당당했다. 무조건 큰누나의 의사에 따르라고 수선 발등에 달린 불부터 끄고보자고 야단치는 내가 갑자기 어른이라도 된 기분이다. 내가 크면 꼭 더 멋있는 비단천으로 첫날 이불을 갖춰 주겠으니 근심말라고 어린 가슴을 팡팡 두두리는 철모르는 어린 것이 엉뚱한 다짐에 설복되였는지 아니면 귀밑에 찬서리가 새하얗게 내리는 이붓어머님의 퉁퉁부운 얼굴에 진땀을 흘르는 뜨거운 정성에 목이 멨는지 둘째 누나는 결국 큰누나의 첫날 이불을 안고서 시집을 갔다. 결국 첫날 이불 한채를 가지고 딸이 둘이나 시집 간격이 되였고 첫날 이불 한채를 네채로 쓴격이 되였는데 빌려 갔는지 빌려 줬는지 출가 외인들이 오늘까지 가난하고 말끔한 가정살림 밑바닥이 드러날가봐 까딱 번지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비밀에 부쳤다.…
행여나 큰누나가 살았더라면 첫날 이불 때문에 고민하던 기막힌 과거사를 기꺼이 담론하련만 항미원조에 간 큰형님이 살아서 돌아 왔더라면 꼭 약속한대로 큰돈을 벌어서 첫날 이불을 다시 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든다…
나는 농짝에 꽉 들어찬 안해가 가지고 온 소중한 첫날 이불을 바라 볼때마다 첫날 이불 때문에 속이 재가 되여서 부뚜막에 내려앉아 몸 둘바를 몰라 죄없는 부지깽이를 만지작 거리던 어머니의 주름 덮힌 얼굴이 하얗게 떠오른다. 입쌀이 드세서 왈패라고 불리웠던 이붓 딸을 둘씩이나 손톱이 다슬게 이부자리를 꾸며준 어머님이 마음 고생인들 오죽했으랴 더구나 부표로 목을 쥐우던 모진 세월에 이붓 어머니의 최선을 다 바쳐 한 맺힌 한뜸한뜸 여며간 첫날 이불속에는 한 맺힌 사랑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오늘도 어머님이 하늘나라에서 지루하게 유아차에 태워가지고 다니던 손주놈을 늘쌍 강아지처럼 곱다던 손주놈을 장가 보낼때 고래등같은 별장을 장만해 가지고 온 집안 가전기구를 꽉 채우고 연길시 국자가 메여지게 외재차를 두줄로 늘여 세우고 부르하퉁 량안이 들썽이게 잔치를 차레주던 기꺼운 그 날을 눈박아 보셨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모르긴 해도 어머님은 하늘나라에 갔어도 두 딸에게 온 천한 첫날 이불을 갖춰주지 못 한게 마음에 걸려서 오늘도 새하얀 파파머리에 바느실을 긁으시며 첫날 이불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크고 작은 로천시장과 줄지어선 백화상점마다 오리털로 만든 벼라별 이불들이 쌔고 넘쳐나는데 궁전같은 별장에서 비단 이불을 덮고 구름우에 둥둥 떠가는 옥황상제이런가 기를펴고 활개치며 살아가는데 어머님은 아직도 엣날인 가고 첫날이불을 만들고 계시지나 않으십니까?...
아! 나와 누나들 마음에 부모님의 마음에 천근만근 가난의 바위 돌로 짖눌리웠던 첫날 이불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없다. 나는 오늘도 장모님의 뜨거운 손길이 담뿍 깃들어 있고 아내의 비단같은 마음이 스며있는 첫날 이불을 바라보며 두번이나 시집을 가고 오던 그 옛날 첫날 이불 넘어로 주름덮인 어머니의 어설픈 얼굴이 또 다시 아련히 떠 오른다. 한평생 비단이불 한번 못 덮어보고 한생을 마감한 우리 어머니 지금은 첫날 이불 대신 자가용과 아빠트 열쇠를 주고 받는 현실을 보았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가 세월이 천만년 흘러도 어머님이 꾸며준 첫날 이불만큼 따뜻한 이불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2008년 11월 7일 립동을 맞으며
허수아비
이태근
나는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 밭이나 논머리를 외로이 지켜선 허수아비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있다. 농촌에서 나서 자라서 가을 들판을 사랑하는 리유도 있지만 그보다 가을바람에 소매자락 펄럭거리리는 허수아비를 얼없이 바라보노라면 저승에 가서도 잊지못할 그리운 그녀의 얼굴이 서글프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쌀독에 거미줄치고 가마목에 찬서리가 서리던 가난한 살림에도 해마다 기대해보는 가을이 오면 힘들게 가꾼 곡식 한알이라도 날새들에게 빼앗기지 않겠노라고 있는 밑천을 다 털어서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고 낮이면 논밭과 조밭머리에서 꽹과리를 두드리고 밤이면 감자밭머리에서 퉁포를 쏘면서 메돼지와 결전을 벌리건만 흉년새월일수록 사람처럼 목숨걸고 달려드는 날짐승들을 말려내는 재간이 없었다. 세월에 쪼들리고 짐승에게 개평당하고 나면 차례지는것은 새가 쪼아먹다 남은 쭉정이와 메돼지가 먹다 남은 새알감자를 파야 했으니 분통이 터지지 않을수 없었다.
농사가 흉작이면 산열매가 풍작이 든다고 하건만 산에 흔해빠진 도토리며 버섯을 두고도 밤이면 감자밭을 묵사발을 만들고 조밭을 북데기로 만드는 메돼지와 참새들 때문에 못살 고장이라고 이사짐을 싸는 집들이 차차 늘어갔다. 산짐승과의 결사전은 마을의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사명으로 되였다. 민병들에게 맡겨진 이 준엄한 사명은 당 적극분자들을 고험하는 시금석으로 되였다. 당시 민병패장이였던 나는 어떻게 하면 메돼지와 새떼들이 조밭이나 기장밭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겠는가고 뇌즙을 짜낸 끝에 산전밭 머리에는 줄총을 놓고 논밭머리에는 바람개비를 달고 눈먼바람에 새끼줄에 달아맨 빈 깡통들이 줄창 소리나게 하였다.
밤이면 38식보총을 들고 밤을 패며 감자밭을 지켰다. 부녀대장이자 민병부패장이고 사격술이 전공사에서 두번째라면 억울해 할 미옥이는 똥담도 크지 남자들도 저어하는 곰바위골 감자밭 밤보초까지 따라나섰다. 다 숙성한 처녀와 단둘이서 긴긴 밤을 함께 딩군다는것이 께름직했지만 입당신청서를 낸 미옥이는 무쇠처녀라 무서운게 없이 막무 가내로 따라 나섰다.
서리찬 하늘에 찬별들이 깜빡이는데 산속 캄캄한 밤나무밑에서 나와 미옥이는 나란히 엎드려 메돼지들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그날따라 한밤중도 기 울었건만 메돼지는커녕 쥐새끼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가랑잎을 담요처럼 푹신하게 깔고 처녀총각이 거의 붙다싶이하고 누워있자니 싱숭생숭해났다. 어둡기전에는 그래도 《무쇠처녀>>라고 롱담도 걸며 대채의 곽봉련이 되겠노라고 장백의 호랑이도 때려잡는다고 큰소리치던 미옥이는 밤이 점점 깊어가면서 부엉이가 구슬프게 울어대고 여기저기서 웬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밀려오면서 말초신경까지 건드리자 점점 내곁으로 바싹 다가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갑자기 감자밭머리에서 개똥불이 반짝이면서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것이 어렴풋이 안겨왔다.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분명 메돼지였다. 내가 한창 총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메돼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있는데 갑자기 미옥이가 내 가슴팍을 마구 파고들지 않겠는가! 순간, 온몸이 찡해나면서 뜨거운 피가 꺼꾸로 솟구치고 심장이 벌렁벌렁 밖으로 튀여나온다.평소에 물찬제비런가 웬간한 총각들을 남자로 치급하지 않고 비싸게 놀던 미옥이가 지금 정신없이 내 정욕의 불타는 가슴에 모닥불이 활활 타번지게 한다.
메돼지가 다가올수록 미옥이도 점점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갑자기 저도몰래 메돼지고 총이고 구중천에 날려버리고 꿈결에도 안아보고싶던 미옥이를 꽉 끌어안았다. 미옥이도 지금 이순간을 기다렸다는뜻 죽어라고 가슴에 파고든다. 나는 본능적으로 응석부리는 그녀의 입술을 찾아서 키스벼락을 퍼부었다. 미옥이도 어망결에 입술을 내맡기고 내가 하자는 대로 몸을 맏기는것 같았다. 내가 점점 웅성의 본능으로 번져지자 어쩡정해서 어쩔바를 몰라하던 그녀는 내 손이 방향없이 허우적거리다가 서툴게 그녀의 젖가슴을 헤집고들자 갑자기 내손을 꽉 깨물었다. 그순간 미옥이도 은연중 흥분된것이 라고 제 좋게만 해석한 나는 미옥이가 버둥거릴수록 더욱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정렬의 도가니속서 자맥질했다.
발정난 메돼지런가 씩씩거리는 나를 물리치지도 못하고 코앞에서는 사람도 잡아먹는 날짐승 메돼지가 씩씩거리는 판인지라 오도가도 못하게 된 미옥이가 어느결에 보총을 더듬어 잡았는지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그제야 느닷없이 벼락치는 총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섰지만 메돼지는 보이지 않고 어렴풋이 밝아오는 새벽빛속에 미옥이가 가냘픈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있었다. 그제야 리성을 찾은 나는 후회막급했지만 이미 깨여진 독이요 쏟아진 물이였다…
뽕도 딸겸 님도 볼겸이라더니 그렇게 생각지 않게 미옥이를 품에안고 밤을 새운 그이튼날 나는 그만 실성한 사람처럼 거미줄뛰는 천정을 바라보며 한숨만 펄펄 내쉬고 있는데 미옥이가 찾아왔다. 성난암사자마냥 펄펄 뛰리라고 제방귀에 놀란 노루런가 나는 고방구석에 꼼짝않고 숨어있는데 웬걸 멧돼지가 살판치겠는데 빨리 산으로 가지않고 뭘 꾸물거리느냐 어제 저녁일은 벌써 잊은듯 재촉한단다. 우리는 이렇게 산돼지를 쫒다가 참사랑의 늪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청춘의 가슴에 모닥불이 일었던 그날 이후부터 단짝이 된 우리는 조밭에서 참새를 쫓을대신 꽹고리를 허공에 두두리며 사랑놀이에 신들렸고 감자밭에 메돼지야 오든지 말든지 우둥불 피워놓고 드문드문 밤하늘에 빈총질이나 하면서 열련의 밤이 언제 새였는지도 몰랐다….
그후 내가 추천을 받고 대학에 가면서 우리들의 사랑에 금이가게 되였다. 어찌보면 첫사랑의 맹세에 충성하지 못한 장본인이 나였지만 미옥이가 나를 원망하지 않는게 더구나 나를 모진 량심의 질책속에서 시달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도 우물안에 개구리가 고니고기를 먹을생각 하지않으려고 실련의 바다속에서 헤매였겠건만 그 끝내 억지로 참아내고 오늘 이때까지 속에다 나를 묻어버린게 더구나 나를 울리였다. 어찌나 량식고생에 실물났으면 미옥이가 현 량식계통의 직원에게 시집가서 지금까지 괜찮게 산다고 들었다.그런데 이상하지 그후 내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을을 달래보려고 고향친구 모임을 여러번 조직했는데도 그녀는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왜 나를 외면하는지 알고있었다.
류수와같이 흐르는 세월속에서 나는 그녀만 잘되였으면 하고 은근히 그녀의 일거일동을 지켜보는데 들리는 소식마다 시원치 않았다. 풍문에 의하면 한때는 내노라던 그녀의 남편직장 량식계통도 파산되였단다. 애들을 둘식이나 둔 그녀의 가정도 행복의 대안에 이르지 못하고 개혁개방의 세찬파도에 밀리워서 오락가락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가슴이 쓰라려났다.물건너 불난집을 바라보듯 참회에 모대기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찾아갈수도 없고해서 전화만 몇번했다. 경제상에서 좀 도와주련다고 청들었건만 그 옛날 감자밭의 미옥이가 아니란다. 긂어죽어도 제대에 목을 매고 죽는단다. 한사코 사절하했다. 내가 가련하게 생각할수록 반발심이 생긴단다. 이대로 내버려 두는것이 자기를 도와주는 것이란다. 배반한 사랑, 때늦은 충정은 한이맺힌 한녀자의 마음의 오솔길에 통할수 없는 최악의 함정을 파놓았다.…
아! 세월이 갈수록 그리워지는 고향마을의 허수아비! 그 허수아비가 어찌 고향의 넋일수 있으련만 오늘도 고향땅에서 오가는 비바람, 찬서리 맞으며 외롭게 서있을 서글픈 허수아비를 그려보며 첫사랑에 죄진 내 비리고 비린 마음을 짓씹고 또 짓씹어 삼킨다….
미옥의 마음속에는 내가 영원히 속은 비여 두팔만 허우적거리는 조이밭에 허수아비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떠난후 고향의 들판에서 허수아비와 동무하던 미옥의 쓰라린 마음에 첫사랑을 배반한 내가 얼마나 괘씸했으면 수십번 보내도 답장이 없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뒤등에 조이밭에 외롭게 서있는 허수아비를 달랑 그려 보냈을가 ? !…
아! 다하지 못한 사랑은 내 가슴에 씨알처럼 가득한데 나는 한 녀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허수아비로 살아 남아야는가? 또다시 그 옛날 고향의 감자밭 언덕으로 되돌아 갈수는 없을가? 나는 오늘도 황금파도가 하늘가로 물결쳐가는 들판을 지켜선 허수아비를 그려본다, 아니 어쩌면 나도 저 허수아비처럼 한평생 속이 텅빈 사람으로 영원히 발편잠을 자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옥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사랑은 배반한 사람이 이긴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
오, 내 령혼이 슴배여 있는 고향의 넋이여! 내가 버린 시골의 사랑이여!
2008년 5월6일 습작 2009년 6월 12일 수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