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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의 어벙이
이 범 선
세 마리 참새―짤짤이와 어벙이와 왕치는 그날 아침도 덕수궁 세종대왕님 등 뒤 밴치 위에 나란히 앉아서 밤새 언 몸을 아침 햇살에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떨고 있는 건 어벙이였습니다. 잔뜩 웅크리고 온몸의 털을 부수수하니 세운 어벙이는 영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왕치는 셋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어벙이처럼 웅크리지는 않았지만 으스스 기분이 안 좋기는 그도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는 묵묵히 앉아서 저만치 세종대왕님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직 짤짤이 하나만 까불거렸습니다. 빨갛게 언 가는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고, 날개도 펴서 흔들어보고, 그러면서 주둥이도 가만두지 않았습니 다.
“야, 춥다고 웅크리고 있으면 더 춥다이. 나처럼 운동을 해라 운동을. 해해해. 아, 기분 좋다! 여기가 어디야. 바로 서울이란 말이다 서울. 또 그 서울 중에서도 한복판 대궐이다 이 말이야! 덕수궁. 야! 정말 얼마나 신나냔 말이야. 해해해. 하낫 둘, 하낫 둘. 자, 춥거든 나처럼 운동을 하란 말이다. 하낫 둘, 하낫 둘. 야, 신난다!”
“이 자식아, 바람 일구지 말아. 그렇잖아도 추운데 옆에서 까불어대니 이거야 어디. ……근데 대궐이란 게 어째 이렇게 추우냐. 눈도 안 쌓이고 그리 추운 겨울도 아닌데도 이 지경이니 제길!”
덩치가 커다란 왕치가 주둥이를 뚜하니 내밀고 투덜거렸습니다. 어벙이는 아예 말도 하기가 싫었습니다. 아침 볕이 비치기는 하지만 밤새 떤 몸이 잘 녹질 않았던 것입니다.
“어벙아. 니 와 말이 없나. 어디 아픈가?”
왕치가 물었습니다. 그래도 왕치는 그 몸이 큰 만치 제법 형처럼 행동했습니다.
“아니. 그저 추워서 그래.”
어벙이는 그 어병한 눈을 한번 꿈벅거리며 기운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밤부터는 우리두 가네 서울치들처럼 굴뚝에 가서 자잔 말이다!”
짤짤이가 말했습니다.
“난 싫다!”
어벙이가 얼른 그렇게 반대하며 짤짤이를 한번 흘겼습니다.
“그래. 나도 그건 싫어.”
왕치도 그러면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하긴 나도 그래. 따스하긴 하지만 그 기름 냄새에 며리가 아프구 구역질이 자꾸 나서 견딜 수가 없단 말야. ˙……그런데 서울치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지.”
짤짤이도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가네들은 코가 썩어서 냄새를 못 맡는단 말야.”
어벙이가 내뱉듯이 말했습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습니다.
“오늘루 우리가 서울 온 지 며칠째니.”
왕치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한 20일 되나?”
짤짤이가 아직도 팔운동을 하면서 대꾸했습니다. :
“20일이 뭐야. 벌써 42일째야. 한 달 하구두 열흘이 더 넘었단 말야!”
어벙이가 두 어깨를 잔뜩 치켜들어 그 속에 목을 묻으며 시무룩히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됐을 거야.”
왕치가 자리를 약간 옮겨앉았습니다.
“강원도에는 요즈음 눈이 많이 왔다던데. 우리 마을에서는 다들 먹을 것을 찾아다니느라구 지금쯤 야단들일 거다. 그지?”
짤짤이가 입가에 미소를 사르르 흘리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왕치와 어벙이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청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품이 또 마을에 두고 온 부모님과 친구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걱정없으니까 뭐. 잘 왔지, 정말 잘 왔지. 히히히.”
짤짤이는 한 다리로 깡충깡충 뛰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습니다.
왕치, 어벙이, 짤짤이 그들은 강원도 두메 어느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지난 늦가을이었습니다. 산마다 불타듯이 빨갛게 단풍이 들어 그야말로 절경을 이루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낯설은 참새가 한 마리 마을로 날아들었습니다. 얼굴은 병자처럼 하얀데 옷을 깨끗이 빼어입은 그는 제법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왕치와 어벙이와 짤짤이는 그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넌 누구야?”
왕치가 가슴을 펴 내밀며 물었습니다.
“나?…… 글쎄, 누구라고 할까.”
그 병쟁이 같은 친구는 당황하는 빛도 없이 오히려 왕치를 깔보는 것 같은 그런 태도로 빙긋이 웃었습니다.
“으응. 이게 건방지게…….”
왕치가 주먹을 불끈 쥐며 한 발 다가섰습니다. 그러자 그 병쟁이 같은 녀석은 또 빙긋 웃었습니다.
“나도 말이야, μ도 너희들과 같이 이 마을 출생이야.”
“그래? 전혀 못 보던 얼굴인데.”
왕치는 등 뒤에 서 있는 어벙이와 짤짤이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너희들은 혹 전에 본 일이 있느냐 하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벙이는 그저 어벙하니 입을 반쯤 벌리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짤짤이는 평소에 그리도 잘 짤짤거리던 주둥이를 그저 꼭 다물고 눈만 깜박거렸습니다. 그러자 그 낯선 친구는 그들 셋의 사이를 혜치고 지나서 마을 어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마을 어른들한테 누군가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참새들은 누구도 그가 묻는 참새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낯선 참새는 쓸쓸한 얼굴로 돌아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오, 그자들!”
노망이 들었다고 아무도 상대를 안 하는 늙은 참새가 손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벌써 전에 이 마을을 떠났어. 그들에게는 골골 앓기만 하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어린 아들이 어쩌다 없어졌어. 그래 그들은 그 아들을 찾아서 마을을 떠났지!”
늙은 참새는 기침을 콜록거리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낯설은 참새는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며칠을 마을 앞 느티나무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왕치, 어벙이, 짤짤이는 그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넌 어디서 왔니?”
왕치가 물었습니다.
“서울서.”
“서울이 어딘데?”
어벙이가 물었습니다.
“먼 데.”
“얼마나 먼 데? 산을 몇 개나 넘어야 하니?”
짤짤이가 물었습니다.
“아주 멀어. 산을 얼마든지 많이 넘어야 해.”
“그 서울이란 덴 어떤 마을이지?”
어벙이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낯선 녀석이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습니다. 어병이는 또 어벙해졌습니다.
“서울은 마을이 아니야.”
그 병쟁이 녀석은 아주 한심하다는 듯이 셋을 돌아보고 나서 서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왕치, 어벙이, 짤짤이 셋은 그의 이야기에 온전히 취해버렸습니다. 그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넌 어떻게 그 먼 서울엘 갔지?”
짤짤이가 물었습니다.
“응. 나도 처음엔 그런 데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어. 지금 너희처럼 말야.”'
병쟁이 녀석이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난 늘 몸이 아파서 비실비실했단 말야. 그래 난 친구들과 어울려서 앞산 뒷산으로 마구 날아다니질 못했어. 그날도 그랬지. 나는 대추나무 가지에 앉아서 졸고 있었어. 그런데 어떤 어린애가 날 붙잡았지 뭐야.”
“저런!”
짤짤이가 눈을 동글하니 떴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화위복이 됐지.”
“전화위복이 뭔데?”
어벙이가 물었습니다.
“화가 도리어 복이 됐단 말야.”
“응.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 애가 서울 사는 애였어. 나를 종이 봉지에다 넣어가지구 서울로 데려갔지 뭐야.”
“응, 그랬구나. ……그래서 지금도 그 애하구 있니?”
짤짤이가 물었습니다.
“아니야. 그렇게 그때 서울까지 가긴 갔는데 난 거의 죽게 되었어. 그렇지 않아도 골골하던 나니까.”
“저런!”
왕치가 혀를 찼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 애는 날 쓰레기통에다 버렸지 뭐야. 그 뒤는 나도 몰라. 얼마 있다 보니까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하잖겠어. 나는 애써서 일어났지. 밤이더구먼. 어느 쓰레기 버리는 곳이었어. 거기서 나는 며칠을 앓다가 겨우 날 수 있게 됐어. 그런데 참 운수 좋게두 난 덕수궁이란 대궐 안에 살고 있는 참새 아가씨를 만났지 뭐야.”
“야아! 그럼 지금 대궐에 살고 있는 거야?¨
“그래. 대궐에서 살고 있지.”
“야. 좋겠다!”
“좋지! 그래서 이번에 어머니 아버지를 모셔가려구 왔었는데.”
그는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대궐 안 이야기를 자세히 이 야기 해주었습니다.
그건 그대로 천국 이야기였습니다.
서울이란 곳에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거긴 밤과 낮이 없다 했습니다. 잠깐 어딜 가는데도 차를 타고 다니고 먹을 것 입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그 밖에 무슨 물건이든지 그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했습니다. 대궐은 그런 서울 한복판에 있는데 그 대궐 안은 서울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했습니다. 오만 가지 꽃이 사철 피어 있고, 나무들이 죽죽 하늘을 찌르고, 꿈나라같이 분수가 솟아오르고 그리고 그 사이를 선남선녀들이 한가히 거닐고.
“야, 그거 참 꿈나라구나!”
어벙이가 소리를 렀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꿈나라지. 이런 산골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
“그럼 너는 거기서 뭘 해 벌어먹고 사나?”
왕치가 물었습니다.
“일? 일은 뭐 때문에 해.”
“아니 그럼 일을 안 한단 말야?”
“일을 뭐 때문에 하냐 말야!”
“허 참. 일 안 하고 그럼 어떻게 살아.”
“글쎄 그러니까 천국이라고 안 해!”
“정말 일을 할 필요가 없단 말야? 먹이를 찾아다녀야 하잖아.”
“안 한다니까. 그저 그 좋은 대궐 뜰에서 놀든가, 나무 위에서 낮잠을 자든가, 그렇지 않으면 잔디밭에서 뒹굴든가, 뭘 하든지 말대로야. 그래도 사람들이 먹을 것을 얼마든지 줘!”
“야아, 그거 참 신나겠다!”
이번에는 짤짤이가 소리 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주는 먹이가 그게 또 얼마나 기가 막히게 맛있는지 알아?”
어떤 건데?”
“어쨌든 별의별 것이 다 있지. 갖가지 과자, 빵, 때로는 아이스크림까지 준다구. 아니, 껌을 주는 사람도 있어. 그렇지만 그것 먹으면 안 돼. 껌을 한번 먹었다가 부리가 딱 마주 달라붙어서 아주 내 혼이 단단히 났어. 그러다가 목이 마르면 푸르르 날아내려 분수대의 물을 마시고. 어쨌든 더할 수 없이 좋은 곳이지.”
“그거 우린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과자, 빵, 껌, 아이스크림, 분수. 그게 다 뭐야?”
“그건 그렇고, 그렇게 제 맘대로 놀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나?”
“뭐라고 하긴 누가 뭐래. 만일 그런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도리어 혼구멍이 나지!”
“야하! 그거 참 묘한 세상이다. 설마 그런 세상이 있을라구?”
“허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 아는 모양인데 사실이라구!”
그렇게 며칠을 느티나무에서 지내던 얼굴이 하얀 참새는 어느 날 다시 서울로 올라가겠노라고 했습니다. 왕치, 어벙이, 짤짤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병쟁이같이 얼굴이 하얀 서울 참새가 참 부러웠습니다. 왕치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습니다.
“야, 우리들도 너와 같이 갈 수 없겠니?”
“서울에 ?”
“그래. 안 되겠지, 역시. 그렇게 좋은 곳엘 우리 같은 것들이…….”
“아냐. 가고 싶으면 누구든지 갈 수 있어. 같이 가도 좋아.”
왕치, 어벙이, 짤짤이는 너무 좋아서 와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었습니다. 왕치와 어벙이와 짤짤이는 서울로 따라 가기로 했습니다.
“마을 안에 소문내지 말자. 너무 나도 나도 해서 너무 많아지면 혹 서울서 오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니까.”
짤짤이의 말이 었습니다.
“그리구 아버지 어머니한테도 이야기하지 말고 가자. 이야기 하면 못 가게 할지도 모르니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그저 세상에서 이 산골 마을이 제일 좋은 곳으로 알고 있거든.”
왕치의 말이었습니다. 어벙이는 그들 둘의 말을 들으며 눈만 껌벅거렸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와 또 하나 그가 좋아하는 얌전이한테만은 말을 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셋은 다음 날 새벽,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고 서울 참새를 따라 몰래 마을을 떠났습니다.
영마루를 넘어서 마을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도 그들은 서운하기보다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렇게 몇 개 산봉우리를 넘어서자 서울 참새는 그들 셋을 아주 이상한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그들은 쇠줄 위에 나란히 앉아 기다렸습니다. 그건 나뭇가지보다 매끈거리는 것이 앉아 있기에 과히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기다리자 아주 굉장한 소리가 나면서 집채 같은 괴물이 저만치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왕치, 어벙이, 짤짤이는 깜짝 놀라서 쇠줄에서 날아올랐습니다.
“놀랄 거 없어. 저게 기차라는 거야.”
서울 참새가 웃었습니다.
그들은 서울 참새가 시키는 대로 그 괴물의 잔등에 올라앉았습니다. 그 괴물은 그들이 등에 올라앉은 것쯤은 느끼지도 못하는 듯 바람을 일으키면서 마구 달렸습니다.
“야, 그거 참 빠르다!”
“우린 그저 가만 누워 있어도 달린다.”
그들은 벌써부터 천국의 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루 종일 달렸습니다. 왕치, 어벙이, 짤짤이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괴물이 달리기를 멈추었습니다.
“자, 이제 다 왔어. 내리자.”
서울이라 했습니다. 서울 참새가 먼저 날아올랐습니다. 그들 셋도 뒤따랐습니다. 집, 집, 집, 그리고 사람들, 사람들, 또 그 무엇인지 딱정벌레 같은 것들이 빨빨거리며 기어다니고, 그들 셋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는가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울 참새를 놓치지 않도록 꼭 뒤따라 날았습니다. 얼마 안 가서 높은 담을 둘러친 큰 기와집
들이 보였습니다.
“다 왔다. 여기가 대궐이다.”
서울 참새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들 셋도 뒤따라 내려갔습니다.
거기가 바로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덕수궁이었습니다.
서울 참새가 이야기한 것은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들로 산으로 날아다니며 애써 먹이를 찾을 필요도 없었고 사람이나 솔개미를 경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데리고 놀기는 할망정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천국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는 걸 모르고 마을 참새들은 평생을 고생만 하다니.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지. 사람들은 뭐든지 다 준다. 어제는 어떤 신사가 피우던 양담배까지 던져주었다. 어쨌든 여기는 낙원이야!”
어벙이가 신이 나서 지껄였습니다. 왕치도 짤짤이도
“그래, 낙원이다!¨
“밖에서 고생하는 참새들은 정말 억울하다!”
했습니다. 밤이면 그들 셋은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울엔 밤도 낮도 없다!”
“그래. 정말 희한한 곳이야.”
“마을 참새들이 가엾은 생각이 들어. 그들은 오늘도 먹이를 찾느라구 흙을 쑤시고,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쫓기고 있겠지?”
“그렇지, 그러구도 뭐 변변히 먹기나 하나 어디!”
“요즈음은 가을이니 그래도 곡식이 많을 거야. 이제 겨울이 되고 눈이나 내리면 참 고생하지. 늘 배가 고팠지.”
“그런데 여기선 가만있어도 사람들이 얼마든지 가져다주니 참!”
“그런데도 이렇게 밤이 되면 난 마을 생각이 난다. 너흰 안 그러니?”
어벙이가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습니다.
“야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해, 야!”
짤짤이가 손을 내저었습니다.
“생각이야 나지. 가족들, 친구들. 허지만 우리는 정말 행운아야!”
왕치의 말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대궐 안에서의 새 생활이 놀랍고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뭇가지에 앉아서 자고 난 그들은 아침이 되면 우선 잔디밭에서 아침 체조를 했습니다. 서울에 온 후로는 아무래도 운동이 부족했습니다. 시골서처럼 먹이를 찾아서 앞들이나 뒷산을 날아다닐 필요도 없었으려니와 담 밖의 길은 전혀 몰랐고 게다가 오만 가지 괴물들이 씽씽 바람을 가르며 달리니 자칫 잘못하면 부딪쳐 박살이 날 것 같아서 그들은 한 발도 담 밖으로는 나가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생 처음으로 아침 체조를 해야 했습니다. 그다음은 분수로 가서 세수를 했습니다. 분수라야 그건 저 시골 산골짜기를 흐르는 석간수에 비할 것도 못되었지만 그래도 그 하늘로 죽 솟았다가 떨어지는 물줄기의 신기한 멋에 그들은 재잘거리며 몇 번이고 얼굴을 씻곤 했습니다.
그들을 서울로 데리고 온 그 얼굴이 하얀 참새는 먼발치서 그들을 바라보고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 그렇게 셋을 데려다놓고는 다음부터 될수록 그들을 피했습니다. 그의 애인 참새가 뭐라 했던 것입니다. 어디서 그런 촌뜨기들을 데리고 왔느냐, 창피하지도 않으냐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 셋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피했습니다.
사실이지 그들 셋은 그 대궐 안에서 보고 듣는 모든 일이 그저 신기하고 놀라운 촌뜨기였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짤짤이가 더 촌티를 내고 다니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까불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날도 그들 셋은 매점 앞으로 갔습니다. 거기가 언제나 먹을 것이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무엇을 먹으면서 부스러기를 그들에게 던져주곤 했습니다. 그들 셋은 신바람이 나서 그것을 주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와하하 하고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어벙이와 왕치는 깜짝 놀라서 푸르르 나무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짤짤이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무 밑을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짤짤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큰소리로 웃었을 뿐 아니라 한 곳에 빙 둘러섰습니다. 어병이와 왕치는 이상하다 했습니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몇 가지 앞으로 옮겨나가 사람들이 둘러서서 들여다보고 있는 속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저기 혹 짤짤이가 잡힌 게 아냐?”
어벙이가 눈을 둥글하니 떴습니다.
“글쎄, 그런 것 같은데.”
왕치가 좀 더 가까운 나뭇가지로 옮겨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빙 둘러서서 거기 한가운데 굴러 있는 비닐 과자 봉지를 보며 웃고들 있었습니다. 무슨 과자를 넣었던 것인지 알록달록한 비닐봉지가 거기서 껑충껑충 춤을 추다가 딩굴딩굴 구르다가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그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짤짤이 같았습니다. 아마 정신없이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먹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봉지 속에까지 기어들어갔던 모양인데, 갑자기 사람들이 웃어대는 바람에 나올 구멍을 잃어버리고 그 속에서 마구 날뛰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꼭 과자 봉지가 춤을 추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손뼉까지 치며 점점 더 웃어대었습니다. 그러자 금테 모자를 쓴 경비원이 무슨 사곤가 하고 달려왔습니다. 거기 춤추는 비닐봉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얼른 비닐봉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짤짤이를 끌어내었습니다. 짤짤이는 온몸의 털이 모두 헝클어져서 그 몰골이 보기 딱했습니다.
“여러분.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이 녀석은 이게, 어쩌다 시골서 날아든 촌 녀석인데 워낙 과자를 처음 먹어보는 녀석이라 그만 정신없이 이 모양입 니다.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경비원은 짤짤이의 꽁무니를 탁 쳐서 공중으로 올려 던졌습니다. 그러자 짤짤이는 짤짤이대로 얼이 빠졌던지 방향을 잃고 공중에서 휘뚤휘뜰 몇 번 비틀거렸습니다. 이번엔 그 꼴이 우스워서 또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습니다. 어벙이와 왕치는 나무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공연히 얼굴을 붉혔습니다. 짤짤이는 겨우 정신을 차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저쪽 석조전 쪽으로 날아가 숨어 버렸습니다.
“야, 짤짤아. 너 정말 챙피하게 놀지 말아!”
그날 저녁 나뭇가지에 모였을 때 왕치가 말했습니다.
“챙피하긴……잘 모르니까 그렇게 된 거지 뭘.”
짤짤이가 그러며 그래도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러니까 잘 모르면 조심 하란 말이다.”
어벙이도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그랬으면 또 어때 뭐. 그러면서 차츰 서울나I기 되는 거지 뭘.”
짤짤이는 그래도 여전히 대꾸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 셋 가운데서 짤짤이가 제일 잘 환경에 적응해갔습니다. 촌뜨기로서 우스운 실수를 거듭 저지르면서도 짤짤이는 짤짤거리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그런 실수를 일종의 공부라고 생짬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치와 어병이는 그러질 못했습니다.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겨울이 되었습니다. 낮에는 그런대로 요리조리 양지바른 곳을 찾아가 해바라기를 하며 지내면 과히 춥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는 나뭇가지에서 시원하게 잘 수 있었으나 겨울이 되면서 밤이 문제였습니다. 정말이지 그들은 그때까지도 겨울밤이 그처럼 춥고 긴 줄은 몰랐습니다. 대궐 안이 다 좋다고 쳐도 겨울밤을 지내기에는 아주 안 좋았습니다. 대궐의 기와지봉이나 석조전 처마 끝에는 그들이 바람을 피해 들어가 잠을 잘 만한 틈새가 전혀 없었습니다. 왕치, 어벙이, 짤짤이는 며칠을 두고 대궐 안을 돌아다녀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포근한 초가지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참새들은 모두 석조전 건물 굴뚝 둘레에 모여서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치, 어벙이, 짤짤이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그 굴뚝에서 나는 기름 냄새에 골치가 아프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서울 참새들은 그들 셋에게 들어가 끼일 자리를 절대로 내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셋이 나란히 나뭇가지에 붙어 앉아서 서로의 체온으로 긴 겨울밤을 떨며 참아내고 있었습니다.
어벙이가 요즈음 와서 마을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첫째 그런 잠자리 때문이었지만 그 밖에도 수돗물에서 나는 그 약 냄새와 공기 속에서 풍기는 그 기름 냄새에 울컥울컥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마을에 두고 온 얌전이가 자꾸만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난 아무래도 마을로 돌아갈까 봐.”
“글쎄. 나도 자꾸 마을 생각이 나. 이건 담 안에 갇힌 죄수 아냐. ……그렇지만 부모님도 몰래 떠났다가 무슨 면목으로 이제 돌아가니!”
어벙이와 왕치가 두런두런 했습니다.
“그건 그래. 허지만 난 마을이 그리워 못 견디겠다. 앞들, 뒷산, 그리구 어머니 아버지, 얌전이, 갑돌이, 이렇게 저녁 무렵이면 난 그 마을 서산의 빨갛게 타던 노을이 미치게 그립다. 그리구 밤이면 그 초가지봉 처마 끝이나 낟가리 속의 따스한 보금자리. 사실이지 전에 그 속에서 잘 때는 겨울밤이 그렇게 길고 추운 줄은 몰랐었단 말야!”
어벙이는 쿨쩍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야야. 그따위 소리가 어디 있어. 여기는 이게 궁궐이다이! 아무 일 안 해도 얼마든지 맛있눈 것이 있구, 예쁜 짹짹이 계집애들도 많구. 그야 서울내기들이 좀 아니꼽기는 하지만 그거야 참아야지 어떡해. 난 단연 여기가 좋다!”
짤짤이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넌 비닐봉다리 쓰구 춤을 추지.”
왕치가 빈정거렸습니다.
“그거야 야 어쩌다 실수했지. 넌 그 봉다리의 과자를 못 먹어봐서 그래. 정말 사르르 혀가 녹을 것 같았어!”
짤짤이의 말에 어벙이는 그저 멍청히 그를 쳐다만 보며 마을 뒷산에서 먹 던 열매들과 벌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였습니다. 겨울 날씨치고는 아주 따스한 날 아침이었습니다. 세수를 하고 은행나무 가지로 올라와 앉은 어벙이가 왕치에게 말했습니다.
“야. 왕치야. 아무래두 난 오늘 마을루 돌아갈까 해.”
“마을로?…… 글쎄. 나도 사실은 가고 싶지만…… 여긴 이제 싫증이 났어. 그러나 면목이 없어. 이제 돌아가면 마을 애들이 놀려댈 게 아냐. ……그런데 너 가는 길은 아니?”
왕치가 어벙이의 정말 어벙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짤짤이는 아까부터 저 아래 분수대 얼음 틈의 물에서 몇 번씩 몇 번씩 열심히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서울 참새들처럼 얼굴이 하얗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그걸 며칠 연구해보았어. 저쪽, 그러니까 아침에 해가 뜨는 쪽을 향해서 자꾸 날아만 가면 틀림없이 우리 마을이 나올 거야.”
“멀 거야. 날아서 과연 마을까지 갈 수 있을까 몰라.”
“멀지 그럼, 하지만 난 갈 거야. 며칠이 걸리든, 몇 달이 걸리든, 내년 또 그다음 해까지 걸려도 난 갈 거야!”
어벙이는 입을 꾹 다물면서 아침 해를 쳐다보았습니다. 평소에는 멍청하던 어벙이의 눈이 그날 아침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래! 어벙이 넌 묘한 녀석이야. 난 네가 부럽다.”
왕치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 하니 고였습니다.
어벙이는 자꾸자꾸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서울 거리가 저 밑에 까마득히 내려다보였습니다. 그건 꼭 헌데 더뎅이 같다고 어벙이는 생각했습니다.
어벙이는 마침내 몸의 방향을 해 뜨는 쪽으로 돌렸습니다. 전에 서울로 올 때는 해를 따라왔었으니까 돌아갈 때는 그 반대로 가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는 힘껏 날개를 펄럭였습니다.
저만치 첩첩 산이 보였습니다. 하얗게 눈을 쓰고 있는 그 산들은 흡사 차돌 같았습니다. 이제는 한강이 한줄기 굽이굽이 띠처럼 내려다보일 뿐, 서울은 저만치 먼지와 매연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벙이는 계속 날았습니다. 차츰 산들이 가까워지면서 시원한 기운이 풍겨왔습니다. 며칠이나 걸리면 마을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어벙이는 지칠 줄 모르고 날개를 움직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얌전이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어벙이는 더욱 기운을 냈습니다.
산, 산, 산, 산, 어벙이는 이미 서울 대궐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마을 뒷산을 찾아 계속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벙이는 차츰 지쳤습니다. 점점 날개를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높이가 차츰 낮아졌습니다. 어벙이는 기운을 차리려고 애썼습니다.
“어벙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마을에 돌아갔을까?”
짤짤이가 나뭇가지에 웅크리고 앉아서 왕치에게 물었습니다.
“글쎄.”
왕치는 망연히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참 알 수 엾는 녀석이야. 대궐보다 두메마을이 좋다니 참!”
“……”
왕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벙이는 어느 산 눈 덮인 정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는 날 기력이 없었습니다. 가물가물 의식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자꾸만 눈까풀이 내리덮여왔습니다. 그는 애써 눈을 뜨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끝-
2016년 6월 1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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