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종착역
1960년
손석우(孫夕友) 작사·작곡, 손시향(孫詩鄕) 노래
손시향이 신성일을 배우로 만들었다. '그날' 둘이 그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배우 신성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날 있었던 일을 신성일은 이렇게 회고했다. 손시향(손용호)은 대구중앙초등학교 출신이고 신성일(강신영)은 대구수창초등학교 출신으로 둘은 경북중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둘 다 집도 잘살았고 공부도 잘한데다 인물도 잘생겨 절친이면서 속으로 은근한 라이벌이었다. 경북고등학교도 둘이 같이 들어갔고 공교롭게도 삼년 동안 한 반에서 공부를 하였다. 말하자면 친형제 같은 친구였다.
1938년 미국에서 태어난 손시향(孫詩鄕 ,본명 손용호)은 대구에서 성장하였으며 1948년 미국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6개 국어를 하여 외국어에 능통하였던 그는 경북 중.고와 서울 농대를 나온 수재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어릴 적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여 대학재학 시절 KBS 노래 경연에 입상, 18세에 '브레이브 맨'으로 가요계에 데뷔.
1958년 인기 작곡가 손석우(孫夕友)를 만나 1950년대 말 최고의 인기 가수가 되었다.
손석우는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 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등의 히트곡을 만들기도 했는데, 손시향이 부른 대부분의 히트곡은 그가 작곡한 것이었다.
1958년 <검은장갑>이 히트하면서 미남형의 외모에 중저음의 탁월한 미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거리를 떠나>, <사랑이여 안녕>, <사랑의 자장가> 등의 노래가 히트했고, 특히 영화 ≪이별의 종착역≫(1960)의 주제가였던 <이별의 종착역>은 그의 대표곡이 되었는데, 훗날 문주란, 김란영, 남진, 김현식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한국 가요사의 명곡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밖에도 영화 ≪고바우≫(1959)의 <인생을 즐겁게>, ≪촌색시≫(1958)의 <조용하고 싶네>,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 (1959)의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와 같은 영화음악도 영화와 함께 인기를 얻었고,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 ≪심야의 부르스≫ 등의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미남얼굴과 부드러운 미성을 가진 그는 특히 여성 팬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었고, '한국의 짐 리브스(James Reeves)', '마카오 신사' 등의 별명으로 불리웠다. 박일호, 현양, 김성배와 함께 블루벨즈(Blue Bells)라는 남성4중창단을 이루어 활동하기도 했다.
경북고 동창인 한국 영화계 최고의 스타 신성일이, 가수로 성공한 그에게 자극을 받아 배우로서의 성공을 다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강신성일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듯 배우가 된 계기가 바로 가수 손시향으로 부터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며 삼수생의 길을 걸게 된 강신성일이 어느 날 학원을 가던 도중 우연히 길에서 인기가수가 된 손시향과 마주친다. 이미 톱 가수가 되어있는 손시향과 겨우 악수만을 나눈 뒤 주위 스타들과 함께 바쁘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급기야 그는 입시학원으로 가던 발걸음을 연기학원으로 돌린다. 이후 강신성일 역시 ‘로맨스 파파’ 등에 출연하면서 스타의 길을 걸게 된다.
손시향은 1950년대 미군쇼 무대 활동과 더불어 일반 무대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미남.미성의 가수로,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음색으로 특히 여대생들과 많은 여성팬들의 인기를 얻기도 했다.
손시향의 여동생 손미희자(孫美喜子)는 이화여대 재학중, 1960년 제4회 미스코리아 진(眞)으로 선발되어 영화 배우로도 활약하였으며, 미스 유니버스 준결승에 진출한 역대급 미스 코리아로 회자되던 미인이다. 한편 1962년 제6회 미스 코리아 선(善) 손양자도 그의 여동생으로 자매가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인물 집안이다.
스웨덴 여성 마리스와 결혼 1960년 6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리 손(Lee Shon)으로 활동하였으며 마이애미 한인회장도 지냈다고 전한다.
이별의 종착역
손석우 작사.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BQY1Ceg6y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