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도깨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장진호]

그 많던 도깨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1950년대 중반이라고 기억된다. 만우절 날 대구방송국의 어느 아나운서가, ‘지금 방송국에 오면 선착순으로 라디오 한 대씩을 준다’고 거짓 방송을 하여, 큰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 방송을 듣고 사람들이 떼로 몰려 와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때의 라디오는 지금의 텔레비전보다 훨씬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 소문은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라디오를 타기 위해 수십명씩 떼를 지어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멀리 지방에서 달려온 사람들은, 만우절에 맞추어 벌인 아나운서의 거짓 장남임을 뒤늦게 알고는, ‘그러면 차비라도 좀 주어야 하지 않느냐?’라며 투덜댔다. 그러나 그때는 세상인심이 좋을 때라서, 그것이 크게 사회 문제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실수는 했지만, 악의적인 실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당시에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만우절이 되면 재치 있는 거짓말을 하여 서로 웃고 하는 일이 크게 성행하였고, 다들 그것을 함께 즐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만우절의 거짓말 행사가 거의 없어졌다. 한번쯤 웃고 즐길 수 있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지고 멋을 잃어버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난 만우절 날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옆에 있는 어떤 이가 하는 말이, 지금은 거짓말이 매일 넘쳐나니 별도로 만우절이 필요 없어져 그렇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고 생각되었다. 확실히 그때보다 거짓말이 많아진 것 같고, 그 질도 훨씬 도가 높아진 것 같다. 만우절이 별도로 필요 없는, 매일이 만우절인 거짓말 시대가 된 것이다.

현대는 기인(奇人)이 없는 시대라는 구절을 어느 책에서 본 일이 있다. 읽고 보니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조선 시대의 김시습이나 이지함 같은 사람이 펼친 바와 같은, 기이한 행적을 오늘날에는 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지난 세기 초엽에 태어나 기인으로 살고 간 김동인이나 이상 같은 사람의 행적도 지금은 보기 어렵다.

기인이 없는 시대라, 기인이 없는 시대라……. 어느 날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이 말을 혼자서 되뇌다가, 기인이 없는 까닭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은 우리 모두가 기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별도로 기인이 필요 없게 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정도에서 벗어나 기이한 행동에 물들어져 있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따로 무슨 기인이 존재하겠는가? 점점 여유를 잃어버리고,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허덕거리는 기인들로 모두가 변해 버렸는데 말이다.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현실에서 일탈한 객기를 부리는 그런 멋도 섞여 있어야 하는데, 세상은 점점 단조로워져 간다.

도깨비 이야기도 그런 예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도깨비 이야기는 흔하게 들을 수 있었다. 뉘 집 방앗공이에 피가 묻어, 그것이 도깨비로 화하여 며칠 전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며, 지난밤 공동묘지에는 유난히도 번쩍이는 도깨비불이 많이 나타났다는 등의 이야기는 일상사처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웃집 아무개 청년이 안개가 자욱이 끼고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등 너머 마을에 볼일을 보러 가다가 허연 수염이 달린 노인을 만났는데, 이내 감쪽같이 없어지더라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산비탈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흰옷을 입고 산에서 내려 오길래, 예사로 여기고는 엎드려 풀 한 포기를 뽑고 다시 쳐다보니, 온데간데없더라는 이야기는 이웃 아주머니에게서 직접 들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도깨비 이야기는 지금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아스라이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그리운 향수다. 일전에 어느 명사들이 쓴 신문 칼럼에도 이런 향수담이 실려 있었다.

한밤중에 나그네가 숲길을 걸어갔다. 달빛 닮은 여인이 나타나 그를 유혹했다. 그녀의 오두막에서 기분 좋은 하룻밤을 보낸 나그네, 아침에 일어나니 부지깽이 한 자루를 안고 있었다. 지난밤 그를 유혹한 아름다운 여인은 백 년 묵은 여우 도깨비였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 땅의 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았다.

할머니가 살던 마을에는 밤만 되면 도깨비가 나타난다고 했다. 밤새 도깨비랑 싸우다 간신히 도깨비를 넘어뜨리고 상처투성이가 돼 돌아왔다는 아저씨도 있었고, 도깨비가 등에 올라타고 놔주질 않아 논바닥을 구르다 간신히 떼어 놓고 달아났는데, 날이 밝아 찾아보니 싸리 빗자루였더란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할머니는 또깨비 퇴치법도 함께 일러주셨다. 도깨비를 만나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상대를 깔보는 눈빛을 해야 한다며 직접 시범까지 보여 주셨다. 그놈 머리 쪽을 쳐다보면 몸뚱이가 집채만 해져서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단다. 무조건 발쪽을 봐야 해. 그러면 도깨비가 순식간에 개미처럼 쪼그라들어서 네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녀석이 알아서 줄행랑을 치게 될 거야. (이하 생략)

얼마나 향기롭고 할머니 냄새가 나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우리는 우리 도깨비의 참모습을 잘 모르는 이가 많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도깨비의 모습은 머리에 뿔이 있고 원시인 복장을 한 채, 손에는 못 박힌 몽둥이를 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도깨비는 우리의 도개비가 아니고 일본의 요괴인 ‘오니(おに)’다. 일제 강점기 교과서에 일본 전래동화 ‘혹부리영감’ 이야기가 실리고, 오니가 등장하는 삽화까지 그대로 쓰이는 바람에 오니가 우리의 도깨비 모습으로 둔갑한 것이다.

1910년 한일병탄 뒤 조선총독부에서 교과서를 만들 때, 일본의 것을 가져와 그대로 베끼면서 일본의 요괴가 우리의 도깨비로 변신한 것이다. 이처럼 일본 교과서를 바탕으로 하면서, ‘혹부리영감’ 이야기를 싣고 일본의 삽화까지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일본이 ‘내선일체(內鮮一體 일제의 조선 통치정책으로 ‘조선과 일본은 한몸이라는 뜻)’라는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그렇게 끼워 붙인 것이다. 그 뿔 달린 오니 삽화는 일제 침략기 내내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광복 이후에도 당시 문교부는 비판적 검토 없이 혹부리영감 이야기와 삽화를 그대로 교과서에 수록했다. 이런 영향으로 ‘혹부리영감’이 한국 전래 민담으로 둔갑해 동화책으로까지 나왔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대보름 비슷한 시기인 양력 2월 3일에 집집마다 세쓰분이라는 행사를 한다. 얼굴에 빨간 도깨비 가면을 쓰고 현관에서 들어오려고 할 때 콩을 도깨비를 향해 한 주머니 뿌린다. 그때 “오니와 소토(악귀, 액운은 밖으로 나가라)”라고 하고, 반대로 현관에서 집 안을 향해 “후크와 우치(복은 집 안으로 들어와라)”라고 외친다.

그러면 우리의 도깨비는 어떤 모습일까 ?

우리 문헌에 나타나는 최초의 도깨비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비형(鼻荊)’이다.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랑[桃花女鼻荊郞]’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신라 제25대 진지왕이 생전에 사량부에 사는 아름다운 도화녀를 보고 그 모습에 반하여 잠자리를 같이하고자 하였는데, 도화녀가 남편이 있는 몸이라고 하며 거절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2년 뒤 도화랑의 남편이 죽자, 진지왕의 혼이 도화녀의 허락을 받고 관계하여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이름을 비형이라 하였다. 그 후 진평왕은 비형의 나이 15세가 되자 집사라는 벼슬을 주었는데, 저녁마다 궁궐 밖으로 나가 도깨비들을 모아 놓고 놀았다.

비형은 도깨비들을 부려 하룻밤 새 다리를 놓기도 했다. 비형은 그가 부리는 무리 가운데 길달을 조정에 천거하고, 왕은 아들이 없는 신하로 하여금 그를 양자로 삼게 하였다. 어느 날 길달이 여우로 변해 도망가자 비형은 도깨비들을 시켜 그를 죽이게 하였다. 그 뒤 도깨비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 달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비형을 두고 지은 노랫말을 써 붙여 잡귀를 물리치게 되었다.

이렇듯 비형은 인간을 해코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기도 하고 도 요술을 부리는 나쁜 길달을 죽이기도 하여 인간을 이롭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담긴 노래를 써 붙여 잡귀를 막았다는 것이다.

우리 도깨비의 신분은 남자다. 도깨비가 남성임은 도깨비의 어원에서도 알 수 있다. 도깨비의 고어는 ‘돗가비’인데 󰡔석보상절󰡕에 처음 나타난다. ‘돗가비’란 말은 ‘돗+ㄱ+아비’ 의 합성어인데, 돗은 ‘불(火)’이나 ‘씨앗(種子)’ 등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바,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를 나타내고, ‘아비’는 ‘장물아비’나 ‘처용아비’ 등의 용례에서 보듯 아버지 곧 성인의 남성격이다. ‘ㄱ’은 두 말을 이어주는 사잇소리다. 그러므로 도깨비는 풍요를 관장하는 남성신이다. 󰡔석보상절󰡕에도 풍요를 관장하는 도깨비에게 복과 장수를 달라고 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남성이기 때문에 예쁜 각시도 좋아해서 물레방앗간을 잘 드나든다.

또 도깨비에게 음식을 대접했더니 금은보화 등으로 보답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도깨비는 메밀묵과 시루떡을 좋아하며 막걸리도 좋아한다. 메밀묵 한 사발을 쑤어 주었더니 대신 게를 많이 잡아주었다는 전래담도 있다. 씨름도 좋아하고 장난도 잘치고, 노래랑 춤추기도 좋아한다.

그런데 팥죽을 싫어하고, 수탉이 우는 소리를 싫어한다. 팥죽을 싫어하는 것은, 붉은 빛깔은 귀신을 내쫓는다는 관념 때문에 생긴 것이며, 닭 우는 소리를 싫어하는 것은, 날이 새면 귀신은 힘을 잃는다는 속설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도깨비는 악행을 저지르는 일본의 오니와는 달리 사람냄새를 가득 풍기는 신이다.

이러한 우리의 도깨비 이야기도 현대화, 도시화라는 이른바 문명의 물결에 밀리어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만큼 우리는 신비로움과 경이감을 주는 또 하나의 멋을 잃게 되었다. 이렇게 된 연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 역시 달라진 세상인심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깨비처럼 얼렁뚱땅 사람을 속이고, 세워 놓고 코를 베어 가는 사람 도깨비가 많아져서, 원래의 실제 도깨비 이야기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 도깨비의 신비성보다 더 기상천외한 사기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 이제 그 옛날의 도깨비 이야기는 시시해졌는지도 모른다. 으슥할 때 나타났던 순진한 예전의 도깨비보다, 현대판 낮도깨비는 몇 배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낮도깨비 보이스피싱은 말 그대로 세워 놓고 기가 막히게 사람의 코를 베어간다. 수년 전에는 김 아무개라는 낮도개비가 대통령 선거전에 나타나, 어느 후보의 아들이 병역기피를 했다는 속임수로 대낮에 유권자를 홀려 그를 낙선시켰다. 요즈음 각종 선거판에도 책임을 지지 못할 희한한 술수로 순진한 백성들을 꾀어내고 속이는 꾀조리 도개비가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가당찮은 현대판 낮도깨비가 더욱 설쳐대니, 옛날의 순진한 도깨비 이야기가 없어지지 않고 어찌 배기겠는가?

인간미와 신비감이 교차하는 옛날의 도깨비 이야기가 새삼 그립다.

아무렴, 거짓말을 만우절에나 들을 수 있고, 기인이 드문드문 나타나 세인들의 사랑을 받는 세상, 그리고 하루 속히 낮도깨비가 없어지고, 복 방망이를 든 도깨비가 지난밤에 나타나, 복 덩어리를 집집이 나누어 주고 갔다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런 세상이 다시 왔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