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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7장 17-19절.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17-거룩한 삶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거룩”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성도들 역시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신구약 합쳐서 거룩이라는 말이 460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중 구약 성경을 보면 347번 사용되고 있고, 그 가운데 모세오경에만 128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출애굽기에 50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도 50번 기록되어 있고, 민수기에서는 23번 기록되어 있으며, 신명기는 4절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거룩이라는 말씀은 출애굽기와 레위기, 그리고 민수기에 집중적으로 사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거룩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룩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거룩이 무슨 뜻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거룩”이라는 말은 일상적인 용어는 아닙니다. 그것은 특별한 용어입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용어일 것입니다. 거룩을 일반적인 용어로 풀이한다면 “특별하게 구별된”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와는 다르게, 특별하게 구별된 어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특별하게 뛰어난다고 해서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도 그 운동 선수를 거룩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특별한 재능을 하지고 있어도 그사람을 거룩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가운데 특별히 뛰어난 대통령이 있어도 그 사람을 거룩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위인 중에 가장 뛰어난 위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순신 장군도 사람들은 그를 거룩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위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국가적인 결집과 통치를 위해 자기들의 왕이나 황제를 신처럼 받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황제를 천황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하늘의 황제라는 의미입니다. 중국은 황제를 천자라는 표현을 써서 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로마는 황제를 신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황제를 신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거룩하다고 표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거룩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할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17장 17-19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보면 거룩해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거룩하게 하시면 그것은 거룩해지고, 어떤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면 그 사람은 거룩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 앞에 있는 제자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시면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이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면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진리인 자신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거룩하신 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표현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들과 다른 유일하신 분이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써 홀로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출애굽기 15장 11절을 보면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하고 묻고 있습니다. 이는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럽고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하고 있는 신이 하나님 외에는 없다는 반어법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온 영적인 세계와 우주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자다”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나는 이름이 없다. 왜냐하면 내 위에 있는 신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내게 이름을 지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는 말씀입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이름을 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의 이름은 누구 지어준 것입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지은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개명하는 경우는 있지만 첫 번째 불리워졌던 이름은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들입니다. 할아버지나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들이 대부분입니다. 간혹 이름을 잘 짓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작명을 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부모나 할아버지의 요청에 의해 짓게 되는 것이 이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그 누구도 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전 세대에 있는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신이라고 섬기는 신들은 다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누기 지었습니까? 다 사람들이 진 것입니다. 신의 이름이 사람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은 그 신보다 사람들이 앞섰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들에 의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은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런 신이 어떻게 죄인들은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건지며, 삶속에서 보호하고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은 어리석다고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10장 14절을 보면 이를 알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고 이름을 지은 우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모세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에 보내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하시니까 “그 백성들이 나에게 묻기를 ‘너를 보내신 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지요?”하고 여쭈어보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자다”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름이 히브리식으로 하면 “여호와”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이름을 이름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의 기념 칭호”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기념하여 부르는 호칭’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로 거룩하신 분이 계신다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나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서 하나님을 “여호와”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셨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이름보다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그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13절을 보면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여러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을 보면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여러분들에게 나타내시기 전에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여러분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내시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와 진리의 역사입니다.
죄는 피를 요구합니다. 죄용서받기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는 짐승의 피를 흘렸습니다. 짐승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은 죄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을 대속이라고 부릅니다. “대신 죄값을 치렀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은 한 사람이 지은 한 가지 죄 밖에는 씻지를 못했기에 다음에 죄를 또 지으면 또 다른 짐승이 죽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짐승으로 드리는 속죄제사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모든 일생의 죄를 다 사하실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실 만큼 거룩하시며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가 거룩하시고 아들도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 역시 거룩하신 영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누군가가 가룩하게 만든 것도 아니고 거룩하다고 인정한 것도 아닙니다. 원래부터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으로 충만하십니다. 그 거룩으로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한 것들을 구별하시는 데 그것을 자신의 말씀으로 하십니다. 그 거룩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것은 거룩하다”고 어떤 물건을 지정하시면 그때부터는 거룩한 것이 됩니다. 또 하나님깨서 “이 사람은 거룩하다”고 하시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거룩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원래 가지고 계신 것에 반해서 어떤 특정한 물건이나 사람은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신 그때부터 거룩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산을 거룩하다고 하시면 그 산은 거룩한 산이 됩니다. 대표적인 산이 바로 호렙산입니다. 물론 시내광야에 있기 때문에 시내산이라고도 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은 임재하셔서 모세를 만나셨고, 또 거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그 산은 거룩한 산이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거룩하시고 자신의 이름을 그곳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그 산에 성전을 세우게 하셨는데 그 산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지정하셨던 모리아 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 때에 그 산을 구별하셨지만 공식적으로는 성전을 그곳에 세우시라고 명하시면서 예루살렘을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은 다윗 때였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사용할 많은 성전 기구들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셨고, 성전에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먹는 음식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레위인들, 제사장들, 나실인들, 선지자들을 불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을 거룩하게 하셔서 성도라 칭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린 옷을 입은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한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물과 성령으로 나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거룩하게 된 사람으로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삶으로 증거하는 거룩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거룩하게 구별을 받은 사람다운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라고 말씀하시면서 거룩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설명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8절까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을 향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여러분들에게 전달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자의 거룩은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 앞에서 행함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부부생활도 거룩해야 하고, 교회 생활도 역시 거룩해야 합니다. 자기는 거룩하다고 하면서 아내를 두고 다른 남자나 여자에게 바람을 피우는 사람은 거룩하지 못했거나 거룩함을 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음란을 버리라, 색욕을 따르지 말라”고 하실 뿐 아니라 “아내를 존귀하게 대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분수를 넘는 다는 것은 예의없이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선이라는 것이 있고 예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를 거룩하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기며,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의 성도들 역시 서로에 대하여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이 유지되고 화평이 이루어집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아내나 남편을 저버리는 자나, 교회에서 다른 성도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고 무례하게 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의 악행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억울함을 신원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보응의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버리고 부부에게나 교회의 형제를 저버리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신 성령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십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삶의 표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들은 거룩하신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의 훌륭한 목사님이나 훌륭한 신앙을 가진 성도를 본받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여러분들의 신앙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그 뜻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면서 행할 때에 신앙이 자라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영적성장의 이 비밀을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6-7절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농사를 짓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적당한 햇볕과 적당한 비와 바람을 불게 하지 않으시면 곡식은 잘 자라지 못합니다. 물론 사람은 심고 물주며, 잡초를 뽑아주고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럴지라도 최종적인 열매가 풍성하도록 자라는 길은 오직 하나님이 자라게 하셔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성장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고 여러 가지 시험과 연단들을 통해 여러분들은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함 안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장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뭐든지 힘 안들이고 얻는 것을 무척이나 선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로봇으로 재프로그램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과 인격의 만남과 연합과 동행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의 방법이며, 여러분의 삶에서 거룩한 자의 참모습을 찾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처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을 때는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많이 알지 못합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을 섬기며, 돌보도록 세우신 사람이 바로 목회자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의해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권면하여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주신 은혜와 진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들을 통하여 연약한 성도들에게 전해져 영적인 성장을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8-29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목회자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 목회자를 통해 그리스도를 가르치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완전한 일꾼들로 만들기 위해 교회에 공적인 예배와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로서 완전한 자로 자라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한 배운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거룩한 성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시키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회의 목회자만이 아니라 교회의 중직자들이나 교사로 세움을 받은 사람들을 통하여 여러분들을 성장시키십니다. 에베소서 4장 16절을 보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각 마디는 교회에서 세운 각종 직분자들을 의미합니다. 장로나 권사, 혹은 구역장이나 교사들, 그리고 오늘날의 셀그룹들의 인도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과 교회가 교회 성도들을 성장시키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직분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잘 갖추어야 합니다. 예배에 잘 참석하고, 성경을 배우기를 힘쓰고,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다른 성도와 사랑으로 교제하며, 삶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함 안에서 성장합니다.
여러분은 배우면서도 성장하지만 가르치면서도 성장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주님의 신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을 따르지 말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영적인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을 보면 세속에 물들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거룩하며, 더러움이 없는 경건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참된 경건의 내적인 면은 거룩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믿음의 삶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삷, 다시 말해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경건의 외적인 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함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는 여러분을 경건한 삶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진리 안에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영적인 성장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6절을 보면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고 하느냐면 바로 복음을 듣고 깨닫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중요하며 참된 복음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을 거룩한 성도로 거듭나게 하고 거룩한 성도로서 자라게 하는 이 복음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절에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하면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6절을 보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세우시고 보내셔서 전하게 하신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역시 거룩하십니다.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나도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귀신들까지도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4절을 보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69절을 보면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여러분! 여러분을 낳으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신지라 그에게서 나온 예수 그리스도나, 그에게서 태어난 여러분들이나 모두가 거룩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 자신이 선하신 분이심을 증거하고자 하십니다. 이는 악한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는 여러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거룩한 그리스도인답게 자라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축복을 위한 거룩하고 선한 일꾼으로서 세움을 받고 쓰임을 받는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