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잉태하였으나 아직 태어나기 전에 부르는 이름을 태명(胎名)이라하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 갖는 이름을 초명(初名)또는 아명(兒名)이라 한다.
성년이 되면 이름 대신에 자(字)를 지어서 불렀는데 아명(兒名)은 어릴 때 이름이고 이제 당당한 성인되었음을 나타내는 이름인 셈이다.
성인이 되고 열심히 학문을 갈고 닦아 관직에 나아가면 그 위치에 어울리는 이름을 다시 지으니 관명(冠名)이라 하며 벼슬도 높아지고 중년이나 노년이 되면 호(號)라 하여 또 다른 이름을 용하는데 자기 자신의 호(號)는 자호(自號)라고 하며 다른 사람의 호나 특히 존경하는 윗사람의 호는 호라고 하면 실례가 되고 아호(雅號)라고 한다. 자기 자신의 호를 아호(雅號)라고 하는 것도 실례가 되는 것이다.
요즈음은 이름 끝에 씨나, 님 을 붙이거나 직함을 붙여 00씨, 00님, 00회장님으로 부르면 본명을 불러도 별 문제가 없지만 예전에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매우 실례가 되기 때문에 이름 대신 부명(副名)으로 호(號)를 즐겨 사용했다.
“창랑(滄浪) 지금 우리당의 구심점은 해공(海公)과 유석(維石)이야, 상산(常山)과 해위(海葦), 그리고 운석(雲石)의 뜻은 어떤지? 낭유(朗由), 예제(藝齊), 옥계(玉溪), 해암(海岩)도 의견을 말씀해 보시오” 예전에 정치권 인사들이 다방에서 나누는 대화내용이 이런 식이었다.
창랑은 국무총리 장택상의 호이고, 해공은 전 국회의장 신익희 호이며, 유석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이며 상산은 김도연 선생이며, 해위는 윤보선 전 대통령 호이고, 운석은 장면 전 총리이고, 예제는 윤제술 선생, 옥계는 유진산 전 신민당 당수, 해암은 박순천 여사의 호이며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우리나라 정치를 좌지우지 하던 분들이다.
현대에도 호를 쓰는 이들이 많으며 요즈음도 호(號)를 지어 달라고 의뢰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서예가, 화가 , 소설가 같은 특별한 직업에서도 필명(筆名)이나 아호(雅號)를 많이 쓰지만 일반인들이나 교직에 계시는 분들도 아호를 지어 부르는데 멋스럽고 좋다.
예전에는 제자가 성년이 되면 스승이 제자에게 호(號)를 지어주며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해 주기도 했으나 호는 스스로 짓기도 하고 현대에는 지신의 운기에 맞게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경우도 아주 많다.
시인 박목월(朴木月)로 많이 알려졌지만 본명은 박영종이고 목월은 나무와 달빛을 유난히 좋아하여 스스로 지은 자호가 목월이다.
우리나라에서 호(號)를 맨 처음 사용한사람은 신라 때 김유신 이며 용화향도(龍華香徒)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호를 가장 여러 개 사용한 사람은 명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선생으로 추사라는 호외에도 청년시절에 호가 백 개도 넘어 백호당 이라는 호가 생겼고 평생 동안 사용한 호는 503개 이었다고 전해진다.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노과(老果), 농장인(農丈人), 천죽고선생(天竺古先生, 모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선생의 아호이다.
|
|
▲ 추사 김정희 |
|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휘호를 즐겨 썼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거제도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정치의 꿈을 키웠던 인연으로 거제도의 거(巨)자와 부산의 산(山)자를 합쳐 거산(巨山)이라는 아호를 스스로 지어 사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태어난 고향이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後廣里)에서 태어나서 태어난 고향의 마을이름 후광(後廣)을 아호로 사용하였으며,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鄭周永) 회장도 지금은 북쪽 땅인 강원도 통천군 아산고을에서 태어나서 아산(峨山)을 아호로 썼으며 이처럼 태어난 출생지를 호로 쓰는 것을 소생지호(所生之號)라 한다.
김구(金九)선생께서는 민족을 너무도 사랑하여 우리민족(白衣民族)백성들 속에서 삶을 함께하겠다는 뜻으로 흰백(白), 무릇 범(凡)으로 백범(白凡)이란 아호를 썼는데 무릇은 함께한다는 뜻이다.
태평양화학 그룹의 서성환 회장은 태평양화학을 설립하면서 우리나라 화장품업계의 근원이 되겠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호를 화장품의 꾸밀 장(粧)자와 근원 원(源)자로 장원(粧源)이라는 아호를 지어 사용하면서 사업을 승승장구 성장시켰다. 이처럼 자기 자신이 하고자하는 의지(意志)를 호로 쓰는 것을 소지지호(所志之號)라 한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과거시험에 아홉 번을 계속 장원급제를 하고 천도책(天道策)을 써서 더욱 유명해진 이 이(李 珥)는 태어난 곳은 강릉이지만 과거에 급제한 후에는 경기도의 밤나무가 많은 마을 율곡(栗谷)리에서 거처하여 아호를 율곡(栗谷)이라 하였으며 토정비결 책으로 유명해진 이지함(李之菡)은 서울 마포나루 근처에 토굴(土亭)을 파고 거처하여 그의 호를 흙으로 만든 정자라는 뜻으로 토정(土亭)이라 했으니 이를 소처지호(所處之號)라 하였다.
시인이었던 이 활은 한때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였었는데 죄수 번호가 264번이었으며 후일 출소한 뒤에도 이때의 힘들었던 일을 평소에 잊지 말자고 죄수번호 264를 이육사(李陸史)로 한자로 써서 자신의 아호로 썼으며, 언론가 이며 수필가였던 김진섭 선생은 계곡에서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서 들을 청, 내 천으로 청천(聽川)이란 호를 썼다.
이렇게 주변 환경에 따라서도 호를 지으니 소환지호(所環之號)라 한다.
나무와 달빛을 너무 좋아하여 자신의 호를 목월(木月)로 한 박목월 시인처럼 이 인(李 寅)은 산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여 자기 자신의 아호를 애산(愛山)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도 호를 지으니 이것을 일러 소완지호(所玩之號)라 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은 서울의 옛 지명 우수현 남쪽에 산다고 우남(雩南)이란 호를 사용 하였고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은 바닷가의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고 바다처럼 넓고 깊이 생각하며 산다고 해위(海葦)라는 아호를 사용했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고 답답할 때, 멋지고 꿈과 희망이 솟아나는 좋은 아호(雅號)를 지어서 새로운 각오와 희망찬 새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자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