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8년 3월 30일 포스팅하였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카페의 글을 쓰는 것은
백만번의 팔굽혀펴기를 하는 운동보다 확실히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집중하는 동안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면 배가 당겨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지 않으면 안될 정도입니다.
운동시간에 맞춰 운동하지 않으면
몸의 균형이 완전 무너질 것입니다.
카페의 글은 살검과 활검의 시전이요,
진리의 말씀, 그 전위대로 세상과 싸우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몸을 보양하지 않으면
몸의 건강을 잃을 수 밖에 없고 전투력이 약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산해진미는 아니더라도
건강한 자연 밥상으로 보상하는 것은 자기애의 충정입니다.
평소 순두부 조림과 된장을 늘 끊여 먹는데
오늘은 미역국을 끊여 별미를 해먹었습니다.
국물 요리 가운데 미역국을 끊이는 것이
가장 쉬운 것 같습니다.
먼저 미역을 물여 불여 놓고
무우와 양파와 파와 통마늘을 넣어 국물을 우려냅니다.
그 다음 적당한 양의 소고기를 참기름과 다진 마늘과 진간장을 부으면서
미역에 충분히 간이 밸 정도로 달달 볶아냅니다.
그리고 우려낸 국물을 부으면서 푹 끊여내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미역이 푹 익을 떄까지 충분히 끊여내면
미역국, 그 맛향은 건강한 자연밥상이 됩니다.
무우와 양파와 파와 통마늘을 넣고 우려낸 여분의 국물에
소고기를 넣고 다시한번 끊여내고 간을 맞추면 무우 소고기국으로 아주훌륭합니다.
찹쌀과 잡곡과 기장을 넣어 지은 밥은
최고의 맛집이라고 해도 그 만한 밥맛을 내지 못합니다.
산해진미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소박한 밥상을 차려먹으면
건강한 자연 밥상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겨울에는 물김치를 좋아해서 얻어 먹기만 했는데
충분한 레시피를 연구해서 언제 한 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다산교회 어느 권사님의 물김치는
여태껏 먹어본 것 가운데는 최고였습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직접 농사지은 먹거리로 풍성하였습니다.
저희 마을은 할아버지 4형제와 그 후손이 모두 모여 살기 때문에
저희 일가 친척이 마을의 절반이 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마을 앞의 농토는
대부분 저희와 일가친척의 것이어서 보리고개나 가난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해마다 명절이면
집안의 며느리들이 마당에서 사랑채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온갖 농사를 지어 먹거리로 풍성하였던 어린 시절은
농삿일도 많이 도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도리깨로 그 많은 콩타작과 보리와 밀 타작을 하였은데
어릴 때부터 팔과 어깨 근육이 발달하였습니다.
백구마당의 헛간은 추수때는 타작마당이요,
가을겆이가 끝나면 유기농 거름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외양간과 돼지 우리를 치고 거름을 모아 퇴비와 함께 겨를 뿌리면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잘 숙성된 거름으로 겨울을 나면서 봄철에 논과 밭에 뿌려집니다.
우리 집 8남매와 머슴은
부모님을 도와 옛날 방식으로 그 많은 농사를 짓는 농군이 되었습니다.
닭모이는 오늘날의 사료가 없었던 시절이라
농사지은 통밀과 보리를 모이로 주었습니다.
통밀과 보리를 모이로 먹고 자란 닭은
가끔식 백숙을 해먹을 때면 그 맛이 닭요리 맛집과 비교를 거부합니다.
텃밭의 상추는 쇠죽 끊인 재로 거름을 주었기 때문에
상추의 향은 자연산 더덕 향보다 더 진하였습니다.
가을 겆이 할 때는 일손이 모자라
일가친척은 물론 마을 사람들의 품앗이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가을 겆이 할 때면 마당에 덧석을 깔고 식사를 하였는데
덧석과 대청에 수십명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그 엄청난 식사를 어떻게 준비하였는지 상상이 가지않습니다.
부엌의 아궁이에 불땐 기억 밖에 없는데
그 엉청난 식사를 전부 농사지은 것으로 식재료를 사용하였습니다.
여름에 수박 농사를 지었던 밭은 가을에 무우 배추를 심었고
보리를 베어낸 논은 벼를 심거나 감자 농사를 하였습니다.
갱변 밭과 산간 밭은 고구마와 땅콩 등 농사를 지었고
집 앞의 텃밭은 당근과 우엉과 파와 마늘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린 시절 몸에 밴 자연밥상은
즐거운 요리 시간을 취미로 가졌습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갈치를 많이 먹었는데
밥상에는 6,70년대에도 밥상의 갈치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갈치, 그 맛향을 잊지 못해
주변의 유명한 갈치 맛집을 찾아 푸드 여행를 하였습니다.
대구에는 제주 갈치와 정아 갈치, 그리고 팔공산의 대동강 갈치가 유명하고
고령의 갈치는 유명 연애인도 찾을 정도입니다.
아직 갈치 요리는 도전해 보지않았지만
좀더 삶의 여유가 된다면 칼치 요리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요리 프로그램을 자주 애청하면서 맛의 풍미를 가상의 맛향을 느낍니다.
요리는 맛의 미학을 창조하는 예술, 그 자체여서
맛을 창조하는 세프는 저마다 예술적이며 철학적인 삶의 마인드를 가졌습니다.
자연밥상의 방랑식객은
온갖 산약초와 자연 식재료로 건강한 밥상을 짓는 맛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요리하면서 칼질하면......
마치 무공을 연마하는 것 같아서 아주 즐거운 취향이 되었습니다.
세프의 칼질은 맛의 무학이요,
그 달인의 경지는 무림의 일가를 이루는 맛의 녹야원입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자취하면서 직접 요리하고 밥해먹었는데
결혼해서도 오늘날까지 주방을 담당하면서 건강한 자연밥상을 연구하는
맛의 미학을 창조하는 작은 세프가 되었습니다.
자연밥상, 그 규칙적인 식생활은
건강한 삶, 그 프로페셔널의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