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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무기
출 17: 8-10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를 가리켜 영적위기의 시대라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므로 사는 것이 위기입니다. 지금 일하는 직장에서 언제 그만 두게 될지 모르므로 일하는 것도 위기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도 영적 전쟁입니다. 어차피 싸워야 할 전쟁이라면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싸워 이기셨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승리를 보장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영적 전쟁과 일상의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싸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가지 무기를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4가지 무기 중 2가지를 살펴 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무기입니다.
출애굽기 17장 9절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아멘. 지팡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잡고 나가라고 할 때 그 말을 듣고 순종하니까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8절에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예수님의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보내실 때 주신 말씀입니다. 사실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양식이고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돈이나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말씀만 갖고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가져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시대와 환경이 다른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사람 막대기가 아닌 하나님의 지팡이, 예수님의 지팡이가 우리를 이기게 합니다.
출애굽기 4장 17절에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아멘. 하나님은 모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주시고 바로와 싸움에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말씀의 지팡이 붙들고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으로 충만하면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전신갑주를 주셨습니다. 그 전신갑주 중 다른 것들은 모두 방어용 무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사탄도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세 번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시대에 말씀으로 승리하고 이기시기 바랍니다.
스펄전하면 영국의 위대한 목회자요, 믿음의 사람입니다. 세계 최대교회의 목회를 하는 그 분이 그렇게 큰 목회자가 된 것은 어느 평신도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톨로체스터라는 교회에서 평신도가 하는 설교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설교자의 말씀은 유창하거나 세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말씀이 그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아멘. 스펄전은 "내가 감사하는 것은 그 말씀이 나에게 계속 반복되게 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아멘. 여러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몇 구절만 가지고도 여러분이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해야 합니다. 시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적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난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령해야 합니다. 기적은 일어 날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믿고 나가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거북이 신자"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새는 9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개는 20일 견딘다고 합니다. 사람은 40일도 금식하고서도 삽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 동안 아무 것도 안 먹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오랫동안 안 먹고도 사는 신자를 거북이 신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거북이 신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더 열심히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가 무장하고 실천하면 우리는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순종의 무기입니다.
출애굽기 17장 10절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아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세의 "말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곧 말씀대로 순종하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대언할 때 백성들이 순종하였더니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의 리더쉽에 순종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전쟁과 난세일수록 지도자에게 전적으로 순종해야 그 난세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유명한 부흥사 무디 목사님의 성격책 여기저기에 T자와 P자가 많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Test와 Proof 시험해보니 증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말씀이 있어 그대로 실천했더니 그대로 증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이 위대하게 쓰임 받은 이유는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실천했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읽고 Test와 Proof의 역사가 많아 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계시록 1장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자꾸 듣는 사람이 결국 이기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정보를 많이 들은 사람이 앞서고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보물을 많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테이프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많이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그 다음에 들은 말씀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들은 말씀을 삶 속에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들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아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백번의 제사나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보다 났다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되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불신앙, 불순종이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삶의 패배의 첩경입니다. 반면에 순종은 우리 삶의 성공비결입니다.
아버지가 출장을 가는데 아들이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합니다. 그 때 아버지가 애야! 내가 출장 갔다 올 때까지 지하 창고 좀 깨끗이 치워 놓아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를 제가 사랑합니다. 잘 다녀오세요. 아버지는 아들이 창고를 치울 것을 기대하며 출장을 갔다 왔습니다. 아빠 잘 다녀 오셨어요. 저는 아빠가 이 세상에서 최고예요. 그리고 아빠를 제일 사랑합니다. 그래 나도 너를 다시 보니 정말 좋구나! 그런데 너 아빠가 부탁한 지하 창고 정리는 했니? 아뇨! 깜박 잊어버렸어요. 여러분 아빠를 사랑한다는 아들이 아빠의 부탁을 받고도 순종하지 않았으니 어찌 그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순종하지 않는 아들은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 신앙인들이 이런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잘 드립니다. 찬양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실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사랑한다고 말만 하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열 받지 않으실까요? 우리 같으면 당장 열 받아 주먹이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언젠가 일본 사람이 한국의 어느 회사에서 20년 동안 일을 하면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없는 이유 18가지를 썼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비전의 헌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전은 리더쉽이고 헌신은 능력입니다. 비전없는 헌신은 비참하고 헌신없는 비전은 허망합니다. 이 두 가지를 다 가질 때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우리 미래를 어떻게 창조할 비전과 그 비전에 헌신할 순종이 있을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고 발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싸움이 결코 헛되지 않고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3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아멘.
우리 소망교회의 비전은 2세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 센타를 이루는 헌신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1세들의 헌신으로 2세들은 세계 속의 인재가 되어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 1세들의 신앙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2세들은 그러한 헌신으로 하늘나라에 들어 가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 모든 성도들이 온 힘을 합쳐야 합니다. 환경이 열악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음을 하나로 합칠 때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유럽을 변화시키는 큰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토레이 신부가 했던 유명한 말을 소개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성경의 번역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 번역은 내 삶을 통해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듣고 알고 있는 만큼 순종하지 않는 것이 더 많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누가복음 8장 2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아멘. 말씀을 듣고 행하면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요, 가족이 됩니다. 듣고 아는 만큼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주신 말씀과 순종의 무기를 사용하여 2007년 한해 그리고 남은 생애동안 모든 싸움에서 넉넉히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영원한 승리자
출 17: 8-15
지금 전 세계인의 관심은 이라크 전쟁에 쏠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인들의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과 호소가 지구촌 전 지역마다 메아리쳤지만 이 전쟁을 막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전쟁이 빨리 종식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전쟁을 감당하고 있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 사이에는 서로 넘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의 벽이 그 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요, 미국은 보수적인 기독교 국가입니다. 사담 후세인은 모슬렘 교도이며 이라크는 모슬렘 국가입니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몰아붙여 무조건 이겨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여론은 이번 전쟁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해 9.11테러의 배후세력을 후세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사담 후세인은 알라신의 도움으로 이 전쟁을 성전으로 승리해야 된다고 하면서 아랍 동맹국들에게 이 전쟁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해도 이라크 전쟁으로 전 세계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은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악을 제거하기보다는 악을 증폭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 전쟁이 기독교와 모슬렘의 종교간 전쟁으로 비화되어 문명충돌로 이어져 무서운 비극을 낳을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전쟁을 성서적으로 조명하면서 전쟁의 시작은 어디에 있으며 참 승리는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은 인류가 바라고 있는 소원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땅에 전쟁이 없기를 기도하고, 이 땅에 평화가 이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는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피로 얼룩져 있습니다. 인간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양심을 마비시키고, 그리고 증오심으로 이성을 잃고 오직 승리만을 정당화하는 죄악의 노예를 만듭니다.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여러번 겪은 민족입니다.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는 순진한 민족이지만 수많은 외침을 받으면서 전쟁의 쓰라린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라크에 일어나고 있는 이 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우리는 마음 아파하면서 전쟁이 빨리 종식되기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전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들어가서 430년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저들은 바로의 학대를 받으면서 종살이에 신음하면서 지내다가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습니다. 출애굽을 해서 첫 번째로 한 전쟁이 바로 이 전쟁입니다. 지금까지는 전쟁을 한 일이 없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면서도 저들은 강력한 바로의 왕권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일으킬 여력도 없었습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번째 전면전입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적은 아말렉입니다.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8절)
이스라엘 민족의 전쟁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말렉이 침략하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처음으로 전쟁을 하게 됩니다. ‘아말렉’이라는 뜻은 ‘전쟁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아말렉은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했습니다.
그러면 아말렉은 누구냐? 창세기 36장 12절에 보면 에서의 손자가 아말렉입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다시 말하면 장자의 명분을 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아멜렉은 에서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간 사람이요, 에서의 인간적 악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후손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검불처럼 여기고 오직 먹는 것만 탐했던 사냥꾼의 후손입니다.
사냥꾼은 산에 가서 짐승들을 마구 죽이는 사람입니다. 사냥꾼은 일생동안 사냥을 하지만 만족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죽이고도 만족이 없습니다. 짐승을 잡았으나 그것으로 배부르지 못하고, 짐승을 수없이 사냥했어도 그것으로 부자된 것도 없고, 끊임없이 착취하고 학살해가지만 결코 그것으로 만족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 사냥꾼의 근성입니다. 그런데 아말렉이 바로 그러한 후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갈 때 저들은 침략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한 형제의 집안의 후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이요,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형제의 싸움이 결국 후손의 싸움이요, 이것은 한 동족간의 싸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어지는 역사를 보면 신비한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후손은 기독교 국가를 이루었고 아말렉의 후손은 아랍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기독교의 신앙을 가진 전 세계 나라들은 모두 민주국가를 이루어갔는데 전 세계 이슬람 국가 40개국 중 전통 이슬람 국가 30개국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 때문에 하늘의 비를 받아서 사는 땅입니다. 그런데 아랍은 땅속에 기름이 흐르기 때문에 기름을 끌어올려서 살아가는 백성들이기 때문에 지상에 젖과 꿀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하나님을 의존하고 살아가는 백성이요, 하나는 땅을 의존하고 살아가는 백성입니다.
그러면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 아말렉이 먼저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방어형이고 아말렉은 공격형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16절)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겼느냐? 하나님께서 직접 싸워주므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싸워서 이길 대상이 아닙니다. 이들은 사탄의 배후 세력이요, 악의 뿌리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싸워야 합니다.
이 전쟁은 시한전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대대에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일본과 한국 전쟁은 36년으로 끝났습니다. 연합군의 제2차대전도, 독일전쟁도 몇 년만에 끝났습니다. 세계의 전쟁은 다 종식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역사의 종말까지 대대에 싸워야 하는 전쟁입니다.
둘째, 인간 최대의 싸움은 영과 육의 싸움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싸움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 싸움이 우리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영과 육의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이스라엘과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려고 하는 아말렉의 싸움이 지금 우리 안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사냥하고 배고파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냐 어서 팥죽 내놓아라” 하는 이 인간적 육성이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사업이 안되어 죽게 되었는데 십일조가 뭐냐, 내가 지금 어려워 죽게 되었는데 예배가 무슨 소용 있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내 속의 인간성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어렵고, 인간적으로 수모를 당하고, 환경이 곤고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지’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성품이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진 사악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육의 성품과 성령께서 내 안에서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의 자녀된 본성이 내 안에 있습니다. 이 두 성품이 내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내 속에서 때로는 악한 본성이 발동하지만 이것을 잘 극복하고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1-24)
우리의 싸워야 할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원수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자기 아내가 원수인 줄 알고 자기 아내를 때리고 구박합니다. 어떤 사람은 형제간에 원수되어 평생을 등지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간에 원수되어 외면하고 삽니다. 어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원수로 알고 살고,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원수로 알고 삽니다. 어떤 사람 직장에서 동료를 원수로 삼고 삽니다. 심지어 한 교회 안에서 성도끼리 원수 맺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 적이 밖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적이 바로 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나를 죄인으로 몰아가는 악한 육신의 정욕이 내 안의 적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생동안 다른 사람과 원수맺고 싸우지만 아무도 다른 사람과 싸워서 이긴 사람이 없습니다. 한시적으로 이길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이긴 것이 아닙니다. 이긴 것 같으나 마음에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을 괴롭힌 것 때문에 양심에 가책이 생겨서 편할 날이 없습니다.
셋째,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어떻게 이깁니까?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높이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집니다. 그런데 모세도 인간인지라 하루 종일 손을 들고 있기가 힘드니까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내려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집니다. 그러니까 아론과 훌이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를 돌 위에 앉히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팔을 들어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두 번째는 여호수아의 칼날로 이겼습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13절)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칼을 들고 전쟁을 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칼을 쓰지 아니하고 여호수아 한 사람만 칼을 썼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칼이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기 때문에 광야에는 칼을 만들만한 연장이 없었습니다. 또 냉정히 생각하면 여호수아도 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느냐? 성경은 이 전쟁의 승리를 두 가지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가 손을 높이 들어 기도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여호수아가 칼날로 싸운 것입니다. 손을 높이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존하고 기도했다는 것이고 여호수아의 칼날은 무기의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칼입니다.
여호수아는 예수의 모형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장차 나타날 예수의 모형인데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칼은 말씀의 칼입니다. 여호수아의 칼날은 아말렉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아말렉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이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을 쳐서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칼입니다. 칼은 남 죽이는 것입니다. 말씀의 칼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생동안 ‘어떻게 하면 남을 이기나, 어떻게 하면 남을 죽이나’ 이 생각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나를 이기나’ 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만 참 평안이 있고, 승리가 있고, 위대한 인격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은 최대의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승리한 자만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와 싸우지 않습니다. 일생동안 사랑하고 살아야 할 사람과 싸웁니다. 아말렉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속의 육신의 정욕이 바로 나의 적입니다.
위대한 승리자는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입니다. 지배자는 남과 싸워 이긴 사람이요, 지도자는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입니다. 남을 죽이고 권좌를 차지한 사람은 결국 자기도 무너집니다. 그러나 자기를 이긴 사람은 아무도 그 사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이겼기 때문에 결국은 영원한 승리자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대대에 싸워야 할 적은 북한이 아닙니다. 일본도 아닙니다. 대대에 싸워야 할 적은 내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입니다. 기름을 짜내듯 온 힘을 다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을 짜내는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바라나이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자기 자신을 죽여서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승리를 이루십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자기를 완전히 이겼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이어간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은 원수들이 돌로 쳐서 자기를 죽이려할 때 원수와 싸우지 아니하고 자기와 싸웠던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 자기와 싸웁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 이깁니다. 역사는 강팍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온유한 자가 승리하여 이 세계 정신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그럽니다. “목사님 새벽기도 열심히 나갈 때는 내 마음도 편안하고 집안도 평안했는데 기도 안하니까 공연히 혈기만 나가지고 남편과 싸우고 또 아이들에게 공연히 소리치다가 아이들한테 내 인격이 손상만 입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기를 이기지 못해서 자기 자신이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몇 몇 목사님들과 함께 1박 2일동안 국내 성지순례를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국내에 있는 여러 관광 명소들을 순례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관광 명소에서 받은 은혜는 피상적인 자연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번에 순교자들의 순교 현장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를 이긴 자의 위대한 승리를 눈으로 보았고 마음으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수․순천 반란사건에서의 동인, 동신 형제, 6.25사변 때 애양원에서 순교한 위대한 손양원 목사님, 그리고 전남 영광에서 순교한 135명의 기독교인, 모두가 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전남 영광에서 순교한 135명의 기독교인은 공산당에 의해 죽어가면서도 다 함께 찬송을 부르면서 갔습니다. 그 자리에 살겠다고 예수를 부인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고 다 찬송하면서 갔습니다. 두려워서 친정으로 숨어들어갔던 한 자매도 교인들이 다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자진해서 걸어나와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이 그를 그냥 죽일 수 없다 해서 돌에다 발을 묶어가지고 바다 속에 세워놓았습니다. 바닷물에 잠겨 죽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매에게는 어린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바다에 서 있습니다. 썰물 때가 되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물이 차 올라와” “참아라. 조금 있으면 너는 영원한 승리자가 된다.” 마지막 물이 목까지 찼을 때 그는 찬송을 부르면서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갔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가는 사람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갔습니다. 말씀 붙들고 갔습니다. 최후의 승리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나 자신을 죽인 자만이 순교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순교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라고 했던 사도 바울과 같이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 말씀으로, 기도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출 17: 8-16
<목회기도>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 기둥교회에서 예배드림에 감사 드립니다.
산지를 달라고 부르짖던 기도를 마음 깊이 새기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험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세상의 큰 사람들과 큰 성벽들도 이기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두려움 없이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며 사는 기쁨을 간증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멀리 외국과, 쓸쓸한 객지와, 고통의 병상에 있더라도,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어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부족한 종은 능력있게 말씀을 대언하게 하시고
말씀 듣는 성도들도 새 힘을 얻고 영육간에 치료받는 기쁨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산지를 향해 전진할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인터넷으로, 비디오와 카세트 테이프로 예배드리는 분들도
모두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설교하실 목사님이 계시지 않아 영상예배를 드리는
미국, <밴쿠버 기둥교회> 성도들도… 화면으로 만나지만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싸움
오늘 본문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전쟁하는 장면입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서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창36:12) 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이동 중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을 위해 조직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변변히 준비된 무기도 없었습니다.
-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평 불만이 넘쳤습니다.
떡(빵)과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했고(출 16:3), 물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출 17:1~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16:3)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출17:1)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출17:2)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출17:3)
아무리 잘 조직되고 훈련된 군인이라도 불평 불만이 많으면 적을 이길 수 없습니다.
투덜거리면서 기운을 다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으면 그 입으로 기운이 다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교회에서도 말 많은 사람이 일하는 것 보았습니까?
말하느라 지쳐서 일 못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느라 바빠서 말할 틈이 없습니다.>
-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렸습니다.
- 그 싸움에서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이기기 어려웠던 다른 이유는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전쟁을 예상치 못하였습니다.
아말렉은 사막을 이동하면서 "피곤에 지쳐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습니다.
신명기에 모세가 아말렉과의 싸움을 회상한 내용이 있는데…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신 25:17~18)
아말렉은 뒤에 쳐진 약한 자들부터 공격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범사에 강해야 합니다.
특별히 믿음의 행진에서도 뒤에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뒤에 떨어지면 뒤에 쳐지면 마귀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 치타, 쿠가… 등이 뒤에 쳐진 동물, 약한 동물을 잡아 먹습니다.
영적인 행진에서도 앞장서야 합니다. 뒤에 쳐지면 공격 대상이 되고 맙니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탄탄대로로만 행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위험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위험을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위험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러 종류의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때 문제를/위험을/위기를… 도전으로 여기고 싸워 이길 것이냐
아니면 문제와 함께 쓰러져 망할 것이냐… 는 우리의 삶과 신앙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우리 교회 헤어질 때 인사가 뭡니까? [승리하세요]
승리라는 말이 가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싸워서 이겨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범사의 삶에, 건강에, 경제에도 승리하십시오.
믿음 생활에도 승리하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순종이 승리의 능력
이스라엘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갑작스런 싸움이었지만,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습니까? 그 이긴 원인을 모세의 명령과 여호수아의 순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싸움을 시작하는 모세의 명령은 간단했습니다.
9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출 17:9)
모세는 "나가서 싸우라"고 명령했고, 여호수아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10절)
여호수아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모세는 "사람을 택"하라(출 17:9)고 했고 여호수아는 싸울만한 사람을 택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했고, 여호수아가 택하는 사람들도 순종했습니다.
'왜 접니까? 왜 제가 해야 합니까?'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고 싸움터로 나갔습니다. 그 순종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야 하는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그러므로 <못합니다. 못갑니다. 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못]자를 빼고 <합니다. 갑니다. 할 수 있습니다>해야 합니다.
아직도 [못]자를 빼지 못한 불신앙과 불순종의 사람들은 택함 받은 용사가 아닙니다.
택함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택함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뽑으실 때…,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아멘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산꼭대기의 모세
이스라엘이 승리한 또 다른 비결은 모세에게 있었습니다.
전쟁을 앞둔 모세는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출 17:9) 고 했습니다.
모세가 산 위로 올라 간 것은 구경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체력 단련을 위해 간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응답받기 위해 갔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에 왜 오셨습니까? 누구를 만나기 위해 오셨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찬송하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산꼭대기에 선 모세는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올렸습니다.
모세가 잡은 지팡이는 '뱀이 되었던 지팡이'입니다. (출 7:10)
'홍해를 갈랐던 지팡이'입니다. (출 14:16, 21)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던 지팡이'입니다. (출 17:5~6)
80넘은 모세가 빈 손을 들어도 힘들었을 텐데 모세는 그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이 도와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11절에 보면 모세의 기도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17:11)
전쟁의 승패는 기도하는 모세의 손에 달렸음을 보세요.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기도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기고…
전쟁의 최전방은 몸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기도하는 모세가 서 있는 산 위가 최전방이었습니다.
거기서 손이 오르고 내리는 데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의 손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사랑하는 가족이 군대, 객지, 외국에 나가 있어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자리에 있어도, 삶의 싸움터에 있어도…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답답했던 일이, 만나는 사람마다 마치 한국이 미국을 버리는 것처럼
'이제 한국은 큰일났고, 망할 것 같은…' 염려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포들을 만나도 한국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 때마다 제가 "염려 마십시오. 제가 있습니다."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향해 욕하고 얼마나 많이 손가락질을 하셨습니까?
그러나 기도는 얼마나 하셨습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손 들고 기도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들어올린 기도의 손에 응답의 기쁨을 쥐어 주십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방에 깃발을 한 장 부치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대통령 취임을 하던 날 어떤 사람이 손수 만들어 보낸 선물이었습니다.
그 깃발에는 이런 성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입니다.
송구영신예배 때 참석하셨던 분들은 열쇠고리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열쇠고리에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는 말씀이 새겨 있습니다.
링컨의 측근자는 '링컨이 밤중에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힘으로는 이 백성을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도와 주소서.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이것이 링컨이 가장 자주 하던 기도였다고 합니다.
링컨은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 줄 아는 기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여러분도 범사에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잘 들으세요.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이 땅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만나지만…
이 땅의 문제라고 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 땅의 방법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문제이지만 하늘에서 해결해 주셔야 완전한 해결입니다.
기도로 해결해야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지혜로, 돈으로,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지와 같이 험하고… 아말렉 같이 덤벼드는 수많은 일들이… 금년에도 우리에게 닥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의 손을 들고 사십시오.
잠시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려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결국은 이기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론과 훌이 붙잡을 때 …
모세가 산 위에서 기도할 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돕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아론과 훌입니다.
모세는 강한 지도자입니다. 모세 같은 지도자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신34:10)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지도자 모세인데도 그 옆에 아론과 훌이 함께 했습니다.
성경은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돕는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출 17:12)
모세는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에게 …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했습니다.
모세도 도움이 필요했는데 저는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관심으로, 사랑으로, 섬김으로, 격려함으로…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 강단 밑에, 제가 서서 설교하는 바로 밑에 3개의 기도실이 있습니다.
보통 기도실이 아니라 중보기도실입니다.
가운데는 '모세' 방으로 담임목사 기도실입니다.
그리고 양 옆에 있는 기도실 이름은 '아론'과 '훌' 입니다.
'아론'과 '훌' 기도실에는 지금도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배시간 마다 예배를 위하여, 설교자를 위하여, 예배드리는 우리들을 위하여… 뜨겁게 기도합니다.
저는 설교하다가 느낄 수 있습니다. 강단 밑에서 기도하는 분들이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는지,
얼마나 전심전력하여 기도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합니다. '아 밑에서 기도하는 분들이 불을 잘 때시는구나, 뜨겁게 기도하시는구나…'
그런데 어떤 때는 설교하기가 힘이 들고 쩔쩔매기도 합니다. 가끔은 냉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지금 아론방과 훌방에 누가 들어가 있는거야…'
여러분! 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기둥교회 목회,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능력있는 목회를 하도록 붙들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아론과 훌같은 분들이 많이 계셔야 힘있게 목회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붙들어 주세요. 힘이 되어 주세요.
김 빼지 말고~ 힘 빼지 말고~ 김 빼는 말/힘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힘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보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출 17:12) 했습니다.
아론과 훌은 해가 지도록, 전쟁이 끝나도록, 끝까지… 모세와 하나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집사되었을 때 잘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권사되었을 때, 장로 되었을 때 잘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끝까지 잘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끝까지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모세만 승리한 것이 아니라, 아론과 훌이 승리했고, 이스라엘 전체가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출 17:15) - '여호와의 깃발'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여호와 닛시 …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 " (출 17:16)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상을 하고 살아도, 아말렉이 이스라엘의 뒤를 친 것처럼
황당하고 기막힌… 어려운 일들이 금년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 손을 들어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 싸움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산아래서 싸우고 모세는 산 위에서 손들고 싸웠습니다.
그리고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며 승리를 도왔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동지, 협력의 동지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혼 자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거든 "기도해 주세요. 저를 도와 주세요, 붙들어 주세요"라고 요청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먼저 남을 위해 기도해 주고…, 붙들어 주고…
그리고 여러분도 기도해 달라 하세요. 기도의 동지들을 많이 구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도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세요.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이
아침의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보물을 여는 열쇠이고
저녁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위해 닫는 자물쇠 라고 했습니다.
In the morning, prayer is the key that opens to us
the treasures of God's mercies and blessings; in the evening,
it is the key that shuts us up under His protection and safeguard.
기도하기를 주저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식된 우리를 위해 더 안타깝게 돕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이나 체크하고 잘못이나 기록해 두었다가 처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으신 분이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7)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9)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물론 성경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기록하신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자신을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주일 미국 Texas에 있었습니다.
처형댁이 있는 Austin에서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큰아들과 둘이서 3시간 동안 운전하여
Houston에 있는 Lake Wood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이 교회는 현재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입니다.
Houston Rokets라는 NBA농구팀 경기장을 사서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예배실 좌석이 16,000석이나 되는 교회입니다. 엄청나더군요.
그 날 담임목사 Joel Osteen 목사님의 "Feeling Good About Who You Are." 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Joel Osteen 목사님이 쓴 책 [긍정의 힘]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분이 설교 중에 아버지 목사님(John Osteen)께 들은 이야기를 예화로 하셨습니다.
John Osteen 목사님의 친구가 자기 아들이
미식 축구 선수인데 아들이 출전하는 시합이 있다고 구경가자고 해서 경기장에 갔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아들은 수비수였기에 공 잡는 일이 별로 없는데 어쩌다가 공이
그 앞에 떨어져서 잡았다고 합니다. 공을 잡고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며 앞으로 나갈 틈을
찾느라고 우물쭈물 하는 순간에 열 명쯤 되는 상대 선수들이 달려들어 깔아뭉갰다고 합니다.
그 친구 아들은 공을 잡고 좌우로 한번씩 움직이다가 넘어진 것입니다.
John Osteen 목사님이 실망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Pastor, Did you see those two good moves?"
"목사님, 내 아들이 멋지게 두 번 움직이는 것을 보셨습니까?"라고 하더랍니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 아들이 공을 잡고 좌우로 한번씩 움직이다 넘어진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짧은 순간에 좌우로 움직인 단 두동작도 멋진 동작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제 작은 아들은 레슬링을 합니다. 저는 그것을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제 아들은 좋아서 합니다.
마침 제가 갔을 때 시합이 있다기에 조마조마 한 마음으로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잘하더군요. 기술이 좋더라구요.
예선, 1회전, 2회전, 준결승전을 쉬지 않고 계속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들이 다 이기고 준결승전을 하는데 좀 체력이 떨어졌나 봅니다. 매우 힘들어 하더군요.
그런데 제 아들이 상대방 선수 아래 눌려 있을 때는 제가 달려가서 뒤집어엎고 싶더군요.
그러다 제 아들이 상대방을 누르고 있으면 또 얼마나 좋은지요.
이것이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세상살이의 힘들고 어려운 때에
아버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도와 주실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고 나가면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결국엔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을 올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믿음으로, 순종으로, 기도함으로, 서로 도움으로 승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승리했습니다."라고
간증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을 향하여 승리의 길을 가르쳐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범사에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이
남에게 준 말씀이 아니라
내게 준 말씀으로 간직하고 세상에 살며 승리를 간증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범사에 승리케 하여 주시기를 원하며,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신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