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에 대한 과거 영광 집착의 결말
1990년대,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서로 경쟁하면서 디지털 TV 시장을ㅏ 선도했다. 사실 두 회사 모두 1960년대에 TV 수상기 시장에 진입할 때 일본 기업의 하청회사로 시작했다. 삼성은 산요전기의 하청기업으로, LG는 알프스전기와의 합작기업으로 TV 시장에 진입했다. 그 이후 독자적인 브랜드로 전환했지만 좀처럼 일본의 선도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특히 소니는 전자왕국 일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68년에는 트리니트론(소니가 개발한 CRT 기술) TV를 만들어 세계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고, 1982년에는 세계 최초로 휴대용 TV도 만들었다. “It's a SONY”라는 자신감 넘치는 슬로건이 유행했을 만큼 소니 제품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비싸게 팔리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도 혼수품 1호가 소니 TV였을 정도다.
하지만 TV 시장이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형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소니가 아날로그 TV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소니는 아날로그 TV의 브라운관 기술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브라운관 기술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미묘한 품질 차이까지도 잡을 수 있는 특수 조정기술(일본어로 ‘스리아와세’ 기술이라고 한다)을 기반으로 했다. 이 기술은 장인들의 오랜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것이기에 한국 기업들이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LCD 같은 디지털 TV는 그러한 특수 조정기술이 필요 없다. 표준화된 부품을 잘만 조립하면(모듈화 기술) 만들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은 주요 부품들을 해외에서 조달한 뒤 신속하게 조립해 판매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소니는 브라운관 기술을 최후까지 활용하는 전략을 놓지 못했다. 평면 TV에서도 브라운관 기술을, 프로젝션 TV에서도 브라운관 기술을 원용하고자 했다. 때문에 기술과 품질은 뛰어났지만 스피드와 신선감에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LG와 삼성에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소니는 기술이나 품질에서는 앞섰지만 사업에서는 실패한 일본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하고 기술과 품질만 중시하는 기업은 망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 일본이 온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