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6장 8부 강해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하는가?
말씀 요한복음 6장 52-59
요절 요한복음 6장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우리는 밥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목숨을 유지하고 피곤하지 않고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물을 마시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데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잘 먹고 잘 마셔도 마음이 허할 때가 있습니다. 잘 먹었는데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육신의 양식이나 물보다 더 중요한 양식과 물을 먹지 않아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허한 마음을 채우고 피곤을 극복할 수 있는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를 소개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살이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가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생명력 있게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첫째, 예수님의 살과 피가 왜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인가? 둘째,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자신들을 아무리 배고프더라도 식인종이나 드라큐라처럼 취급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의 의미를 설명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살이 참된 양식이요,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살과 피는 물론 육신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아시죠? 십자가의 살과 피의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살을 주시는 사랑은 우리의 참된 양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참된 음료입니다. 대신 죄값을 치르신 예수님의 공의는 죄를 짓지 않게 하는 참된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그들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삶을 먹고 피를 마셔야 현재 성령을 받아 영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십니다. 우리는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마지막 날 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참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해서 힘을 쓰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생명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이사야는 왜 양식 아닌 것을 위해서 힘을 쓰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이사야 55장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람들은 목이 마릅니다. 배고픔이 있습니다. 불만족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은 그 목마름을 돈을 벌고, 인간적인 사랑을 하고, 겜을 하며 재미로 채우고자 합니다. 목자들은 많은 수의 제자양성을 하면 만족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영혼의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이런 것은 얻어도, 얻어도 피곤함뿐입니다. 밥을 먹었는데 허하고 돈은 벌었는데 다 빠져 나갑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다섯 남자를 만났어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부와 여자와 명예와 지혜를 다 얻었어도 그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카페에 많은 구독자가 있지만 그들이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이므로 이런 피조물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참 만족을 주는 참양식, 참음료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 양식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참 만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였을 때 만족을 얻고 방황이 그쳤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을 영접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영접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삶에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참 음료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야 영생을 얻습니다. 성령님은 차별과 슬픔과 분쟁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참양식과 음료를 값없이 사라고 하십니다. 값없다는 것은 값싸다는 말이 아닙니다. 공기나 물과 같이 너무 값이 비싸서 우리가 값을 지불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값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먹고 마시면 됩니다. 먹고 마신다는 것을 실제 입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죠? 먹고 마시는 것은 보고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먹고 마신 후에 그것을 입에서 씹고 위장에서 소화하고 운동하여 나의 근육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고 듣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을 주의해야 합니다. 보고 듣는 것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무의식과 삶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살과 피를 보고 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들은 후에 그것을 입에서 씹고 위장에서 소화하고 운동하여 나의 근육으로 만드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씹고 소화하고 운동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입에서 씹어서 삼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이 반복하여 말씀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살과 피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매일 밥을 씹어서 삼키듯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매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이가 없는 사람은 씹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맛을 알 수도 없고 소화도 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입으로 씹는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십자가를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과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죄사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위장에서 소화하여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입에서 씹어서 삼키면 위와 장에서 소화시킵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위염이나 위궤양 장염이나 위암 대장암이 생기면 소화를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입에서 씹어 삼켜도 소화를 할 수 없으니 죽습니다. 입으로 씹는 것이 생각이라면 위와 장에서 소화시키는 것은 무의식가운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무의식은 우리의 보고 들은 경험이 과거로 내려가면서 이루어집니다. 안 좋은 경험은 안 좋은 무의식을 만듭니다. 한 분이 신호를 무시하는 차에 의해서 교통사고가 나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는 의식 속에서 교통사고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신호를 지키지 않는 차를 보면 크게 흥분합니다. 무의식 가운데 그 경험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무의식을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는 라이프 소감을 쓰거나 매일 양식 일기를 쓰면 무의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십자가의 피로 치료하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무의식을 청소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피로 죄사함 받으면 꿈에서도 아름다운 기억이 남게 됩니다. 꿈에서도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 분은 병으로 고생하였습니다.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말씀을 공부하고 양식을 보면서 좋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나는 불안이 밀려올 때 “네 영혼아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면 낙심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네가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말씀을 반복하여 묵상하였습니다. 자리에 누워서도 그 말씀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꿈에서도 승리의 시를 생각나게 하시고 실제 승리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주일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주일 말씀이 꿈에서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무의식까지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셋째, 먹고 마시는 것은 나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면 입과 위장에서 소화하고 결국은 나의 살과 피가 되게 해야 합니다. 운동을 하여 영양소를 비만이 걸리지 않고 나의 근육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십자가가 나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운동은 순종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내가 하기 싫어도 하나님의 뜻이면 해야 합니다. 죽으심을 본받아 삶에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도요한에게 두루마리에 적힌 것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입에서는 달지만 창자에 들어가니 쓰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먹은 것은 계시록 말씀입니다. 계시록에는 7가지 재앙이 세 번 나옵니다. 인재앙, 나팔재앙, 대접재앙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 재앙을 통하여 택한 자와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그 재앙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므로 들을 때는 달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재앙을 받는 것은 쓰디쓴 것입니다. 휴거되지 못하고 남은 자들은 그것을 잘 참고 견뎌야 구원 받습니다. 순교 당하는 사람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참고 견뎌야 구원을 받습니다.
이 말씀은 에스겔에게도 주신 말입니다. 에스겔에게도 두루마리에 적인 것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70년 바벨론 포로의 재앙입니다. 그 재앙은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을 유다를 새롭게 개조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고 땅의 소망에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거룩한 그들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유다가 새롭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달콤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그것을 받아들여서 70년 바벨론 포로로 참고 사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유다는 많은 사람이 죽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채찍에 시달렸습니다. 유다 백성이 70년 용광로 훈련을 잘 받았을 때 그들은 순금처럼 순수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을 영접할 때는 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세상이 천국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계속 반복하여 생각하고 안 좋은 무의식을 청소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의 십자가로 영접하고 순종하여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때는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 고통을 받아야 우리는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 고통을 잘 참고 견디면 우리는 거룩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체험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제가 새학기가 되어 건빵을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부인하고 건빵을 돌렸을 때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하루라도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지 않으면 우리는 피곤하고 지칩니다. 병이 나고 죽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영접하고 그 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소화가 안 되거나 위장에 문제가 있으면 병원에 갑니다. 지난 주 예닮목동이 혈변이 나와서 장 내시경을 하였습니다. 나도 정기 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였습니다. 위장을 잘 관리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무의식까지 점검해야 합니다. 무의식까지 말씀과 십자가로 청소하여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아 나의 십자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생을 얻고 풍성하게 살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아야 합니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우리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 그 밥과 물이 나의 살이 되고 나의 피가 되고 나의 뼈가 됩니다. 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도 그 안에 거하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생명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태아와 어머니가 탯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과 생명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예수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랑의 관계성이 맺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줄은 핏줄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사랑의 줄은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어떤 환난과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과 우리는 생명으로 맺혀지게 됩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 밥과 물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먹은 밥은 에너지가 되어 우리에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없어 움직일 수 없습니다. 40일 이상 먹지 않으면 나중에는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면 우리는 그 살과 피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힘과 은혜를 공급받아서 살아갑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숨쉬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내 뜻과 고집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내 영광을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주시는 생각에 순간순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포기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내 생명의 주인입니다. 나는 그 생명의 관리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원에 따라서 그가 주시는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은혜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지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죽은 후에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에게 죽음의 요소가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슬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마지막 날 다시 살게 하십니다. 아멘!
(결론) 참된 양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자
우리는 먹고 마셔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선한 음식과 깨끗한 물과 공기를 마셔야 합니다. 그래야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먹고 마신 후에 돈이나 인간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찾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정받고자 합니다. 많은 제자양성이 행복을 줄 것으로 제자양성을 위해서 힘을 씁니다. 이런 것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다 얻었는데도 마음이 허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참양식과 참음료를 먹지 않아서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생명을 주는 것은 하나님이고 육신의 몸을 입고 온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살과 피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입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마시듯이 십자가를 보고 들어야 합니다. 세례요한도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믿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받아들이고 죄를 멀리 합니다. 무의식까지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안 좋은 경험을 피로 청소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아 십자가를 나의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의 삶에서 십자가를 익혀야 합니다. 내가 싫어도 하나님의 뜻이면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내 안에 살아계시고 나는 예수님의 은혜로 살게 됩니다. 이제는 은혜로 공부하고 은혜로 돈을 벌고 은혜로 제자양성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의 삶으로 만들어 새 생명을 얻고 마지막 날 다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6장 8부 강해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하는가?
말씀 요한복음 6장 52-59
요절 요한복음 6장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장 강해 8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