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 어땠는지 얘기 좀 해주세요.”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이 없었다. 그 침묵은 ‘턱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것으로 들렸다.
<명량>(감독 김한민)을 찍는 내내 최민식은 이순신 장군의 처소 밖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장군의 눈빛, 호흡, 걸음걸이, 칼 잡는 법 등 모든 게 궁금했다.
“마치 처소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장군님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 밖에서 ‘말씀 듣고 싶어서 왔다’고 무릎꿇고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데도, 뒤도 안 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 사진=이명원 기자
이순신은 수퍼히어로 아닌 매뉴얼에 충실한 군인<명량>은 1597년,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전투 ‘명량대첩’을 그린 영화다.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 장군은 한국인이 다 알고, 존경하는 영웅이다. 김한민 감독이 첫만남에서 이순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최민식은 “대체 이 이야기를 왜 영화로 하려고 하냐, 투자는 결정된 것이냐”고부터 물었다.
“모두가 아는 위인과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니까 상업성을 저울질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 김한민 감독과 술을 거나하게 마시면서 <명량>을 만들려는 그의 심경을 들었다. 최민식은 그날 밤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취했다. 아침에 깼을 때 기억나는 건 단 한 가지. ‘아, 내가 이순신 역을 하기로 했구나.’
“김한민 감독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영화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아요. 이순신 장군뿐만 아니라 윤봉길·이봉창 얘기까지 했어요. 소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처박혀 먼지를 뒤집어쓴 가치를 다시 찾고 싶다는 것이죠. 의리, 충성, 애국 같은 거 말입니다. 감독의 의도에 마음이 움직였죠.”
최민식은 현재 활동 중인 남자 배우 가운데 가장 연기 폭이 넓다. 양극단을 오가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그중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구석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대충 연기한 적도 없다. 그는 욕쟁이 검사(<넘버3>)이자 도시에 적응하려는 순박한 농촌 총각(<서울의 달>)이었고, 바람난 아내를 죽이는 백수 남편(<해피엔드>)이자 위장 결혼한 아내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삼류건달(<파이란>)이었다. 인육을 먹는 살인마(<악마를 보았다>)와 15년간 군만두만 먹은 피감금자(<올드보이>) 같은 역할은 그가 어떤 극한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에선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일상의 비리 속에서 어디선가 꼭 본 듯한 ‘아저씨’였다.
최민식은 광고(대부광고에 출연했다가 질타를 받은 이후로 광고를 거의 하지 않았다)에도, 예능에도 출연하질 않았다. 그래서 대중은 그를 ‘최민식’이 아니라 그가 연기한 캐릭터로 오롯이 받아들인다. 이런 캐릭터들을 연기할 때마다 그는 “난 연기하는 거야. 내가 상상한 대로, 설정한 대로 연기하면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선 실존 인물인 화가 장승업 역을 맡았다. 실존 인물이지만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
“한국화를 연구하는 교수들에게 오원 장승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니, 창작자로서 (오원과) 저랑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거예요! 편했죠.”
이순신 역에는 그가 해오던 방식들이 도무지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이순신을 연기할 때 확신이 없었다.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최민식이 연기해야 하는 이순신은 누명을 쓰고 파면당했다가 가까스로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됐다. 그는 왕의 신임을 못 받으면서 왕에게 충성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12척의 배로 330척의 배로 공격해오는 왜군을 막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군인과 백성들은 두려움에 질려 그를 쳐다봤다. 이런 이순신을 연기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손짓은 커졌다.
- 사진=CJ E&M
“난중일기와 이순신 평전 같은 걸 보면서 ‘이거 너무 미화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정도로 이순신은 완벽한 인격체입니다. 이런 사람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요? 미천한 몸뚱이와 정신을 갖고 제가 감히 그런 사람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백투더퓨처>의 자동차라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장군님의 위대한 실천을 몰래 숨어서 보고 싶었다니까요!”
최민식이 이순신을 연기하기 위해 의지할 건 결국 난중일기와 사료(史料)밖에 없었다. 학자들의 다양한 가설은 다 배제하고 주로 팩트(fact)만 보려고 했다. 특히 국보 제76호인 《난중일기》는 최민식에게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이순신이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기록한 《난중일기》는 출전한 날과 감옥에 수감된 날 등 부득이 쓰지 못한 경우만을 제외하고, 실제의 정황을 틈 나는 대로 기록한 전쟁문학의 백미다. 이를 통해 최민식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순신은 수퍼히어로가 아니라 군인이라는 것. 국가와 지도자가 전란(戰亂) 앞에서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최민식은 알게 됐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이순신도 범인(凡人)들처럼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왕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을 때 그라고 왜 서운하지 않았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죠. 그가 대단한 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와 최고 통수권자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군인의 매뉴얼을 지킨 겁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전투였어요. 이순신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어요? 죽을힘을 다해서 싸우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것. 말이야 쉽지 그걸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이순신은 이 모든 것을 다 실천했다는 것, 그게 대단한 거죠.”
《난중일기》와 실록에서 드러나는 이순신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가 말수가 적고 감정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우에게는 반갑지 않은 성격이다. <명량> 시나리오에서도 거북선에 불에 탔을 때 절규하는 딱 한 장면에서만 이순신의 감정이 강하게 드러난다. 최민식은 김한민 감독에게 “이순신이 어머니의 위패를 모신다는 설정을 하자”고 제안했다. 감독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순신은 지극한 효자였고, 백의종군 당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런 인물이라면 명량해전을 앞두고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어머니에게 본능적으로 의지하는 게 당연해 보였어요. 어머니 아니면 누구한테 의지하겠어요. 아들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는 장면도 있긴 하지만 아버지의 의중을 모르는 아들은 아무래도 답답하잖아요. 어머니 위패는 장군이 처소에서 위안 삼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 거죠. 그 앞에서 하소연도 하고요.”
<명량>에서 이순신은 적의 기세 앞에 겁에 질린 군사와 백성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면 된다”고 한다. 이순신을 연기하면서 최민식이 가졌던 불안, 초조를 용기로 바꿔준 것은 바로 촬영장의 동료들이었다. 그는 “내가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을 때 나를 바라본 동료들이 있었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서 왜군 도도 역을 맡은 김명곤을 제외하곤 모든 배우가 그보다 나이가 어리고 경력도 적었다.
“저는 배 꼭대기에서 지휘하는 연기를 많이 했고 험한 연기는 다른 배우들이 다 했어요. 어찌나 리액션들이 절절한지, 이들의 눈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제가 다 찌릿찌릿했다니까요. 부상도 엄청 많이 당해서 다친 사람을 실어 나를 차와 운전기사가 언제나 대기 중이었어요. 발가락 부러지고 살이 조금 찢어지는 건 예사라서 그냥 계속 연기하는 배우들도 있었어요. 이토록 헌신적인 배우와 스태프들이 있을까 싶었어요. 저는 이 친구들 대사를 제대로 받는 것부터 열중하자고 마음을 다잡게 됐죠. 이번 촬영에서 가장 큰 힘이 된 겁니다.”
7월 중순 있었던 언론 시사회에서 최민식은 기자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그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맨 뒤에 서 있었다. 이렇게 안절부절못한 것은 <파이란> 언론시사회 이후 처음이다. 그때도 자리에 앉아 있다가 통로로 나왔다.
“불안해서 못 앉아 있었어요. 맨 뒤에 서 있다 보니 자연스레 기자들 반응을 살피게 되던데요. 하하. 객석에서 불빛이 여기저기 반짝거리면 영화가 망한 거죠. 영화가 지루하니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잰다는 얘기니까요. 다행히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아 마음을 좀 가라앉힐 수 있었어요.”
‘하루 관객 100만 명 돌파’ 신기록 행진최민식이 객석 맨 뒤에서 관찰한 관객반응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명량>은 개봉하자마자 각종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영화사(史)를 다시 쓰고 있다. 개봉일 관객수 68만 명. 역대 개봉일 최고 기록이다. 개봉 37시간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000만 영화’인 <아바타> <괴물> <도둑들>은 사흘,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은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첫 토요일(8월 2일)엔 123만명을 모으면서 국내 영화시장에서 처음으로 일일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8월 6일 현재, 이 영화는 개봉 1주일 만에 700만 관객을 넘겼다. 이순신이 바다를 평정했듯 <명량>은 극장가를 점령했다.
그는 “호평을 받고 흥행을 하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잊고 있었던 가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순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어린 학생들이나 예전에 역사책에서만 이순신을 접했던 분들에게 이순신과 그가 상징하는 가치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할 일을 다한 것이다”라고 했다.
- 사진=이명원 기자
할리우드 진출 영화 <루시>, 북미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명량>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북미에서는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 함께 출연한 <루시>(감독 뤽 베송, 국내 9월 개봉)가 개봉했다.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최민식은 마약 조직의 운반책인 루시(스칼렛 요한슨)를 이용하고 끝없이 추격하는 악당 ‘미스터장’ 역을 맡았다. 한국어로 대사를 소화하면서도 미국 언론으로부터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원래 뤽 베송 감독은 일본이나 중국의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는데, 한국 영화 관계자가 건네준 최민식 연기 영상을 보고서 그를 선택했다고 한다(하기야 산낙지를 통째로 먹는 최민식의 연기를 보고서 그를 좋아하지 않을 감독도 드물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최근 인터뷰에서 “최민식은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다. 우린 비록 말이 통하지 않지만, ‘연기’라는 공통의 언어를 갖고 있어서 소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민식은 “좋은 대접 받으면서 촬영하니 ‘여기가 할리우드 맞구나’ 싶었다. 그래도 난 강원도 산골짜기 같은 데서 촬영한 경험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제가 배고프다고 하면 레스토랑에서 ‘오봉’(쟁반)에 음식을 담아서 갖다 줘요. 한국 촬영장에는 어디 그런 게 있나요. 그런 대접을 안 받아봤으니 누리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촬영 끝나면 개인 대기실에서 잘 수도 있는데, 도무지 침대에 못 눕겠어요. 촌스러운 거죠. 그래서 한국 촬영장이 훨씬 마음 편해요. 촬영 끝나면 다 같이 머리 맞대고 모니터 보고 추위나 더위 때문에 배우와 스태프들이 다 함께 고생하고. 촬영장 ‘밥차’의 밥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명량> 개봉(7월 30일)을 앞두고서야 최민식은 “이순신의 강박에선 벗어났다. 대신 이젠 이순신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 자유롭게”라고 했다. “그토록 갈구했는데 뒤도 한 번 안 돌아본 분”이자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분”이기 때문이다. 김한민 감독이 <명량>을 포함해 ‘이순신 3부작’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지금의 흥행추세를 봤을 땐 충분히 가능하다. 후속작에 출연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팔을 뻗어 손을 휘저었다.
“어휴, 안 돼요. 이젠 체력이 달려서요. 어느 더운 날 투구 쓰고 있다가 졸도해서 얼음물에 정신 차렸어요. 게다가 그분(이순신)이랑 저는 거리가 워낙 멀어서. 저는 어제도 술에 취해서 후배 등에 업혀 들어갔다가 집사람한테 잔소리를 들었는걸요.”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