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사기투표가 문제가 된다. 워싱턴에 트럼프 지지자는 부정선거를 고발하고 나섰다. 이런 현상의 풀이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풀이를 할 필요가 있게 된다. 미국연방헌법(1788)은 로크의 생명, 자유, 재산 등 인간의 기본권에 충실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노동의 외피, 즉 재산에 관한 논의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갈린다. 그러나 생명, 자유에 관한 초심은 변할 수가 없다. 그 문제가 연초부터 ‘대북전단법’으로 한반도에서 불을 붙게 된다. 그 논의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게 된다.
파이낸셜뉴스 김지환 인턴 기자(2021.01.06.), 〈‘워싱턴으로 모여’..트럼프 한마다에 지지자 수 백명(?) 항의집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 수백여 명이 시위를 벌이고자 워싱턴 DC로 모였다. 미국 연방 상하원 선거인단 대선 투표 집계를 앞두고 항의 시위를 벌이기 위해서다...이들은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이다’(Trump is my president) 등 구호를 외쳤다.” 물론 아직 과정 중이니,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합리적 해결은 부정선거가 있었다면 그 부정선거 투표지 숫자를 앞으로 10일간 제외시키고, 다시 카운팅하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미국연방헌법 원론대로 풀이하면 생명, 자유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풀이라면 자유주의, 공산주의가 달라질 수 없다. 인권에 부딪치면 서로 상통하여, 이를 흡수하지 못하면 그 만큼 체제가 경직되었다는 소리가 된다.
이들은 체제와는 떨어진 생활세계(life world)의 영역이다. 환경과 마주치는 영역이다. 여기서 사회의 창의성과 역동성이 일어난다. 환경을 넓게 보면, 통제할 수 없는 변인에서 사회의 역동성을 찾는다. 지금까지 미국의 주류매체와 워싱턴 정가에서는 부정선거를 할 만큼 체제가 경직화되었다는 소리가 된다. 일반 시민을 수용할 할 수 없는 만큼 신분 집단이 연막을 치고 있다.
유튜브 엠킴MKim(01.07)에는 실시간 워싱턴 정가 소식을 전한다. 정치인의 트위트, 정치인의 성명서, 일반 댓글 등이 등장하면서, 기존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 역동성이 존재했다. 수용자가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만큼 체제 하에서 통제할 수 없는 변인이 개입한 것이다.
미국 의회가 한반도 인권문제에 적극개입하고 나설 전망이다. 미국 의회 산하의 초당적 인권기구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Thomas Peter Lantos)가 앞장서고,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숟가락 들고 설칠 전망이다. 물론 청와대 전단금지법 미 청문회 막겠다고 대책회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단기간에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취해온 대북 인권정책, 국무부의 중심의 자유보고서, 인권보고서 등 정확한 실증적으로 접근할 전망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로 접근하는 이들에게 ‘내정간섭’이라는 빌미는 통하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경제유입이 강력한 이유로 소련과 동구권은 외부의 정보유입으로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인 상황은 딱 갈려 있고, 정치인 사이에도 관용이 없다. 수용자도 자신이 보고 싶은 뉴스만 접한다. 타인은 적폐의 대상이고 타도의 대상이다. 공존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대화자체가 불가능하니 그 사이 생명, 자유 등 기본권이 흔들리고 있다. 물론 어느 정부에도 있어 왔지만 좌익으로 갈수록 그게 심하다. 지금 청와대는 그 낯가림이 극단적 상황에 처해있다. 그들의 이념과 코드의 선민의식에서 나온다면 인터넷 상황에서 분명 역동성을 상실한다.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의 변인을 흡수하지 못하는 정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형태가 소개되었다. 체의 세계가 생황세계에 침투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생활세계가 굴절되어 일어난 것이다. 대화와 소통이 될 이유가 없다. 북한은 계속 ‘남조선 해방’만 이야기하고, 청와대는 평화만 이야기한다. 남이든, 북이든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 정치공학만 남발한다. 인지적, 도구적 합리성은 이야기하지만, 국민들로부터 얻는 신뢰의 정당성이 없다. 윤리적, 실천성이 부족한 것이다. 그 사이 후자의 경우 생명, 자유 등의 기본권이 말살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1948년 12월 10일 채택된 ‘인권선언’ 지구상의 모든 개인들이 ‘알고, 알리고, 토론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J. 허버트 알철/ 강상현․윤영철 공역, 304쪽). 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는 외부의 간섭 없이 의견을 소유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어떤 미디어를 통해서든 정보와 사살을 추구하고, 받아들이고, 확산시킬 자유를 포함한다.
언권선언은 보편성을 이야기하지만, 국내에 의사소통은 패거리 정신이 난발된다. 경향신문 강준만 전북대 교수(01.06), 〈〔강준만의 화이부동〕‘어용 언론’을 요구하는 문파들께〉.“저는 이 지면을 통해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이하 문파)과 소통을 해보렵니다. 허황된 꿈이라고 미리 내치진 말아 주십시오. 전 문파가 많은 호남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문파와의 소통에 비교적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람되지만, 문파가 어떤 분들인지 잘 안다는 뜻입니다. 제가 일상적 삶에 겪는 바로는 대부분 착하고 정의롭고 개혁적인 분들이더군요. 하지만 저와 정치적 대화는 안 통합니다. 문 정권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검찰 개혁을 비롯해 주요 현안들에 대한 원론적인 생각은 같지만, 구체적 각론으로 들어가면 문파와 저는 각자 딴 나라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갈라집니다.”
인권에 대한 기본이 소개된다. 청와대의 민낯이 공개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허원순 논설위원(01.06), 〈특 하면 ‘정쟁대상 아니다’는 與..‘책임정치’ 회피하나〉.“ 서울 동부구치소 재소자들의 집단 코로나 감염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기본이 안 돼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정말로 부끄럽고 참다만 일이다. 지난해 코로나 대응을 잘 했느니 못 했느니 하면서 ‘K방역’ 어쩌고 했던 일이 민망할 뿐이다. 미국 대통령과 영구 총리를 보면 백안관가 다우닝가 10번지에서도 코로나 확진자는 나올 수 있다. 어디서나 생길 수 있고, 백신을 맞기 전까지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고 보면, 구치소라 해서 예외는 아니기도 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구치소에서의 환자발생 자체가 아니다. 순식간에 한 곳에서 1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온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숫자의 많고 적음에 충격과 자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구치소의 안전 보호 관리, 즉 교정행정과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법무부가 정부로서 제 역할을 했느냐는 것이다. 예방 방역과 초기 대응, 사후 확진자 보호 관리를 보면 이번 사태는 정상적 문명국가라고 할 수 없다. 마스크의 보급 문제에서부터 확진 비상식적인 사망자의 화장 처리 등 이미 웬만큼은 알려진 내용을 다시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경직화된 체제에서 환경을 체제 안에서 유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만큼 사회의 창의성과 역동성이 떨어진다. 경향신문 장영은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계전공 초빙교수(01,05), 〈〔여성, 정치를 하다〕환경·평화 지키는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녹색 깃발을 들다.〉“환경운동가이자 반전 평화운동가였던 페트라 켈리(1947〜1992)는 진보정당의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독일 녹색당 창당의 깃발을 들었다. ‘좀 더 민주적인 방법으로 가는 수밖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는 기존 정당이나 의회 그리고 사법부를 반드시 해체시켜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고, 거기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자는 뜻도 정녕 아니다...비폭력과 창조적인 방법을 통해 환경운동과 평화운동 그리고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 정당반대당, 즉 녹색당 운동을 통해 생명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민주주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워싱턴의 늪지대, 대한민국의 국회와 청와대는 지금 국민의 생명, 자유를 빼앗아 감으로써 통제할 수 없는 영역 처리가 미숙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게 연초에 국제 이슈로 등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