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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록에 등장하는 ‘부여’는 ‘산해경(山海經)’의 불여(不與), ‘일주서(逸周書)’의 부루(符婁), ‘사기(史記)’의 부여(夫餘), ‘논어주소(論語注疏)’의 부유(鳧臾) 등으로 표기된다. 당시 고대 한자 발음으로 볼 때 이들의 공통발음은 짧은 소리로는 ‘불’, 긴 소리로는 ‘부르’다. ‘부르’는 더 긴 발음으로 ‘부유’로도 발음된다." |
- 망상 사학에서나 '부르'가 멋대로 '부유'가 되겠죠. 신교수님, 이런 가정 하기 전에 고대 우랄-알타이어 음운 전문가랑 상의 해보신겁니까? 아니면 다른 환빠교 신자들이 하는 것 처럼 나름 아무 책이나 읽어보고 그냥 추정하신 겁니까?
"어떤 계기인지는 불명하나, 부여족의 일단이 4세기 말엽 서방으로 이동해 초원길을 거쳐 중앙아시아의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 ‘캅카스’ 지방에 도착했다. 요동부터 카스피 해까지 이어지는 밝안산(백두산)∼부여호∼발칸산∼발카시호∼발칸산의 명칭 벨트가 부여족의 초원길 이동을 시사해 준다." |
- 그냥 "balkh" 발음이 그쪽 계통 유목민들에게 가장 흔한 발음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보셨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가정은 안하셨을 것을..
"서양사에서는 이때부터 부여족이 불가(Bulghar)족으로 기록되어 나온다. ‘부여(불)의 가(加)’ 족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
- 부여족이 불가르족으로 나오는 적도 없고, '부여의 가'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분도 지금 신교수님 밖에 없습니다만..
"둘째 아들 코트라그(Kotrag)는 북으로 이동하여 그들이 이름 붙인 볼가(불가·Volga) 강과 카마(고마·Kama) 강의 합류지점에 ‘고추불가(Kotchou-Bulghar)’국을 건설하였다. 코트라그의 ‘고추불가’국 명칭은 그들이 ‘고추가(加)’임을 표시하여, 그들이 ‘부여족’이라는 사실의 명확한 증거의 하나가 된다." |
- 사회학에서는 '증거'라는 말을 어떤 식으로 쓰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물증과 해석의 합일을 요구하는 역사학에서는 위와 같은 경우에 '명확한 증거의 하나가 된다'라는 말을 안씁니다만.. 아니, 조금 희화한다면, 역사학 자체에서 '확증'과 같은 낱말 썼다가는 반증이나 의심으로 인해 비판자들로부터 개박살 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라 엔간해서는 '명확한 증거'라는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이죠.
교수님, 'Kotchou-Bulghar'랑 '고추불가'의 음운적 유사성만으로 극동아시아계통의 한 부족을 대륙 건너편으로 텔레포테이션 해버리는 것은 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왜냐하면, '볼가江'의 'Volga'도, '불가르族'의 'Bulghar'도 부여 시절 이전부터 내려오는 명칭이니까요. 고대 루스어에서 '축축한', '젖은', '습지' 등을 뜻하는 '발가(valga)'가 게르만어로 'Wolga'로 통칭되어 'Volga'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모르실 분이 아니잖습니까? 그 정도로 '명확한 확증'이 된다면, '똥'과 'dung'의 음운적 유사성으로 인해 영국인과 한국인이 같은 민족이라는 '명확한 확증'도 된다구요..
"고추불가국은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이 지역에 정착하여 번영하였다. 고추불가국에는 922년 바그다드의 사절단이 도착하여 아랍 세계와의 통상이 시작됐는데, 이 사절단이 ‘고추불가’국을 볼가 강의 명칭을 따 ‘볼가불가(Volga Bulghar)’라 부르면서 아랍 세계에 그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추불가’족은 현재 ‘타타르 자치공화국’을 수립해 모여 사는데 그 언어의 문법 구조는 한국어와 동일 구조이고, 외양도 혼혈이 덜 돼 동양인(한국인)의 모습이다." |
- 그 10세기의 바그다드 사절이 바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시체를 먹는 자들", 영화화되어 "13번째 전사"의 주인공인 이븐 파들란입니다만... 믿으십쇼. 파들란이 묘사한 볼가-불가르인들의 생활상은 고아시아인들과는 코딱지만큼도 유사성을 찾기 힘듭니다. 그런데 어째 그런 차이는 쑥 무시하십니까.
게다가 -_-; 오늘날 그 지방 타타르인들이 쓰는 말이, 10세기 프로토-불가르인들이 쓰는 말이랑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오늘날 타타르 언어가 같은 우랄-알타이어게통으로 한국어 등과 유사성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동일구조"이지도 않거니와, 오늘날 그들이 쓰는 말은 예전에 그 지역에 살던 이들이 쓰던 말이 아니라는겁니다요.
10세기 그 지역 사람들은 고대 투르크語에서, 혹은 이란/파미르語에서 왔다고 보는 프로토-불가르語를 썼고, 이 언어에 킵챠크인들의 단어등이 겻들어지면서 발전한 것입니다. 지역이 비슷했기에 서로 공용하는 명사는 있을지언정 애초에 오늘날 타타르어의 조상이 된 舊타타르語와는 발생계통 자체가 틀립니다. 적어도, 신교수님 보다 고대언어를 훨씬 열심히 공부하신 이쪽 계통 전문가들의 현재 학설에 의하면 말입니다요.... 그것을 'kotchou'-'고추', 'bulghar'-'불가'가 유사하다는 것만으로 뒤집으실 요량입니까?
"불가족 아스파르흐 칸은 결전을 앞두고 하늘을 향해 조상신 ‘단군(Tangun 또는 Tangur)’에게 승전을 기원하는 제천(祭天)의식을 행했다고 로마군 연락장교는 기록했다." |
- 아놔, 알만한 분이 왜곡하시면 안되죠. 그들이 제를 지낸 대상은 '텐구르'라고 해서, 중앙아시아의 제 부족들의 고유한 샤마니즘 신앙에서 '영원한 푸른 하늘'인 '텡그리(Tengrii)'와, '비옥한 어머니 대지'인 '에제(Eje)'를 숭상하던 종교였습니다. '텐구르'가 '탄구르'라고 발음되는 것은 그렇다쳐도, 그게 어느 새에 '탄군'으로 둔갑했답니까?
"불가족은 681년의 대결전에서 승리하고, 정착하여 그해에 ‘불가리아’ 왕국을 건국했다. 국호 ‘불가리아’는 ‘불가(불)족의 땅(Bul+garia)’이라는 뜻이다." |
- 아닌데요. '불가리아'는 '불가르族(Bulghar)' + '의 땅(ia)'에서 나온 건데요.
'불가족은 귀족이 돼 ‘보야’(Boyar·‘부여’의 발음인 ‘부유’의 모음조화에 따른 변음)라고 불렸으며, 슬라브족을 농민으로 삼아 다스렸다. 불가리아 제1제국 귀족의 ‘보야’ 호칭도 그들이 ‘부여’족임을 알려 준다. ' |
- 고명하신 교수님께 이 시정잡배가 감히 무례한 말을 하겠는데, 도대체 이딴 언어고증은 어디에서 하신겁니까요... 불가르/슬라브계 귀족을 일컫는 말인 'Boyar'에는 투르크說과 슬라브說이 있는데;
1) 투르크 고어의 '바이(bay: 부유한)' + '아르(ar: 남자)'에서 왔거나
2) 슬라브 고어의 '보야린(boyarin)'에서 왔거나.
그러나, 2번째 학설에서 古슬라브 '보야린' 자체가 古투르크의 'boijarin'에서 나온 것이기에 사실상 투르크 계통 말이라는 것에서는 어느정도 동의가 된 상태입니다만.
"대승한 불가리아의 크룸 칸은 지금의 발칸 반도 대부분에서 로마군을 추방하고 수도를 사르디카로 옮겨 이름을 ‘소비’(또는 ‘사비’, 지금의 소피아)로 정했으며, ‘소비’의 동산에 올라 조상신 ‘단군’에게 승전의 제천 제사를 올리고, 산 이름을 ‘발칸 산’(밝안산, 밝산, 白山·고대 한민족이 제천의식을 행한 산)으로 정하였다." |
- 이건 정말 치매약 드시라는 외람된 말을 하게 만드는 망상입니다. 지금, 'Sofia'아의 '소피아'에서 '소피'가 백제의 '사비'의 변한 발음이라는 말이십니까...
-_-;;;;;;;;;;
(어이가 없어서 일부러 36포인트 문자로 애써 표현한 황당한 표정)
애초에 불가르제국이 소피아를 수중에 넣었을 때에는 '소피아'라고 부르지도 않은 땅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트라키아계통 세르디 부족의 땅이라는 뜻엑서 '울피아 세르디카'라고 불렀던 도시인데, 훈족에 의해 잿더미가 된 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하면서 '트리아딧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불가르 제국이 들어선 후 '트리아딧사'라는 발음이 슬라브어로 전용되어 당시에는 '쓰레뎃츠'라고 부르던 도시였습니다.
이 소피아가 '소피아'가 된 것은 이미 불가르제국 따위는 먼 과거의 일이 된 14세기 부터입니다요. 비잔틴 그리스어 '지혜'인 'Sophia'에서 나온 이름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요. 이 도시명이야마말로 '확증' 된겁니다. 왜냐하면 이 도시는, 1376년에 聖 소피아 교회(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와는 다른 교회임)의 이름을 따라 '소피아'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확증'된 사실이에요.
도대체 자료는 찾아나 보시는 겁니까?? 아놔, 진짜..
"그러나 불가리아 제1제국은 동방에서 온 부여족이 세운 국가이다." |
- 아니에요.
"... 부여족은 불가리아 주민에게 독립과 역사로 남아 있고, 발칸 산, 발칸 산맥, 발칸 반도, 소비 등 다수의 지명으로 남아 있으며 ..." |
- 아니에요.
"... 불가리아 말 문법 구조로 남아 있고,..." |
- 아니라니까.
"...문화와 생활양식의 전통(정월 달집놀이, 굿거리 등)으로 남아 있으며..." |
- 아니라구요,
"...현재 백인 세계에서 갓난아기의 반점이 나오는 민족은 오직 불가리아인뿐이다. 그 원인은 불가리아인의 원조상이 부여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
- 유전 계통에 몽골로이드 유전자만 있으면 다 나와요. 부모 중에 한명만 아시아인어도 높은 확률로 백인아기에도 나오고요. 히스패닉 혈통에서도 40~50% 선으로 자주 나와요. 오늘날 불가르인들이 있기 까지 그들의 유전자에 기여한 몽골계통 혈통이 부여인들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그들이 발칸반도에 틀어박히기 전에 그들이 얼마나 큰 땅덩이에서 살았나 좀 생각을 해보시죠. -_-;;
"불가리아와 유럽 역사학자들은 현재 원(原)불가족(Proto Bulgar)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고 단념하고, 5세기 흑해지방 마그나 불가리아를 그 기원으로 삼아 역사를 쓴다. 필자는 바로 그 이전의 ‘원불가족’이 동방의 ‘부여족’임을 처음으로 밝히고 강조하는 것이다. " |
- 그러니까요, 선생님, 그쪽 학문에서는 그런 것을 갖고 '밝힌다', '증명한다'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이쪽에서는 그 정도면 '가설' 세울 정도로도 부족해요.
정확히 말해서 본문에서 뭘 '밝힌다'는겁니까요.
직접 유전조사를 했다든지, 전문 고어학자들과 컨설팅한 것도 아니고, 프로토-불가르인들에 대한 현재 서양의 연구경향과 공조해서 학설을 비교나 검토한 것도 뭣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한게 없는데 어째서 그걸 갖고 밝히고 증명한다고 하면서 멀쩡히 신문지에 그런 글을 올릴 수 있는지 아주, 역사학도로써 그런 거 보고 속 뒤집어진다고요.
정말로 나이 먹어서도 공부한다고 열심히 책읽고 서재에 틀어박혀 있는 역사학자 선생들도 계신데, 왠 말도 안되는 학설 갖고 나와서 신문지상에서 헛소리 해대며 사람들을 혹하고, 안그래도 난리부르스인 극우 민족주의 망상사학에 불을 지르는 이딴 행태를 하시면서 어떻게 감히 진지한 학문을 연구하는 결과를 인정하여 달아주는 '박사'이고 '교수'인지 저는 이해가 안된다구요.
깍두기는 깍두기 세계에 산다, 라고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씨가 말했잖아요.
먹물은 먹물 세계에서 살면서 공부 좀 하자구요.
괜히 미디어에 주목 받고 싶어서 얼토당토 않은 쌩쑈로 진짜 그 분야 학자들 속 뒤집어 놓지 말고.
첫댓글 ㅆㅂ.. 교수라는 분이 "밝혔다"는 "증명" 하나 깨부수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필요자료 2시간 동안 찾아본 것 만으로 충분하다면 이거 좀 문제있는거 아니냐고요. 남들은 뭐 어디 병신 팔푼이라 수 십년 사료파들어가며 공부합니까?
또 흥분하신; 물론 다른 사람들도 짜증나긴 마찬지겠지만, 심한 욕은 게시판에 나타내지 마시고, 속으로..
교수라는게 저런 헛짓이나 해대니 대학들이 개판이죠.
근데 제목이좀..-ㅁ-;;
좀 많이 흥분하신듯.
게다가 공돌이의 입장에서 보관대 역시 이를 입증하려면 고대인의 유전자 연구가 필수 같습니다. 아무리 혈연적 유사성이 같은 민족임을 증명해 주지 않는다해도 핏줄이 비슷하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기 마련이니까요. 위 교수의 주장이 최소한의 학설로라도 굳어지려면 극동->발칸에 이르는 이동루트에 대한 유전자적 추적도 같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시한 유일한 증거가 음운적 유사성과 문화적 유사성(그나마 이건 흐지부지 설명하는) 뿐인데;;;;; 그저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제 의견도 한마디로 줄이자면 "뇌내망상 . . . 이뭐병"
한때 "사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은 사료를 모두 외워서 논파한다.." 라고 착각했었던 ㅇㅅㅇ;;; 여튼 카웨사님 입에서 ㅅㅂ 소리가 나오다니 이례적이네요 ㅇㅅㅇ;;
이게 다 저런 게시글을 퍼나른 제가 원흉이군뇨-.-
????
흥분할만 하지요. 뭐. 전 시간이 아까워서, 입아파서 이런짓은 안합니다만, 속은 후련하군요;;
=_=... 이리저리 까일만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