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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인, 아카시아, 글로벌 시대의 식량안보, 맹인모상 외
한남대학교 전 총장 김형태 장로님이 한교선 단톡방에 공유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봄의 시인/ 이어령■
꽃은 평화가 아니다
저항이다
빛깔을 갖는다는 것.
눈 덮인 땅에서 빛깔을 갖는다는 것
그건 평화가 아니라 투쟁이다.
검은 연기 속에서도
향기를 내뿜는 것은
생명의 시위.
부지런한 뿌리의 노동 속에서
쟁취한
땀의 보수.
벌과 나비를 위해서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다
꽃은 오직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
색채와 향기를 준비한다
오직 그럴 때만 정말 꽃은 꽃답게 핀다.
꽃은 열매처럼 먹거나
결코 씨앗처럼 뿌려 수확을 얻지는 못한다
다만 바라보기 위해서
냄새를 맡기 위해서 우리 앞에 존재한다
그래서 봄이 아니라도
마음이나 머리의 빈자리 위에 문득
꽃은 핀다
시인의 은유로 존재하는 꽃은
미소하고 있는 게 아니다
가끔 분노로 타오른다
나비도 벌도 오지 않는 공장 굴뚝 밑에
한 송이 꽃이 피어 있는 우연 !
꽃이 있어 우리는 태곳적 생명의 기억을
갖고 산다.
꽃은 시인의 은유로
졌다가도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와
슬그머니 핀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아카시아 /김사인■
먼 별에서 향기는 오나
그 별에서 두마리 순한 짐승으로
우리 뒹굴던 날이 있기는 했나
나는 기억 안나네
아카시아.
허기진 이마여
정맥이 파르랗던 손등
두고 온 고향의 막내누이여.
■ 아카시아 / 이해인■
향기로 숲을 덮으며
흰 노래를 날리는
아카시아꽃
가시 돋친 가슴으로
몸살을 하면서도
꽃잎과 잎새는
그토록
부드럽게 피워냈구나
내가 철이 없어
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
젊은 날의 그리움이
일제히 숲으로 들어가
꽃이 된 것만 같은
아카시아꽃.
(** 동구밖 과수원길의 하얀 꽃, 그 아카시아꽃.
싱그럽고 향기 짙은 그 꽃이 연상된다
원래의 정확한 이름은 '아까시' 라고 한다.
그러나 '아까시' 라고 부르면 가시돋친 억센 식물이 연상된다.
아카시아는 서러움의 꽃이기도 하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허기진 아이들이 밥 대신 훑어서 따먹었다는 그 꽃.
배 곯을 때 아카시아꽃 따 먹던 누이동생이 생각난다. 그대는 잊었는가? 그때 그 시절.
라이락 향기가 슬며시 옅어지더니 어느새 구름처럼 피어나던 아카시아 꽃마저 분분히 낙화 하고 있다.
이윽고 또 여름철이 오겠지. 곧 밤꽃 냄새도 나겠지. )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유치환■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
들어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유치환/한국시인협회 초대 회장/1960. 3.15 부정선거때 발표한 시)
** "한 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는 말라"
(조지훈/ 지조론)
** "무엇보다 기초 예술의 체질을 강화하면서 전문 예술과 생활 예술을 활성화하고, 예술인들의 창작욕과 자부심을 북돋워 주는 정책 수립과 재원확보가 급선무다"
(정중헌/언론인)
[ * 새 정부의 청사진에 예술이 안보인다/ 유자효 시인 ]
■ 춘곤 /김사인■
사람 사는 일 그러하지요
한 세월 저무는 일 그러하지요.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못하고
저물녘 봄날 골목을
빈 손만 부비며 돌아옵니다.
■ 가난은 사람을 늙게 한다 / 김사인 ■
삶은 보리 고두밥이 있었네.
달라 붙던 쉬파리들 있었네.
한 줌 물고 우물거리던 아이도 있었네.
저녁마다 미주알을 우겨 넣던 잿간
퍼런 쑥국과 흙내 나는 된장 있었네.
저녁 아궁이 앞에는 어둑한 한숨이 있었네
괴어 오르던 회충과 빈 놋숟가락과 무 장다리와
노란 봄날이 있었네
자루 빠진 과도와 병뚜껑 빠꿈살이 몇개가 울밑에 숨겨져 있었네.
어른들은 물을 떠서
꿀꺽꿀꺽 마셨네
아이들도 물을 떠서 꼴깍꼴깍 마셨네
보릿고개 바가지 바닥
봄날의 물 그림자가 보석 같았네
밤마다 오줌을 쌌네, 죽고 싶었네.
그때 이미 아이는 반은 늙었네.
(** 6.25 한국전쟁을 겪은 직후부터 한동안 이렇게 살았다. 지금 GNP 3만 달러를 넘어서고 세계적 수준의 문명을 누리는 젊은이들은 어느나라 이야기인가 할 것이다.
그러나 60년전 바로 우리 부모님들이 이렇게 살아냈다. 가슴 아픈 그러나 아련한 추억들이다.)
[글로벌 시대의 식량안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 같은 식량작물의 가격이 올라간다고 하고,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중단으로 식용유 등 관련 가공식품의 가격상승도 예상되고 있다.
또 최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물 부족 현상이 심해져 농산물 생산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식량안보가 중요해졌다.
식량안보는 '인구증가, 천재지변, 전쟁 등을 고려해 항상 일정량의 식량을 확보하는 것' 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90% 정도지만, 우리가 쌀만 먹는게 아니라 빵, 국수 등 밀가루 음식을 더 많이 먹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0.8%에 불과하다. 우리가 소비하는 밀의 99%를 수입하고 있다.
콩 자급률도 30%, 수준이라, 전체 식량 자급률은 약 40% 정도, 이에 사료작물 까지 포함하면 전체 곡물 자급률은 약 20% 정도다.
전세계는 서로 연결돼 있어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식량안보를 시장논리에만 맟겨선 안된다.
식량은 우리 삶에 필수적이다. 농업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
(안정화/재미농장 대표)
■빵을 먹는 일도 어렵겠네 ■
밀 값이 계속 뛰고 있다. 2022.3월 기준 미국의 밀값이 톤(t) 당 470$가 되어 지난해 대비 30%나 인상되었다.
밀 생산과 유통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세계적인 이상고온 및 건조한 날씨 탓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세계 6위의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또 세계적인 가뭄으로 유럽의 최대 밀 생산국인 프랑스, 최악의 폭염에 시달리는 인도 및 우리가 많이 먹는 미국산 밀까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또 생산국들이 자국의 식량을 위해 수출을 금지하기도 한다
거기에 전쟁 중인 러시아의 흑해 연안 봉쇄는 아예 수출길 마저 막혀 버렸다.
이제 밀로 만드는 음식값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곧 짜장면 같은 외식비도 오를 것이니 빨리 대체 먹거리 개발에 힘써야 되겠다.
그런데 정말로 심각한 원인은 전쟁이나 기후변화가 아니라 '인심 변화' 다.
내것을 더 키우겠다며 전쟁도 불사하는 고약한 인심이 문제요,
자기나라 먹거리를 지키겠다며 수출까지 막아 버리는 자국 이기주의 역시 기후변화 보다 더 큰 위험요인이다
그렇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결코 공룡이나 외계인이 아니다. '인간다움'을 상실한 결과가 이런 걱정을 몰고 온다.
성경의 <5병 2어> 기적을 보면 한 어린이가 자기 몫의 빵을 기꺼이 나눔으로 빈 들(광야)전체를 온통 잔치집으로 바꿨던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러니 어찌 내 입에만 빵을 밀어넣을 수 있겠는가 ?
조석으로 배우자와 함께 카페라떼 한 잔과 샌드위치 한 쪽을 만들어 먹으며 기쁘게 살았는데 밀값이 계속 오르면 이런 식단도 바꾸어야 되지 않겠나 싶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나만의 식탁에서, 나만의 행복으로 끝나는 식사가 아닐런지 ?
그게 어디 빵만의 문제 이겠는가 ?
(김관선 목사/2022.5. 28./산정현교회 )
■ 맹인모상-- 장님 코끼리 만지기 ■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원리는 무엇인가 ?' 에 대해 토론회가 열렸다
1. 최연장자인 모세가 양손에 십계명 판을 들고나와 '율법이 최고'라고 주장했다.
2. 성자 예수가 뒤이어
희생과 자비의 상징인 양손의 못자국을 내보이며 '사랑없이는 인간은 살수 없다' 고 설교했다.
3.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자기가 쓴 책 <꿈의 해석>을 펼쳐보이며
'무의식과 성욕으로만 인간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4. 공산주의 혁명가인 칼 맑스가 '돈과 밥이 이 세상을 움직인다. 만물의 근원은 곧 물질이라'고 선언했다.
5. 천재 이론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이 칠판에다 E = MC제곱 (상대성이론의 에너지 등가원리 공식)을 써놓고서 ' 왜 이렇게들 다투십니까 ? 어차피 모든 것은 상대적이잖아요 ?' 라고 말했다.
여기에 나오는 유명인들이 모두 유대인이라는 점이 놀랍다. 동양에서는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져보며 각각 달리 말하는 장면이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다)
모두 다 맞았지만 모두 다 틀렸다 부분적으로는 다 옳지만 전체적으로는 다 틀리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판단하고 주장할 때 참고하기 바란다. 직선이라도 양 끝을 계속 연장해 지구를 한바퀴 돈다면 그것은 더이상 직선이 아니라 이미 곡선이 되어 있지 않던가 ?
겉과 속이 다르고, 같은 도형이라도 입면도, 측면도, 평면도는 다르게 보이지 않던가 ?
♦️<메멘토 모리>
아무리 모질고 긴 겨울도 때가 되면 봄을 낳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그가 사랑했던 딸 곁으로 갔습니다. 그는 “절대로 병원에서는 안죽겠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안녕’을 고하는 것이 내 마지막이자 최고의 희망이다”라고 말하며 암과 함께 살다 마지막 책으로 <메멘토 모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는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어쩌지 아직도 글 쓸게 남았는데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죽어야지 글 쓰는 사람이니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죽음을 글로 쓸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땅의 사람들과 헤어지기 전 후대의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이 책에 담았을 것입니다. 이 책 2부에서 그는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이 죽음과 대면했을 때, 가톨릭 신부님에게 질문한 2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습니다. 24가지 질문 중 맨 앞에 나오는 질문이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신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살아서 부와 명예를 누렸던 이병철 회장이 이 질문은 서두에 둔 것을 보면 그도 어느 인간과 똑같이 죽음 앞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갈증과 굶주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대답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근원의 세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은 과학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를 믿게 만드는 믿음은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국 지성인 중의 한 분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 대단하였지만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딸을 통해 나타난 표적을 보면서 믿음의 대상으로 예수님께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딸이 전 캘리포니아주 검사를 거쳐, 청소년 범죄 전문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손자가 자폐증에 걸렸고 딸이 암에 걸리고 시력이 상실되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비하게도 기도하면서 15년 동안 앓아 왔던 암에서 치유되고 손자의 자폐증이 낫는 기적과 시력이 회복되는 능력을 체험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실제 옆에서 경험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기도가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다. 암에 걸렸던 너의 아픔과 어둠이 나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70평생 살아온 내 삶이 잿불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라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성으로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2007년 세례를 받고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며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시작으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지성과 영성의 만남>,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밤중에, 새벽 3-4시에 가장 아프다. 그때 나는 신의 존재를, 은총을 느낀다”며 “고통의 한가운데서 신과 대면한다. 동이 트고 고통도 멀어지면 하나님도 멀어진다. 조금만 행복해도 인간은 신을 잊는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물이 풍부할 때는 물의 존재를 망각하고, 공기가 어디에나 있을 때는 공기의 귀중함을 모르고 삽니다. 그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신의 은총을 느낀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은 행복하고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살기 쉽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가장 절박한 순간이며 인생을 겸허하게 만듭니다. 그는 <메멘토 모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메멘토 모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지. 우리는 낭만적인 메멘토 모리, 술 먹고 인생을 논하는 메멘토 모리쯤으로 죽음을 생각했잖아요. 이모털(immortal, 죽지 않는)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거지.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어. 그게 원죄야. 이게 모털(mortal,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인 거지. 생명이라는 것은 다 죽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메멘토 모리를 다시 깨닫게 된 겁니다.”
메멘토(memento)는 라틴어로 '기억하다, 생각하다'라는 의미이고 모리(mori)는 ‘죽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입니다.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 네로 황제 시대 로마의 젊은 장군 마커스 비니키우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개선 행진할 때 월계관을 높이 든 노예가 그의 뒤에 서서 계속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너도 언젠가 죽으니 너무 우쭐대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두려워하면서 철저히 준비하면서 죽음 바이러스에 대하여는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듯이 인생도 언젠가는 끝이 옵니다. 혹독한 겨울이 봄을 낳는 것을 아무것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인생의 죽음도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봄이 오면 죽은 것같은 들풀이 새싹으로 살아나듯 인간은 죽음으로 끝이 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삶이 끝나면 그 후 또 다른 영생의 삶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
이어령 교수께서 구세주로 믿었던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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