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유홍준의 문화의 창] 김지하는 뛰어난 현대 문인화가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3.06.08 01:02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1980년 석방 이후 그림 시작
지인들에게 묵란 그려 선물
묵란·묵매·달마·산수 등 다양
마지막 작품은 뒤뜰의 모란
지난 5월 6일과 7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1박 2일로 ‘김지하의 문학·예술과 생명사상’이라는 대규모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문학인·예술인·생명운동가 35명의 발제와 토론이 있었고, 김지하에게 마음의 빚이 있는 청중들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노래가 된 그의 시 공연에서는 다 같이 ‘타는 목마름으로’를 합창했다.
김지하는 말년에 사상적 굴절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혹은 민주화운동의 변절자라며 그의 삶을 지우기도 하고 젊은 세대들은 아예 그의 이름 석 자조차 모르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1960~70년대 김지하는 뜨거운 시인이었고 영웅적인 민주투사였으며, 80~90년대는 민족문화운동과 생명사상의 선구자였다.
김지하 ‘모란꽃’ 34x39㎝, 2014년작.
그는 오랜 세월 가혹한 감옥생활에서 골병이 든 ‘상이군인’이었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돌봄 없이 세상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바쳤다. 그가 쉼 없이 나아간 길이 너무 빨라 사람들이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세상이 김지하에게 기대하는 것과 김지하가 세상에 바라는 것 사이가 어긋나는 간극이 생겼다. 반 발짝만 앞서 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따름이다.
지난 5월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는 김지하 시인 1주기 추모 서화전도 열렸다. ‘꽃과 달마, 그리고 흰 그늘의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이 전시회에는 김지하의 글씨와 그림 40여 점과 담시 ‘오적’ 및 ‘앵적가’에 그가 직접 그린 삽화, 그리고 1991년 어느 날 인사동 술집 벽에 만취 상태에서 썼던 이용악의 시 ‘그리움’ 전문이 전시되었다. 전시장을 찾아온 관객들은 김지하가 뛰어난 시인으로 난초도 잘 그렸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이렇게 멋지게 그린 줄은 미처 몰랐다며,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인화라며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김지하는 1980년, 7년간의 긴 감옥생활에서 풀려나 원주에 칩거하던 시절 무위당 장일순 선생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난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당시 김지하는 묵란에 의미 있는 화제(畵題)를 달아 그리운 벗들에게 선물하였다. 1984년 김민기에게 보낸 풍란에는 “바람에 시달릴 자유밖에 없는 땅에서 피어나는 기묘한 난”이라는 화제가 쓰여 있다.
이렇게 그려진 김지하의 난초 그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정도로 많다. 80년대 말, 재야단체의 기금마련전이 성행할 때 김지하의 묵란은 최고의 인기 작품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한편 김지하는 인물화도 잘 그렸다. 춤꾼 채희완, 소리꾼 임진택, 경제학자 박현채에게 그려준 인물화에는 특유의 해학이 번뜩인다.
90년대로 들어서면 김지하는 묵란에서 묵매로 옮겨갔다. 기굴(奇崛)하게 자란 노매의 거친 줄기에 가녀린 가지마다 꽃망울이 알알이 맺혀 있는 그의 묵매는 농묵과 담묵의 대비가 극명하여 화면상에 일어나는 울림이 아련하면서도 강렬하다. 스스로 말하기를 난초보다 묵매가 더 적성에 맞았다고 했다. 당시 김지하는 생명운동에 전념하면서 ‘애린’ 연작을 펴내며 ‘흰 그늘의 미학’을 말할 때였다. 흰 그늘이란 전통 연희에서 미묘한 소리 맛을 내는 ‘시김새’를 말하는 것으로 ‘그믐밤에 걸려 있는 흰 빨래’ 같은 것이고, ‘강철을 싸안은 보드라운 솜’ 같은 것이다.
그리고 김지하는 이내 달마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달마도는 풍자시를 연상케 하는 ‘코믹 달마’였다. ‘아니, 한겨울에 꽃이’ 같은 화제가 달렸다. 그는 동학에 심취하였으면서도 불교 도상을 끌어온 것에 대해 “동학은 내 실천의 눈동자요, 불교는 내 인식의 망막이다”라고 하였다.
김지하는 생애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는데 2014년 전시회 때는 수묵산수와 채색 모란꽃을 선 보였다. 그의 수묵산수 ‘갑오리’, ‘여곡(女哭)길’ 같은 작품은 담묵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농묵으로 무언가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가 시에서 보여준 뜨거운 서정성이 짙게 서려 있다. ‘인기척 없고 어스름만 짙어갈 때/ 오느냐 이 시간에 애린아/ 내 흐르는 눈물’을 노래한 ‘남한강에서’를 연상케 한다.
모란에서는 그 서정이 더욱 아련하다. 지난 세월 자신이 진짜 그리고 싶었던 그림은 어릴 때 보았던 집 뒤뜰의 모란꽃이었다고 했다. ‘이제야/ 내 마음/ 고향에 돌아와/ 우울한 너에게 편지를 쓴다’를 노래한 ‘별과 꽃 속에서’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이 김지하 그림의 마지막 모습이다. 김지하 1주기 서화전은 오는 9월, 그의 고향인 목포에서 목포문학관 주최로 다시 열린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