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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트로트 뮤직플러스 원문보기 글쓴이: 코나이스
국경넘어 유랑 동포들…日군과 싸우다 전사한 광복군 아내의 恨 담아 | |
눈물 젖은 두만강 이 노래는 우리들의가슴을 저미게 하는 내용이 담긴 가슴 아픈 사연의 노래다. 특히 눈물 젖은 두만강을 작곡한 작곡자 이시우씨는 이 노래를 작곡하게 된 사연을 늘 입버릇처럼 이렇게 우리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 당시 우리민족은 일제에 시달리다 못해 고향을 버리고 타관땅으로 떠도는 거지아닌 거지신세로 이곳저곳 정처없이 떠돌며 나라를 빼앗긴 아픈 상처를 달래면서 유랑생활을 하는, 어찌보면 짚시신세가 되어 한을 품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우리 예술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시우 역시 예원좌라는 극단의 단원으로 있던 한 청년에 불과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예원좌를 따라서 중국으로 순회공연을 떠나게 됐다. 한 번 중국땅에 공연을 떠나면 이곳저곳 공연을 하다보면 1년이란 세월은 금세 가게 되는 것이 통상적인 예다. 중국을 가려면 한반도와 중국의 경계로 흐르는 두만강을 건너서 가야만 됐다. 두만강은 우리 한반도와 중국땅과 경계를 이루고있는 강이다. 지금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두만강이 바로 우리민족에게 향수를 안겨준 낯설지 않은 강이다. 지금도 우리 국민은 백두산 관강길을 가려면 이곳 두만강을 건너야 중국땅이다. 두만강을 건너려면 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래가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이 노래는 우리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어떤 관광객은 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래가 더욱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이 노래를 목청껏 소리내어 구슬프게 부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두만강은 우리민족의 넋과 혼이 담겨 오랜세월을 지금껏 말없이 유유히 흐르는, 그야말로 한이 서린 가슴아픈 눈물의 강이다. 그러나 두만강은 지금도 변함없이 흐르는데 빼앗긴 나라를 찾고자 두만강을 건너 일본군과 싸우던 우리 독립군의 발자취는 두만강 물에 흘러가고, 옛날의 한만 남아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잊어서는 안될 한이 담긴 강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지난날에 일제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찾고자 싸우다 가신 님들에게 죄송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이렇케 한이 많은 두만강에 대한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래를 소개하게 되니 지난날 역사의 아픔을 새삼 느끼게 된다.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는 두만강 변에 있는 초라한 한 여관방에서의 일이다. 극단 예원좌가 중국 일대를 순회 공연을 하면서 돌다가 두만강 변에 있는 도문이란 작은 군 단위인 곳에서 공연을하게 되었다. 이날 이곳에서 공연을 마치고 단원들은 깊은 잠에다 들코를 골며 자는데 이시우만이 잠을 못자게 됐다. 이시우씨가 투숙한 옆방에서 한 젊은 여인의 슬픈 울음소리에 이시우씨는 잠에서 깨어 옆방에서 오열하는 여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여인이 우는 내용을 듣고자 하다보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꼬밖 새웠다. 이튿날 아침 여관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그 여인이 밤새껏 울게된 사연을 물었던바, 그 여인은 자기 남편이 독립군에 있는데 남편을 보고싶어 중국땅에 찾아왔더니 자기 남편은 일본군과 싸우다가 총을 맞고 전사했다는 것이다. 수천 리 머나먼 중국땅에 까지 찾아왔으나 그리던 남편이 전사했음을 알고서 그 여인은 오열을 하며 밤새껏 울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시우씨는 이 여인의 슬픈 사연을 다 듣고,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여인의 슬픈 사연에 빠져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얼마나 가슴아픈 사연이란 말인가. 남자도 아닌 젊은 여인이 머나먼 타국땅을 남편 찾아왔다가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 여인이 너무도 애처러워 이시우씨도 그의 슬픔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게 됐다. 이런 사연을 알고보니 마음이 착잡하니 괴로웠다. 이시우씨는 잠시나마 강바람이라도 쏘이고 자기 마음을 진정코저 말없이 흐르는 두만강 물을 바라보며 지난 밤에 여인이 슬피 울던 그의 사정을 생각하니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강가를 산책하면서 한반도와 중국과의 경계인 두만강인데 이 거대한 대륙땅에서 나라를 찾고자 얼마나 많은 우리민족들이 일제로부터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단 말인가. 그리고 또 이 강물을 얼마나 많은 조선민족들이 독립을 찾고자 이강을 건너 왔을까. 항일 운동을 하고자 아니 일본군과 싸우고자 독립군에 지원해 온 애국열사들은 그 얼마나 두만강을 건넜을까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시우씨는 이런저런 생각 을 하다가 여관방으로 돌아왔다. 여관으로 돌아온 그는 즉시 오선지를 꺼내어 노래 가사를 대충 정리하고, 그 위에다 기타로 멜로디를 붙여 임시로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료 극단원들에게 들려주니 다들 노래가 좋다고 아주 명작이라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밤 공연에 이 노래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기로 하고 제목도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고 붙여 막간을 이용하여 장성월이라는 소녀 가수에게 이 노래를 처음으로 부르게 했다. | |
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래가 무대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자 사회자는 이 노래를 더욱 멋지게 소개하기 위해서 지난밤에 여관방에서 있었던 조선 여인의 남편을 잃은 슬픈 사연을 들려준다. 밤새껏 통곡하며 남편을 그리는 안타까운 그 사연을 목매인 음성으로 관객들에게 소개를 하며 이 노래를 만든 이시우씨를 무대에 소개 한다. 그리고 이 노래를 작곡하게 된 배경과 그 동기를 상세하게밝히면서 작곡가 이시우씨를 다시 소개 한다. 소개를 받은 이시우 씨는 무대에 올라와서 지난밤에 생긴 조선에서 온 여인의 기막힌 사연을 하나하나소상하게 다음과 같이 소개를 한다.
김용호씨를 찾아간 이시우 김정구 두 사람은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를 만들게 된 그때 그사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김용호씨는 말없이 그 사연을 다 듣고 있다가 그 내용이 너무도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서 이·삼절의 노래가사를 만들어 보겠노라고 쾌히 승낙을 하면서 나라를 빼았긴 우리 민족의 아픔을 한탄하는 것이다. 언제면 우리나라를 찾는단 말인가 하면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래는 김용호씨의 가사를 보충하여 노래가 완성이 됐다. 그리고 완성된 악보를 들고 박시춘씨를 다시 찾아갔다. 박시춘씨는악보를 보고 작품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노래를 부를 가수를 정했느냐고 박시춘씨가 물었다. 이시우씨는 이 말을 듣고 김정구씨를 시켰으면좋겠다고 하니 잘 생각을 했다고 하면서 이 노래는 김정구씨가 잘 부르면 꼭 성공할 것이라고 하면서 레코드 취입하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연습이나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이시우 김정구 두 사람은 기쁨을 감추질 못하고 좋아하면서 박시춘씨 와 헤어져 나왔다. 그후 이시우 김정구씨는 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래 연습에 온 정성을 다 바쳐 열심히 연습을 하게 됐다. 그리고 1938년 2월에 김용호작사 이시우작곡 박시춘 편곡으로 OK레코드회사에서 발표를 하게 됐다. |
첫댓글 글을 읽는 저 역시 지난날에 일제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찾고자 싸우다 가신 님들에게 죄송함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눈물적은 두만강'을 가슴으로 불러봅니다...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