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사업 토목 보고서 "지장물 조사, 실제와 다를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라"
석촌지하차도 등 잠실 일대는 지대 낮고 연약지반이라 공사에 만전 기해야
서울 도심에 싱크홀과 동공(洞空·텅 비어 있는 굴)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도심의 도로 아래 지반상황, 상하수도 위치를 설명한 체계적인 지하구조물 지도를 갖추지 못해 사전대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시 지하에는 싱크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30년 이상 된 노후 하수관로가 전체 하수관로의 절반에 달한다. 체계화된 지하 지도 없이 난공사가 계속되다 보니 지하수 흐름이 왜곡돼 싱크홀이 생길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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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5일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 백제고분근처 도로에 생긴 싱크홀을 서울시 관계자들이 흙으로 메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윤동진 기자
정부, 체계적인 도심 지하구조물 관리 없어설계감리회사인 유신코퍼레이션은 지난 2009년 12월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에 제출한 ‘서울지하철 9호선 3단계 기본계획 보완 종합보고서’를 통해 지하철 9호선 3단계 공사 구간에 매설된 지장물(地漿物)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실시 설계에 앞서 굴착을 포함한 지하매설물 탐사 등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회사는 보고서를 통해 “지하에 매립된 시설물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자원 공사 등 16개 기관을 방문해 조사를 실시했지만 (조사결과는) 실제 현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특히 광역상수관은 시공 중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관들을 방문조사했으나 근거 자료들이 부족해 지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으며, 광역상수관의 경우에는 상황파악이 더욱 어려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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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하철 9호선 3단계 기본계획 보완 종합보고서
지하철 9호선 공사는 최근 송파 잠실 일대에 발생한 싱크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중요한 공사를 하면서 지하철로와 지표면 중간부분에 위치한 지하시설물들도 사전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시 지하에는 30년 이상 된 노후 하수관로가 전체 하수관로의 48.4%(5030km)를 차지한다. 노후 하수관로는 싱크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토목·건축업계 싱크홀 사고 “터질 게 터졌다”토목·건설업계에서 도심 도로 아래 지반상황, 상하수도 위치 등에 대한 체계적인 지하구조물 지도조차 없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건설사들은 도심 지하구조물 지도가 없기 때문에 지하공사 때는 일단 굴착하고 본다고 했다.
문제는 무작정 터를 파다가 지장물을 잘못 건드렸을 경우 지하수가 특정한 곳으로 쏠리면서 싱크홀이나 동공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보고서에서도 서울 등 도심 지하에는 상수도, 가스, 전기, 통신 및 전력케이블, 하수관 등 지하시설물이 많이 매설돼 있으나, 이런 시설물을 매설 후 시간이 오래 지나면 지상 상황이 변하면서 그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직접 파 내는 것 외에 지하매설물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음향탐지법, 전파레이더법, 자석탐지법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업계는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지하철 9호선을 건설할 때는 자석탐지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조사단은 지난 14일 석촌동 지하차도 입구 아래에서 발견한 연장(길이) 70m 동공 외에 5개를 추가로 지난 18일 발견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번에 발견된 동공 발생 원인도 삼성물산이 시공하고 있는 지하철 9호선 공사 때문이며, 쉴드 터널 공사
(큰 철제 장비가 땅을 파내면서 나아가는 공법)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동공이 위치한 곳은 쉴드터널 바로 위. 상수관로가 지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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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하철9호선 석촌지하차도 지하 단면 구조도/서울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사업 기본계획 보완 보고서
동공을 제외한 지금까지 서울시에 싱크홀이 발견된 것은 총 10차례. 최근 발생한 싱크홀은 한강으로 기준으로 남쪽, 지하철 9호선 공사 구간에 집중됐다. 최초 싱크홀은 2010년 9월 10일 영등포구 노들길이다. 지난 7월에는 영등포구 여의도 지하철9호선 국회의사당역 인근에 싱크홀이 두 곳 발견됐다. 첫 번째는 폭 3m, 깊이 4m짜리 이고, 두 번째는 폭 1m, 깊이 1.5m로 측정됐다. 당시 서울시는 하수를 흘려보내는 콘크리트관 등 지하 구조물을 조사했으며,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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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도로 함몰 사고 현장에서 현장관계자들이 지하도 중심부 도로 밑에 생긴 동공을 둘러보고 있다. 외부 전문가 10인이 참여한 조사단은 지난 5일 석촌지하차도 앞에 발생한 폭 2.5m, 깊이 5m, 연장 8m의 싱크홀 외에 지하도 중심부에 폭 5~8m, 깊이 4~5m, 연장 80m의 동공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뉴시스
여의도 잠실 일대 지대 낮은 연약지반서울지하철9호선은 한강변 남측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전반적으로 지대가 낮고, 지하에는 상하수도, 전력 동공구가 복잡하게 매설돼 있다. 더욱이 잠실과 여의도 일대는 흙과 모래 등으로 구성된 퇴적층과 암반층이 뒤섞인 연약지반으로 구성됐다. 잠실은 탄천과 한강 사이에 있는 섬을 토사로 메꾸고 건물을 올렸고, 여의도는 한강 퇴적층이 확대된 지역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여의도나 잠실처럼)자갈이 많은 토양은 수직으로 바로 무너질 수 있으니 즉각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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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크홀과 동공이 다수 발견된 송파 잠실 일대는 연약지반인 충적층으로 주고 구성돼 있다./서울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사업 기본계획 보완 보고서
사정이 이렇다보니 싱크홀에 대한 불안감은 송파·잠실 일대는 물론 강남권 거주민 사이에서 증폭되고 있다. 송파구 석촌동에 사는 주부 김 모씨(40))는 “매일 출근하는 길 아래 뻥 뚫린 공간이 있었다니 오싹하다”면서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거 아니냐”고 했다. 또다른 주부 이 모씨(36)는 아예 사고현장 인근 놀이공원 회원권을 해지했다. 그는 “남편이 목숨 걸고 놀러 다니는 게 말이 안된다고 해서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제2롯데월드 의혹 증폭서울시가 지금까지 발생한 싱크홀의 원인이 제2롯데월드는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이 일대 주민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싱크홀의 원인을 제 2롯데월드라고 처음 주장한 전문가가 서울시 시민자문단 자문위원인 박창근 교수이기 하다. 박 교수는 ”터파기 작업을 하다 보면 지하수가 유입되는 곳과 빠져나가는 곳 사이에 격차가 커질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물의 흐름이 빨라진다”면서 “지하수 물살이 빨라지면 흙이 유실되면서 빈 공간이 생겨 지반이 꺼지는 것이 싱크홀”이라고 설명했다.
싱크홀은 지표 아래 지하수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 뒤 토압이 약해지면서 주로 발생한다. 대형 건설공사, 상하수도 공사 및 터널 공사 등 지하에 싱크홀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제2롯데월드는 터파기로 최대 37m까지 땅을 팠고, 이는 석촌호수 깊이(17m) 보다 20m 가량 더 깊다.
싱크홀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이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제2롯데월드의 개발사인 롯데물산이 블로거를 동원해 “롯데월드타워와 싱크홀이 무관하다”는 취지의 글을 배포한 것도 이 사태에 기름을 부었다. 한 네티즌은 “아직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여론조작을 하려는 롯데 측이 괘씸하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를 통해 루머도 확산되고 있다. 한 블로거는 “롯데 측이 공사비를 줄이는 데만 혈안이 돼 토목공사를 할 때 발생하는 지하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면서 “독일에서는 (싱크홀을 예방하려고) 잠수부까지 동원해 수중 공사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지하수를 관리하는 법 조차 제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