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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위치연구 제2강 요점 http://cafe.daum.net/asiahistoryreserch/Qo6i/18 (증거5)신만주 광개토왕 비석은 이동시킨 가짜다. 중국의 금서인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은 일제가 한중일의 역사책을 완전히 조작한 후에 조작돤 역사기록에 맞게 1931년에 저술되었기 때문에 변조된 책이다. 그러므로 진실기록은 가뭄에 콩 나듯이 적고 대부분 조작된 내용들로 되어있다. 그런데 광게토왕 비석이 있다는 집안은 중국산서성 회인현이며 현재의 한반도 북쪽에 있는 만주가 아니다. 산서성 회인현에 있던 것을 일제가 현재의 만주 집안으로 이동시켜 놓고 옛 부터 있었던 것으로 조작해 놓은 것이다. 청나라가 산서성북부 대동부에 회인현, 통화현을 만들고, 1875-1908년의 광서황제 때 회인현에 집안현과 환도현을 만들었는데 중화민국(1911-1927) 때 환도현의 이름을 환인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일제가 현재의 신만주로 모두 이동시키고 광개토왕 비석도 옮겨놓은 것이다.
(근거) 1). 집안현(輯安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P.1244): 산서성 회인현 지역 ⤇신만주로 이동 “한나라 말기에 고구려 환도현이다. 당나라 때 발해의 서경압록부다. 청나라가 통화, 회인 두현을 설치한 땅이다. 광서간에 나누어서 집안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통구구이고 봉천성소속이다. 중화민국 초에는 봉천 동변도인데(위치: 산서성) 지금의 요녕성이다.(위치: 신만주)(漢末高麗丸都縣. 唐渤海西京鴨綠府. 淸爲通化懷仁兩縣地. 光緖間析置輯安縣. 治通溝口屬奉天興京府. 民國初屬奉天東邊道. 金屬遼寧省.)”
2).회인현(懷仁縣)(전P.1342): 산서성 대동 서남 “요나라가 설치했다. 아보기가 진왕 이극용과 동성에서 회합했다. 회상인이란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현의 이름으로 택했다.지금의 산서성 회인현 서쪽이다. 금나라 때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명나라, 청나라 때는 다 산서성 대동부 소속이었다. 민국 초에는 산서성 안문도에 속했다"(遼置. 因阿保機與晉王李克用會於東城. 有懷想仁人之語. 故縣取名. 在今山西懷仁縣西. 金徙今治. 明淸皆屬山西大同府. 民國初屬山西雁門道.)“ 중화민국(1911년∼1928년)
3). 통화현(通化縣)(P.854): 산서성 회인현 지역 ⤇신만주로 이동 "수나라가 설치했는데 당나라가 폐했다. 5대시에 옮긴 곳이 소봉현인데 통화로 고쳤다. 명나라 초에는 성이다. 옛 치소가 사천성 리번현 동쪽에 있고 지금은 통화리다. ⦿청나라 수암주 동변 땅이다. 광서간에 나누어 통화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두도강이고 봉천 흥경부 소속이다. 중화민국 때는 봉천 동변도다.(隋置. 唐廢. 五代時移小封縣於此 . 仍改曰通化. 明初省. 故治在今四川理番縣東. ⦿淸岫巖州東邊地. 光緖間析置通化縣. 治頭道江. 屬奉天興京府. 民國屬奉天東邊道.)“
4). 환인(桓仁)(P.715): 산서성 회인현 지역 ⤇신만주로 이동 “원래 수암주 동변지, 청광서간 회인현을 나누어 설치했다. 치소는 육도하(六道河)인데 봉천 흥경부 소속이다. 민국 때 환인으로 개명했다. 옛날의 발해 환주이고 봉천동변도 소속이다.(原爲岫巖州東邊地. 淸光緖間析置懷仁縣. 治六道河. 屬奉天興京府. 民國改名桓仁. 以古爲渤海桓州. 故名. 屬奉天東邊道.)”
5). 광개토왕 비석의 위치: 산서성 회인현 관월산 이을형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일제의 비밀첩보원이 광개토왕 비석을 1880년에 처음발견한 곳이 산서성 회인현 관월산이다”고 하여 필자의 연구와 일치된다.(2016년 5월 8일자 스카이데일리 기고문 중에서)
결론: 단순히 지명연구로만 결정할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은 4가지를 연구검토하여 합당한 것인가를 결정해야 된다. ①. 지명연혁: 지명연혁이란 집안이 과거에 어떤 지명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지명의 족보다. 그런데 한반도 북쪽의 신만주 집안일대에는 산서성에서 사용한 대동부, 안문도, 회인현이란 지명연혁이 없다. 또 신만주와 한반도의 지명에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쓰던 토박이말로 된 과거연혁이 전혀 없이 중국에서 이동된 것만 있으므로 역사가 조작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②. 지명의 위치: 산서성에서는 회인현 한 곳에서 집안, 통화, 환인이 있었는데 신만주에서는 각기 떨어져 서로의 거리가 200리가 넘는다.
③. 지리적 상황: 원래위치인 감숙성에서는 환도산은 해발 2000m가 넘고 북쪽으로 압록강, 남쪽으로 패수, 동남으로 송화강 서상류가 나와 천리가 넘는 3대강의 발원지다. 산서성으로 이동한 회인현 지역에도 고산이 있으나 동북으로 영정하, 남쪽으로 분수라는 2대강이고 3대강이 아니며 방향도 틀린다. 신만주 집안은 일명 환도성이라고 지도에 표기하고 있지만 2천미터 이상의 고산도 아니고, 압록강은 백두산에서 나오지 환도산에서 나오지 않으며, 송화강과 패수의 발원지가 아니다.
④. 역사적 상황: 중국에는 6500년 전후의 지구변동 때 대해일을 피하여 동몽골로 피난한 한반도 마드족이 전 세계로 퍼졌는데 중국서부지역에서는 환웅왕조의 국무총리를 세습하여 사실상 황웅왕조의 실권자인 숙신족이다. 또 하나는 6000년 전후에 환웅으로부터 쫓겨난 호기족(虎旗族)이 압록강 남북에 자리잡고 고례국(高禮國)을 건설했는데 이들 중 소호씨, 소전씨등이 산동-하남지역으로 이동하여 중국 동부의 주인이 되었다. 원래위치인 감숙성 국내성은 5500년 전에 숙씬족 풍류파인 태호복희와 여왜의 도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며, 여왜가 서쪽 융족의 침략을 받아 전쟁에 패하여 섬서성 북쪽 내몽고 부주산에서 죽으니 섬서성 서쪽 경계지역에서 수비대장을 맡고 있던 한반도 고례국의 후손인 신농이 중국천하를 통일하여 신농국을 세우고 융족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했다. 물론 태호복희나 신농은 황제가 아니고 환웅(교황)의 수많은 제후들의 패자(장군: 막부의 쇼군)이다. 환웅이란 일본의 천왕과 같이 정치의 제왕이 아니고 교화주 즉 오늘날 로마의 교황과 비숫하다. 신농을 계승하여 황제헌원이 서도(石)로 삼아 주둔한 황제성, 헌원성인데 치우가 침략하여 빼앗아 도성으로 삼은 치우성이다. 이때부터 중국대륙은 동서로 확실하게 분열되어 대룩전체로 보면 치우는 서쪽의 패자인 서패(西覇)로서 감숙성, 청해성, 신강성의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고, 오늘날 회족과 회교권이 다 묘족들의 후손들로 분류되는 엄청난 세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반대로 동쪽은 황제헌원이 동패(東覇)로서 중국 본토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 후 국내성은 치우왕조를 계승한 요임금의 도성인 당(唐: 태원)이다. 단국은 요임금의 도성인 당(唐)에서 동남으로700여리에 있는데 단국은 환웅의 제후국 중의 하나로서 섬서성 기산남쪽인데 서쪽 일대를 방위하고 다스리는 서관(西關)으로서 군사요층지이며, 단군은 환웅의 나라 안에서의 서패((西覇: 서쪽패자)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가 서쪽패지였던 것과 같다. 요임금이 앞으로의 위험에 대비하여 선제공격으로 단국을 침략하여 초토화시키고 단군을 죽여서 자국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다. 요임금과 단국의 전쟁은 황제헌원과 치우 전쟁부터 계속된 연장전이다. 이때 비군(卑君: 비왕이 어님)으로서 사천성 성도 서쪽의 대읍을 맡아 다스리던 비군이 상경하여 환웅(교황: 기록에는 천제로 되어있음)의 재가를 받아 “단군”을 게승하여 초토화된 도읍을 버리고 서안서남쪽 우수하 언덕에 새로운 도읍을 세워 아시달이라 했다. 나라를 정비하고 국력을 키워 말년이 되어 약해진 요임금을 서쪽으로 몰아내고 헌원의 도성을 탈환하고,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10년 만에 감숙성 평나(平那: 平羅)로 천도하기에 이른다. 요임금이 죽고 순임금이 계승하니 적대관계에서 강화형태가 되어 나라가 안정되었으므로 남쪽 1000여리에 있는 복희성-헌원성-치우성-요임금의 도읍인 “당”으로 천도하고 조나(朝那)로 고친다. 이곳이 바로 백악산 아사달이다. 이 조나가 후세의 고구려 국내성평양이다. 곧 현존하는 역사책들의 중심지역이다. 이 땅은 다시 서쪽의 흉노족이 차지하는데 22대 색부루단군은 요임금계열의 백색종족인 흉노족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고조선은 전기 1048년은 국호가 단국(檀國)이고, 후기 1048년은 단군의 도읍이 ”조나“이고 색부루의 고향에 기련산 즉 선도산(仙桃山)이 있고 청해호를 선수(仙水)라고 했으므로 ”조나(朝那)“와 ”선수(仙水)“를 합하여 ”조선(朝仙)“인데 중국의 주변국을 낮추는 기록법에 의하여 나쁜 글자인 선(鮮:: 옛날 욕으로 쓰던 말: 조무래기)자로 바꾸어 ”조선(朝鮮)“이 된 것이다. 훈족을 흉악한 놈들이라고 해서 흉노(凶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중국사기는 다 조작된 소설이고, 한문옥편도 조작 또는 왜곡된 것이 많은데 한국인들은 순진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중국사기나 중국옥편을 진짜라고 믿고 주장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민족이 되어버렸다. 단군은 황제가 아니며 중국 본토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권을 가진 제후들의 패자이다. 단군 때에도 환웅(교황)이 있어서 교황의 신임을 받아 단군이 된 것이다. 중국 본토는 땅이 넓고 크므로 단군 이외에 다른 패자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본토에서의 단군은 서패(西覇)이고 남패 혹은 동패도 있을 수 있는데 은나라가 바로 동패라고 본다. 단군지역은 숙신족의 근거지이고, 은나라는 고례족의 근거지이며, 청해성은 치우묘족의 근거지이고, 기련산 동서지역과 신강성지역은 융족(견족, 흉노족)의 근거지이다. 일제가 만든 한반도 북쪽의 새로운 만주 땅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없다. 한국인들이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한다면 스스로 흉노족의 후손임을 차처하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환부역조의 배신행위가 아니겠는가?! 또 일제가 고조선을 우리역사라고 조작했는데 중앙아시아의 단군을 가져다가 국조로 받들고 있으니 한국인들은 지금 일제의 하수인들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계를 장악하여 국민들을 바보멍텅구리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들이 다 죽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