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친구의 추천
이 책은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이광수.
변절한 친일파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소설을 읽을때도,
그 사람의 됨됨이가 불손하면 읽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황석영이 변절한 이후에는
그의 책은 거들떠 보지 않는 이유도 그런 이유이다.
그러니,
친일 변절자의 책은 어떠하겠는가?
나의 독서목록에 가장 우선적으로 빠져 있었다.
그런데, 몇년전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한테 책 좀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최근에 읽은 책이라며 추천해 준 책이 이광수의 무정이다.
그 친구도 물론 이광수가 변절한 친일파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친구는 대학 다닐 때,
학생 운동도 참였고,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그야말로 알짜 진보인 친구이다.
그런 친구가 이광수의 책을 추천한 것이 조금은 의외였다.
그가 덧붙여 설명하길,
이광수의 초기 작품들.
즉 변절하기 전의 작품들은 읽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가 비록 후에 변절하긴 했지만,
그 전의 작품들은 작품으로써의 가치가 있다는 의견이다.
작가를 보지 말고, 소설 작품으로써 가치가 있으니, 읽어볼 만하다는 의견이었다.
그 친구의 의견에 솔깃하여,
독서 목록에 올려 놓고,
이제서야 읽어 보았다.
1. 주인공
이 책은 1917년 출간하였다.
그 시기의 서울의 풍경을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풍기는 소설의 분위기는
심리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 평가는 개인적인 평가이다.
실제 전문 평론가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심리 소설이다.
주인공들의 마음 속 내면의 심리를 잘 묘사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유명한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이 연상되기도 하였다.
암튼,
주인공 이형식의 소개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형식.
경성학교 영어교사.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물.
하지만, 고아 출신에다 집은 가난하고 혼자 하숙하고 있었다.
어느날 김장로의 딸 선형의 영어 개인 교사 요청을 받았다.
김장로의 딸 선형이 내년에 미국 유학을 가기 때문에 영어 교습을 한다고 하였다.
그동안 여자를 모르고 있던 순진남 이형식,
긴장감을 안고 첫 수업을 하였다.
선형 뿐만 아니라, 김장로가 보살피고 있던 고마 순애도 같이 가르쳤다.
그렇게 첫 수업을 하고 하숙집에 온 이형식.
선형이라는 여인에 떨리는 마음, 선형을 머릿속에 그려보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박영채.
형식이 어린 고아 시절, 형식을 보살펴 주던 선생님의 딸이다.
형식의 선생은 형식을 사위로 삼으려고 했으나,
선생이 누명을 쓰고 두 아들과 함께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후 영채는 외삼촌댁에서 기거했으나, 이미 외삼촌도 돌아가신 상태라
핍밥받으며 살다가 아버지 감옥이 있는 평양으로 갔었다.
아버지를 살리겠다고 어린 영채는 기생이 되기로 한다.
그것이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생이 된 딸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자살을 선택하였고,
두 오빠도 옥에서 모두 죽고 영채는 고아가 되었다.
이후 5~6년 떠돌이 기생 생활을 하다가 형식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재회한 자리에서 기생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모에서 기생티가 났다.
형식은 영채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영채가 기생이면 어쩌나,
다른 남자한테 순정을 빼앗겼으면 어쩌나,
이따위 고민을 하며 잠에 들었다.
2. 인간의 감정이란...
형식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던 선생이었다.
학생들이 동맹퇴학 운동을 함에 있어서도
가장 먼저 형식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교사이자 학감인 배명식의 비리를 형식도 알고 있었기에,
학생들의 동맹퇴학 운동을 지지하였다.
특히 배명식은 계월향이라는 기생에 추근대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형식은 계월향이 박영채란 것을 직감하였다.
그녀를 빼오려면 1000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박영채의 살아온 곡절을 생각하다 보니,
형식은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다.
형식은 무조건 부딪혀 보기로 했다.
영채가 머물고 있다는 기생집을 찾아갔다.
친구인 기자 신우선에게 도움을 청해 같이 갔다.
영채는 이미 배명식이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간 후였다.
형식은 급해졌다.
형식과 우선은 경찰까지 대동하고,
배명식이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현장을 덮쳤다.
배명식과 그의 일행이 영채를 욕보이려는 순간 형식이 들어닥쳤다.
그렇게 영채를 구하고, 각기 집으로 향했다.
형식과 영채.. 각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였다.
다음날, 형식은 영채를 찾아갔다.
형식을 반기는 것은 영채의 유서뿐.
대동강에 몸을 던지겠다는 유서였다.
형식은 눈물을 흘리며, 영채와 같이 있던 노파와 함께 바로 평양으로 행했다.
미리 평양에 있는 경찰에 전보를 쳐서,
영채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자살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에 도착한 형식.
영채가 갈만한 곳을 안내해주기 위해 또다른 기생과 함께 갔다.
그때 형식이 느끼는 감정.
그 기생에 대한 호감이 새록새록 자라면서,
슬픔이 점점 사라졌다.
영채에 대한 감정도 이상하게 사라졌다.
그것이 남자의 마음인가? 인간의 마음인가?
형식은 자신의 스승이자 영채의 아버지 묘지 앞에서도 그리 슬프지 않았다.
영채의 아버지 묘에는 영채가 온 흔적도 없었다.
경찰서에 물어봐도 영채와 비슷한 사람이 기차에서 내린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형식은 이미 영채가 죽었다고 단정하였다.
시신을 찾아볼 생각도 안하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리 슬프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무정한 존재인가?
평양을 갈때만 해도, 영채에 대한 애절함이 어찌 그리 쉽게 사라졌는가.
서울에 도착하니,
학교에는 형식에 대한 악소문이 돌고 있었다.
기생과 어울리고, 기생을 따라 평양까지 갔다는 소문.
학생들도 예전과 달리 멸시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형식은 그 자리로 학교를 때려치고 집으로 왔다.
친구 신우선이 소식이 궁금하여 와 있었다.
신우선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적어도 영채의 시신은 확인하고 왔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이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형식은 다시 평양으로 가기로 하였다.
3. 선택의 기로
다시 서울역으로 나가려는 찰나,
김장로 측근이 찾아왔다.
뜻밖의 김장로의 뜻을 전했다.
김장로는 자신의 딸 선형을 형식과 약혼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이 미국 유학을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만나자고.
이건 무슨 소린가.
형식은 영채에 대한 죄책감때문에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 계산을 한다.
형식은 평양행을 그만 두고, 그날 저녁 김장로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형과 약혼을 약속한다.
..
한편, 영채는
평양 가는 길에 일본유학 중에 방학을 맞이하여
고향 황주로 가는 신여성 병욱을 만나게 된다.
병욱은 영채의 사연을 듣고,
죽기 말라고 설득한다.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영채는 병욱과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우친다.
자신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당연한 진리.
그리고 형식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 아닌 의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영채는 평양이 아닌 병욱의 고향 황주에서 내렸다.
병국의 집에서 같이 지냈다.
병욱의 오빠 병국에게 또다른 호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병국은 이미 결혼한 몸이다.
이런 새로운 생활을 하면서, 영채는 남자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병욱은 결혼한 몸인데도, 영채에게 야릇한 감정이 생겨 고민을 생겨 친구에게 편지를 하기도 했는데,
그 친구가 다름아닌 형식이었다.
소설의 우연이 많이 등장하지만, 소설의 특징이 아니겠는가.
4. 해피엔딩
형식이 기생과 어울렸다는 소문은 김장로의 귀에도 들어갔고,
선형의 귀에도 들어갔다.
선형은 원래 형식이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외모와 레벨 모두 자시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명에 의한 약혼이니 어쩔 수 없지 한 것이다.
형식으로부터 호감을 찾아보려 했지만,
자신의 이상형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형식도 고민하였다.
선형과 약혼이 정말 사랑을 전제로 한 약혼인가에 대한 의심.
김장로의 돈에 혹한 것은 아닌지.
선형은 자신을 사랑하는지...
형식은 선형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사랑하냐고 묻기도 하였다.
김장로는 남자가 한번쯤 기생하고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별수롭지 않게 생각하였고,
형식과 선형은 예정대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
병욱의 집에서 기거하던 영채는,
병욱의 청으로 같이 일본 유학을 가게 되었다.
기차에 탑승하고, 서울에 도착하였을 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죽으려고 서울을 떠났다가
일본 유학길에 서울에 다시 오다니..
더 놀라운 일은 그들이 탄 기차에 선형과 형식도 탄 사실이다.
그들은 미국 유학을 위해 기차를 탄 것이다.
알고 보니 병욱과 선형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선형과 형식의 어색한 재회도 성사되었고,
형식을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는 선형.
그 놈이 너냐는 식의 눈으로 형식을 쳐다보는 병욱.
그 사이에서 영채냐 선형이냐 또 갈등하는 형식.
...
달리던 기차는 폭우로 인해 기찻길에 끊겨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신여성이 아니었다.
병욱은 형식, 영채, 선형을 주도하며 수해 피해자들을 도와주었다.
임산부의 출산도 돕고, 환자들도 보살폈다.
경찰서장을 만나 즉석에서 자선음악회를 열도록 도움을 청했고,
성황리에 모금이 걷혀 그 모금을 수해 피해자들에게 써달라며
경찰서장에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토론을 하였다.
이 백성들을 도울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하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교육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자고 다짐하였다.
...
그리고 4년 뒤
그들은 각각 미국, 일본에서 훌륭한 인재로 거듭났다.
...
해피엔딩이었다.
마지막에 갑자기 계몽소설로 바뀐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주인공 이형식의 변죽대는 사고방식을 생각하면,
그의 해피엔딩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작가의 의도가 그러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
주인공 이형식이 영채를 배신하고,
왔다갔다 하는 성격을
지은이 이광수에 대입해 보니,
후에 변절하여 친일파가 된 그와 일치하는 듯....
책제목 : 무정
지은이 : 이광수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페이지 : 537 page
펴낸날 : 2005년 11월 11일
정가 : 9,000원
읽은날 : 2011.06.18~06.24
글쓴날 : 2011.07.0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