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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5월이지만 어린이 날,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날 잘들 넘지요
늦은 우탐대 일지 올립니다. 아하 글구 다음카페에 우탐대 함 쳐 보이소 ㅎㅎㅎ
제4회차-제5구간(팔령재ㅡ오봉산(879m)-연봉산(연비산;842m)-진양재-641봉-매치재
부의 미래가 아니라 결핍의 미래다!
-탐사일 ; 2011. 3. 25 (금)
-탐사구간 ; 팔령재ㅡ오봉산(879m)-연봉산(연비산;842m)-진양재-매치
-날씨 ; 아침눈바람, 오후 흐리고 포근
-탐사거리 ; 9.11km(도상거리)
-경계종주 시간 ; 6시간 35분(총소요시간 ; 13시간30분-도의회 기준)
-07:30 도의회 출발
-09:40 함양 나들목 합류
-10:10 팔령재(513m) - 식목행사(전남도목 은행나무, 경남도목 느티나무)
-10:50 팔령재 출발-남원 인월 성산마을과 함양읍 팔령마을 도경계 탐사시작
-11:50 850고지
-12:50 오봉산(879m)
-13:30 곰실재에서 점심
-14:00 곰실재 출발
-14:50 연봉산(연비산 842m)
-15:50 진양재
-16:10 배나무골 가는 길
-16:50 안산(641m)
-17:25 매치재(449m). 매치마을 (12번 고속국도, 37번국도) 구간 탐사 완료
-18:00 인월면 ‘흥부골 남원추어탕’식당(소재붕 011.654.5687)-평가 및 해단식
-19:20 인월. 지리산 나들목-88도로-중부내륙-남해고속국도-도의회
-탐사대원 ; 박동식. 황태수. 김국권. 서춘수. 변현성. 조형래. 백신종. 이수일. 신중철. 정홍연. 박동진. 이감독. 문호성. 곽치권.
권영진. 문인두. 강성도. 이문식 (1진=13명, 2진=5명)
-식목행사 참석내빈; 하대식(전북도의원011.284.9013;남원).오윤수(전 남원시의원). 장주호(인월면장-010.4451.7999). 동인숙(인월면사무소). 이태식(함양군청 산림녹지과장). 공태정(함양읍장). 이현규(마천면장). 안병명(함양군 축구협회장010.3550.1077). 지성호(연합뉴스경남취재본부 부장 010.3860.9696). 이영미(함양신문 부장 016.808.8574). mbc진주지국 기자외 몇 분 더더더.
-특이사항 ; 전북도목(은행나무)과 경남도목(느티나무) 2그루 씩을 도경계 양편에 화합의 상징으로 심음
-탐사일지
우탐대에 탄력이 붙는 듯하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세 번 이상 함께 걷고 나면 금방 수준급에 오른다. 특히 한 달에 한번 나서는 탐사대에 대한 애정들이 대단하다. 국회의정연수원에서 연수중임에도 불구하고 밤차로 거창에 내려와 새우잠을 자고 새벽 해장국도 제대로 못 먹고 참석한 조형래, 변현성의원, 우탐대를 계기로 김해시경계일주를 하겠다는 김국권의원, 황태수.박동식부의장에갈채를 보낸다. 특히 식목행사에 함께 한다고 길 나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어젯밤부터 강풍에 눈비가 흩날려 탐사 자체가 불투명 함에도 모두들 꾸역꾸역 팔령재로 모여 들기 시작했다.
내일 모레가 4월인데 밤부터 내린 눈이 하얗게 쌓였고 팔령재 능선엔 바람이 몸까지 날려 버릴 듯 사정없이 불어댄다.
10:20 미리 준비한 스무 살배기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2그루씩 짝을 맞춰 도경계 화합의 동산과 흥부마을 표지 작은 공원에 심었다. 버팀목을 세우고 이름표도 달았다. 몇 십 년 뒤엔 두 나뭇가지가 얽혀 은행느티라는 연리지 이름 하나 탄생하길 빌며 마천양조장 곽옥근 사장이 보내온 막걸리를 곧고 바르게 잘 자라라고 술 술 나무에도 붓고 사람에도 부었다.
남원 출신 전북도의원 하대식. 아영면 출신 오윤수 전. 남원시의원. 장주호 인월면장이 함께하여 눈보라 치는 속에서도 양도의 훈훈한 인정과 흥겨움을 마음 껏 느끼게 했다. 참석한 내빈과 대원 모두가 축하 덕담들을 한마디씩 하고 서둘러 탐사 길에 올랐다.
10:50 팔령재라고도 하고 팔량재라고도 하는데 팔령으로 굳어진듯하다. 남원 인월의 성산마을과 함양의 팔령마을을 경계로 밭길을 따라 5분쯤 들어가면 팔령산성(553m) 안내판이 서있고 허물어진 옛 성터가 길을 막는다. 삼국시대의 성터로 골짜기를 안고 있어 포곡식 산성이란다. 고려 말(1380년. 우왕6년)엔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영남을 거쳐 함양 사근산성까지 함락하고 북진을 하는데 이성계가 이곳 팔령산성에서 그믐밤에 달을 뜨게 하여 활로 쏘아 죽였단다. 인월(引月)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 한다는데 참인지 거짓인지.
천년 세월을 훨씬 지난 성벽을 타고 다시 밭두렁을 지나면 곧장 비탈길이 시작된다. 지난 밤 눈을 맞은 소나무들이 양지쪽은 녹고 음지쪽은 눈을 이고 서 있다. 하얀 눈이 검은 소나무 휘인 등걸의 자태를 뽐내게 하고 있다. 흰색이 검정을 존재케 한다.
850고지까지 1시간 가까이 코를 박고 오르면 드디어 시야가 툭 터이고 오봉산 다섯 봉우리가 손짓을 하고 잘 생긴 소나무가 미소를 짓는다. 뒤로 돌아 눈길을 멀리 주면 지리산 주능선이 편안히 우리를 반기며 길게 누워 있다. 경계 마루금은 트인 시야만큼이나 바위들이 올망졸망 길을 끌고 다시 1시간 쯤 능선을 타면 키 가까운 오봉산(879m 서리봉. 상산(霜山)이라고도 함) 표지돌이 턱 버티어 선다.
12:50 정상엔 눈과 바람도 셀 뿐더러 앉을 만한 자리도 없다. 사진들 찍고 서둘러 연비지맥을 거슬러 올라간다. 능선 곳곳 갈림길마다 함양군에서 친절한 나무 이정표를 세워 길 찾기엔 안성맞춤인데 정상석도 산에 어울리는 자연석으로 아담하게 만들었으면 더욱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다.
오봉산 다섯 봉우리와 옥녀봉, 천령봉 능선을 뒤로하고 40분가량 내리막길로 접어 곰실재에서 늦은 점심 자리를 폈다. 왼쪽으로 마루금 가까이엔 ‘전북지리산낙농농협 육성우위탁사업장’이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로 지어져 있고, 숲가꾸기 사업인지 벌목을 심하게 해 놓았다.
13:30부터 30분간 말 그대로 점심(點心;마음에 점하나 찍는) 했다. 곡차도 했다. 봉다리커피도 마셨다. 산상 시회도 열었다.
눈 내리는 봄 꾀꼬리 정홍연회장이 낭랑하게 문태준의 ‘맨발’을 떨며 읊는다.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말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봄의 한가운데 춘분(3월 21일) 지난지 며칠인데 눈은 오고 시절은 아직도 겨울인가. 그래도 어딘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장한 우리의 이름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 처럼 나긋나긋 따뜻한 봄봄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준.희-대단한 분들이다)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의 시 ‘봄’도 함께 올린다.
오전의 까칠한 날씨도 우리가 가여워서 인지 많이도 풀어졌다.
충무 김밥은 안주 대용으로도 그만이라 함양 마천 잘 익은 김치와 막걸리로 점 하나 찍은 게 하니라 포식을 하고 일어선다.
14:00 부른 배를 보듬고 다시 연봉산을 향해 천천히 내 딛는다. 배부르면 자동으로 노래가 나오는가. 앞뒤에서 흥얼거리고 산짐승들 놀라게 야호 소리가 시끄럽다.
14:50 연봉산(연비산 842m) 정상엔 표지석이나 이정표가 없다. 단지 ‘준,희’라고 표시된 두사람의 이름으로 짓궂을 만큼 많은 표지판을 비닐장판지에 만들어 철사로 꿰매 놓았다. 지맥, 정맥, 대간 길 어디에고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연비지맥에도 스무개는 족히 될듯하다. 어쨌든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연봉산 정상은 시야도 좁고 산꼭대기로서의 맛이 없다. 떡갈나무와 참나무들이 어지럽다. 그 사이를 벗어나면 오늘의 탐사 종착지인 매치재가 보이고 도경계를 넘는 88고속국도가 빤히 보인다. 그래도 2시간 반 정도는 걸어가야 한다.
경사가 완만한 길을 1시간가량 따라 가면 역시 ‘준.희’씨가 붙인 진양재 표시기가 붙어 있는데 재의 흔적이 의심스럽다.
15:50 다시 20여분 오르막으로 나가면 568봉이 나오고 연이어 배골재가 나온다.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농로길이 뚫려 있는데 지금은 묵은 길이라 오가는 이의 흔적이 없다.
16:10 오전 눈바람과 바위 길에 지치고 무릎까지 아프다는 변의원, 박감독, 권주임은 왼쪽 농로를 따라 배골 마을로 내려 보내고 본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안산이라고도 불리는 641봉에 올라 왼쪽으로 크게 휘어 길을 잡아야 하는데 우리의 길눈이 황의원이 오른쪽 길을 잡아 줄달음치더니 보이질 않는다. 뒤따르던 문호성, 곽치권 대원은 다시 되돌아 와 본대와 합류했지만 황의원은 놓쳤다. 전화 연결도 되질 않고 한참을 서성이다 그냥 하산키로 하고 매치마을 뒤로 길을 잡았다. 안산에서부터 희미해진 경계 길이 막바지엔 이어졌다 끊어졌다 했다. 매치마을 뒤편 농로를 잡아내려서는 길이 좋을 듯하다.
17:25 함양군 백전면 매치마을회관 앞엔 중간 탈출한 대원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전라도로 빠진 대원도 경상도로 내려선 대원도 전화 연결들이 잘 되어 후방 지원조 덕분에 버스로 잘 찾아 모셨는 갑다. 마을 반장 어른(양정식 75세.010.4120.5894)께서 반겨 맞아 주시고 지도상 경계라 하지만 이웃 전라도 밤골 마을과 의지리 주민들이 오순도순 농사지으며 잘 살고 있다며 허허롭게 웃으신다. 뒤에 시간되면 다시 놀러오라는 당부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우리는 두 손을 잡고 마을 어른들께 건강하시라 인사 올린 뒤 인월면소재지 남원추어탕집으로 옮겨 탐사평가와 뒤풀이를 거하게 마쳤다.
아침 눈바람에 찡그렸던 표정들이 보름달덩이 처럼 밝다. 자연이 주는 평온함이다.
보름전 일본 대지진(2011.3.11 14:45 도쿄 북동쪽 243마일 해저 진도 8.8 도후쿠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지역)의 재앙 앞에 현대 첨단 과학 문명이 맥없이 쓸려가고 인간한계를 넘는 막막함을 말해 무엇하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두려운 심사를 감출 수가 없다.
로버트 융크가 그의 책 ‘원자력 제국’ 끄트머리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무한한 부의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지만, 유한한 결핍의 미래를 살아야 한다!’
2011. 3. 25
경계일주 그 네번째 탐사를 마치고 ... 백신종 삼가
첫댓글 산에 가야 정신이 들어요...그래도 곡차는 또 따라 오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