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림 잘 그리는 친구, 악기 잘 다루고 노래 잘하는 벗이 부러웠습니다. 중고등학생 때 집에 와 있던 피아노 전공의 막내 이모에게 피아노를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남자가 무슨 피아노를 하며 뿌리쳤던 게 지금도 후회됩니다. 예술 감각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꽤 오래되었지만, 기타도, 단소도 기초만 다지다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사진 찍고 글 쓰는 취미에 악기연주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은 생각이 커졌습니다. 드럼, 색소폰, 기타, 대금... 여러 악기가 떠올랐습니다만, 마침 같은 봉사단체에 있는 해금 연주자께서 해금 강좌를 개설하셨기에 고민 없이 등록하였습니다. 기본음을 내는 데도 시일이 꽤 오래 소요되었습니다. 두 연주곡을 수도 없이 연습하였지만, 악보가 쉬이 외워지지 않았습니다. 내 머리가 이 정도로 나빴나 반문하던 순간, 악보가 머릿속에 들어오고 손끝에 자연스레 익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의 지도, 무한한 연습이 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즈음, 우리 민들레봉사단의 봉사 날, 해금 연주로 어르신께 봉사를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3개월차의 초짜, 아직은 멀었지만,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수강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 올해 마지막 봉사 날, 어르신들께서 미욱한 실력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주시고 좋아하시니 그만으로도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아쉽게도, 박미숙선생님의 독주, 앵콜, 재앵콜 세 곡은 동영상을 입수하지 못하였습니다. 해금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명연주였는데... 대신, 연주에 열중하시는 사진만 몇 장 모셨습니다.
어쭙잖은 실력의 연주에도 즐거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뵈며 더욱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 기회에는 완성도 높은 연주로 화답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숙제가 생겼습니다. 선생님 지도에 따라서도 3개월 동안 겨우 2곡을 기교 없이 연주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렀는데, 강좌가 끝났으니 이젠 당분간 혼자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연습 게을리하지 않기, 현재의 2곡에 강약, 농현으로 완성도 높이기, 다른 곡들 연습하고 외우기, 그리고 정간보에 이어 오선보 마스터하기, 내 해금 장만하기,... 마음을 다잡습니다. 당분간 이래저래 바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쁜 만큼 행복해질 겁니다. 동절기에 접어들어 출사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해금 사랑에 더 빠져볼까 합니다. 아내의 센터, 설리의몸공작소도 수업 없는 시간에는 제게 멋진 연습장소로 도움을 크게 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참고로, 해금에 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관련 자료를 인터넷에서 모셔 와 편집해 보았습니다. 해금(奚琴)은 국악에서 주로 연주하는 한국의 전통 찰현악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래는 중국 지역에 살던 해족(奚族)에 기원을 둔 악기로, 한반도에는 고려 시대에 전래되어 국악기로 자리잡았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악학궤범에 등재되어 대표적인 한국의 현악기로 자리매김하였답니다. 해금은 울림통과 대에 연결된 안줄과 바깥줄 사이에 활을 넣고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울림통은 큰 대나무의 밑뿌리로 만들고, 울림통의 한쪽은 오동나무로 만든 복판으로 막혀 있으며, 나머지 한쪽은 열려 있습니다. 울림통과 두 줄을 연결하고 있는 것을 원산이라 하며, 이의 위치에 따라 음량이 달라집니다. 두 줄의 이름은 각각 중현과 유현이며 명주실로 만드는데, 중현이 더 굵어서 낮은음을 내며, 중현과 유현은 완전 5도 차이가 나게 조율합니다. 연주는 오른손으로 활대를 잡고 왼손은 두 줄을 한꺼번에 감아 잡고, 줄을 잡는 왼손의 위치와 힘의 강약으로 음의 높낮이를 조절합니다. 소리를 내는 활시위는 말총으로 만듭니다. 해금은 관현합주에 편성될 때, 활대를 움직여 지속음을 내면서 관악기의 선율을 따라 연주해서, 이런 연주 특성 때문에 관악기로 분류되기도 한답니다. 삼현육각을 비롯해 궁중음악에는 물론 민속음악 전반에서 피리, 대금과 함께 편성되며, 근대 이후에는 산조와 같은 독주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악기는 금金, 석石, 사絲, 죽竹, 목木, 토土, 혁赫, 포匏 여덟 가지의 재료[八音]에 따라 구분되기도 하는데, 이 여덟 가지 재료를 모두 갖춘 악기로는 해금이 유일하다는 특성도 있습니다. 해금은 표현할 수 있는 음역이 넓으며, 왼손의 위치를 바꿈에 따라 쉽게 이조移調가 가능한 장점이 있는 악기입니다. 애초에 해금 자체가 현의 적당한 곳을 손으로 잡아 연주하기 때문에 완전 5도 차이가 나는 것 외에는 ‘각 현이 정확히 무슨 음을 내게 조율하여라’라는 규정은 없지만, 대충 위에서 10cm 아래쯤을 식지로 짚고서 유현이 黃, 중현이 㑖이 되게 조율합니다. 이렇게 따로 정해진 손의 위치가 있는 게 아니라 현의 적당한 부분을 잡아서 음을 찾기 때문에 절대음감이 없으면 손의 위치를 찾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런 점이 해금의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국악기는 정해진 음 외에 반음을 내기가 어려워서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 조옮김이 쉽지 않은데, 해금은 손만 움직이면 조옮김이 끝난다. 심지어 악력 조절만으로 미분음(서양 음계에서의 반음보다 더 세밀한 간격을 가지는 음을 말함.)을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해금은 '깡깡이', '깽깽이'등의 별명이 많습니다. 이 별명은 해금이 내는 소리에 빗대어 생긴 별명입니다. 콧소리 같은 '비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거칠게 긁는 소리도 납니다. 활에 힘을 주는 정도에 따라서 음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고, 음의 끊김이 없이 지속적인 선율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국악기에 비해서 음정의 표현이 비교적 자유로워 서양음악 선율을 연주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해금 음색을 많은 이들이 구슬픈, 애잔한, 한이 서린, 거친, 마음을 울리는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Gabi 님의 블로그에, 해금 연주를 듣고 평한 글이 해금의 소리를 잘 표현했다 싶어 그대로 모셔 왔습니다. '해금의 소리는 한 여자의 일생 같았다. 소녀부터 청년, 중년, 나이든 노인의 목소리까지도 해금의 소리 안에 녹아 있었다. 그 안에는 삶을 막 시작한 환희와 풋풋하고 에너지 넘치는 젊은 시절, 어느 시절을 지나 저물기 시작하는 노인의 한탄과 후회까지. 저음부터 고음까지 하나의 악기에서 이토록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기쁨과 슬픔을 모두 아우르는 소리를 지닌 악기 해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종묘제례악 해금 연주자 일원이기도 한 선생님께서는 일 년에 두 번 종묘제례악 연주가 있고, 거기서 연주에 참여하신다고 합니다. 봄에 더 성대하게 한다고 하니 내년 봄에 종묘에서 그 참모습을 보며 즐길까 합니다. 벌써 설렙니다. 이제부터 독학에 가끔씩 선생님의 지도를 더해 제 실력도 찬찬히 쌓아갈 생각에 또한 설렙니다.
성종 때 간행된 악학궤범의 서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답니다.‘음악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깃든 것이며 허공에서 나와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사람으로 하여금 느껴 움직이게 하고 혈맥을 뛰게 하며 정신을 흘러 통하게 한다.’ 보면대 챙기던 중 종이가방에서 발견한 참으로 멋진 말, 원전을 찾다가 알게 된 겁니다. 앞으로 오래, 머리속에 머물 겉 같습니다.
인생 연극의 법칙(모셔 온 글)==========
사람들은 좋은 연극 한 편을 보고 난 뒤에 열광적인 박수를 보냅니다.
막을 내리고 배우들이 다시 무대로 등장해 손을 잡고 인사를 할 때
그 배우들을 향해 아낌없이 박수를 쳐대는 모습은
관중에게도 배우에게도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대에서 열정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에게 관중들이 보내는 박수는
물론 그날의 공연에 대한 만족의 박수입니다.
하지만 무대에 선 배우들에게 그 박수의 의미는
그 연극을 공연에 올리기까지의 오랜 시간의 연습 기간 동안
흘린 땀과 눈물에 대한 인정의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무대에서의 뛰어난 연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코 길고 긴 시간 인고의 노력 없이는
좋은 연극으로 공연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라는 연극에서도 예외일 수 없는 법칙입니다.
무대의 막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에서 흘린 땀과 최선을 다한 노력은
무대에서의 최상의 연극을 보장해 주는 법입니다.
언제 공연될지 모르는 그대의 인생이라는 연극…….
그럼으로 해서 당당히 그 무대의 주연으로 서게 되는 날.
결과는 항상 과정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는 것. 가슴 벅찬 일 아닙니까?
언제 공연될지 모르는 그대의 인생이라는 연극…… .
그럼으로 해서 당당히 그 무대의 주연으로 서게 되는 날.
결과는 항상 과정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는 것. 가슴 벅찬 일 아닙니까?
----- 박성철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중에서